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좋다 좋다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다. 항상 그런건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 좋았다. 6개의 글이 있는데, 각각의 주제와 이야기들이 평소 관심 있는 돌봄, 노년에 대한 생각의 틀을 깨고 더 크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전희경의 글이 3개, 이 책을 엮은 메이, 이지은, 김영옥의 글이 있는데, 메이는 질병학자로 ‘아픈몸을 살다‘를 번역 소개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책은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로 시작한다.

기억해 몸의 고통과 거리 위의 고통은
같지 않지만 흐려지는 경계로부터
당신은 배울 수 있지 오 명확한 경계를
무엇보다 사랑하는 당신 흐려지는 경계를 바라보라

- 에이드리언 리치, #29 < Contradictions :Tracking Poems>

질병, 노년, 치매, 돌봄 등을 ‘몸‘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이것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지금 당장도, 앞으로도, 과거에도.

˝ 돌보지 않겠다 (그게 자신을 돌보는 길이기 때문에)는 각성한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시기를 살고 있다. 그 목소리가 모든 돌봄을 여성에게 미뤄두고 나 몰라라 하는 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유일한 정치적 대안이 아닐지 공감하고 기대를 걸어본다.

그러면서도 이런 때, 계속 살리는 일에 관해 말하고자 했다. ˝

젊고 아픈 몸, 늙어가는/늙은 몸으로 사는 것, 치매 등과 그것을 관통하는 ‘돌보고 돌봄을 받기‘는 왜 덜 중요하거나 사소하거나 사적인 ‘가정의/가족의/여성의‘ 일로 치부되는지. 사회적 의미를 부여받을 경우엔 왜 ‘국가책임‘의 일로 떠념겨지는지에 대해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돌봄위기‘가 정책적 차원에서 논의되기 시작한지 거의 이십여 년이 되었지만, 일반 시민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의제로 자리 잡고 일종의 공통감각 하에 해법을 찾아나가는 일은 요원하다. 막연한 불안이나 두려움 외에 어떤 각성이나 이해를 촉진시켰는지 의문이라고 하고 있고, 이 책은 그에 대한 답변이다.

서울신문에서 기획,연재한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2018) 과 한겨례 창간기획으로 연재된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2019) 는 공식 언론에서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사례인데, 서울 신문 기획은 책으로 나와 읽어보았고, 끔찍하다, 큰일났다는 후기만 남기고 넘어갔던 것 같다.

전희경의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기‘ 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내가 만약 거동이 힘들어져 누군가에게 전적인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누구로부터, 어떤 돌봄을 받고 싶을까? 용변 처리 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누구에게 부탁할 것인가?˝

나 역시 생각해 보았던 이야기이다. 내 부모의 경우와 내 경우 모두. 두 경우 다 요양원이나 전문 간병인외에는 생각해 본 적 없다. 내가 가족을 간병, 돌봄노동을 할 일은 없을 것이고, 그렇게 얘기 해두었다. 내 경우에만 해당되는 옵션 하나 더는 존엄사이다. 인지가 없는 경우.

이 책에서 몸에 대해, 질병과 노년, 장애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있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았는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나는 거기까지인 것 같다.

어떤 로맨스 소설에서 엄청 부자인 남자 주인공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못 쓴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신청했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죽는 이야기가 나온 적 있다. 다리를 못쓴다는 이유로 안락사까지? 남주는 평소 활동적이고 아웃도어 스포츠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사람이다. 사고를 당해 다리를 못 쓰게 되고, 자신의 삶의 이유가 사라졌다고, 안락사를 선택하게 된다. 책 읽을 당시에는 이해가 안 갔는데, 내 경우에 책을 못 읽고, 못 듣게 된다면, 너무 괴롭고, 살기 힘들 것 같다.

치매에 대해서는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면, 죽어야지.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을 열어두었다. 치매라도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들이 있고, 너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좋은 치매환자?가 되기 위해 종이접기를 배우는 .. 그런 사람도 있고.

˝돌봄은 가족에게는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에노 치즈코의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책이 비혼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이상향의 노년과 죽음이다.

˝지금까지 돌봄을 ‘가족‘에게,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에게 전가해온 한국사회의 부정의한 구조 안에서, 돌봄은 기꺼움보다는 고역이었으며, 새로운 관계성보다는 희생과 독박, 학대나 방치에 더 가까이 있었다.˝

‘가족‘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 국가 책임이다. 라고 하기에는 국가에 요구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문제.

˝우리에겐 ‘가족 같은 관계‘라는 비유를 넘어서 신뢰와 돌봄이 오가는 인간관계의 새로운 양식이 필요하다˝ 고 이야기하고 있고, 친구, 지인, 이웃이 호명된다.

‘나는 누구에게 돌봄을 받고 싶은가?‘ 로 시작한 이야기는 ‘나는 누구를 돌볼 것인가?‘ 로 끝난다. 독박 육아를 하는 워킹맘이 말하기를 아이 하나를 돌보는데는 어른 다섯이 필요하다. 그 정도가 되어야 아이 하나를 돌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육아를 해본 적은 없지만, 공감 가는 이야기여서 담아두었다.

노년의 돌봄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섯 팀이 파티를 이루고, 서로 돌봄.

노년과 돌봄, 질병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사유는 ‘몸‘에 대한 것이다. 우리 누구나 ‘몸‘을 가지고 있다. 건강한 사람은 몸을 잊고 사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건강은 지극히 일시적인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우리는 ‘몸‘ 을 좀 더 의식하고, ‘몸‘의 모든 상태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몸‘을 도구로만 생각하고, 쓸모를 생각하지 않고, ‘몸‘을 인격으로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

몸을 가지고 있는 모두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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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0-11-11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