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김진주 지음 / 얼룩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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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진주는 본명이 아니다.

2022년 6월, 사건이 발행하고 몇 주 뒤 마비되었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온 순간 그녀는 '진주'라는 이름을 지었다.

진주는 6월의 탄생석이었다. 그때 그녀는 '다시 태어났다'라고 생각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라고 검색창에 적으면 수없이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무엇이 진실을 가장 잘 담고 있는지, 무엇이 피해자의 입장을 가장 잘 전달했는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기사가.

고백하자면,

당시 나는 이 사건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못했다. 대체로 많은 문제들 앞에 그랬다.

관심을 가질수록 답답해지고, 무서워지고, 힘들어져서.

화를 내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묻어두는 식이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버스킹을 좋아하는 낙천적인 이십 대 여성.

그렇게 평범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이 책에서 뉴스에선 다 담을 수 없었던 피해자로서의 이야기를 낱낱이 적었다. 어느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아쉽게도 범죄를 피할 수 있는 방법 따윈 없다. 우린 모두 예비 피해자다. 대신 책을 읽고 나면 범죄 피해에 잘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백신을 맞는 것처럼 이 책을 예방주사처럼 여기며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지인들에게도 추천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네가 꼭 끝까지 읽었으면 좋겠다. - <프롤로그> 중에서, p16


"그 누구보다도 네가 꼭 끝까지 읽었으면 좋겠다."

이 문장은 주문처럼 읽혔다. 가해자는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처음 12년을 선고받았고, 피해자는 스스로 모든 걸 바꿔 놓았다.

살인미수에서 강간살인미수로. 누구도 아닌, 피해자가 해낸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사법부에 많이 실망하고,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외롭게 싸워야 했던 순간들.

그 순간에도 진주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냈다.

물론 검찰이 구형한 36년보다 훨씬 줄어든 형량이었지만.

사건 이후 피해자인 진주 씨가 보낸 500여 일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이 책에 관한 내용 소개는 진주 씨가 적은 프롤로그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예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집에 가는 길을, 길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버스킹을 보는 즐거움을, 가볍게 술 한잔할 여유를,

매 순간 겁내며,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는 거니까. 예방주사 맞듯. 이 책을 읽자.

예방주사와 다른 게 있다면 예방 주사는 맞고 나면 금방 잊힌다. 언제 맞았냐는 듯.

이 책은 읽고 나면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어질 거고, 조금 더 알고 싶어질 거고,

그러다 다른 이야기들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지만 아직도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생각을 여전하게 가지고 있다.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에 백번 공감한다. 왜 이렇게 착하게 사는 사람들을 괴롭힐까. 힘 있는 사람들을 괴롭혀서 법이라도 빨리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괴팍한 생각도 들었다.
- P165

아직 바꿔나갈 것들은 말 그대로 산투성이다. 또 새롭게 만들어지는 제도들에도 사각지대는 있을 것이고 계속 보안하고 수정해 나가야 한다. 난 끝까지 물고 뜯을 거다. 아마 내 평생 가해자와는 떨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 이외에도 국가에 대한 돌도 계속 던질 계획이다. 수사 초기 부실했던 수사의 문제점을 꼬집는 국가배상을 할 것이다.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수사의 부실한 점을 보완하고 기억을 잃은 피해자들을 향한 수사 매뉴얼을 다시 구축하라는 의미에서. 아마 나는 범죄에서 영원히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생을 살 거다. 언젠가는 피해자들이 나를 찾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라지만 그때까진 열심히 나설 예정이다. 얼굴 없는 피해자로.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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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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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 기억할 수 없는, 죽고만 싶었던 숱한 순간에 나를 살린 누군가의 문장들이 있었을 것이다. 고통의 순간도 회복의 과정도 전부 잊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 나는 위대한 책들을 읽고서 혁명을 일으키지도 못했고 인류를 구원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나처럼 평범한 대부분의 독자에게 독서란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그저 삶을 연명하고 있을 뿐이라고 고백했던 헤르베르트를 봐도 그렇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한 뼘이라도 더 훌륭해지는 건 아니라고 장담했지만 그는 쉼 없이 읽었다. 그리스 로마 고전, 과학적 사실주의, 우주비행, 벌의 삶에 관한 책들, 카츠 같은 시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플라톤, 데카르트, 스피노자, 니체 같은 철학자들의 책, 우파니샤드 같은 종교서 등등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의 고백처럼 책 속에서 연명했던 것이다. - p8


진은영 시인의 산문을 읽었다.

'다시 본다,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일보> 지면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어 엮은 책이다.

스물여덟 편의 글이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면서, 독서 모임을 하면서, 글방 친구들에게 혹은 블로그에서 익명의 이웃들에게

책을 읽는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말해왔다.

그건 내 경험에 의한 이야기였다. 누군가 책을 읽고 돈을 많이 벌었다는데, 이름을 알렸다는데, 나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읽는다고 말했다. 그게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는 믿는다고.

책 서문에 작가의 문장을 읽으며 그래,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혁명을 일으지도 못하고, 인류를 구원하지도 못하지만 '살기 위해서' 책 속에서 연명하는 지도 모른다는 것.

나는 그게 무슨 의민지 안다.

앞으로도 책을 통해 무엇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계속 읽고, 그 안에서 살아가겠지. 그게 나를 살게 하는 일일 테니까.



(...) 카프카, 울프, 카뮈, 베유, 톨스토이, 플라스, 니체, 아렌트...... 여기서 다른 저자들은 다 그렇다. 그들에게 삶은 계속되는 소송이거나 400년 내내 분투한 뒤에야 겨우 이룰 수 있는 소망, 다시 굴러떨어지는 바윗돌, 보상 없이 행하는 사랑, 끝없이 헤매다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겨울 숲 같은 것이다. 또는 내 속에 울음이 사는 시간, 경멸을 통해서 극복되는 운명의 시간, 사회가 찍어내는 자동인형 같은 삶에 맞서는 시간이다. 이들은, 내 책을 읽는다면 넌 아침에 슬펐어도 저녁 무렵엔 꼭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겠지만 그래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이해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런 삶을 소망하는 사람이 이 세계에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하고 그가 분명 내 책을 읽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작가는 포기하지 않는 능력에 대한 철학을 펼칠 수 있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책이 포기하지 않는 독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이다. 혹은 용감한 독자와 용감한 책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릴케의 시구처럼 우리는 책에서 자신의 그림자로 흠뻑 젖은 것들을 읽는다. - p 10



릴케의 시구처럼 멋지게 말하는 법을 몰랐지만, 책에서 자신의 그림자로 흠뻑 젖는 것들을 만나는 순간은 알 것 같다.

그것들을 읽을 때, 너무 좋아 신이 나고,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생기는... 대책 없는 열정과 즐거움을 만나는 순간. 물론 위로까지.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속에는,

세상과 다르지만, 힘들지만, 포기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는 '살아가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책의 서문에서 '책 속에서 연명'했던 것이다,라는 문장 속 '연명'이라는 단어가 계속 생각났다.

책 속에서 '연명'하다.

책을 읽으며, 살아가며 내내 이 단어를 떠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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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기쁨이 나를 깨웠어
레나 라우바움 지음, 카티아 자이페르트 그림, 민예지 옮김 / dodo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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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의식적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소소한 행복, 일상이 행복...

왜인지 모르겠는데 아마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너무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행복'하지 않으면 어때, 어떻게 매일 행복을 찾아. 뭐 이런 마음이었나.

그 단어를 대체해 찾은 게 '기쁨'이었다. 어쩐지 '기쁘다'라고 말하면 그냥 딱 그 순간, 을 지칭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책의 표지에는 "그 무엇이든, 행복이 될 수 있을 거야."라고 적혀 있었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했지만, 실은 그건 여전히 잘 모르겠다. '확실한 행복'이 뭔지.

대신 '기쁨'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읽는 내내 살포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림이 예뻐서.

짧은 문장에 담긴 긍정적인 의미들이 좋아서.

딱, 그렇게 아침에 눈 떴을 때 '오늘은 기쁜 순간들을 만날 거야.' 생각하고 싶게.



나는 여전히 믿는다.

매일 행복할 수 없듯이, 매일 슬프지만은 않다고.

슬픔이 지나가면 기쁨이 반드시 온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슬픔 뒤에 찾아오는 작은 기쁨은 조금 숨을 쉬게는 해준다고.

그런 날도 있다는 거.

나는 그게 가장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날도 있으니, 저런 날도 있을 거라고 그냥 별날 아니라고 생각해버리면

아주 작은 기쁨들에도 웃음이 나기도 한다는 거.

그냥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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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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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데 아직도 여름 같다.

덥다고, 어쩌면 추석이 다가왔는데도 이렇게 덥냐고, 에어컨을 켜며 중얼거렸다.

마치 변명하듯.

언제까지 여름일 거냐고, 이러다 가을은 못 만나고 겨울이겠다고 불평했던 지난 며칠이 최지은 시인의 <<우리의 여름에게>>라는 책을 읽으며 사라졌다.

아니, 조금만 더 이 여름이어도 좋겠다 싶었다.

반짝이는 어느 여름, 어느 시절, 어느 사랑, 어느 사람들.

여름이어서 아름다울 모든 것들에 조금 더 마음을 주고 싶어서. 거기에 '나'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실은, 책 속의 글들은 꼭 여름이 아니었어도 좋았을 거다.

따뜻한 봄에 읽었으면 다정했을 거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읽었으면 위로받았을 거다.

몸이 꽁꽁 얼 만큼 추운 겨울에 읽었다면 옆에 있는 누군가의 언 손을 녹여주고 싶었을 거다.

그러니까,

너무 좋아서 매 순간 기뻤을 거다.

나에게 무조건 적인 사랑을 주었던 사람들, 나를 미워했거나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 상처 준 사람들, 볼수록 아프기만 한 사람들,

너무 사랑해서 나를 다 내어주어도 좋을 것 같은 사람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까지,

한 사람 한 사람 흐릿한 기억으로나마 떠올리면서 그들로 인해 지금 '나'가 존재하고 있음을 그건 그저 사랑이었음을, 믿음이었음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

시인의 글은,

온통 사랑이었고, 끝내 나는 그 사랑에 손들어버렸다.

아팠을 텐데, 힘들었을 텐데, 미웠을 텐데... 같은 마음은 둘 곳이 없었다.

사랑을 한다는 이야기죠. 지금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흰밥처럼 새하얗고 깨끗한 마음을 주고 싶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랑 같지만, 너무나 크고 깊은 사랑을 받았기에 어떻게든 이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는 말이에요. 자랑 같지만, 사랑을 하고 있다는 말이고요. 갈수록 저는 더 알 것 같거든요. 제가 받은 사랑이 무엇인지, 제가 지닌 사랑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할머니가 제게 먹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아요.

할머니는 제 마음을 다 아시겠지요. 그리고 당신도 꼭 제 마음처럼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쉽게 지치면 안 되는 여름이 다가옵니다. 또 다른 여름, 강건하게 마음을 지키기로 해요. 무슨 이야기인지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 <자랑 같지만> 중에서, p20



할머니는 손녀가 좋아하는 오이지를 먹이고 싶어서, 오이를 소금물에 절이면 더 아삭해진다기에, 새벽에 일어나 소금물을 끓이다 화상을 입는다.

어린 손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그해 여름을 할머니는 병원에서 보낸다. 더 이상 손녀에게 오이지는 찬물에 말아 시원하게 먹는 아삭한, 맛있는 반찬이 아니게 되었다. 어린 손녀는 몰랐지만 어른이 된 손녀는 안다. 그게 사랑이었음을.

시인의 글 속에 등장하는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어머니.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 시인의 이야기는 어린 시인을 밖으로 끌어낸다.

자꾸 내게도 그때의 너로 돌아가라고 한다. 아픔만은 아니었을 수도. 그때 무한한 사랑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만 툭툭, 털고 보내주라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멀리서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시인의 북토크 자리든, 어디든. 시인의 이야기를 시인의 목소리로. 아주 오랜만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기분.

고백 같은 거 할 순 없겠지만, 오래오래 시인의 시를, 에세이를 읽고 싶다.


어머니라는 세계의 부재로 인해 저는 이 모든 것을 손안에 쥐고 있습니다.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무궁한 모름의 세계까지 나의 손에 있습니다. (...) 이런 것을 적어 내려가는 오늘 밤은 하필 봄이 가깝고, 나의 고백은 두렵고, 나는 나의 문장을 미워하고, 나를 이해합니다.

누구나 오직 자신에게만 이해받을 수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몸으로, 나의 언어로, 나의 세계로, 나의 무게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그럴 때면 '없음'의 자리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없음에서 주어 올린 마음. 오직 부재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었던 마음. 없어서 구할 수 있었던 마음. 이런 건 무어라 이름 붙여주어야 할까요. 하필 나와 비슷한 돌멩이를 쥐고, 봄이 가까운 깊은 밤 잠들지 못하는 나를 닮은 사람을 떠올릴 때면 나는 더 솔직해지고 싶은 거예요. 더 용기 내고 싶습니다. 도망치지 않고 나의 단어를 찾아가면서요.

- <그럴 때 우리의 사랑은 조금 더 나아가고요> 중에서, p29




당신도 당신의 어린이를 이야기하기를, 그 아이에게 깊이 사랑받기를.
잘 되어가지 않을 때에도 나는 나의 사랑 이야기를 믿는다. 물동이에 다 담기지 않아도 하늘은 틀림없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물동이에 가둘 수 없는 깊은 하늘을 이제는 믿으니까. 내 사랑은 여기서부터 되어간다.
순전히 나의 사랑만으로. 나의 이야기는 되어간다, 더, 되어간다. - P45

슬픔을 슬픔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지나가면,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오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언가 때문에라도 슬픔은 슬픔으로 두고 싶다. 언제든 슬플 요량으로 이불 끝을 조금 끌어당겼다. 날이 밝으면 이 빛을 기억하며 씩씩하게 나가 걷자고 생각하면서. - P63

할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은 죽음 후에도 나를 돌보러 온다. 어쩐지 쓸쓸해 창을 열며 마음을 달랠 때 구름이 있고 하늘은 맑고, 깨끗한 가을 공기가 들어온다. 두 사람은 이 모든 것이 되어 한꺼번에 내게 온다. 아버지의 거울을 꺼내어 하늘을 비추고 햇빛을 비추고 잠시 나를 비춰본다. 거울 속에는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숨어 있다. 나 역시 언젠가 구름이 되고 하늘이 될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도 숨어 있다. 거울 속에서 손톱이 예쁜 어린이가 나를 안아주러 단숨에 나타나기도 한다. 안녕, 내가 아는 나의 어린이. 이 어린이를 어떻게든 미워할 수가 없다. - P85

사소한 기쁨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것이 내가 체득한 삶의 방식이다.

바닥을 잃었던 여름밤과 다락, 정처 없이 쏘다녔던 거리를 잊고 싶지 않다. 그런 나날 속에서도 나를 위해 음식을 해 오고, 안부를 묻는 사람과 숨길 수 있는 다락이 있었다는 것이 내 삶에 주어진 알 수 없는 호혜였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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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세한 책들
장윤미 지음 / 사람in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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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책을 읽는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읽기도 하고,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읽기도 하고, 그저 좋아서 읽기도 하고,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읽기도 한다.

책은 자주 아무것도 아니지만, 때로는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책이 내게 무언가가 되는 순간은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뒤, '아, 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살 수 없겠다'하고 느낄 때다.

그건, 내가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고

나의 옆 사람이, 나의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나를 뒤따라 오는 사람이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고 느낄 때다.

장윤미 작가의 <<우세한 책들>>은 나와 너, 우리가 결코 무관한 사람이 아님을, 그러니까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의 모두가 조금씩은 서로에게 책임을 가지고, 다정하게 보듬으며 살았으며 하고 바라게 했다.

스물일곱 권의 책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스물일곱 명 이상의 사람이 나를 통과했다.

스물일곱 개의 모두 다른 모양을 가진 삶이 나보고 그 안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작가는 스물일곱 권의 책 속에서 세상의 약하거나 악한, 자유롭거나 구속당한, 아름답거나 불편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더듬는다.

무조건 악하기만 한 사람은 없듯, 한 권의 책 안에서도 무조건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작은 빛을 찾아낸다.


작가가 읽은 책을 나 역시 대부분 읽었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작가가 발견해 들려줄 때, 신이 나서 다시 그 책을 찾아 펼쳐보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작가와 같은 책을 두고 의견을 나누듯 '그랬군요. 나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같은 생각을 한 부분을 만났을 땐 '어머! 우리 좀 통하는걸요?' 말 걸고 싶었다.

책은, 보이지 않는 나와 당신을 연결한다.

작가는 나와 당신을 연결하기 위해 친절하게 다리를 놓아주었다. 혹시 가다가 넘어지지 말라고, 길을 잃어버리지 말고 서로를 꼭 알아보라고 다정하게 길잡이 해주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된다.

어디서든, 언제든, 기약 없이.

운 좋게 우리가 서로를 알아본다면, 그건 아마 작가가 놓아 준 책과 책으로 연결된 다리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얼마든지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책임을 띠고 이 땅에 선 존재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 <여는 글>에서

당신은 지금, 어떤 이유로 책을 읽는가.

나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즐겁고 수다스럽게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덧) 작가가 읽은 스물일곱 권의 책을 다 읽지 못했더라도, 혹은 한 권도 읽지 못했더라도 이 책을 읽는데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을 통과해 읽는 사람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기에, 그저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다. 책 속을 유영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삶을. 그리고 당신의 삶을.


나는 함부로 타인에게 "당신을 이해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는 내 이해의 대상이 아니고 나에게 이해받아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게다가 이해의 넓이나 깊이는 내 경험치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이해한다는 말 대신 그와 내가 잊고 있던 낯선 감정을 복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나와 타인의 관계를 만드는 괜찮은 장치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은 쉽거나 간단하지 않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갈등도 필수다. 그럼에도 이것이 옳다고 믿는 이유는 나와 타인 모두가 즐겁게 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P31

계급 쟁탈전에서 밀려난 아이는 자신이 당한 방법대로 다른 아이들을 차별하고 어떻게 해서든 계급사회의 서열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결국 밀려난 최후의 아이는 벌레 아니면 거지라고 놀림받는다. 책이나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면 이러한 현실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해야 마땅하지만, 그래 봤자 저들에게는 그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불평불만처럼 보일 뿐이다.
- P170

절대적이고 완벽하게 자유로운 선택이란 없다. 선택지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결국 모든 선택은 허용된 조건 아래서 이루어진다. 조건이 공간이나 시간이든,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이든 간에 말이다. 다만 허용된 조건을 우리가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 P223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뇌의 것이 아니라 뇌가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뇌가 잘못해도 결국 책임은 뇌의 주인인 내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 <뇌가 편해지면 사회는 불편해진다>에서
- P243

정의와 공정의 기준을 능력에 두고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개인이 능력을 갖추는 과정에서 거쳐온 여러 특수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정량화, 수치화된 결과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능력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자신이 쌓아 올렸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 <이것은 시험인가, 도박인가>에서
- P277

우리가 감정을 타인에게 표출하고 이해받기 바라는 이유는 외로움을 피하고, 고립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자신의 감정이 타인에게 닿길 바란다. 물론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쓰레기 버리듯 타인에게 감정을 쏟아내고, 어떤 사람은 진짜 감정은 보물처럼 숨겨두고 가짜 감정만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감정까지 자본화하여 거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상대를 해칠 의도가 없는 이상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저 각자 살면서 터득한 감정 생존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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