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가 승부의 절반… 갈수록 중요성 커져



회사원 이종복(29)씨는 휴일이면 가끔 대형 서점을 찾는다. 특별히 살 책을 정하지 않고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한 권씩 사곤 하는데 요즘 그의 눈길을 끄는 것은 ‘표지가 독특한 책’이다. 처음엔 표지 디자인에 끌려서 책을 집어 드는데 읽다 보니 내용도 재미있어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자칭 ‘일본 소설 매니아’인 대학생 손은지(22)씨가 일본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도 일본 소설 특유의 아기자기한 디자인 덕이 컸다. “책 내용을 잘 살린 표지도 마음에 들지만 컬러나 디자인이 독특해 다 읽고 책꽂이에 꽂아두었을 때 장식효과도 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저 ‘책 껍데기’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던 북디자인의 힘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권의 신간이 쏟아지는 요즘 서점가에 가보면 색과 질감, 재질 등 모든 요소를 총동원한 책들이 독자를 유혹한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표지 디자인이다. 손글씨 느낌의 일명 ‘캘리그래피’를 활용한 것에서부터 책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일러스트로 만들어 삽입한 것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개성 있는 표지 디자인이 속속 등장하며 ‘스타 북디자이너’도 탄생했다. 김형균(‘플라이 대디 플라이’ ‘스피드’ ‘GO’ 등), 민진기(‘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젠틀 매드니스’ ‘칼의 노래’ 등), 오진경(‘연금술사’ ‘공중그네’ ‘지문사냥꾼’ 등), 오필민(‘기발한 자살여행’ ‘아메리칸 버티고’ ‘한밤중에 행진’ 등), 이선희(‘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바리데기’ 등), 이승욱(‘뉴욕 3부작’ ‘강산무진’ ‘밀양’ 등)씨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30~40대로 10년 안팎의 경력을 가진 이들은 북디자인으로 출발했다 다른 분야로 눈길을 돌린 선배 세대와는 달리 꾸준히 한 우물을 파온 ‘전업 북디자이너’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디자인이 엄연한 업(業)이 될 만큼 관련 시장의 파이가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기 끌면서 전업 디자이너 급증


‘요즘 제일 잘나가는 북디자이너’ 중 한 명인 오진경(36)씨의 작업실은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한 오피스텔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그는 이곳에서 어시스턴트 한 명을 두고 작업한다. 지난 9월 11일 찾은 그의 작업실은 무척 분주했다. 북한과의 정식 판권계약으로 곧 재출간된다는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표지용 캘리그래피 시안을 비롯해 역시 출간을 앞둔 탤런트 최불암의 자서전 표지 시안 같은 것들이 벽이며 책상에 빼곡했다. ‘아주르와 아스마르’라는 어린이책 디자인을 의논하기 위해 오씨의 작업실을 찾았다는 최은영 에디터(웅진주니어 아동문학팀)는 “업계에서 오진경씨의 명성은 말이 필요없을 정도여서 선뜻 표지 디자인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오진경씨는 북디자인 중에서도 특히 작업하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소설 디자인 분야에서 각광 받고 있다. “기발하고 유머스러운 작가의 상상력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는 박민규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과 과감한 일러스트 사용으로 이후 일본 소설 표지 트렌드를 선도한 야마다 에이미의 ‘나는 공부를 못해’(2004), ‘어른을 위한 판타지 동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십분 살린 가수 겸 소설가 이적의 ‘지문사냥꾼’(2005) 등 그의 대표작은 하나같이 이전까지 볼 수 없던 실험적 디자인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프리랜서’와 ‘출판사 소속’이 반반


오진경씨와 같은 프리랜서도 있지만 최근 두드러지는 활동을 보이는 북디자이너의 상당수는 중·대형 출판사 디자인팀 소속이다. 이선희(창비), 김형균(북폴리오), 이승욱(문학동네), 정재완(민음사)씨 등이 그 예. 이선희 창비 디자인팀장은 “디자이너가 출판사에 소속되면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조직 내부에 있어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출판사가 보유한 우수한 작가의 작품 디자인을 맡을 수 있어 포트폴리오 구성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시간에 얽매이게 되고 자리 이동이 쉽지 않은 것, 디자인 이외의 잡무에 걸리는 시간이 많아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 등은 아쉬운 점이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경우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원하는 작품을 골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늘 일정한 수입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출판사 소속 디자이너보다 훨씬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이선희 팀장의 평균 작업량은 월 3권 정도지만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오필민씨의 작업량은 월 6~7권 선이다. 오씨는 “시리즈물을 포함해 완성되는 책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실제로는 10개 이상의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북디자인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단연 일러스트와 캘리그래피다. 이선희 팀장은 “일본 소설 표지에서부터 시작된 일러스트는 최근 급속하게 모든 장르의 책으로 확산되는 추세”라며 “무겁고 심각한 책을 싫어하는 요즘 젊은이의 코드에 잘 맞아 유행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캘리그래피도 마찬가지다. 오진경씨는 “딱딱한 글자체에만 익숙해 있던 독자들이 손으로 쓴 듯한 글씨에 친근함을 느끼면서 북디자인에 캘리그래피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디자이너들은 “이제 슬슬 바뀔 때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디자인하는 입장에서는 벌써 지겨워들 해요. 여전히 편집자는 일러스트와 캘리그래피를 요구하지만 시중에 그런 책이 넘치다 보니 오히려 요즘은 군더더기 없는 모던한 스타일의 책이 눈에 띄더라고요.” (오진경) “외국 책의 경우, 실험성 강하고 타이포그래피에 충실한 디자인이 많은데 요즘 우리 책들은 일러스트 사용이 지나쳐 만화책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런 책은 잠깐 반짝할 순 있어도 오래 힘을 갖진 못하죠.”(오필민)


북디자인이 인기를 끌면서 북디자이너를 양성하는 곳도 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출판인협회가 운영하는 서울 북인스티튜트(SBI)가 북아트 과정과 출판디자인 과정을 열었고 계원조형예술대에서도 관련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한겨레문화센터 등 사설학원에서도 간간이 북디자이너 양성 과정이 개설된다.
그러나 양적 팽창이나 대중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아직 북디자이너를 둘러싼 작업환경에는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작업비. 현재 업계에서 ‘A급’으로 분류되는 북디자이너는 표지 디자인 한 건에 150만원, 책 내부까지 디자인하는 경우 300만~400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지명도에 따른 건당 수입 차이는 많아야 10만~20만원 정도. 북디자인이 아직 ‘작가의 예술’이라기보다 ‘책 제작의 한 공정’에 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개의 디자인료가 매절 개념으로 거래돼 책이 아무리 잘 팔려도 디자이너에게 돌아오는 추가수익이 없다는 점, 시리즈물의 경우 권당 디자인료가 책정되지 않고 도매금으로 ‘땡처리’된다는 점도 문제다. 한 북디자이너는 “모 유명 소설가가 몇 년 전 쓴 산문집의 경우 표지만 바꿔 재출간돼 상당한 매출을 올렸지만 그에 따르는 추가수익 중 디자이너의 몫은 전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오진경씨는 2년 전 ‘지문사냥꾼’을 디자인하며 출판사와 협의, 디자인료를 적게 받는 대신 책이 팔릴 때마다 책 가격의 1%를 ‘디자인 인세’로 받기로 계약했다. 영화로 치면 일종의 ‘러닝 개런티’인 셈.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덕분에 그의 통장에는 요즘도 인세가 입금된다. 그는 “북디자인에도 인세 개념이 정착되면 디자이너의 작업 의욕이 한층 고취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디자인에도 인세 개념 도입됐으면”


그래픽디자인 전문지인 계간 ‘그래픽’은 오는 10월 발간 예정인 통권 4호에 ‘한국의 북디자이너 21인’의 인터뷰와 주요 작품을 싣는다. 서로 존재는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활동하던 국내 북디자이너들을 총 망라한 첫 번째 시도라는 점에서 인터뷰 당사자는 물론 업계에서도 의미 있는 기획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터뷰에 참여한 한 북디자이너는 “북디자인은 디자인의 여러 영역 중에서도 아직은 변두리 취급을 받는 실정”이라며 “이번 기회를 계기로 각자 활동하던 북디자이너들이 모여 작업환경이나 디자이너에 대한 처우 개선 등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북디자인 작업과정


1. 책 제목, 저자 이름, 출판사 로고, 이미지 등으로 구성된 책표지 앞부분 (‘표1’이라고 부른다)을 여러 가지 스타일로 디자인해서 출판사에 제안한다.

2. 디자인 시안이 정해지면 책날개를 포함한 펼쳐진 디자인(‘표1, 2, 3, 4’라고 부른다) 원고 작업을 한다. 띠지 디자인도 이 과정에서 같이 이루어진다.

3. 겉 커버와 속 커버 디자인 작업까지 끝나면 겉과 속, 띠지 컬러까지 고려해 어울리는 속지(‘면지’라고 부른다) 용지를 고른다.

4. 완성된 책이 나왔을 때 속지는 커버 디자인을 한결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북디자이너 오진경씨 인터뷰


“일년을 봐도 물리지 않아야… 표지 하나에 보통 한 달 걸려”




북디자이너가 된 계기는.
“대학(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후 광고대행사에서 4년 정도 일하다가 1998년 문학동네 디자인팀에 입사했다. 작업 하나 할 때마다 광고주를 신경 써야 하는 대행사 일에 비해 북 디자인은 주목은 덜 받지만 자본 간섭이 적고 디자이너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편이어서 매력적이다.”


북디자인을 단적으로 말한다면.
“텍스트를 다듬어 책의 꼴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원고 뭉치 상태로 독자를 만날 수는 없지 않은가. 단순히 표지 그림을 그리는 것 이외에 목차를 얹고 페이지를 배열하는 등 독자가 책을 통해 저자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북 디자이너의 몫이다.”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소설책 디자인에 많이 참여했는데.
“컨셉트가 분명한 인문과학서나 실용서에 비해 소설은 북 디자이너의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장르도 다양하고 작가마다 개성도 달라 여러 가지 실험적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작업 과정은 힘들지만 끝나고 난 후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도 소설 디자인이다.”


책 한 권을 디자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행본이냐, 시리즈물이냐, 아동물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삽화가 많은 아동물의 경우 몇 개월씩 걸리기도 하고 소설은 빠르면 2주일, 대개 1개월 정도 걸린다. 작품에 따라 기복이 심한 편이어서 평균치를 내기는 어렵다.”


좋은 북디자인이란.
“광고대행사에서 일할 때 ‘광고는 3초 안에 반응이 안 나오면 죽은 것’이라고들 했다. 책은 다르다. 책의 미덕은 소장 가치에 있다. 1년 이상 서가에 꽂아두어도 물리지 않아야 하고 볼 때마다 새록새록 연륜이 묻어나야 한다. 그런 디자인이 나오려면 이쪽 업계에서 10년 정도는 경력을 쌓아야 한다.”


영감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너무 관심이 많다. 신문과 잡지를 반드시 챙겨 읽고 최신 영화도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다. 북 디자인이라는 게 결국 독자를 염두에 두어야 하므로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공감대를 얻지 않으면 인정 받을 수 없다. 평소에는 늘 디자인할 책 원고를 읽어야 하기 때문에 식사 시간을 이용해 신문을 읽곤 한다. 작업 환경상 인터넷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이쪽 일 하는 사람 대부분이 ‘넷맹(net盲)’이다.”


북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한다. 텍스트를 충분히 이해하고 편집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하다. ‘데코레이션’과 ‘디자인’은 엄연히 다르니까. 단순히 책을 예쁘게 꾸미는 것보다 원고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겨야 한다.”

출처 : 한국도서유통
원출처 : 위클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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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01-0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의 재앙표지 1순위 <마리아 불임클리닉의 부활>을 읽기 시작했다가, 문득 북디자이너의 이름이 궁금해 확인하니 '오진경 북디자이너' 그 이름으로 검색하니, 이런 의외의 기사가 걸렸다.

제법 유용하지만, 업계 탑이라는 오진경 북디자이너가 독자에게 이렇게나 외면당한 북디자인에 참여했다는 점, 출판사 자체에서도 모카페에 이벤트를 할만큼 표지디자인에 대한 안 좋은 피드백이 많았다는 것이 의외다.

비연 2009-01-04 00:42   좋아요 0 | URL
정말, 그 북디자인은 좀 별로였었는데..의외로 잘 하는 사람이 만든 거였군요..ㅡㅡ;;

2009-01-03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imon Kim 2010-06-0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문직 성인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잇습니다.올해 관련 전문직 영어책을 4권 출판예정입니다.
오진경에게 북디자인을 맡기고 싶은데 연락처를 얻을수가 없네요.
연락처 부탁 드립니다.

123 2010-06-0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가정신'이라는 출판사에 문의해보세요. 거기 책 외주로 많이 하니까 당근 알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