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감의숙 공사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서 강단에 가죽나무 마루를 깔고 그라인더로 다듬다보니

나무가루가 펄펄 날려 엉망이 된 바닥을 청소하느라 온 가족이 열심이다가 늦게야 저녁을 먹었다.

한참 부지런히 먹다가 갑자기 내일 언니, 오빠들이랑 자동차 타고 가서 풀밭에서 점심도 먹고 할 거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17일 목요일에 소풍이 계획되어 있었다는 기억이 났다.

아차! 이걸 어쩌나 싶은데 김밥을 싸가지고 가면 안되느냐고 묻는다.

" 어떡하지, 재료를 안 사왔는데..."

" 그래도 알록달록한 김밥 싸가지고 가고 싶어~ㅇ! "

낮에 드물게도 화개장터에 가서 이것저것 살 기회가 있었는데 유부초밥 봉지에 손을 댔다가 그냥 왔다.

다른 때는 2개 씩도 사오고 하는데 하필 오늘은 그것도 안 사왔네.

벌써 깜깜한 밖을 내다보니 도시에 살면 9시 반 쯤은 밤도 아니라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김밥재료 정도는 팔만한 슈퍼가 얼마든지 있고, 즉석김밥 가게도 널렸을텐데

동감의숙이 아랫마을이라지만 우유파는 구멍가게까지 자동차로 5분도 더 달려가야하니

이런 한밤중(!)에 또는 내일 새벽에 김밥재료를 어딘가에서 구하기는 불가능할텐데

엄마라는 사람이 다섯 살박이 첫소풍도 기억을 못하고 있다가 김밥도 못 싸보내는구나

머릿 속에 온갖 생각이 오고가며 수민이에게 너무 신경을 안 썼나보다 미안함과 자책으로 속이 상했다.

게다가 다른 애들은 과자랑 김밥이랑 준비하고 모자랑, 옷이랑 적당한 걸로 입을텐데

너덜이에서 내려와 동감의숙에서 생활한지 닷새 째,

준비해 온 옷들은 모두 더러워지고 빨아놓은 것도 탈수를 안하니 잘 마르지 않아서 입힐 옷도 없었다.

대충 입힐 만한 것은 있는데 깔끔하고 예쁜 옷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널어놓은 옷이 밤 사이에 마르지 않으면 입힐 수 있는 옷이 아예 없는 것이었다.

그 사이 김밥 못 싸가면 유치원 안 갈래? - 그래도 김밥 어쩌구 하며 아빠와 설왕설래하던 수민,

" 엄마, 그러면 간장비빔밥을 준비해서 김을 준비해서 싸가지고 가면 안될까?" 한다.

그 말을 듣자 그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세수를 해가며 펑펑 울었다.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해 줄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도 내가 아이한테 소홀해서 못 해주는 것도 이렇게 서러운데

정말 형편이 어려워서 해달라고 조르고 또 해주고 싶은 것을 못해주면 마음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울고나니 그래도 마음이 진정되어서 주간교육계획표 일정에 소풍이 없었던 것이 생각났다.

월간계획엔 있었는데 주간계획엔 안내가 되어있지 않아서 일단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를 않으신다.

그래서 승훈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잠자리에 든 것을 깨운 모양이었다.

내일 소풍가는 날이냐고 물었더니 소풍은 다음 주 화요일로 연기되었고

낙안읍성과 고인돌 공원을 다녀올 것이며 출발은 9시 반, 엄마들은 따라가지 않는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승훈이 엄마는 어디서 저런 정보를 얻은 것인지,

나는 왜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아뭏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낮에 담가 둔 빨래를 마저하고 내일 택배로 보내야 할 약을 조금 싸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 유치원에 보낼 준비를 서두르다 보니 수민이 가방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청소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가정통신문이 있는지 열어보지 않은 것이 기억났다.

가방을 열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소풍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담은 통신문이 그 속에 떡 하니 들어있었다. -.-;;

아마도 내일 가려고 했던 소풍이 다음 주 화요일로 연기 되었으니 그 때 차 타고 가서 김밥도 먹자고

선생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러지 않으면 엄마와 딸이 함께 바보가 될 상황이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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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설 2007-04-1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다행이다^^ 담번에 까먹지 말고 준비 미리 해야겠다. 여기도 전 날 앞의 대형마트에도 당근, 시금치는 아예 매진이어서 당근 없이 김밥싸서 보냈다.
글구 나는 작년에 영우 때문에 민우 아예 소풍날 보내지도 못했는걸 뭐, 가을엔 김밥 싸오라는 일 있었을 땐 또 병원에 들어가 있어서 봐주지도 못했구... 그럴 수도 있지 뭐 너무 예민하게 생각말어...아직은 정신 많이 없을때지 뭐..

miony 2007-04-21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쿠나...아뭏든 정말 다행이었는데 지금은 또 다음 주 화요일에 또 잊어버릴 것 같아서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해거름 2007-04-2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키우면서 누구나 몇번씩은 겪는 일이지. 그래도 짜 소풍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네.^^ 간장김밥 사가겠다는 기특한 딸이 있는데 무슨 걱정~

2007-04-21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22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