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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갑이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인 <나는 지갑이다>(원제 : 기나긴 살인) 은 여러가지 면에서 매력적인 소설이다. '형사의 지갑', '공갈꾼의 지갑', '소년의 지갑'.... 여러 인물의 지갑이 화자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읽기 전에는 단편집으로 생각했었으나, 네번의 살인에 대한 한편의 잘 짜여진 장편이다. 뒤로 갈수록 미미여사의 걸작 <모방범>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지갑'을 화자로 해서 사건과 관련된 열개의 지갑, 즉 지갑 주인 열명의 눈으로 본 사건을 이야기해나간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사건은 계속 진행되고, 그 진행을 각기 다른 인물, 아니 지갑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같은 사건을 이야기하다보니, 등장하는 인간들은 때로는 주연으로(지갑의 주인으로), 때로는 조연으로 계속해서 등장하게 된다. 두,세가지 시점이 아닌, 무려 열가지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는 것은 꽤나 실험적이며, 동시에 미야베 미유키가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를 나타내준다. 무생물의 눈으로 보는 사건 이야기에 처음부터 감정이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피해자, 목격자, 매스컴, 그들의 가족, 범인등의 여러 입장에서 사건을 묘사하는 것은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나 이유, 모방범과 같은 여러 걸작들에서 트레이드마크처럼 보여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넓은 시야와 각각에 대한 깊은 이해,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겉돌지 않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촘촘히 얽혀있게 만드는 미야베 미유키의 재주가 돋보이는 초기 대표작이다. 그 이후의 걸작들처럼 다듬어지고, 예리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읽어볼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