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징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83
요꼬미조 세이시요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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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민 추리 작가 요코미조 세이지를 처음 접한 것은 <옥문도>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완벽한 소설을 접했으니, 이후에 읽게 되는 것들은 실망만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두번째로 읽은 두 개의 중편 <혼징 살인사건>과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나의 헛된 우려를 불식시켜 주었다.

요코미조 세이시 하면 빠지지 않는 것은 국민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일것이다. 그 코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바로 <혼징살인사건>이다. 어리버리해 보이고, 지저분한 외모에 말까지 더듬는 코스케이지만, 의외로, 등장했다하면, 일본의 명탐정으로 경찰쪽에서도, 일반인들에게도 호감과 우러름을 받는다.

탐정의 (겉보기)어수룩함이 현대추리소설 독자에게 이미 낯익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요코미조 세이지를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것은 그 어수룩함과 묘하게 발란스를 맞추는 소설의 기괴함이다.  책 뒤에 소개된 세이지의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것들을 옮겨본다.

 '집념, 망상, 숙명적 증오, 너무도 강렬한 애정, 복수, 인과응보 같은 것이고, 그의 이미지의 소재가 되는 것은 쌍둥이, 정신 이상자,근친상간, 불구자, 간통, 화상, 이상 성격 등이다. 게다가 검은 고양이, 짐승의 시체, 갑옷 입은 무사, 바다 모를 저수지, 독풀, 점술, 자장가, 기도원, 오래된 편지, 뱀, 거미, 문신,멍, 악기, 계시, 저주, 절세 미녀, 미소년, 독부, 마술사, 지나침, 이성...과 같은 소재를 이용하여 세이지만의 독특한 세계를 엮어내는 것이다.'

그 기괴함과 <혼징 살인사건>의 밀실 살인은 얼핏 존 딕슨 카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와 그의 소설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을테니, 이만 줄이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혼징살인사건>에서 '혼징'은 에도 시대 귀족이나 고관들이 묵는공인된 여관을 말하고, 이 소설의 중심인 이찌야나기 집안이 바로 그 혼징이다. 보수적이고, 가문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한 그들 가족 중 장남인 겐조가 신여성인 가스꼬를 맞이하는 첫날밤에 두 사람은 기괴한 거문고소리와 함께 무참히 죽은채 발견된다.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가스꼬의 삼촌인 구보 긴조는 이후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합리적이고 똑똑하며 긴다이치의 굳센 후원자로 나온다. 결혼 전날 마을을 찾은 세손가락의 사나이가 용의자로 떠오르고, 경찰이 갈팡질팡 하는 사이 '등장부터 이미 명탐정이었던' 긴다이치 코스케가 구보의 전보를 받고 마을에 도착한다.

이 책 바로 전에 존 딕슨 카의 <세 개의 관>을 읽은지라 공교롭지만, <혼징살인사건>역시 일본 전통가옥의 구조를 이용한 밀실살인사건이다. 화자인 미스테리 소설가나 미스테리 소설의 팬인 이찌야나기가의 셋째 사부로, 혹은 코스케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밀실 살인 트릭과 작품들은 (여기에 다른 소설의 스포일러는 없다) 추리소설 팬들에게는 또다른 재미일 것이다.  

앞서 말했던 기괴함을 돋보이게 하는 세이지만의 강력한 이미지들이 여기도 등장한다. 거문고소리, 토막살인, 결혼 첫날밤, 혼징, 세손가락 사나이, 고양이 무덤, 병약하고 모자란 셋째딸 등등.
트릭은 단순하지 않다. 아니, 그 트릭에 가기까지 몇번이나 작가가 파 놓은 함정을 넘어야 한다.

<나비 부인 살인 사건> 에서 역시 결코 단순하지 않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트릭이 등장하는데,
이야기의 배경부터가 오페라 가극단이고, 살해당하는 최고의 여자 소프라노가 콘트라베이스 케이스에 넣어져 장미 꽃잎 덮인채 배달되는 것은 그 시대치고 꽤나 엽기적이고, 드라마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이 배우인 등장인물들이 콘트라베이스 안의 시체를 발견하고 각각 로미오의 시체를 보았을 때 줄리엣이라던가, 자살한 마담 버터플라이를 발견했을 때의 핑퀴어튼, 혹은 자르다의 시체를 삼베 부대에서 발견했을 때 미친듯이 놀라며 슬퍼하는 리골레토까지...연기 경쟁이라도 하듯 재연하는 장면은 우스우면서도 섬뜩하다( 내 경우에는 잠깐 섬뜩하고, 한참을 킬킬거리며 웃었긴 하다만)
<나비 부인 살인 사건>에서는 전 경감인 유리선생과 기자가 홈즈와 왓슨의 역할을 한다. 긴다이치에 비해 아우라가 약하기도 하고, 이 작품의 성격상 덜 드러나기도 하지만, 한개성하는 등장인물들과 꼬이고 꼬인(다행히, 내 머리가 따라가 줄 정도의) 사건의 트릭, 드라마틱하고 유머러스한(?) 사건들과 대사들은 긴다이치의 이름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이제 시공사에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부지런히 나와 주고 있으니 (현재까지 <옥문도>, <팔묘촌>, <악마의 공놀이 노래>) 요코미조 세이지, 긴다이치 코스케의 입문을 위해 동서미스테리의 <혼징 살인사건>을 읽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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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gghhhcff 2007-08-04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이 시공사에서 나온것 말고 동서미스터리에서 나온것도 있군요.
그런데 표지가 좀..흐미;;;

미즈행복 2007-08-0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주 재미있겠네요.
근데 혹시 긴다이치 코스케는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로 나오지 않나요? -아닌가?-
소년탐정 김전일은 소싯적에 아주 재밌게 봤는데...
일본 추리소설의 주가가 높다기에 전에 '용의자 X의 헌신'을 봤는데, 괜찮긴 했지만
너무 좋다는 아니었거든요. 한번 읽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