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우리가 정말로 하고 있는 것은 '일'이지요. 그런데 이 '일'을 표현한 예술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문 경제면에는 실립니다만, 광범위한 인간 현상이라기보다는 주로 경제 현상으로 간주될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아름다움, 권태, 기쁨, 그리고 가끔씩 느껴지는 공포에 눈을 뜨게 해주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특히 일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줄 수 있다는 그 엄청난 주장을 한번 파헤쳐보고 싶었지요.   

-한국 독자들에게의 편지'中-


알랭 드 보통의 신간 <일의 기쁨과 슬픔> 다행히(?) 보통의 우리나라에서의 인기는 꽤 높아서 아마존 UK에서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마존 COM 에 나오고, 또 고민하고 있다보면, 어느새 번역본이 짜잔 - 하고 나온다. 한국에서의 의외의(?) 인기를 알고 있는지 '미리보기'에는 안 나와 있는 책 첫머리의 '한국 독자들에게의 편지' 에는 '인세'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는다.  

그가 서문격의 편지에서 쓴 이 책의 기획의도는 위와 같다. 사랑 이야기가 판을 치는데(거기에 일조한 보통씨!) 그거 말고 우리가 정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하는 '예술'은 찾기 힘들다. 그러므로 '일' 에 대해 '예술적' 으로 '일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줄 수 있다' 는 주장(?)을 파헤쳐 보는 것.  

이 책의 원제는 The Pleasures and Sorrows of Work  '일의 기쁨과 슬픔' 혹은 '일의 행복과 불행'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3가지 중의 하나가 '출근길 지옥철'이다. 정말 아침마다 말그대로 '지옥'으로 걸어가는 기분으로 사람이 이미 가득한 지하철에 발을 들일때는 잠이 모자라 상큼한 아침부터 아주 죽을맛이었다. 딱 20분만 일찍 나오면 지옥 앞의 연옥.. 정도는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지옥'과 바꿀만큼 아침 출근시간전 20분의 단잠은 '달다'.  

제목에서 나는 이미 내가 일하며 겪었던 수많은 몹쓸일들, 비애, 를 떠올리며 이 책을 덥썩 샀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사면서 자기계발서를 기대하는 사람이 설마 있겠는가. 싶겠지만, 보통의 책을 원서 번역본 합해서 열권도 더 가지고 있는 '나' 조차도 순간 눈에 콩깍지를 쓰고 그와 같은 그림을 그리며 이 책을 사버렸다. 는 거.  

보통의 책들을 읽어온 사람들에게 이 책은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보다는 <불안>에 가깝다. 세상만사에서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어떤 한가지 단어를 끄집어 내서 보통처럼 수다 떠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목차에서부터 이미 상당히 기대와는 동떨어진다.

One: 화물선 관찰하기
Two: 물류
Three: 비스킷 공장
Four: 직업 상담
Five: 로켓 과학
Six: 그림
Seven: 송전 공학
Eight: 회계
Nine: 창업자 정신
Ten: 항공 산업

각각의 일에 참여하고, 그에 대해 고찰한다. 얼핏 '일의 기쁨과 슬픔' 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잘 뭉쳐지지 않는 키워드들로 보이지만, 나랑 거의 전혀 상관없는 대부분의 목차에 적힌 일들에서, 그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읽으며, 몇가지 공통된 이야기들을 건질 수 있다.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 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합리적인 정신 상태에서도 안전한 출세길을 버리고 말라위 시골 마을에 먹을 물을 공급하는 일을 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또 인간 조건을 개선하는 면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고급 비스킷보다도 섬세하게 통제되는 제세동기가 낫다는 것을 알기에, 소비재를 생산하는 일을 그만두고 심장 간호사 일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그저 물질만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86쪽- 
 
파트 3 비스킷 공장에 나오는 글이다. '작가'의 직업을 가지고 '글쓰는 일'을 하는 보통에게 생소한 여러가지 직업들을 바로 옆에서 관찰하며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새로운 시각으로, 때로는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들을 보통 특유의 말발로 끌어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사색을 끌어내는 보통 아저씨. 아직 죽지 않았어!

우리는 누구나 '일'을 한다. 혹은 '일'을 찾고 있거나, '일'을 했거나. 이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베이비나 입에 은스푼을 물고 난 사람 정도이지 않을까.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바로 이 '일'이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내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마련이다. 내가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수천, 수만의 서로 다른 일들을 하는 일꾼들. 남이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그 일꾼들 중 하나인 나. 처음 이야기했던 '일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줄 수 있다'  는 그 엄청난 주장을 보통이 성공적으로 파헤쳤는지 알아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여전히 로또를 꿈꾸고 있지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보다는 당연히 낫다. 알랭 드 보통이 다음번에는 어떤 주제를 들고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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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책들 중에는 주구장창 인용되는 몇가지 문구들이 있다. <여행의 기술>에서의 비행기 이야기라던가,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의 사랑에 관한 밀고 당기기 이야기라던가. 이 책에서 주구장창 인용되지 않을까(적어도 나는) 싶은 문구를 찜해보았다.

사무실 문명은 커피와 알코올 덕분에 가능한 가파른 이륙과 착륙이 없으면 존립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밤에는 자비로운 칠레산 카베르네, 그리고 전혀 괴롭지 않게 최면을 걸듯 오늘의 범죄와 변화를 이야기해주는 저녁 뉴스의 안내를 받아 착륙 지점을 향하여 다가가게 될 것이다. -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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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09-04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박스 에러닷!

카스피 2009-09-04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을 하고 싶엄도 못하는 분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