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lvedere Apollo
Marble
h. 2.24 m (7 ft)
Roman copy of a Greek original from the fifth century BC
Pio Clementino Museum, Vatican
델피 신전 벽의 네 개의 금언 - <가장 정확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 <한계를 지키라>, <오만함을 증오하라>, <지나침이 없게 하라> - 과 같은 정확하고 측정 가능한 세계의 조화의 토대 위에 그리스인들의 미에 대한 이상이 있고, 이와 같은 세계관은 아폴로의 비호 아래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반대에는 카오스의 신이자 자유분방하게 모든 규율을 위반하는 디오니소스가 있다.
 |
|
|
| |
질서와 척도로 이해될 수 있는 평온한 조화를 니체는 아폴론적인 미라고 명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미는 동시에 현상 형식을 넘어선 것으로 표현되는, 혼란스러운 디오니소스적인 미의 존재를 가리고자 하는 휘장이 되기도 한다. 디오니소스적인 미는 유쾌하고 위험한 미로, 이성과 안티테제를 이루고, 종종 강박관념과 광기로 표현되는 미이다.
|
|
| |
|
 |

Peintre de Berlin 1686 (attribué au), Dionysos, ~540-530 av. J.-C.
Amphore attique à fig. noires, h. 34 cm , © [Louvre.edu], Ph. RMN, Lewandowski
아폴론적인 미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비극의 탄생> III , 1872
호메로스의 <소박성>은 아폴론적인 환영의 완벽한 승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은 자연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환영이다. 진정한 목적은 환상적 이미지에 가려진다. 우리는 이 환상을 향해 손을 뻗고, 자연은 우리의 실수를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 <의지>는 그리스 인들에게서, 곧 정신과 예술 세계의 변용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보려고 했다. 의지의 소산물들은 스스로를 찬미하기 위해 자신들이 찬미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야만 했고, 직관의 이 완벽한 세계가 명령이나 비난으로 작용하는 일 없이 더 높은 영역에서 자신들을 재발견해야 했다. 이것은 미의 영역이다. 여기서 그리스 인들은 자신들의 거울 이미지, 올림포스 신들을 보았다. 이런 미의 반영과 더불어 그리스의 <의지>는 예술적인 소질과 상관 관계가 있는, 고통을 느끼는 소질, 고통을 이해하는 소질과 싸웠다. 그리고 그 승리의 기념비로 무엇보다 소박한 작가 호메로스가 서 있다.
디오니소스적인 미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비극의 탄생> XVI, 1872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 비극은 그렇게 소리친다. 반면 음악은 이러한 생명의 직접적인 이념이다. 조형 예술은 전혀 다른 목적을 갖는다. 여기서 아폴론은 현상의 영원성에 대한 눈부신 찬미에 의해 개체의 고뇌를 초월한다.여기서 미는 삶과 밀착되어 있는 고통을 이겨 내며 고통은 삶의 고뇌에 승리를 거둔다. 고통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의 서질에서 말끔히 지워진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 자연은 디오니소스의 예술에서, 그리고 그 비극적 상징법에서 진실하고 솔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나를 닮아라! 현상의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영원한 태초의 어머니이며, 영원히 존재하며 이 현상의 변화 속에서 영원히 만족을 찾는 창조자인 나를!>
'미의 역사' 움베르토 에코 中
2장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by 지롤라모 데 미켈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