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와 막내 생일이 사흘 차이라서  

남편이 막내 돌 때 2박3일 동안 합동 생일잔치를 하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랬는데 올해 미니가 정말 생일을 2박3일동안 치른 셈이다. 

 

엊그제는 남편이 장수에 볼 일이 있어서 다니러 가는 길에 

사과 밭에 들러 잘 익은 사과 몇 개 직접 딸 수 있게 해주고 

생일잔치 안 해주는 대신 가는 미니 생일 기념 가족여행이라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막내가 태어나고 나서 온 가족이 나들이라고 나선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남편도 나도 지갑이랑 현금이랑 카드랑 어느 것 하나 챙겨나온 것이 없어서 

사과를 사면서 사정을 말씀드리고 미니 큰이모에게 긴급구호를 요청한 끝에 

물건 값보다 더 많은 돈을 송금해드리고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받아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 

 

미니가 먹고 싶다고 한 것은 냉면이었는데  

출발한 9시쯤 부터 오매불망 냉면을 고대하고 있었건만  

시골이라 여름이 지난 시절에 냉면을 파는 곳을 찾기 어려워서 돌고 돌다가 

도중에 차를 세우고 쥬스와 초코파이를 한 아름 안긴 다음 결국엔 남원까지 갔다. 

시청 근처에는 음식점이 많겠지 하면서 무작정 들어갔는데 다행히 면옥과 빵집이 나란히 있어서 

3시 쯤 겨우 점심을 먹고, 미니가 좋아하는 딸기케잌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빨간 하트모양인 그 케익은  

원래 커플들이 둘이서 먹으면 딱 좋은 크기인데,둘째랑 자기는 커플은 아니지만 그래도 둘이니까  

또 너무 큰 걸 사면 남아서 개미가 다 먹게 되니까 그냥 작은 걸로 샀다고 한다. ㅋ)

 

어제 저녁에는 아빠가 손님 만나러 가신 틈을 타서  

승기가 나오는 1박2일을 보면서 밥을 먹을 수 있게 텔레비젼 앞에 상을 차렸다. 

물론 이것도 생일 선물이었다.

미니가 주문한 요리는 달걀찜이었는데 생일이라 그런지 유난히 맛이 있다며 

평소처럼 깨작거리지 않고 한 그릇 뚝딱 비웠다. 

 

오늘은 아침에 미역국 끓이고 밭에서 솎아 낸 배추나물로 상을 차려주고 

추석이라고 남편 모임에서 일률적으로 돌린 선물이 마침 한과세트길래 

아빠가 주문하신 생일 선물이라고 내놓았다. 

두 아이는 아침부터 이게 웬 떡인가 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며  

좋아하는 유과와 약과를 실컷 먹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미니 유치원에도 따로 주문해 가져가서 친구들과 나눠먹으면 어떻겠느냐고 아빠가 제안했다.  

3주 전에 유치원 아이들 모두 불러다 생일파티를 하면서 

공주처럼 예쁜 치마를 갈아입고 짠 하고 나와서 선물도 잔뜩 받은 친구가 있는지라 

미니는 생일 잔치도 안 해주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아침에는 한과세트를 유치원에 가져가서 생일 자랑도 하고 그러겠다고 하더니  

낮에는 미니가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눈치다. 

왜 그랬던고 하니 

아빠 출근하시고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한 엄마가 확인한 그 한과세트의 가격은 무려 75,000원! 

엄마는 별 생각없이 딸기케잌 다섯 개를 살 수 있는 돈인데  

한과와 케잌 다섯 개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좋으냐고 물었다. 

잠깐 망설임도 없이 한과란다.  

 이번에 받은 생일 선물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이 한과이고 

그 다음이 가족여행, 세번 째가 냉면, 네번 째가 케익이라는 것이다.  

지난 번에 생일파티한 친구가 받은 선물보다 더 좋고 더 많은 선물이란다.

 그렇지만 친구들은 한과를 좋아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다고 얼버무린다. 

그러고나서 조금 있다가 고개도 제대로 들지않고 하는 말, 

" 친구들이 좋아할 것 같기는 하지만 한과가 그렇게 많다고 하니까 (비싸다는 뜻인 듯)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언젠가 아빠한테 우리 집은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하지도 않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더니  

케익 다섯 개 값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나보다. 

사실 나도 가격을 확인하고 나서 주문을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미니가 그렇게 나오니까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 주문은 우리가 해도 결재는 아빠가 하니까 그런 걱정은 아빠한테 맡겨!" 

 

아쉽고 귀한 것을 배우도록 조금씩 모자라고 부족하게 키우는게 좋다고도 하고 

미니도 동생도 좀 더 크면 그 때 생일파티 해 줘도 늦지 않다 싶어서  

한편으론 일부러 그냥 보내는건데 그래도 마음이 짠했다.   

사흘동안 온갖 축하를 해준 끝인데도 그 한 마디에 이런 마음은 도대체 뭔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아이들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는 게 부모마음인가 보다.

 

저녁에는 장에 다녀오신 할머니가 과일이 잔뜩 올려진 생크림케익을 사다주셨다. 또 올레!!!

그리고 아빠는 미니가 먹고 싶다던 구워먹는 고기를 사 오셨다. 

아뭏든 그리하여 장장 2박3일동안  기념한 미니 생일이 지나고 이제는 모두들 잠든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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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9-29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의 생일잔치에 자극받아 하는 거라면...
미니의 한과세트를 먹고 또 다른 아이가 부러움에 다른 형태로 한다면...
이래서 좋은 의도의 생일축하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miony 2009-09-29 11:18   좋아요 0 | URL
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그럴 것 같네요.
누구네 집에선 해주던데... 이렇게 비교하느라 해줄 일은 아닌가 봅니다.
올해는 2박 3일 축하해 준 걸로 충분할 듯 하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9-29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일이 한여름인데 태풍이 몰아쳐서 생일파티에 아무도 안와서 비를 보면서 엉엉 울었던 생각이 나네요. 엄청 어릴땐데 그게 아직 생각나는거 보면 무척 슬펐나봐요ㅎ 지금은 웃깁니다만. 생일파티도 그저 전처럼 밥한끼가 아니군요 휴 --;; 벌써 부모님 여건을 생각하는 속 깊은 녀석이군요. 이보다 더 좋은 생일이 없어 보입니다. 미니는 케이크 먹고 한과먹은 재미난 생일로 기억할거예요 ^^

miony 2009-09-29 11:25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어린 마음에 얼마나 속상하셨을까요?
하지만 그 덕분에 다음에 한 생일파티가 더 즐거웠을 수도 있을 듯!^^

제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정작 만족하지 못하고 생일파티에 연연하는 것은 미니가 아니라 제가 아닌가 합니다.

2009-09-30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