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야단을 쳤다. 내 딴에는 무척 억울한 무언가가 있었다. 화법은, 이랬다. 너 어쩜 그럴 수 있니? 잠시 그러다 거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자기 코앞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입을 꼭 다문 채 눈을 내리깔았다. 사뭇 결연하기 그지없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물었다. 잘못한 거 알아? 하고 재차 물었다. 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아, 잘못한 거. 내용은 자기 잘못을 시인했지만 태도로 봐선 전혀 문제될 일이 없다는 투다. 나는 뜨악한 얼굴로 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다시 물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당당했다.
그 후로 잔소리가 조금 더 이어졌다. 나야말로 잔소리를 싫어한다. 잔소리를 할라치면 잔소리를 늘어놓는 내 목소리까지 듣기 싫어져 돌연 입을 다물기 일쑤다. 아이는 내내 말없이 굳은 얼굴로 야단을 맞았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엄마가 화를 내서 미안한데..., 여기까지 말하고는 아이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이의 견고한 얼굴 근육이 한순간 허물어졌다. 눈매가 부드러워지고 눈빛이 순해졌다. 두드리는 것도 두렵게 하던 성문이 열리는 걸 보았다. 아이의 눈에서 단단한 벽돌 하나가 빠져나오는 것처럼 별안간 눈물이 그득해졌다. 내가 잘못을 인정하는 말을 내놓자마자 아이의 여린 마음이 내게 쏟아져들어왔다. 내게 와 부딪혀서 튕겨나갔던 아이의 표정과 말이 그제야 내게 들어왔다. 아, 생각해보니 단단한 건, 네가 아니라 나였구나.
너는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화를 낸 게 잘못이었어, 이렇게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더 얘기하지 않아도 아이는 나를 이해했고, 나는 아이를 이해했다.

요즘 이 책을 틈틈이 읽고 있는데 우연히 I message라는 말을 책 끄트머리에서 만났다. <나의 기분과 상황을 이야기해 아이들의 자발성, 책임감, 창의성을 길러주는 기법>. 이를테면, <더러운 호랑이를 보고, "너는 돼지 우리에 사냐?"보다는 "이 호랑이를 보니까 엄마가 또 치워야 할 것 같아서 답답하네."라고 말하는 것>. 이상하다. 다 아는 얘기인데 어젯밤 가벼운 실랑이를 겪고 나니까 대단한 해결법인 것처럼 다가온다. 물론, 안다고 다 아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