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가이도 다케루는 기본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표방하는 글을 쓴다. 그의 작품의 배경은 병원이고, 그곳은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이벤트라 할 수 있는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곳이기에 누구에게라도 자극적일 수 밖에 없는 소재를 가지고 의료계의 문제들에 메스를 들이댄다. 얼마나 재미있냐면, 이 작가의 소설인 '바티스타수술팀의 영광'과 같은 작품은 인기와 재미의 척도라 할 수 있는 다케우치 유코와 아베 히로시라는 탑캐스팅의 영화로도 나왔고, 이제 막 끝난 작년 4분기의 드라마로도 나온 바 있다.

이 작가를 보면 영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현직 의사이다.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 해 놓고, 무겁기 그지 없는 의료계의 어두운 면을 직설적으로 들이밀다니. 그가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이 '의료'이기에, 책을 읽는 독자는 모르면 모를까, 알고 나서는 마냥 재미있을 수만은 없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 뿐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들의 개성도 뚜렷하고 생생하다. 도죠대학의 자학캐릭터 다구치라던가  후생성의 비관료적인 관료 시라토리, 제너럴 루즈, 그리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얼음마녀 리에까지.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입을 빌려 의료계의 현실을 고발한다.

이 작품에서는 리에의 직설화법이 스토리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차가우면서 아품이 있고, 똑똑하고, 딱 부러지는 리에의 캐릭터는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데 제법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도죠대학의 산부인과 조교인 리에는 얼음마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드라마로 소개되 익숙한 '하얀거탑' 그 이후의 이야기들이다.

의료붕괴는 신 의사 임상연수 제도의 도입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기 시작했다. 양질의 임상연수의를 육성하겠다는 대의명분의 수면 아래에는 의국의 힘을 약화시키겠다는 불순한 목적이 감춰져 있었다. 이러한 관료의 책략은 멋진 성과를 거두었다. '하얀 거탑'이라는 야유를 받던 대학병원은 겨우 2년 만에 와해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얀 거탑' 자체가 허구였던 것이다. 교수 임용에 열을 올리고, 권모술수에 능한 의사도 분명히 있다. 단, 대학병원에 적을 두고 있는 의사들은 이러한 권모술수의 세계와는 무관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관료는 허구의 대학병원에 개혁의 총구를 조준했다.


작품의 원제는 Gene Waltz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되는 이야기가 꽤나 자세하게 나온다. 신의 영역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자 하는 리에에게 그것은 '유전자들의 왈츠'와 같다.

가이도 다케루는 이 작품에서 두마리 토끼, 아니 세마리 토끼를 잡고자 하였다. 첫번째 토끼는 물론 '재미'겠고,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라고 한들, 재미가 없고, 읽히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머지 두마리는 첫째, 무능한 관료들의 정책으로 하여금 붕괴되고 있는 지방의료의 현실, 그 중에서도 외면받고 있는 산부인과. 저출산이 심화되자 이런저런 '설문조사'들로 탁상공론하여 통계를 내지만, 실질적으로는 도움은 커녕 해롭기만 한 현정책들에 대한 비판. 그리고 또 하나,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닥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낙태라던가, 대리모라던가 하는 문제가 꽤나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으니, 자연스레 독자는 그 쪽으로도 생각이 가게된다.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실화는 다음과 같다.

후쿠시마 현립 미나미아이즈 병원내의 산부인과와 사카시타 후생종합병원이 잇달아 휴진에 들어갔다. 각 대학병원이 지역 의료에 투입되어 있던 의사들을 다시 불러들인 탓이다. 일인 상근 체제로 운영되던 탓에 혼자 힘으로 고군분투 해오던 그들은 철수 명령에 따라 지역의 중추 병원으로 복귀해야 했고, 그 후로 임부들은 병원에 가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멀고도 먼 길을 몇 시간씩 돌아가야 했다. 군 내에서 유일하게 분만할 수 있었던 산부인과가 문을 닫자, 지역에서는 의료 안전에 대한 우려와 현장의 인력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렇게 된 뒤에는 후쿠시마 현에서 발생한 임부 사망 사고가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이었다. 당시 분만을 담당했던 후쿠시마 현립 오노 병원 산부인과 의사는 사망 사고가 발생한지 2년이 지난 2006년 2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후쿠시마 현경에 의해 체포당했다. 그 역시 혼자 힘으로 해당 병원 산부인과를 지켜왔지만 포승줄과 수갑이 채워진 채 마치 연쇄 아동살인범을 연상케 하는 흉한 모습으로 송치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도시 전체를 조리돌리는 모습이 도호쿠 지역 뉴스에 일제히 방영되었다.  

우리말 제목이기도 한 '마리아 불임클리닉'은 한때는 그래도 제법 바쁜 부인과 클리닉이였으나 마리아 원장의 친아들이 만번에 한번 발생할까 말까 한 의료상황에 대처하여 산모가 죽자 수갑 채워진채 치욕적으로 체포당하는 일이 생기고, 설상가상으로 원장인 마리아가 폐암 말기인 것이 발견되면서 함께 공조하던 데이카 대학의 의료부가 철수하자 남은 산모 다섯명을 마지막으로 9개월 후 폐원이 결정된다. 리에는 끝까지 마리아 불임클리닉과 함께 하고자 남은 마지막 의사이고, 다섯명의 산모는 각각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직설화법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관료들의 무능함은 여기나 저기나... 중요한 것은 생명 탄생.

이 책에서 가이도 다케루의 글이 대변하는 1차집단은 환자이거나 환자의 가족이거나 환자가 될 수 있는 독자이기 보다는 의사집단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제안하는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환자를 살리는 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기도 하다.  

네번째 읽는 가이도 다케루의 작품은 가장 심각했지만, 가장 재미있었다. 지금까지의 투톱(다구치와 시라토리)에서 원톱(최강포스 얼음마녀 리에)인 것도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책을 덮고 이런저런 생각거리들을 남겨주는 재미 뒤에 여운이 있는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1-04 0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09-01-0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좋은 리뷰 고맙습니다. 하얀거탑 완전 좋아했는데 이 번 책은 더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