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부터 갑자기, 그야말로 갑자기 노곤하고 

허리, 어깨, 팔꿈치, 팔목이 갑자기, 그야말로 갑자기 굽혔다 펴기도 힘들만큼 뻐근하게 느껴지는데다

그래서인지 모든 일에 짜증이 나고 급기야 눈물이 날 지경이다.

수민아빠는 봄 타느냐고 약을 좀 먹으라지만

결혼하고 거의 5년동안 아이 둘을 낳으면서 임신, 출산,수유를 위해 연이어서 지겹도록 먹은 것으로

당분간은 충분하다고 신경질적으로 쏘아주었다. - ( 꼭 그럴 필요까지야 없는데... -.-;;)

그러니까 사소한 일에 울고 싶은 것이 어느 정도냐 하면

아침 상에 머위를 데쳐놓았는데 쌈장이 빠졌다고 쌈장 좀 달라는 걸

통에서 덜어내어주기가 싫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 (수민아빠가 밉보인 일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어젯밤, 수민이가 소풍가는 날 엄마가 김밥준비 못하는 줄 알고

차선책으로 공사일정을 미루고 수민이와 진주나 광주에 있는 작은 동물원에라도 가자고 했는데

오늘 아침 내가 저기압인 것을 보고 동물원을 갈까, 태민이가 박치기해서 부러진 안경을 고치러 갈까

동감의숙에서 쓸 냉장고를 사러갈까 하며 마음에 둔 디자인이 있냐며 평소와 다르게 알아서 긴다.

그런데 만사가 다 귀찮고 어디론가 움직이기도 싫어서 딸은 유치원에 보내고

큰 옷가지와 수민이가 오랫만에 적신 솜이불이나 빨겠다고 너덜이로 올라왔다.

(솜이불 적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고양이 내복 입고 자고 싶었는데 왜 이걸 입혔냐고 화낸 수민,

어젯 밤에 네가 어떻게 한 줄 아느냐고 하자 엄마가 말해보라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며칠 만에 올라오니 할아버지도 하산하셔서 조용하고 고즈넉한 좁은 마당에서

태민이와 둘이 제비꽃, 금낭화, 민들레, 노란꽃 파릇파릇한 먼 산을 배경으로

밤새 못 다 마른 빨래들을 오랫만에 햇살속에 널고 있으니 어느 덧 마음이 풀렸다.

그래도 한쪽 구석에 나 자신에 대해서 뭔가 못마땅한 허탈 또는 허전함이 남아 있으니

바야흐로 봄이 한창 지나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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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 2007-04-1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기분, 알 것 같아.. 그래도 형부가 알아서 긴다^^니 얼마나 기특해 ㅎㅎㅎ
혼자서 한적하니 하루 반나절만 지내고 나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이어야 말이지... 힘내자. 내년 이맘떄만 되면 한결 낫지 않을까?

miony 2007-04-21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 일인지 전에 없던 일인데 어제는 그러더군..한 해 한 해 나이 먹는 것이 정말 다른가보다. 그러게 태민이 뒤쫓을 걱정없이 두어 시간만 자고 일어나도 좋을 것 같다. 아뭏든 한결 위로가 되네. Danke!

해거름 2007-04-21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이 좋은 벗이 돼 주는구나! 너덜이 너무 정겨운 이름이다. 근데 설마 너덜너덜하다의 그 너덜은 아니겠지? ㅎㅎ

miony 2007-04-2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널빤지로 만든 다리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랍니다. 한자로는 판교라고 하거든요^^

hsh2886 2007-04-22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치기로 부러진 안경←이거보고 엄청 웃었음

해거름 2007-04-23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살고 있는 집이름인 줄 알았어.아무튼 우리말이 주는 친근한 어감이 아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