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의 거미줄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5
엘윈 브룩스 화이트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화곤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펀은 여덟 살된 여자아이다. 무녀리로 태어난 새끼돼지 윌버를 구해냈다. 윌버는 펀이 정성껏 먹여주는 우유로 살아났고 무럭무럭 자랐다. 펀은 윌버의 꿀꿀거리는 이야기마저 알아들었다. 윌버와 동물친구들, 심지어는 곤충친구의 대화마저 엿들을 수 있었다. 여덟 살의 사람에겐 그런 능력이 있다. 동물과 곤충, 혹은 식물과도 소통할 수 있는 능력.

그런데 펀은 윌버와 동물들의 대화에 무작정 끼여들지 않았다. 펀은 우리 앞에 꼼짝없이 앉아서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펀은 왜 동물들과 함께 윌버 구하기 작전에 합류하지 않았을까.

펀이 우리 앞에 앉아 이야기에 섞여들었다면? 물론 템플턴 같은 비열하고 치졸한 쥐의 역할은 아예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템플턴은 오히려 거위알을 훔쳐가고 새끼거위를 물어죽이는 역할로만 떨어지게 되었을지도. 샬롯은 그처럼 눈부신 지혜를 짜낼 필요가 없었을지도. 윌버와 샬롯의 우정이 그렇게 탄탄하게 거미줄 치지 못했을지도.

나는 무척 궁금했다. 펀의 역할이 우리 밖에서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짜여지게 될까. 펀의 목소리가 왜 우리 안으로 뛰어들지 못했을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펀은 여덟 살이다. 여덟 살은 어쩌면 경계에 선 나이일지도 모른다. 동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그게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닌 나이. 펀은 집으로 뛰어들어가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 동물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어요, 라고. 펀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게 자연스럽다. 동물들이라 해서 자기 아래로 줄선 열등한 서열의 생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펀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즐거워할 뿐이다.

펀은 서서히 우리에서 멀어져갔다. 동물보다는 또래친구가 더 좋아졌다. 펀은 동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지점으로 넘어간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펀은 그걸 깨닫지 못한다. 펀은 경계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한다. 천천히 변해간다. 펀은 곧 열여덟 살이 되고 스물여덟 살이 될 것이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펀을 이야기의 주변에 세워놓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과 동물의 구분이 의외로 이야기 속에서 명확하다. 감동적인 동화답지 않게 독특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덟 살의 소녀가 동물들의 우리 밖에서 한 걸음씩 멀어져가는 것이 조금 서운했다. 윌버와 회색거미 샬롯의 자손들의 관계는 끝까지 끈끈하기 이를 데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리 서운한 일도 아닐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펀은 윌버를 구한 맨처음 주인공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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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ire 2007-02-1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면 여덟 살이라는 나이는 참 완벽한 나이예요. 저도 그랬고, 아마 이안 님도 그러셨지요..? 그때 이후로, 이 리뷰에 따르자면, 동물들의 소리로부터 단절되면서부터 저는 점점 멍청해져온 듯해요. 그때는 정말 모르는 게 없었더랬는데. 사는 것도 별반 불툭하지 않았더랬는데. 세상이란 별로 어려운 수학문제가 아닌데, 다만 내가 아직 어른이 아니어서라고만 생각했더랬는데... 후훗. 괜한 얘기지요?

내가없는 이 안 2007-02-1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이레님, 사실은 아이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혹시 동물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니, 하고요. 아이가 혹시나, 엄마가 왜 이러나, 하는 눈초리로 보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 그런데 동물들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일은 있어도,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일은 없는 듯해요. 곡해하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곡해가 단절의 방식이겠죠? 카이레님이 불툭하단 표현을 쓰셨는데 정말 제대로 불툭거리면서 마음에 와닿네요. 불툭거림도 단절로 생긴 거겠죠?

내가없는 이 안 2007-02-14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요, 그맘때 마음이란 게 저한테만 있는 줄 알았어요. 정말요. 그때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는데 신기해서였던 게 아닐까 싶어요. 내면에서 생각이라는 게 자꾸만 생겨나는 게 느껴졌으니까요. 아, 이게 마음이구나, 하고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은 들리는 대로 들을 뿐, 저 사람 마음에서 무슨 생각이 있을까, 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게 소통의 단절이나 오해의 소지는 되지 않았던 듯해요. 그러니까 마음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알기 시작하면서 저쪽의 마음을 내쪽의 마음대로 생각하는 일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저도 괜한 얘기죠?

icaru 2007-02-1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고받으시는 댓글이 와아~
특히.. 마음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알기 시작하면서 저쪽의 마음을 내쪽의 마음대로 생각하는 일이 생겼다는 말씀... 끄덕끄덕..
저도 아주 어렸을 적엔 나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줄로 알았어요. 마음이란 게 나한테만 있는가 싶은.. "난 특별해"와 일맥 상통하는??

내가없는 이 안 2007-02-1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이카루님도 그러셨구나. 그게 "난 특별해"와 상통하나요? ^^ 한편으론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자신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별하지 못한 구석을 자꾸 쥐어박기도 했죠. 그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버릇이기도. ^^

잉크냄새 2007-02-1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흐리멍텅한 눈으로 채널을 돌리다 영화로 나오는 부분을 아주 잠시 보았죠.
음...여덟살의 경계에서 품고 있던 마음이 조금씩 사회화되면서 사라지는것 같아요. 자연스러울수도 있지만 어쩌면 의식적일수도 있겠구나 싶네요. 남과 다름이 그냥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틀림으로 비춰지는 사회에 그냥 물흐르듯이 순응되어가는 과정일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전 요즘도 술한잔 먹으면 집에 들어가기전에 인간외적인 사물과 잠시 대화를 해요. 물론 저의 일방적인 독백이지만...별에게도, 고추에게도,,,담배 한개비 피는 정도의 시간을 그렇게 정신나간 놈처럼 떠들곤 하죠...ㅎㅎ

내가없는 이 안 2007-02-20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 한 개비 피는 정도의 시간요... 사실 그 정도의 시간이 틈틈이 나는데 전 어떻게 보내더라 생각 좀 해봤어요. 그렇게 독백하는 걸로 소요하는 것도 꽤 괜찮겠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