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은 자리 잡고 있는 동시에 관계적이고, 수용적인 동시에 창조적이고 내러티브적이며, 말하는 동시에 말해지는 것, 보는 동시에 보여지는 것과 관련이 있고, 상징을 만들어 낸다는 입장은, 종교인 전체가 당연시하는 우주 모델과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조화로운 동반 관계에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보기에 이것은 창조세계 자체의 본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우주 속에 유한한 일련의 체계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지금과 같은 이유는, 모든 것이 근본적 지능이나 정보의 소통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라는 생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수용력과 협력, 한계 혹은 불완전에 관한 감각, 상징과 상징의 투명성은 인간의 담론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신성함‘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 P42
우리가 사람들이나 개인에게 인격적 존엄이나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관계를 맺는 가운데 다른 사람의 실존 안에서 현존하거나 의미를 갖는다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계의 선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는 것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소위 ‘인격‘이라는 추상적 요소를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지금 사람들이 타자의 경험과 열망, 자아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듯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살아가는 능력은 인격이라는 실재에 관한 이 심오한 신비가 지닌 함의의 일부입니다. - P55
인격이란 흥미롭게 또한 불가피하게 혼성적인 실재라는 이해입니다. 물질세계에 뿌리내려 있고, 시간의 경과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면에서 물질적이지만, 동시에 신비롭게 자신의 환경에 반응하여 다른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정해진 의제를 뛰어넘어 주변을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받고 주는 데, 의존적인 동시에 독립적이 되는 데 몰두하는 데, 그것이 바로 관계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계도 아니고 자족적인 영혼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내게 말하고 주목하기 때문에 나는 한 인격이고, 누군가가 내게 말하고 주목하고 나를 사랑함으로써 나는 현실의 존재가 됩니다. 이것은 신성함과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질문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련해서 내가 볼 수 없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항상 존재한다는 저 편만하고 신비롭고 영속적인 인식으로 우리를 돌아가게 합니다. - P68
지금까지 내가 강조해 온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몸이 습관을 익힐 때 너무 많은 사물과 부딪치지 않고 환경 속을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관점에서 우리의 수많은 습관 형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느끼고 감지하고 참여하는 습관을 익히는 것은 지적 성장의 핵심입니다. 그와는 별도로 중요한 사실은 마음이 몸 자체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가 몸을 지닌 채 마음에 대해 배운다고 한다면, 몸이라는 개념 자체에 이미 마음에 관한 요소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 다시 말해, 우리의 앎이란 육체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협력적이고 상상적입니다. - P84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어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시간을 들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들일수록, 우리의 발견은 습관이나 숙련으로 바뀔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시간을 덜 들일수록, 우리는 더 쉽게 해결하고 정리하고 이해하게 되지만, 그것의 가치와 의미는 떨어질 것입니다. - P92
따라서 우리는 자기 자신의 기원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아 창조자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애써 노력할 필요 없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또 존재 속에서 우리를 붙들어 주는 인정의 차원이 있습니다. - P103
핵심은 이것입니다. 진단이 있고, 교육이 있습니다. 우리가 환경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인식할 가능성, 그리고 그 반응을 지적으로 재형성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P107
시간은 단지 순환적인 것도 아니고 선형적인 것도 아닙니다. 시간은 움직이고, 여러분은 변합니다. 그와 함께 시간의 경과 속에서 습득한 이해를 재발견하고 확장하기 위해 여러분은 무언가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더해져, 습득의 궤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한 강하게 압박해야 하는 한정 상품이 시간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시간은 복합적이고 풍요로운 선물입니다. 시간은 우리가 성장하고 전진할 뿐만 아니라, 건설적으로 되돌아가 우리 자신에게 재공급해주는-말 그대로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매개체입니다. - P108
무기력하지 않은 의존, 자기비판에 일조하는 자유, 제의에서의 인내심과 해석력, 그리고 죽음 앞에서 불안의 제거,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혹은 전부가 부재할 때, 인간 공동체 안의 역기능과 개인 안의 역기능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형태의 의존에 맞서 반항하는 사람들, 자신에 대한 의문 혹은 자기비판 개념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 시간을 채워져야만 하는 어떤 것으로 대하려고 하는 사람들, 자신의 유한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입니다. - P112
"현재 지구촌 시장의 관행은 어떤 종류의 인간을 전제하고, 또 어떤 종류의 인간을 양성하는가?" 덧붙여, "그는 우리가 객차에서 함께 만나고 싶은 그런 사람인가?" 그런데 이 질문은 모든 종교적 관행이나 습관, 체제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어떤 종류의 인간의 얼굴이 드러나고 있는가? 이 상황에서, 이 언어를 통해, 어떤 종류의 인간성이 교육되고 양성되고 개발되고 있는가? - P115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침묵이 우리에게 엄습하는 그 순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맞닥뜨리는 그 순간을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인식입니다. - P128
우리는 침묵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저 거기 있기 위해 말을 이용하고, 호흡을 이용하고, 우리의 자세를 이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 더 온전한 인간이 되어 갑니다. 그 이유는 하늘의 특별한 경륜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인간다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으면 온갖 기쁨과 성취가 가능해집니다. - P142
그분의 말씀은 성령의 은사 적분에 우리가 새로운 부류의 존재가 될 뿐 아니라 인간을 새롭게 보고 다르게 들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순절 바람과 불로 우리를 덮으실 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예수의 생명을 주십니다. 그분은 인간이 정말로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예수의 능력에 버금가는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까다롭고 비루한 인간 세계의 조각들, 유익하지 않은 조각들을 걸러내지 않는 용기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의 눈과 우리의 귀와 우리의 마음을 열어 인간다움의 총체적 의미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거친 진리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어떤 존재가 되는 대신, 저 방대한 인간 경험에 더 많이 열리고 더 많이 개방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이 아픔을 그리스도 안으로 또한 성부의 심장 속으로 가져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아픔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 변화될 수 있습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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