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기타노 다케시 지음, 권남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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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읽음. 

1. 천재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말일까? 만약에 천재라는 단어가 번뜩이는 직관적 통찰을 통해 진실에 가 닿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면, 기타노 다케시는 그런 의미에서 천재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전율했던 부분은 p.198의 고릴라 그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분위기를 타서 같은 고릴라 그림을 몇 장이고 그리다 보면, 점점 손에 익어서 쓱쓱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림으로서는 시시해진다. 뇌세포의 사용법으로 말하자면, 최소한의 뇌세포만 작용하고 쓸데없는 방향의 시냅스는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 그리기에 익숙해진 그림은 감동이 없다."

   기타노 다케시의 이 통찰은 제프 콜빈의 <<재능은 어떻게 습득되는가?>>의 pp.126-128의 내용와 정확히 상응한다. 제프 콜빈은 탁월한 성취의 비결이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deliberate practice)'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연습의 요체가 반사적으로 하지 않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단계에서 실력의 향상은 멈추며, 따라서 탁월한 성취를 위해서는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을 통해 모든 과정을 항상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케시는 직관만으로 탁월한 성취의 비결에 관한 수많은 학문적 연구의 결론과 동일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건 진짜 놀라운 일이다.

2. 이 천재의 세계에 대한 통찰은 어떠한가? 다케시는 이 책에서 냉정하게 자신과 세계를 바라본다. 그의 세계 인식이 집약되는 한마디: "산다는 것은 죽이는 것이다."(p.109) 이는 권모술수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예컨대 사람은 먹기 위해 수많은 동물과 생물을 죽인다.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수억의 정자가 사라져가며, 수만 명의 연예인들 중에 뜨는 사람은 한 둘에 불과하다는, 그런 의미이다. 세계와 삶은 이렇듯 냉정한 것이기에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꿈도 간혹 있을 뿐이다. 이는 주어진 삶의 조건이기에 이러한 조건을 외면하게 만드는 교육을 그는 경멸한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벽이나 장애물이 됨으로써 세상이 만만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가르쳐야 하며, 말을 듣지 않는 아이는 때려야 한다. 때림으로써 세상에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

   다케시의 이러한 인식들이 성공한 자의 설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내린 결론들이 직접 세상에 몸으로 부딪힌 결과 얻게 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개개인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교육받으면서 자랐지만 실제로는 한사람의 생명 따위는 별다른 의미도 없는 것이다. 죽음과 지워짐의 어이없음. 연평도에서 몇몇 장병과 몇몇 민간인이 죽었지만, 며칠만 지나면 세상은 그들의 존재가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이 잘 돌아갈 것이다. 주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덧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며, 사람들은 먹고자고 일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원래 아무런 색도 없다. 거기에 기쁨이니 슬픔이니 하는 색을 입히는 것은 인간이다."(p.41) 냉정한 세계를 냉정한 말투로 담담히 이야기하는 것, 여기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기타노 다케시는 이 인식 속에서 삶을 채우기 위해 대학 중퇴라는 '자살'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그이다. 그는 그의 말대로 괴롭고도 뜨거운 삶을 살았다. 개인의 삶과 죽음 따위는 아무런 의미 없는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3. 이 책에서 마음에 든 몇몇 부분을 옮겨둔다.
  
   자결의 의미: "몸은 어떤 상태를 맞든 살아가려고 한다. 자결은 정신이 몸의 그 강한 본능을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육체적 운동을 컨트롤하는 것은 정신이지만, 그 궁극은 머리로 육체를 죽이는 것이다. 미시마 씨가 한 행동도 바로 그것이다. 죽음이라는 궁극의 명령을 따르게 함으로써 몸을 굴복시킨 것이 아닐까."(p.37)
   
   우정의 의미: "우정은 내가 저쪽에다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지, 저쪽에서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아니다. 우정이란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다."(p.127)
 
   연예인: "어떤 정치 체제에도 대들 수 있는 배짱이 연예인의 건방짐이다. 공산주의가 되건 독재 체제가 되건, 연예인은 그 체제에 찰싹 달라붙어 살아간다. 어떤 세상이 되어도 "예예~"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연예인이다. 연예인은 체재 밖에 존재하기 때문이다."(p.136)
  
   예술의 본질: "아티스트니 예술가니 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릴 때, 세계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눈곱만치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를 창조하는 사람은 그 '뭔가'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의 불행을 테마로 작품을 만드는 일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압도적인 이기주의랄까, 낭비랄까.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엉뚱한 짓을 할 수 있는 것이다.(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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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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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도 중고등학교 때 시험을 위해 달달 외우기만 했던 조선 중기의 굵직한 역사적 일들-당파의 계보, 대동법, 북벌론, 예송논쟁 등-의 의의를 자세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다만, 이덕일의 송시열에 대한 신랄한 비난은 좀 과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저자의 논지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송시열이 살았던 시대의 조선은 격변의 시대였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성리학을 이념으로 하는 사대부의 지배는 파산에 이르렀고, 사회경제적 변화는 종래의 사농공상의 신분질서를 위협했다. 따라서 이미 순기능을 다한 주자학은 상대적인 위치로 내려와야 했으며, 사대부의 자리가 아니라 백성의 자리에서 세상을 해석할 것이 요청되었다. 그러나 송시열, 그리고 그로 대표되는 서인은 사대부의 지배, 서인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오히려 주자학 절대주의를 고수한 역사의 반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후 조선은 백성의 나라가 아닌 '그들의 나라'에 불과했다. 이덕일이 책의 마지막에 인용하는 <<논어 >>의 구절: "군자는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지만 소인은 편벽되고 두루 통하지 못한다."(p.398) 결국 저자는 송시열이 소인배에 불과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평가는 타당한 것일까? 이덕일의 지적대로 우암은 정치가보다는 학자의 삶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의 주자학에 대한 종교적 맹신, 지적인 편벽성과 결벽주의는 정치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덕목이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송시열의 꼬장꼬장함에 짜증을 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짜증과 우암에 대한 평가는 별개이다. 송시열이 서인의 수장이었다는 점, 그리고 서인이 인조반정 이후 내내 조선의 집권세력이었다는 점 때문에 송시열이 과도한 비판의 포화를 맞는 것은 아닐까? 송시열이 중심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 중에서 책에서 중히 다루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이다. 1)효종의 북벌론 2)대동법 3)예송논쟁. 우선 세 번째의 예송논쟁에 대해 살피자면, 이 예송논쟁이 중요했던 이유는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즉위한 효종, 그리고 그의 아들인 숙종으로 이어진 왕권의 정통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론 자체는 사대부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녀, 예송논쟁 자체는 당시 대립했던 서인과 남인에게는 정권과 목숨이 달린 중대한 문제였을 테지만 백성의 삶과는 관계가 없는 내용이었다. 
  
   또한 효종의 북벌론. 저자는 효종과 송시열이 북벌론의 주역이라는 국사교과서의 서술과 달리, 송시열이 군사적 북벌에 반대함으로써 효종의 군사적 북벌론과 선을 그었다고 설명한다. 물론 송시열은 명을 멸망시킨 청을 증오했지만, 청을 정벌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도道가 조선으로 왔으니 이제 조선이 소중화이며, 따라서 청과 국교를 단절하고 명과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군사력은 청의 간섭을 저지할 정도이면 족하며, 효종의 군사력 증강을 오히려 왕권 강화의 수단으로 의심하고 이에 반대했다. 결국 송시열과 효종은 청을 증오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견해가 갈리게 된 원인은 현실인식에 있다. 우암은 청을 군사정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반면, 효종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덕일은 효종의 인식에 공감한다. 효종의 전략은 조선이 공격한다면 피지배민족인 한족이 지배민족인 만주족에 대해 같이 봉기를 일으킬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한 것이었는데, 이 가정이 현실이 된다면 수가 적은 만주족은 조선의 군사에 대응할 만한 충분한 병력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었다. 이덕일은 효종의 구상이 군사전략상으로는 허황된 것이 아니라며, 이러한 중국의 정세를 이용하지 못한 서인을 책망한다. 나는 효종의 인식이 얼마나 적확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청과의 일전은 조선과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결정이다. 송시열의 보수적인 판단이 현저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대동법. 송시열은 대동법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막상 정책이 실질적인 실행단계에 이르자 반대하였다. 대동법은 공납의 폐단을 시정하려는 조선기 최대의 개혁안이나 사대부의 이익에는 반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전면적으로 시행되기까지는 10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우암과 서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다면 대동법을 전면적으로 시행했을까? 예컨대 서인과 끊임 없이 대립하였던 남인. 남인은 숙종 때 제2차 예송논쟁을 기화로 정권을 획득했으나, 서인과 화합하려 시도하기보다는 서인에게 보복했다. 정권에서 소외되어 왔던 남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심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태도이나, 이덕일의 송시열 비판의 핵심인 주자학 절대주의와 지적, 정치적 편협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남인도 별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어차피 당쟁이 사대부 계층 내의 권력투쟁이었다면 다른 집단과 다른 인물이 권력을 쥐었더라도 사대부의 힘을 약화시키는 대동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을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송시열에 대한 이덕일의 가혹한 평가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유는 송시열이 무죄라서가 아니다. 사실 저자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인조반정과 소현세자에 대한 평가에 있을 것이다. 이덕일에게 있어 인조반정은 등거리 외교정책을 펼침으로써 조선을 전란의 참화에서 건져냈던 현군 광해군을 서인들이 권력욕 때문에 축출한 사건이었고, 그 결과 양 호란을 불러일으킨 "조선의 운명을 비극으로 이끌어간 시대착오적 사건"(p.41)이었고, 소현세자의 죽음은 그의 개방적인 사고가 200년 후의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운명을 뒤바꿔 놓을 수도 있는"(p.59) 것이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운명을 극단으로 끌고 간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광해군에 대한 평가와 인조반정에 대한 평가는 이론이 있는 부분이며(광해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오항녕의 <<조선의 힘>>, 6장에서 전개되고 있다. http://blog.aladin.co.kr/mayolove/4273112) 저자가 조선이 근대국가로 일찍 나아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지라도 그 화풀이를 송시열에게 하는 것이 적절한 태도일까?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조선이 근대국가로 나아갈 가능성은 일단 닫혔다. 이건 우암이 살았던 당시에 그에게 주어졌던 조건이다. 결국 송시열의 한계는 그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닫혀버렸던 조선이라는 세계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송시열에 대한 후대의 맹목적인 찬사는 그의 말대로 허황된 것이지만, 이덕일 역시 인조반정과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서인의 대표인 송시열을 너무 과도하게 깎아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송시열은 인조반정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예송논쟁 당시에는 숙종과 대립하면서 소현세자가 조선 왕실의 적통임을 주장하였던 인물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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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
소포클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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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의 모든 장면들은 크레온이 완고하고 어리석다고 말하고 있지만, 크레온이 안티고네를 추궁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양 쪽의 주장은 모두 설득력을 가진다. 크레온은 폴뤼네이케스가 테바이를 침략하였기에 그의 시체를 새떼에게 던져주고자 한다. 반역은 징치되어야 하며, 폴뤼네이케스는 테베의 신전을 유린하려 하였으므로 신들에게 죄를 범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크레온의 말: "착한 이에게 나쁜 자와 같은 몫이 주어져서는 안 되지."(p.292)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모두 전쟁에서 죽었으나, 하나는 조국을 지키려다, 하나는 조국을 범하려다 죽었다. 각자가 마땅히 자신에게 돌아가야 할 몫만큼을 받는 것이 정의라면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내버려 두는 것이야말로 정의롭다.

  크레온의 주장은 흠잡을 데 없다. 그럼에도 폴뤼네이케스를 모독하고자 하는 그의 법에 대해 <<안티고네>>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크레온이 실수하였다고 비난한다. 어째서? 폴리스(polis)의 존속보다 배반자를 매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 사실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주장은 같은 전제를 공유한다. 각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받는 것이 정의이다. 크레온의 반대자들은 사자(死者)를 매장하는 것이 신의 뜻에 합치하는 것, 하데스의 몫을 그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의 뜻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며, 크레온의 법은 하데스의 몫을 하데스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어서 부정의하다.

   대립하는 두 주장이 동일한 논리에 의한 것이라면 신의 몫을 빼앗는 것보다는 인간의 몫을 양보하는 것이 더 정의롭다. 희랍인들은 옳은 행위는 그 행위가 신의 뜻에 합치하기에 옳은 것으로 간주된다고 생각했다. 아마 실상을 인류학적으로 추적해보면 그 반대였을 것이다. 안티고네는 그의 오라비인 폴뤼네이케스를 매장하는 것이 신들의 뜻에 비추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크레온의 법에 거역했다. 그리고 죽은 자를 매장해야 한다는 건 희랍인들 전체가 공유하고 있던 관습법 같은 것이다. <<일리아드>>에 이를 예증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헥토르를 죽인 후 그의 시체를 마차에 매달아 끌고다니면서 능욕하자, 헥토르의 아비인 프리아모스는 전쟁 중임에도, 그리고 그가 한 나라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밤중에 적진으로 찾아가 아킬레우스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돌려주기를 무릎 꿇으며 간구한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반성하며 헥토르의 시체를 매장하도록 돌려준다. 아킬레우스는 적에 대한 분노보다도 사자를 매장하는 것의 필요성을 중시했고, 이런 관념은 당시의 희랍인에게는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의 손을 들어주면서 희랍인의 관습에 호소했다. 다만 더 근본적인 차이. 크레온의 법은 폴뤼네이케스에게 주어져야 할 것을 빼앗는다. 안티고네의 법은 모두에게 각자가 받아야 할 몫을 돌려준다. 폴뤼네이케스에게는 안식을, 하데스에게는 경의를. 크레온의 법이 분노에서 나온 것이라면 안티고네의 행동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p.292) 사랑이 옳았음이 파국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하는 아이러니. <<안티고네>>의 진짜 비극성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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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공망 -상
미야기타니 마사미쓰 지음, 양경미 옮김 / 까치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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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3권의 소설. 헌책방에서 사서 읽음.

태공망이 주나라를 거들어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제나라의 제후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각색한 역사소설. 태공망 여상은 <<육도>>를 지은 중국 최초의 대병법가로 알려져 있지만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봉신연의>>등으로 우리에게는 친숙하지만 은주시대는 역사적으로 청동기시대여서 사실 아득한 옛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상상력에 의해 이 시기를 소설로서 복원해내는데 관점이 대단히 흥미롭다.

   <<봉신연의>>로 친숙한 이 시기의 인상은 대개 이렇다. 은나라 말기에 주왕은 처음에는 총명했으나 요희 달기에게 빠져 정사를 게을리하고 천하가 도탄에 빠져 보다 못한 주 문왕이 태공망을 영입해 목야의 전투에서 이겨 주나라의 천하를 열었다. 이 줄거리에서 선악의 구도는 명백하며 묘하게 유가적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천명天命이 은에서 떠났으므로 새로운 천자가 나타난다는. 

   저자는 이런 구도를 거부하고 귀신이 지배하는 은나라의 천하와 인간 중심의 천하를 열망하는 태공망의 대립 구도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역사적으로도 은나라는 제정일치 사회였으며 나라의 모든 중한 결정은 점술의 결과에 의해 결정되었다. 소설에서 태공망이 속한 강족은 은나라가 제사나 점복을 행하는 과정에서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정기적으로 사냥당하던 존재였으며, 태공망은 어려서 주왕의 이러한 사냥에 의해 부족 모두를 잃고 격심한 분노와 의문에 빠진다. 

   이러한 구도에 의해, 등장인물은 <<봉신연의>>에서 묘사된 것과는 다른 성격의 인물들로 그려진다. 특히 주왕과 달기의 묘사가 인상깊었다. 상술한 바 <<봉신연의>>에서 악의 축은 요희 달기이며 주왕은 그에게 홀려 정사를 그르치는 인물이지만 <<태공망>>에서 둘 간의 관계는 반대여서 오히려 주왕이 달기를 이용하는 관계이다. 소설에서 주왕은 굉장히 명민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는 제정일치의 은나라에서 신관들의 영향력을 감소시켜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고 하는 왕이다. 달기는 제후인 소씨의 딸로서 은나라의 제사 과정에서 상서로운 현상의 중심이 되어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각인지어지고, 주왕은 이러한 달기의 주술적인 영향력을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총비로 삼는다.

   소설에서 저자는 은나라가 무너진 이유를 주왕의 타락에서 찾기보다는 그의 자만에서 찾는다: "오히려 수왕은 결점이 적은 편일지도 몰랐다. ... 다만 수황이 제을(帝乙)이나 이전의 상왕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선왕들은 상제(上帝)등의 신이나 조상의 영령을 두려워했지만, 수왕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수왕에게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는 것이 어쩌면 그의 최대의 결점이며 훗날의 불행의 씨앗이었을지도 몰랐다."(하권, pp.113-114) 소설에서 상왕은 자신의 수하들을 -제후들조차도- 쉽게 죽여버리고 자비를 베풀지 않는데, 아마 무왕이 반기를 들었을 때 제후들이 결집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이런 상왕의 학정이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기보다 주변을 돌아볼 것. "망은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지혜를 잃는다고 생각했다."(p.114)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중권 중반부의, 태공망이 소후를 방문하여 그의 사관史官인 뢰노에게 역사를 배우는 장면이다. 태공망은 뢰노에게 은나라 이전의 역사를 배우고 나서 말한다: "상왕의 자손만이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p.185) 역사를 뭣하러 배우는가? 역사를 배움으로써 태공망은 당대의 질서와 가치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 모든 가치관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이며 불변이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어느 시점엔가에서 시작된 것일 뿐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 그럼으로써 도그마에서 빠져나와 다른 지점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여기에 역사의 효용이 있다. <<태공망>>의 이 장면은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어떠한 이론서보다도 간결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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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 (양장)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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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사서 읽음.

   소설은 측천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측천은 한미한 집안의 여식으로 태어나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여자의 몸으로 지존의 자리에 올랐으나, 처음부터 전제군주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존감이 강한 소녀가 황제로 변해가는 과정을 산샤가 어떻게 그려냈을까를 기대하면서 읽었으나 소설은 이 부분을 오히려 간략하게 건너뛰는 느낌이 들었다. 측천은 고종을 위해 외척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으나, 몇십 년 지난 후에는 어느 새 자신이 최고권력자가 되어 있었다. 이 생략이 처음에는 불만이었지만 책을 다 읽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연 이 생략이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치열하게 살다보니 어느샌가 변해있었다.라는 게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측천도, 유약했던 고종을 도와 몇십 년 정사를 보살피다보니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철혈의 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눈 앞의 일을, 하루하루를 넘기다 문득 뒤돌아보면 어느새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이렇게 납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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