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행일지
김작가 지음, 권용득 그림 / 프라우드(proud)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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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가 자신의 블로그에 적은 <루시드 폴의 앨범들>(http://dalwoo.egloos.com/4580490)이란 글의 마지막 문단: "첫번째 앨범? 이걸 설명하자면 '맙소사' '으헉' 같은 과장된 단어들이 필요할 것만 같다. 간단히 말해 그건 그냥 내 청춘의 표상이다. 난 아직도 찌푸린 하늘에서 떨어지던 눈발을 기억하고, 그 사이로 덜덜 떨며 집까지 걸어오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귓가에서 계속 들리던 루시드 폴의 읊조림을 생각한다. 물론 어처구니없이 흘러나오던 8번 트랙도. 하지만 난 그것까지도 사랑한다. 내게 루시드 폴 1집은 음악을 넘어서서 '풍경'으로 다가온다."  나는 이 문단을 읽고서 비로소 고전음악에 대한 대중음악(이런 이분법은 개인적으로는 별로이지만..)의 알리바이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누군가 나에게 '대중음악은 고전음악에 비하면 후진 거 아냐?'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나에게 고전음악은, 비유하자면 마치 극상의 진미와도 같다. 진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머리 속이 텅 빈 채로 자기도 모르게 실실 쪼개게 되는 것과 같이, 나는 폴리니가 그 주지적인 연주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의 아티큘레이션을 쌓아가면서 2악장 말미에 천상으로 도약할 때, 혹은 루빈스타인이 쇼팽 발라드 1번에서 그 천의무봉한 템포 루바토로 사람을 질질싸게 만들 때 머리 속이 하얗게 된 채로 실실 쪼갠다. 그러나 극상의 절품인 쇼타의 초밥도 그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어린 시절 엄마의 손맛이 담긴 추억의 계란말이를 넘어서지 못하는 법. 내 친구에게 있어 루시드 폴 1집은, 또 다시 비유하자면, 그 엄마의 계란말이 같은 것이다. 삶의 특정한 순간에 듣는 특정한 노래. 노래와 추억이 결합될 때 그 감흥은 고전음악이 주는 순음악적 즐거움이 미처 가 닿지 못하는 가장 내밀한 곳까지 도달해 울림을 만들고, 그 노래는 우리가 가끔 말하듯이 '내 인생의 BGM'이 된다. 나에게도, 아마 누구에게나, 이런 추억은 있다. 중학교 때 친구가 가져온 메탈리카의 Black album을 우연찮게 듣고 꽂혀버려서 하루 종일 귀에 달고 있던 기억,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메탈리카의 첫 내한공연을 개거금을 주고 들어가 헤드뱅잉하다보니 어느새 끝나 있던 기억, 고등학교 내내 등하교길을 함께 했던 mojave3, 신촌에서 술만 먹었다 하면 맨날 신청했던 어쓰 형님들과 원더 삼촌.. 

   김작가의 <<악행일지>>는 그 결정적인 찰나의 순간으로 가득한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짧은 책에 비유한다면 음악은 그 책의 이페이지 저페이지에 꽂혀 있는 책갈피이자 붙어있는 포스트잇이며 홀연히 끼어든 낙엽인 셈이다. 문득, 그 페이지들을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었다."(p.4) 다년간의 구라로 단련되어 5페이지에 한번씩은 꼭 키득대게 만드는 작가의 독특하고도 절륜한 필력을 따라가다 보면 음악이라는 책갈피에 의해 보관된 작가 자신의 추억을,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음악을 듣기 시작했거나, 혹은 그 이후에 음악의 마법에 휩싸였거나 했던 독자라면"(p.6) 공유할 수 있는 추억과 만나게 된다. "김광환과 김기덕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가고 해태 브라보콘과 뱅뱅 CM송이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흐른다."(p.16)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속으로 맞아 쉬바쉬바 나도 그랬지 개짜증이었다고 맞장구쳤고, 집에서 메탈리카를 들으면서 오바하다 아버지한테 체포된 에피소드에는 집에서 쉬즈곤 부른답시고 소리지르다가 바깥 도로에서도 다 들린다는 어머니 말씀에 쪽팔려했던 기억이 오버랩됐다. 음악에 빠져들었던 누구나 가지고 있을 기억의 편린들, 김작가는 엄마의 계란말이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악행일지>>를 통해 썰을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마치 술자리에서 노닥거리면서 낄낄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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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버릭꾸랑 2009-08-22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똑같은 책에 관한 글을 써서 반가운 마음에 댓글 남겨봅니다

마요러브 2009-08-24 22: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