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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기 시작한건 서점에 나오는 모든 책들을 게걸스럽게 읽어치우던 여고생시절이였다. 노르웨이안 숲이라는 노란 표지의 책으로 시작해서 나오는 족족 읽었고, 그 이후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고, 그 사이 어디멘가 하루키 붐이 있었고, 일본소설의 붐이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하루키의 소설보다는 하루키의 잡문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 오후 하루키의 단편집인 <빵가게 재습격>을 읽게 되었고, 내가 왜 하루키를 좋아했었는지 기억하게 되었다. 음악만 추억을 실은 마차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야기'도 그렇다.
'빵가게 재습격', '코끼리의 소멸', '패밀리 어페어',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로마제국의 붕괴,1881년의 인디언 봉기..' 그리고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까지의 여섯개의 단편.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단편집의 단편개수는 여섯개가 가장 적당하지 않은가 싶다. 왜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하루키가 새롭고 멋졌고 좋았던 것은 그동안 소설에서 보았던 기름기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은 가벼웠다(좋은 쪽으로).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는 리얼했다. 그것이 판타지라도 왠지 있을법한, 그러니깐 왠지 상상될법한 판타지였다. 요즘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일본작가들의 소설은 더 가벼워졌다(나쁜 쪽으로) 기름기만 빠진 것이 아니라, 알맹이도 빠져버린듯한.
무튼, 오래간만에 다시 하루키의 옛단편을 읽는 기분은 새로웠다.<빵가게 재습격>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새벽 두시에 동시에 깬 나와 아내. 급격한 공복감을 느끼게 되나 냉장고에는 맥주 여섯캔과 말라빠진 양파 두조각, 탈취제와 샐러드 드레싱뿐. 나는 예전에 빵가게를 습격했던 이야기를 하게 되고, 아내는 그것이 저주라며 저주를 풀기 위해 빵가게를 재습격할 것을 주장한다.
읽긴 읽었는데, 며칠만 지나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봤는지 안 봤는지 절대 기억이 안나는 영화들이 있다. 하루키의 <빵가게 재습격>에 나온 이야기는 아주 소소한 이야기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것이 내 감수성이 최고로 예민하던 시절의 이야기라서인지 아니면 하루키 소설의 특징인지는 모르겠다.
<코끼리의 소멸> 을 읽고, 코끼리 이야기를 모아보기로 했다. <고래>, <코끼리에게 물을>,<코끼리를 쏘다>, 등등등 나도 코끼리에 관심이 많다.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은 하루키의 단편중 꽤나 유명한 단편 중 하나이자 단편집의 마지막 주자. 하루키스러운 여운을 남겨주는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