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지기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
나시키 가호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들려오는 시원한 풍경 소리는
어느 처마 밑에 매달려 있는
여름의 흔적일까  

안 팔리는 작가가 얼마간의 돈을 받고, 옛집에 머무르며 집지기를 해주기로 한다. 이야기는 그 집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정원에 무성하게 자라는 많은 나무들, 꽃들, 열매들이 각각의 챕터 제목이다. 그들은 '배롱나무'처럼 때로는 주인공이고, '포도' 나 '레몬'처럼 심상을 전해주는 오브제로만 나오기도 한다.

집지기와 함께 하는 이는 집지기의 친구인 호수로 배를 타고 나갔다가 행방불명된 '고도'이다. (저자가 영문학에 조예가 있음을 생각할때, 이 고도가 그 고도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고도는 족자 안의 호수 속에서 비가 오는 날이면 배를 타고 족자가 있는 객실로 나온다. 고도와 집지기, 그리고, 고도가 인연을 맺어준 신퉁방퉁한 고로라는 개가 한마리 있다. 그리고, 하나라는 이름의 옆집 아줌마, 근처에 있는 절의 스님, 집지기를 연모한 배롱나무, 집지기가 무서워하는 벌레장수, 스님으로 변장하는 너구리 정도가 꾸준히 나오는 인/영물(?) 들이다.

저자의 <뒤뜰>이란 작품을 먼저 읽어 실망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이 작품은 맘에 쏙 든다. 음양사의 세이메이의 집 마당과 교코쿠도 시리즈의 3류작가와 샤바케의 령들이 합쳐진 것 같은 이야기다. 각 챕터가 식물이름으로 되어 있고, 거기에 집중하면서 짤막짤막한 이야기가 진행되므로, 짧고 굵은 이야기들이 합쳐져서 묘하게 진한 푸릇푸릇한 냄새를 풍긴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 보아도 운치가 있고, 풍류가 있다. 
책에 나온 식물들의 모습이 대략의 연필 스케치로 제목과 함께 그려져 있지만, 그림만으로는 상상이 안 간다. 식물의 이름에 무지한 것이 좀 아쉬웠다. 너무 늦게 알아버렸지만,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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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눌 2009-03-1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일본아동문학평론가 분한테 '서쪽마녀가죽었다' 추천받아서 찾아봤더니, 우리나라에는 '서쪽으로 떠난 여행'으로 나왔더라고요. 변역된 제목은 별로였지만, 책은 아주 좋았어요. 이 사람은 자연을 생생하게 담아내요. 보고 나면 딸기쨈 만들어 먹고 싶어져요. 나시키가호 다른책이 나온 걸 여기서 봤네요. 감사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