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공망 -상
미야기타니 마사미쓰 지음, 양경미 옮김 / 까치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전 3권의 소설. 헌책방에서 사서 읽음.

태공망이 주나라를 거들어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제나라의 제후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각색한 역사소설. 태공망 여상은 <<육도>>를 지은 중국 최초의 대병법가로 알려져 있지만 이 시기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봉신연의>>등으로 우리에게는 친숙하지만 은주시대는 역사적으로 청동기시대여서 사실 아득한 옛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상상력에 의해 이 시기를 소설로서 복원해내는데 관점이 대단히 흥미롭다.

   <<봉신연의>>로 친숙한 이 시기의 인상은 대개 이렇다. 은나라 말기에 주왕은 처음에는 총명했으나 요희 달기에게 빠져 정사를 게을리하고 천하가 도탄에 빠져 보다 못한 주 문왕이 태공망을 영입해 목야의 전투에서 이겨 주나라의 천하를 열었다. 이 줄거리에서 선악의 구도는 명백하며 묘하게 유가적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천명天命이 은에서 떠났으므로 새로운 천자가 나타난다는. 

   저자는 이런 구도를 거부하고 귀신이 지배하는 은나라의 천하와 인간 중심의 천하를 열망하는 태공망의 대립 구도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역사적으로도 은나라는 제정일치 사회였으며 나라의 모든 중한 결정은 점술의 결과에 의해 결정되었다. 소설에서 태공망이 속한 강족은 은나라가 제사나 점복을 행하는 과정에서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정기적으로 사냥당하던 존재였으며, 태공망은 어려서 주왕의 이러한 사냥에 의해 부족 모두를 잃고 격심한 분노와 의문에 빠진다. 

   이러한 구도에 의해, 등장인물은 <<봉신연의>>에서 묘사된 것과는 다른 성격의 인물들로 그려진다. 특히 주왕과 달기의 묘사가 인상깊었다. 상술한 바 <<봉신연의>>에서 악의 축은 요희 달기이며 주왕은 그에게 홀려 정사를 그르치는 인물이지만 <<태공망>>에서 둘 간의 관계는 반대여서 오히려 주왕이 달기를 이용하는 관계이다. 소설에서 주왕은 굉장히 명민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는 제정일치의 은나라에서 신관들의 영향력을 감소시켜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고 하는 왕이다. 달기는 제후인 소씨의 딸로서 은나라의 제사 과정에서 상서로운 현상의 중심이 되어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각인지어지고, 주왕은 이러한 달기의 주술적인 영향력을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총비로 삼는다.

   소설에서 저자는 은나라가 무너진 이유를 주왕의 타락에서 찾기보다는 그의 자만에서 찾는다: "오히려 수왕은 결점이 적은 편일지도 몰랐다. ... 다만 수황이 제을(帝乙)이나 이전의 상왕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선왕들은 상제(上帝)등의 신이나 조상의 영령을 두려워했지만, 수왕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수왕에게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는 것이 어쩌면 그의 최대의 결점이며 훗날의 불행의 씨앗이었을지도 몰랐다."(하권, pp.113-114) 소설에서 상왕은 자신의 수하들을 -제후들조차도- 쉽게 죽여버리고 자비를 베풀지 않는데, 아마 무왕이 반기를 들었을 때 제후들이 결집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이런 상왕의 학정이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기보다 주변을 돌아볼 것. "망은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지혜를 잃는다고 생각했다."(p.114)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중권 중반부의, 태공망이 소후를 방문하여 그의 사관史官인 뢰노에게 역사를 배우는 장면이다. 태공망은 뢰노에게 은나라 이전의 역사를 배우고 나서 말한다: "상왕의 자손만이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p.185) 역사를 뭣하러 배우는가? 역사를 배움으로써 태공망은 당대의 질서와 가치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 모든 가치관은 상대적이며 절대적이며 불변이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어느 시점엔가에서 시작된 것일 뿐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 그럼으로써 도그마에서 빠져나와 다른 지점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여기에 역사의 효용이 있다. <<태공망>>의 이 장면은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어떠한 이론서보다도 간결하게 그려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