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과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고, 열광하고, 절망했었지. 나는 아직 <아주 친밀한 폭력>은 읽지 않았지만, 역시 내 안의 많은 것을 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서 본 영화>를 전자책으로 산 건 좀 오래 되었는데, 이번에 도서관에서 종이책으로 빌려왔다. 이 책은 정희진의 영화감상문인데, 들어가는 말에 나오는 정희진의 글을 보고 좀 웃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배운 점은, (모르지 않았지만) 내가 글을 못 쓴다는 것이다. 특히, 내 표현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깨달았다. '생각'은 조금 쓸 수 있겠는데, '느낌'은 표현하기 어려웠다. 마치 어린 날의 일기장처럼, "맛있었다", "즐거웠다", "기뻤다" 이상을 쓰기 어려웠다. 애초부터 이 책은 '정확한 사랑'의 언어가 될 운명이 아니었다. 텍스트와 내가 달라붙어 있으니 말이다."

 

정희진이 글을 못 쓰다니, 표현력이 형편없다니. 지나친 겸손이라고 하기에는 이 분처럼 겸손과 거리가 먼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 같다. 처음에는 웃었는데, 책 읽으면서 빠져들고, 깊이 공감하다 문득문득 머리말이 생각나서, 아, 진짜 뭐라는거야. 화가 난다. 역시 머리말에 나오는데, 본인은 글 중독이라고 한다. 책을 읽지 않거나 글을 쓰지 않으면 불안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는다고 한다. 집중하기 위해 미드 시리즈물 틀어놓고 글 쓴다고 했던 것도 생각나네. 그렇게나 텍스트와 달라붙어 사는 사람이 이런 글들을 쓰는 건 당연한가 싶기도 하고.

 

여튼, 내가 일어나자마자..는 아니지만, 어제 읽으며 마음으로 울고 책 붙들고 잠이 들었던 부분을 아침에 일어나 옮겨보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영화 <하얀궁전>에 대한 감상문에 나오는 글이다.

 

 

'사랑한다'가 가장 위대한 말처럼 보이지만 연인관계에서 필요, 원함, 좋아함, 사랑은 모두 다르다. 대개는 혼재된 상태에서 사랑의 사회적 각본(매뉴얼)대로 사랑한다. 규범 밖의 사랑은 제도의 지지를 받지 못하므로 '조금' 다를 뿐이다. 제도 밖의 사랑이라고 해서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랑은 사랑하는 자의 결핍이나 욕망에 대한 자기 판단, 회계(대차대조표), 자기 확신의 활동이다.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절대로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랑받음은 내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기 혼란이다. 사랑은 내가 타인의 상태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려 있다. 본인이 매력적이고 잘나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누구나 특정 시기에 절실히 어떤 살마이 필요하다. "제발 도와주세요." 이토록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문제는 필요한 관계를 얻으려면, 그 관계를 오래 이어 가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다. 너무 절실하게 필요하면 분별력이 사라져서 '아무나'가 상대가 되고 그 상처로 다시 절실한 필요가 더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필요'가 '사랑'이 되려면 윤리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분노할 때는 상대가 나를 이용했다는 판단이 들 때다. 자신이 '고양이에게 먹힌 생선'이었다는 기분이 들 때, 화가 나고 불쾌하고 때론 비참하고 자책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내가 사물로 다루어졌다는 의미이다. 상대에게 무시당하고 어느 부분만 착취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가 나를 함부로 대하고 나의 고통을 즐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몰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 이전에 윤리. 윤리는 정치학이고 사회 정의다. 윤리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된다.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 내 사정이 이래요. 그래서 잠시가 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지금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존재,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대신 최선을 다해 당신과 협상하고, 당신에게 정성을 다하겠어요. 당신도 내게 필요한 것 혹은 불편한 모든 것을 말해주세요. 

 

물론 당신에게만 충실하겠어요."

 

의사소통이 사랑의 기본이건만, 우리는 타인과 대화하는 데 익숙하지 ㅇ낳다. 대화 자체가 권력 관계의 규제를 받는다는 점도 문제다.

 

   

 어제는 일본어 단어 외우기 시작했다. 두 달동안 하루 열개씩 외우면 600개야. 오얘~

운동도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17,543보 걸은 건 뭐 보통이고) 운동 장소를 정하고, 탐색을 마쳤다.

밤에도 가로등 켜져 있고, 트랙도 5/6 이상 깔려 있고 (중간에 안 깔려 있는데, 뭔가 맷돼지가 파고 지나갔다던가, 태풍에 트랙이 날라갔다던가 하는 느낌) 사람들도 있고, 한바퀴가 320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운동기구들도 있어. 하루에 얼마나 걷던 뛰던 할지 잘 모르겠는데, 오늘부터 시작할거야.

 

어제 외운 단어는

 

아침, 모레, 저기, 모임, 언니, 저 사람, 비, 저것, 안내, 안내서

아사, 아사떼, 아소코, 아츠마리, 아네, 아노히토, 아메, 아레, 안나이, 안나이쇼

 

계획 세우는게 너무 좋은 나는, 또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 있는 11월이 이틀 앞으로 다가와 좋음.

11월 계획도 세우고, 2018년 남은 두 달 계획도 세우고, 2019년 계획도 세우고,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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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10-30 0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정희진 선생님 글 중에서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문단을 찾는라 책을 다 꺼내놓았다가 <혼자서 본 영화>가 없다는 걸 알았버랬더랬죠. 생각해보니 나오자마자 사서 읽고는 교회 동생 준 것 같아요.
넘 좋아, 읽어 봐~~~~ 다시 사야겠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요즘 하이드님 글 읽는 맛이 솔솔합니다. 일본어 기초편이랑 마스다 미리 책도 사두었는데, 하이드님 따라 나도 일본어 해볼까, 그런 기특한 생각도 막 들고요. 잘 읽고 갑니다^^

하이드 2018-10-30 10:16   좋아요 0 | URL
같이 해요! 일본어도, 여성주의 책읽기도! 좋은 책을 좋게 읽은 동무들이 많아 좋습니다!

다락방 2018-10-30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혼자서 본 영화의 저 부분 읽고 저 영화도 다운 받아두었었는데 안봤더랬죠... 정희진 쌤 글은 다시 읽어도 좋아요. 저는 [아주 친밀한 폭력]도 참 좋았어요. 좋았다고 말해도 되나? 적절한 단어인지 모르겠지만, 좋았어요.

계획 세우면 설사 중간에 포기하거나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걸 하기 위해 뭔가 시도를 하게 되잖아요. 저는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 구체적인 꿈을 만둘어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 계획한 거 하나씩 천천히 해나갑시다.

저는 어제도 백래시 좀 읽다 잤어요. 훗.

하이드 2018-10-30 10:16   좋아요 0 | URL
저는 자주 포기하지만, 포기하는거보다 더 자주 벌떡벌떡 일어나니 괜찮아요.

혼자서 본 영화가 이렇게나 사랑 얘기이고, 여자 얘기일줄 몰랐어요. 밤에 와인병 붙들고 울다 잠든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