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관이 얼어버려서
아버지는 거의 이 겨울 내내 산에서 흘러내려 마당 한 쪽 작은 물 확에 고이는 물로
한낮에 설겆이나 빨래를 하고 세수한 물은 화장실에 붓는 식으로 불편한 나날을 보내셨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그런 겨울이었는데
엊그제 아침 설겆이를 하려고 밖에 나 앉았더니 공기가 온화했다.
대낮에도 덜덜 떨리는 찬바람 맞으며 그릇 몇 개 씻다가
고개들어 앞산을 한 번 바라보며 부르르 추위를 떨쳐내곤 했는데
하룻밤 사이의 변화라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5박6일 동안 동감의숙에 손님들이 다녀가고나서
모처럼 한가하게 평일 대낮에 온 가족이 가까운 온천에 갔다.
웬일인지 요일감각이 마비되어 주말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씻기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더운 물이 안 나오니 답답해 하시다가
월요일에 어머니와 우리를 목욕탕에 데려다주셨던 터라 사흘 만이었다.
(이게 웬 호강인지!^^)
덕분에 약속한 한 시간 반도 못 되어 아빠보다 먼저 마치고 나온 아이들이
쏟아지는 햇살에 발바닥이 간지러운 듯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튀어나간다.
보도블럭이 깔린 넓은 인도를 달리고 까르르 웃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무를 흉내낸 시멘트 벤치에 앉았다가 깜짝 놀랐다.
남향이라 너무나 따뜻하게 데워져 있어서!
어느 새, 바람 한 점 없이 맑고 따뜻한 봄날이었다.
아버지 댁 수도관도 다시금 녹아 흐를 날이 멀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