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윈 경과 녹색기사 대산세계문학총서 92
작자 미상 지음, 이동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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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사서 읽음.

   책 뒷표지에 쓰여진 "작품에 담긴 중요한 상징들과 주제와 소재의 절묘한 조화 등으로 인해 중세 로망스 문학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는 말에 혹해서 사서 읽었다. 뜬금 없이 아서 왕의 파티에 나타나서 시비를 거는 녹색 기사의 어처구니 없음, 지루할 정도로 이어지는 복식 등의 묘사 등을 읽으면서 뭐여 이건..을 연발했지만, 꾸역꾸역 본문을 다 읽고 나서 뒤에 달린 역자의 작품 해설을 읽고는 이 중세시가 대단히 정교하게 쓰여진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나의 독서력 부족을 통탄하였다. 

   시는 이상적인 삶의 고귀함을 현실의 인간이 어디까지 추구할 수 있는가를 아서 왕의 기사인 가윈 경을 통해 노래한다. 아서 왕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나타난 녹색 기사는 원탁의 기사들의 명예를 시험하고자 '목 베기 게임'을 제안하고, 가윈 경은 이를 받아들인다. 먼저 녹색 기사의 목을 친 그는 명년 당일에 녹색 기사의 도끼를 목으로 받아야 하고, 약속을 이행해 명예를 지키기 위해 녹색 기사가 거하는 녹색 예배당을 찾아간다. '솔로몬의 문장Solomon's Seal'이라 불리는 오망성으로 상징되는 기사도의 이상 다섯 가지-관대함, 신의, 순결, 예의범절, 연민-은 중세 기사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덕목이며, 이 다섯 덕목을 모두 갖추어야 이상적인 도덕성을 갖춘 것으로 인정된다. 가윈 경은 성주 부인의 세 번의 유혹 중 두 번은 견뎌내어 그 자신이 네 가지 덕목을 갖추었음을 성주(실은 녹색 기사 자신)에게 증명하지만, 마지막에 부인이 사랑의 징표로 준, 생명을 지켜주는 녹색 허리띠를 성주에게 '획득물 교환게임'의 규칙대로 돌려주지 않음으로써 '신의'의 덕목을 지키지 못한다. 마지막 '목 베기 게임'에서 녹색 기사는 목만을 베고 그는 결국 살아나지만, 녹색 기사의 위로와 원탁의 기사들의 칭송에도 불구하고 가윈 경은 그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자 신의의 덕목을 갖추지 못함을 자책한다.

   가윈이 겪는 갈등은 이해할 만한 것이다. 신의를 지킬 경우 자신이 죽는다면, 인간의 본능적인 보호본능이 그것을 거부하지 않겠는가? 내 생각에 가윈은 현실의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덕성을 갖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윈 경은 스스로 자책한다. 가윈 경에게 배워야할 태도는, 어떤 이상적인 상태를 상정하고 그에 비추어 끊임 없이 자신을 반성하는 이 태도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명예의 진정한 의미: "나의 안락을 기원하는 그대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그대가 나의 비밀을 충실하게 지킬 것이란 데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네./하지만 자네가 아무리 충직하게 비밀을 지킨다 해도,/만약 내가 자네의 충고대로 이곳을 지나,/두려운 나머지 그를 피해 다른 곳으로 도망간다면/나는 한낱 비겁한 기사에 불과할 것이고, 이는 절대로/용서받지 못할 일일세."(p.130) 명예는 사회적 지위와 명성 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결함을 스스로 지키는 데에서 나온다. 진정으로 명예로운 자는 이런 저런 직함을 이름 앞에 주렁주렁 단 자가 아니라 가윈 경과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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냔묘 2018-10-21 0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력부족을 부끄러워 하실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애초에 이런 작품은 두가지의 한계를 인식하고 읽어야 해요...

1. 시간과 장소의 경과에 의한 한계
2. 번역의 모호함에 의한 한계
1의 경우 우리에게 알라후 아크바르..라고 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지긴 힘들죠...삼신할머니가 아이를 점지한다고 하면 그런설도 있지 할수는 있어도....(물론 선대들 처럼..끄덕끄덕하는 건 아니지만...)
2의 경우 두운이라거나 운율을 버리면 이상해지는 고대작품이 많은 지라...일례로 우리의 시조가 번역되어 나가면 외국인들도 갸웃한다지요.....

오히려 읽으셨다는게 더부럽습니다...저도 친구 추천받고 볼까하고 뒤적이는 중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