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기타노 다케시 지음, 권남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읽음. 

1. 천재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말일까? 만약에 천재라는 단어가 번뜩이는 직관적 통찰을 통해 진실에 가 닿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면, 기타노 다케시는 그런 의미에서 천재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전율했던 부분은 p.198의 고릴라 그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분위기를 타서 같은 고릴라 그림을 몇 장이고 그리다 보면, 점점 손에 익어서 쓱쓱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림으로서는 시시해진다. 뇌세포의 사용법으로 말하자면, 최소한의 뇌세포만 작용하고 쓸데없는 방향의 시냅스는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 그리기에 익숙해진 그림은 감동이 없다."

   기타노 다케시의 이 통찰은 제프 콜빈의 <<재능은 어떻게 습득되는가?>>의 pp.126-128의 내용와 정확히 상응한다. 제프 콜빈은 탁월한 성취의 비결이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deliberate practice)'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연습의 요체가 반사적으로 하지 않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단계에서 실력의 향상은 멈추며, 따라서 탁월한 성취를 위해서는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을 통해 모든 과정을 항상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케시는 직관만으로 탁월한 성취의 비결에 관한 수많은 학문적 연구의 결론과 동일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건 진짜 놀라운 일이다.

2. 이 천재의 세계에 대한 통찰은 어떠한가? 다케시는 이 책에서 냉정하게 자신과 세계를 바라본다. 그의 세계 인식이 집약되는 한마디: "산다는 것은 죽이는 것이다."(p.109) 이는 권모술수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예컨대 사람은 먹기 위해 수많은 동물과 생물을 죽인다.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수억의 정자가 사라져가며, 수만 명의 연예인들 중에 뜨는 사람은 한 둘에 불과하다는, 그런 의미이다. 세계와 삶은 이렇듯 냉정한 것이기에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꿈도 간혹 있을 뿐이다. 이는 주어진 삶의 조건이기에 이러한 조건을 외면하게 만드는 교육을 그는 경멸한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벽이나 장애물이 됨으로써 세상이 만만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가르쳐야 하며, 말을 듣지 않는 아이는 때려야 한다. 때림으로써 세상에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

   다케시의 이러한 인식들이 성공한 자의 설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내린 결론들이 직접 세상에 몸으로 부딪힌 결과 얻게 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개개인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교육받으면서 자랐지만 실제로는 한사람의 생명 따위는 별다른 의미도 없는 것이다. 죽음과 지워짐의 어이없음. 연평도에서 몇몇 장병과 몇몇 민간인이 죽었지만, 며칠만 지나면 세상은 그들의 존재가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이 잘 돌아갈 것이다. 주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덧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며, 사람들은 먹고자고 일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원래 아무런 색도 없다. 거기에 기쁨이니 슬픔이니 하는 색을 입히는 것은 인간이다."(p.41) 냉정한 세계를 냉정한 말투로 담담히 이야기하는 것, 여기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기타노 다케시는 이 인식 속에서 삶을 채우기 위해 대학 중퇴라는 '자살'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그이다. 그는 그의 말대로 괴롭고도 뜨거운 삶을 살았다. 개인의 삶과 죽음 따위는 아무런 의미 없는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3. 이 책에서 마음에 든 몇몇 부분을 옮겨둔다.
  
   자결의 의미: "몸은 어떤 상태를 맞든 살아가려고 한다. 자결은 정신이 몸의 그 강한 본능을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육체적 운동을 컨트롤하는 것은 정신이지만, 그 궁극은 머리로 육체를 죽이는 것이다. 미시마 씨가 한 행동도 바로 그것이다. 죽음이라는 궁극의 명령을 따르게 함으로써 몸을 굴복시킨 것이 아닐까."(p.37)
   
   우정의 의미: "우정은 내가 저쪽에다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지, 저쪽에서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아니다. 우정이란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다."(p.127)
 
   연예인: "어떤 정치 체제에도 대들 수 있는 배짱이 연예인의 건방짐이다. 공산주의가 되건 독재 체제가 되건, 연예인은 그 체제에 찰싹 달라붙어 살아간다. 어떤 세상이 되어도 "예예~"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연예인이다. 연예인은 체재 밖에 존재하기 때문이다."(p.136)
  
   예술의 본질: "아티스트니 예술가니 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릴 때, 세계에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눈곱만치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를 창조하는 사람은 그 '뭔가'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의 불행을 테마로 작품을 만드는 일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압도적인 이기주의랄까, 낭비랄까.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엉뚱한 짓을 할 수 있는 것이다.(p.1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