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생산의 기술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23
우메사오 다다오 지음, 김욱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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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너무 많이 가르친다고 했다. 이와 모순되는 견해이기도 한데, 의외로 학교는 ‘가르침을 아까워하는‘ 곳이기도 하다. 조금 과장한다면 정말 배우고 싶은 것들은 도무지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는다. 무엇을 지나치게 가르쳐주고, 또 무엇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인가. 간단히 말해 지식은 가르쳐준다. 하지만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뿐 아니라 학문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학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현실을 보자면 대학에서도 학문의 방법을 가르쳐주기보다는 학문의 성과를 전하는 데 더욱 열심이다. - P15

지적 생산이란 인간의 지적 활동이 어떤 새로운 정보를 생산했을 때의 상황이다. 여기서 정보는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지혜, 사상, 생각, 보도, 서술, 그 밖에 다른 것이 떠오른다면 그것으로 해석해도 좋다. 간단히 말해 지적 생산이란 뇌가 움직여서 뭔가 새로운 것을 타인에게 알려주는 형태라고 생각하면 정확할 것이다. 지적 생산이라는 개념은 지적 활동에 의하지 않은 생산과 대립하고, 지적 소비라는 개념과도 대립한다. - P24

기록해두기만 하면 예전에 발견했던 소재를 통해 또 다른 소재를 찾게 되고, 이것이 디딤돌이 되어 점차 거대한 건축물로 쌓아올려지게 된다. (...) ‘발견‘했다면 되도록 그 자리에서 문장으로 적는 것이 좋다. 그럴 여유가 없을 때는 문장의 ‘표제‘만이라도 기록해둔다. 나중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그 내용에 살을 붙여 문장을 완성하면 된다. 그러나 표제만 쓰고 며칠씩 방치해버리면 ‘발견‘은 퇴색하고 시들어진다. ‘발견‘에는 언제나 감동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문장으로 만들어두지 않으면 영원히 쓸 수 없게 된다. - P48

규격화를 권하는 까닭은 잡다한 요소들을 추방하기 위해서다. 규격화를 통해 지적 작업은 보다 손쉬워지고 집중력도 높아진다. 무척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제일 먼저 내가 시도했던 것은 문서의 규격화였다. 알고 보니 나의 지적 활동에 필요한 문서류는 고작 몇 종류밖에 되지 않았다. - P109

이처럼 지적 생산을 위한 공간을 기능에 따라 분화시키는 까닭은 지적 생산 작업에 계열이 다른 작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지적 생산보다 지적 생산물을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긴다. 그럼에도 평소 앉아 있던 책상에서 사무 처리가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엄청난 양의 지적 생산 작업을 마무리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혹은 자료를 정리하고 선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놓고도 이를 지적 생산으로 혼동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장소를 달리하면 지적 생산과 자료 정리, 혹은 사무 처리를 혼동할 위험이 없다. - P131

우리에게 지적 생산의 기술이 필요한 까닭은 능률 때문이 아니다. 지적 활동에 초조함이 배제된 ‘질서와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인간에게 지적 생산의 기술이 필요한 까닭은 두뇌 활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서다. 두뇌 활동에 아무런 파문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 P135

독서의 핵심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함과 동시에 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식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있다. 보다 넓혀진 지식의 스펙트럼에서 현재 내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상을 개발하고 육성하는 능력의 성장, 이것이 독서의 목적이다. - P158

독서의 즐거움을 향락하는 기분도 좋지만 이런 독서는 단순히 소비적일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기술은 생산적 독서법의 터득이다. 이러한 독서는 곧 창조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저자와의 관계에서 말하자면, 추종적이고 비판적인 독서에 비해 창조적 독서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 P159

관찰과 기록의 시간의 차는 짧을수록 좋다. 실험실에서의 데이터도 그 자리에서 기록하지 않고 나중으로 미루면 객관적으로 드러난 수치임에도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이는 야외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능하면 그 자리에서 기억을 기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도 기억에 의지했다간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 모른다. 아이디어도 경험의 일부이므로 기록해두는 편이 좋다. - P215

자신의 경험을 기록화하고 이를 축적된 자료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지적 생산이다. 보고 들은 모든 사항을 기록하라고 권하지는 않겠다. 다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어떤 경험은 진보의 재료가 된다는 진실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나처럼 지적 생산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 P220

복사본은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고심해서 완성시킨 원고가 사라져버릴 때처럼 허무한 경험은 없다. 또 인쇄소로 넘어가는 도중에 원고가 행방불명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다. 따라사 복사본은 반드시 준비해둬야 한다. - P240

문장을 쓰는 작업은 사실상 두 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생각을 정리하는 단계다. 둘째는 그것을 실제 문장으로 표현하는 단계다. 일반적으로 글을 쓴다, 라고 하면 두 번째 단계인 기술론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핵심은 첫 번째인 생각을 정리하는 단계이다. 써야 할 내용이 없으면 문장을 쓸 수가 없다.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써야 할 내용이 있어야 한다. - P248

분산된 소재를 여러 가지 형태와 순서로 결합시키면서 자기도 모르게 새로운 논리적 연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 P255

문장의 길이보다는 한 번 읽어도 누구나 이해 가능한 기능성이 중요하다. (...) 간결한 문장도 좋지만 이왕 고민해서 써야 한다면 알기 쉽게 표현하는 기능에 중점을 맞춰야 한다. - P257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 실천하지 않고 머리로만 판단하면서 비판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한다. 어느 기법이든 실행해보면 각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지적 생산에 비결은 없다. 노력하지 않고서는 결실도 없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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