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읽다 - 로완 윌리엄스의 마르코 복음서 읽기 로완 윌리엄스 선집 (비아)
로완 윌리엄스 지음, 김병준 옮김 / 비아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로완 윌리엄스는 언제나 핵심을 간결하게 표현하면서도 다양한 해석을 고려하는 사려 깊은 글쓰기를 한다.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역자의 해설도 정말 좋다. 


마르코의 복음서는 변화에 관한 책, 지금과는 다른 체제 아래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다루는 책입니다. 책의 제목, 그리고 첫 장의 내용을 통해 마르코 복음서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단지 한 때 이 세계에서 살았던 한 사람에 관한 전기가 아니라고 경고합니다. 마르코의 복음서는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저와 여러분의 삶, 그리고 복음서를 읽는 모든 독자의 삶과 그 삶과 관련된 가능성을 뒤바꾸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 P20

마르코 복음서는 관계에 대한 복음서입니다. 이 책의 저자와 독자가 중심 인물과 맺는 관계를 제외한 채 이 책을 보면 이 이야기는 전혀 말이 되지 않습니다. (...) 그는 우리가 두 가지 기본적인 통찰을 갖고 자신의 복음서를 대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는 예수가 지닌 특별한 점, 그에게서 눈여겨볼 점은 기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기적은 언제나 신뢰와 관계를 동반할 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기적은 절대 어떠한 마술이 아닙니다. 힘을 과시하거나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닙니다. - P68

하느님께서는 그침 없이 존재의 중심에서 ‘바깥을 향하여‘, 당신께서 창조하신 존재들의 행위를 통하여 당신의 활동 범위를 꾸준히 넓혀 가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런 생각, 즉 하느님께서는 하늘에서 이 세상 안으로 개입해 들어오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 세계의 중심에서 변화를 일으켜 나가신다는 생각을 과감하게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과정 안에서, 그 과정과 함께하시며, 특별히 인간의 삶이라는 유일무이한 과정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예수의 삶에서 시작하여 예수에게 부름받은 이들의 삶, 예수 때문에 그리고 예수처럼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역사를 꽃피우고, 스스로의 삶을 세상에서 그 역사를 넓혀나가는 공간으로 삼는 사람들의 삶 안에서 세상을 변혁하십니다. - P81

이 복음서가 증언하는 하느님은 우리가 상상하며 그리는 전지전능한 우주의 주인이 된 우리 자신의 모습, 즉, 우리 자신의 상상 속 부풀어 오른 자아와는 전혀 다른 분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밑바닥에 계시며, 존재의 중심에서 바깥을 향하여 역사하시는 분, 그렇게 함으로써 참되고 완전한 변화를 이루어내시는 분입니다. - P92

‘평생에 걸쳐 겪어갈 고난‘, 마르코 복음서가 궁극적으로 그리고자 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마르코 복음 마지막 장의 주제를 엮어서 볼 때 이 주제가 드러납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지금까지 읽은 모든 것은 온 세계를 바꿔놓는 이 통찰에 이르기 위한 서문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했던 그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가운데 고통 속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그 인간 안에, 그와 함께, 계십니다. 이곳이 하느님께서 계시기로 택하신 곳, 당신 자신을 온 세상에 드러내기로 택하신 곳입니다. - P110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기 생명으로 값을 치른다는 예수의 말, 그 말과 맥락이 정확히 가리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고 비참하게 만드는, 하느님의 권력과 우리의 권력을 동일시하는 환상에서 우리가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구절이 우리에게 전하는 내용은 더도 덜도 아닌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 자신에 관한 헛된 상상과 야망을 모두 놓아버리는 것, 거기에 자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환상들을 놓아버릴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이 예수의 심문과 죽음 안에 드러나 우리 앞에 놓였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느님, 고립됨과 무력함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 위르겐 몰트만이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체험했던 하느님, 스스로 버림받음으로써 두려움과 배신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방향을 잃은 채 정처 없이 표류하는 이들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이 이루시는 변화입니다. - P115

마르코가 쓴 이 복음서는 신앙에 관한 책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신앙을 이루는 근본에 관한 책입니다. 즉, 신뢰 안에서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우리의 방식이 아니라 오로지 당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역사하시고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뒤엎으시는 사랑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신앙의 근본임을 말하는 책입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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