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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2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p.199
어떻게 하면 학교가 그들의 물질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자네 얘긴 이래. 학교는 교육은 그들에게 새로운 요구를 주는 것이 된다고. 그러나 그것은 더욱 나빠. 왜냐하면 그렇게 되더라도 그들에겐 그 요구를 채울 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난 덧셈뺄셈이니 교리문답이니 하는 것이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물질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어.
ㅡ남쪽으로튀어 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글에서 아들에게(화자) 아버지는 학교를 가지마라고 한다. 이유는 아버지는 무정부주의를 주장하는 입장인데, 자신의 입장에서 학교라는 것이 국가가 국가의 일꾼을 길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므로써 사고할 능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학교가 그런 기능을 알게 모르게 하는구나 싶긴하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방식이 일본과 닮아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1970년ㅡ80년초에 야학을 생각해보자. 그때 우리는 단순 노동자라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학생들이 밤마다 가르치는 곳에서 열심히들 배웠다. 뭐 사상을 배웠느냐마느냐의 문제는 버리고 배움에 목 말라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들에게 교과서 지문 하나가 사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나 될까? 하지만 <안나카레니나>의 이 부분에서 보자면, 농민들에게 교육을 시킴으로 인해 질 높은 농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다른 욕구들을 갖게 해 주자는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고민이 된다. 현시점의 교육의 방법과 본질이 처음 교육의 본질과 맞느냐는 것에서.
결국 나는 예전 서당처럼 소통하는 교육문화가 왔으면 하는 바램일테다. 양반만 배우는(아마 이것도 양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계급의 붕괴를 막으려 했다는 것에서 교육의 무서움을 두려워했겠지만) 그런 소수 특권 서당교육이 아니라, 모두가 골고루 경쟁없이, 진도라는 틀에서 나아감이 아니라 수행의 목적으로의 발전이 되는 교육 말이다.
p.199 어떻게 하면 학교가 그들의 물질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자네 얘긴 이래. 학교는 교육은 그들에게 새로운 요구를 주는 것이 된다고. 그러나 그것은 더욱 나빠. 왜냐하면 그렇게 되더라도 그들에겐 그 요구를 채울 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난 덧셈뺄셈이니 교리문답이니 하는 것이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물질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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