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 놔. 한참 재미나게 잘 읽었는데, 결말이 이게 뭐란 말인가. 나는 대부분의 경우, 소설의 결말에 불평하는 독자는 아니다. 그러나 이 결말은 좀 괴롭고, 억울하고, 작가가 과연 결말에 고민을 하기는 했단 말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열두살 소녀 팔로마. 그녀는 조숙하고, 섬세하고, 똑똑하다. 얼마전에 본 영화 '업타운 걸스'의 다코타 패닝이 오버랩 되었는데, 그녀보다 훨씬 복합적인 인물이다. 쉰넷의 수위아줌마 르네, 혹은 미쉘 부인. 그녀는 자신의 똑똑함을 감추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위아줌마' 이미지에 자신을 틀어맞추려고 하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겉으로 보면 가시로 뒤덮여 있어 철옹성 같지만, 속은 역시 고슴도치들처럼 꾸밈없는 세련됨을 지니고 있다. 겉보기엔 무가각한듯하지만, 고집스럽게 홀로 있고 지독하게 우아한 작은 짐승 고슴도치' 열두살 소녀 팔로마는 세상과 가족에 너무나 큰 환멸을 느껴, 열세살이 되는 날 집에 불을 지르고 수면제를 먹는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      

르네의 이야기와 팔로마의 이야기가 한챕터씩 오버랩되다가 새로 이사온 일본 남자, 카쿠로에 의해 그 둘의 이야기가 합쳐진다. 작가는 일본 문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소설 속의 두 여주인공 팔로마와 르네에 의해 드러난다.  
커피와 신문 대 차와 망가
우아함과 매력 대 어른들의 권력 놀이의 슬픈 권력성

이라고 읊는 열두살 소녀 팔로마 
'망가'를 이렇게 우아하게 이야기하는 소설은 처음이다.후훗

무언가 내면의 크나큰 약점과 상처를 가지고 세상에 가시를 세우고 있는 두 여자는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을 대표하는 '우아한' 카쿠로씨를 만나면서 그의 우아함과 밝음과 호기심과 관대함에 감화받는다. 그 둘이 좋아하는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먼 친척이기도 한 오즈 카쿠로씨.

카쿠로씨와 르네의 만남의 계기가 되는것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였다.
서로를 알아보는 이 장면은 정말이지 로맨틱하고 문학적이며, 부러운 첫 만남인데 말이다.

철학선생이었던 저자. 무지 똑똑하면서 냉소적인 두 여자 주인공 덕분에 이 책을 읽는 것은 즐거웠음을 고백해야겠다. 무리하게 보이는 철학적인 이야기들 마저도 읽을만 했다. 톡톡 튀는 재치와 냉소. 작가가 나와 같은 시대를 사는 작가구나 느끼게 해주는 현대문화의 인용 '일본의 바둑' 이야기라던가(그러니깐, 히카루의 바둑(우리나라 제목은 고스트 바둑왕)), 에미넴 가사 인용이라던가. 거슬리지 않고 이야기에 녹아들어간다.

중간중간에 무지 유쾌한 장면들도 있고, 두 상처 받은 지적인 영혼이 치유되어 가는 모습에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고양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요즘 내가 추구하는 '우아한 생활'  거기에 '고슴도치의 우아함'도 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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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03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르네는 우아하죠. 만나서 수다를 떨어보고 싶어요.

보석 2009-02-0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은 정말 황당하죠; 전 이 책이 취향이 아니라 근근이 다 읽었는데 결말 보고 책 던질 뻔; "이딴 결말을 보기 위해 내가 그렇게 힘들게 이 책을 읽었단 말인가!!!"

하이드 2009-02-0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생각외로 취향에 맞더라구요; 재미나게 읽고 있는데, 결말 !#%@$^#&*&
휘모리님/ 제가 딸릴 것 같아요. ㅎㅎ 고양이 레옹은 좀 보고 싶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