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1
이성숙 지음 / 책세상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내가 이 책을 읽은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성매매에 대한 나의 입장에 일종의 전거(典據)를 얻고자 함에 있다. 나는 개인의 신체 처분의 자유와 계약당사자의 효용증대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성매매를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입장은 사실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도덕관념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과연 나는 이러한 견해를 공개적으로 강의실에서 천명했다가 성매매를 반대하는 측의 집중적인 포화를 얻어맞았으며, 이준구 선생님께는 사후에 '난 니가 처음엔 또라이인 줄 알았다'는 말씀까지 듣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전방위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는 내 의견을 바꿀 생각이 없다. 그 이유는 첫째로 성매매를 반대하는 측의 사람들이 나의 견해를 제대로 논박하지 못하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성매매를 반대하는 것이 오히려 매춘 여성을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강호의 시정잡배가 아무리 떠들어봤자 '성매매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일견 그럴듯해보이는 도덕규범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귀기울여 들을 리가 없기에 뭔가 그럴 듯한 권위에 기대어 타인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이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해도 내가 말하는 것과 까뮈가 말하는 것의 무게감은 아무래도 다르니 말이다.

2. 이 책의 목적은 "매매춘은 근본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매매춘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이론에 대한 비평서"이다.(p.8) 매매춘에 대한 페미니스트 이론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매매춘과 매춘여성을 분리해 논의를 전개한다. 매매춘은 본질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제도이므로 추방되고 폐지되어야 할 대상이라 규정하는 한편, 매매춘 성립의 주체인 매춘 여성을 옹호하는 것이다."(pp.8-9) 성매매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내가 대학에 들어온 이후 만난 많은 대학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성매매라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데, 성매매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보통은 경제적 사정 등으로 인한 경우로) 성매매라는 비윤리적 행위를 할 수 밖에 없기에 성매매를 하는 개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매매춘에 대한 페미니스트 이론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i)매매춘과 매춘여성을 분리한다.
ii)실제 매매춘 종사자들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상술한 것처럼 페미니스트 이론은 성매매 행위 자체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나 행위주체인 성매매 여성에 대해서는 옹호한다. 저자는 이러한 시각이 모순적인 것이며, "전통적인 이중규범의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p.9)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성매매를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 성매매 여성을 옹호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중적인 태도를 취할 때, 그 결과로 도출되는 것은 구분이다. 성매매 여성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쪽(페미니스트들이 위치하는)의 인간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저쪽의 인간이다. 따라서 그 결과 그들은 소통의 대상이기라기보다는 구원의 대상이며, 그들은 우리들의 노력에 의해서 도덕적인 안전지대인 이쪽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러한 결론은 페미니스트 이론에 실제 매매춘 종사자들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두 번째 문제점을 낳는다. 페미니스트 이론의 관점에 의할 때, 그들은 매매춘 종사라는, 그들이 처해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에서 끄집어내어져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매매춘 종사자들은 과연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에 빠져 있는가? 저자에 의하면 페미니스트 이론가와 실제 매매춘 종사자들의 성매매에 대한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페미니스트들은 섹스 노동자들을 가리켜 여성의 육체를 시장에 내다파는 성 노예라고 주장하는 반면, 매춘 여성들은 매춘을 성적인 서비스 또는 성적인 친밀성을 판매하는 성 노동이라고 주장한다."(p.86) 

   몸을 파는 자라는 관점과 서비스 제공자라는 관점, 이 양자의 간극은 지극히 넓은 것이다. 일반인이 매매춘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몸을 파는 것'에 대한 불쾌감에 있다. 즉 성매매는 몸을 파는 행위이기 때문에 부도덕하며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저자는 이를 '도덕적 매매춘 페미니즘'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저자는 반문한다: "사실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과 술을 마시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 ... 매매춘이 본질적으로 부도덕하다고 주장하는 것으 사실상 깊이 있는 논의를 회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매매춘의 도덕 중심주의 논리는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지점에서 논의를 끝내버리는 것에 불과한 무책임한 짓이며, 이야말로 부도덕한 짓일지 모른다."(p.35)

   이러한 관념에 대한 매매춘 종사자들(정확하게는 매춘 페미니스트들)의 대응전략은 성매매의 의미를 몸을 파는 것에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1986 브뤼셀에서 합의된 매춘 여성이 단지 "가장 오래된 직업"을 가진 여성 임금 노동자들 가운데 일부분일 뿐이라는 매춘 여성에 대한 개념의 재정립은 이러한 노력의 대표적인 것인데, 이러한 매매춘 페미니스트들의 전략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매매춘을 탈도덕화하여 가치중립적인 노동의 일환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 하에서는 "성 노동자로서의 매춘 여성과 다른 직종의 노동자나 서비스 판매자 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매춘부는 단지 자신의 신체상 재산에 대해 외적 관계에 서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매춘 여성은 자신의 신체와 자아를 파는 것이 아니며, 그녀의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과 아무 손해 없이 거래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다."(p.20) 결국 매매춘을 가치중립적인 노동으로 취급하자는 이러한 주장은 저자가 지적한 페미니스트 이론의 문제점 중 첫 번째, 매매춘행위와 종사 여성을 분리하는 태도를 공격하는 것이다. 양자를 분리하는 태도는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이 매매춘이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라는 가정과 매매춘 여성을 옹호하는 태도 양자를 공히 포기하지 않는 것의 결과인데, 만약 매매춘이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가 아니며 가치중립적인 노동이라면 행위와 행위자를 구태여 분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성매매라는 행위에 대한 이러한 대립적 관점은 사실 논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논증 이전의 공리에 가깝다. 이러한 공리의 타당성은 결국 그 공리를 취함으로써 얻게 되는 결과가 얼마나 개인과 사회의 행복에 기여하는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파시스트들의 가치관을 옳지 않다고 할때, 그 이유는 그들의 가치관이 이론적 정합성, 합리성이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파시즘이 전면적으로 대두할 때 개인과 사회가 파국적인 결말로 치닫는다는 것을 역사적 체험을 통하여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매매를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로 보는 관념은 개인과 사회의 행복 증진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성매매를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태도가 도덕적 위선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성매매 여성들을 구석으로 내모는 것은 궁극적으로 성매매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우리들의 편견이다.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인권착취와 같은 행위들은 이러한 편견의 결과에 불과하다: "여성의 인권을 노골적으로 말살하는 이 부조리한 상황이 가능한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매매춘을 본질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는 여러 가지 가설과 담론들의 경고와 관련 있다. 매춘 여성들의 인권을 탄압하는 주범은 특정 사회의 개인과 집단이 갖고 있는 적대적이며 위선적인 태도들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적대적인 태도는, 섹스 자본가들이 매춘 여성 노동자를 계속 착취하도록 승인하는 것과 같으며, 매매춘에서 남녀의 불평등한 관계 형성은 물론이고 여성성을 경멸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조건이 된다."(p.91)

3.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성매매에 대한 나의 견해를 상당 부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성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하여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지만, 글을 읽기 전에 나는 성매매를 하는 행위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라는 전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종래의 나의 주장은 거칠게 말하자면 성매매가 좋지는 않지만 안하고 굶어죽는 것보다는 몸이라도 팔고 먹고 사는 게 낫다는 것이었는데, 성매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수용한다면 성매매 행위는 신체 처분의 자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근로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매매를 법의 테두리 안에 끌어들이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그것이 가치중립적인 행위이기도 하지만, 합법의 영역으로의 포섭을 통해 성매매에 대한 사회 성원의 관념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유엔은 매춘 여성을 조직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매매춘이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유엔의 이 같은 결정으로 각국이 매춘 여성을 법적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p.9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흐음.. 2009-10-06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논의 잘 읽었습니다. 그저 제 직관상 평을 하자면,
성매매의 윤리적 평가/ 성매매 합법화 인정여부 의 두가지로 나누어서 생각들 해봐야 한다고 보여지네요.

전자의 경우는,
먼저 성매매를 성서비스의 단계로 나아가고자 할 때, 과연 성이 수단적으로만 온전히 써 질 수 있는가.
성 그자체를 서비스화하면서 곧 존엄이 상실되는 여지가 있다면, 비록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자의에 의한다고
말할지라도, 그 내면 깊은 곳에서 그것인 진의인가, 진의 아닌 자발적 의지만으로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하다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적자기 결정권 혹은 성이라는 인간 존엄의 훼손의 침해가 미미한 가..
그런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고,

둘째로,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의 효용적 처분의 강제적 제한은, 과연 국가가 제한해야할
공익적 목적이 있는 가에 대해서 판단해봐야 한다고 보는데요.
저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 관념적인 존재로만 보지 않고 몸 그자체도
인간이라고 봅니다. 예컨대, 팔은 나다. 몸은 나다. 다리는 나다. 라고 봅니다. 나는 다리를 가졌다.
나는 팔을 가졌다, 가 아니라요. 우리는 물건을 매매하는 것 자체는 상품교환적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시장질서로 받아들이지만, 인간을 매매하게 놨둘 경우 벌어지는 인간의 물화현상이 과연, 관념적, 도덕적
측면에서의 당위평가에서만 작동하는 지, 아니면 그 이상의 해악을 지니는 지, 잘 생각해 봐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사실 저같은 아나키적 입장에서는, 화는 나지만, 국가라는 개념을 추상체로 파악하고, 국가를 만들기 위해
계약하지 않은 자들 역시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성매매 종사자들의 자발적 의지와 더불어 착취 없는 좋은 형태의 노동조건(순전히 자본주의적 시선에서 볼 때)이 있다면, 그들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구요. 다만 이들의 성매매를 막기 위한 시민적 차원의 대대적인 교육이라던가, 저항운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국 정치적 불매 운동이
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횡설수설입니다. ㅎㅎ


마요러브 2009-10-10 12:59   좋아요 0 | URL
댓글 잘 읽었습니다. 주신 의견에 대해서 저도 이야기해보자면

1.
'내면 깊은 곳에서 온전히 진의'인 행동은 사람에게 있어서 얼마 없지요. 간단하게 직장생활만 하더라도, 그것을 100% 완전한 자발적 의지로서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사람의 행동은 대부분 자기목적적이 아니라 수단적인 것이지요.

2.
몸 자체를 인간이라고 보는 관점에 의하면 이성숙의 견해는 받아들일 여지가 없습니다. 그는 성매매를 단순한 서비스업으로 보는 관점을 전제하고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에 말이지요. 결국 우리는 양자택일해야 할 겁니다. 성매매를 몸파는 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서비스업으로 볼 것인가. 어떤 공리(公理)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을지에 대한 판단기준은 어느 공리가 사회적으로 이득인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고, 저자가 지적하듯이 성매매를 몸파는 일로 보는 순간 성매매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성매매를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이상,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요원한 것이 되어버리죠.

결국 이성숙은 그래서 파천황적인 제안을 하는 것이지요. 그건 성매매를 가치중립적으로 파악하자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는, 우리에게 이런 관념의 전환이 없는 이상, 성매매에 대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불가능합니다.

음... 2009-10-11 0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컨대 신체적 존엄이냐, 노동의 열매냐의 양자택일의 문제라는 거지요? 개인적으로는 신체적 존엄을 지키면서 노동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제 3의 대안에 대해서 우리가 진심으로 진정성있게 고민해 보았나, 같이 연대해서 그 무게를 짊어지려 해봤나 하는 생각이 드는 군요. 그런 점에서 님께서 말씀하신 사회적 '이득'이란 것이 정확히 어떤 개념일 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저도 솔직히 쉽게 돈 벌 수 있다면 술집따위를 나가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지만, 또 제곁의 친한 지인들 중 누군가는 그런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김규항씨가 던진 질문이 떠오르는 군요.

"하고 싶지 않은 상대와 섹스하지 않고도 비슷한 돈을 벌 수 있다면 세상에 누가 제 존엄을 팔아 살겠는가? "

마요러브 2009-10-18 04:41   좋아요 0 | URL
저도 김규항씨의 말에는 동의합니다. 성매매를 하지 않고도 비슷한 돈을 벌 수 있는 상태가 더 좋은 상태라는 것에는. (너무 딱딱해질지는 모르지만..) 도식화해보겠습니다. 선택지는 3가지입니다. 수치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1)성매매를 하지 않고, 0원의 소득을 얻는다.
2)성매매를 하고, 100원의 소득을 얻는다.
3)성매매 외의 다른 일을 하고, 100원의 소득을 얻는다.

김규항씨의 말은 2)보다 3)이 더 좋음을 역설하고 있지요. 그런데 실제로 매춘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3)은 불가능한 선택지인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존엄을 팔지 않고도 비슷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좋음에도, 성매매를 한다는 것은 그 비슷한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행위자에게 막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정리하자면, 저는 김규항씨의 말에 동의합니다. 다만, 3)의 선택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2)의 선택조차도 할 수 없게 만들어 1)의 상태에 강제적으로 빠뜨리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뿐이지요.

성매매를 하지 않고도 비슷한 돈을 벌 수 있다면, 성매매를 어차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성매매의 규제는 불필요합니다. 반면, 성매매를 하지 않고는 그 돈을 벌 수 없다면, 성매매를 할 자유는 열어두는 것이 바람직하기에 성매매를 규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게 지금의 제 견해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