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세한 책들
장윤미 지음 / 사람in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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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책을 읽는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읽기도 하고,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읽기도 하고, 그저 좋아서 읽기도 하고,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읽기도 한다.

책은 자주 아무것도 아니지만, 때로는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책이 내게 무언가가 되는 순간은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뒤, '아, 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살 수 없겠다'하고 느낄 때다.

그건, 내가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때고

나의 옆 사람이, 나의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나를 뒤따라 오는 사람이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고 느낄 때다.

장윤미 작가의 <<우세한 책들>>은 나와 너, 우리가 결코 무관한 사람이 아님을, 그러니까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의 모두가 조금씩은 서로에게 책임을 가지고, 다정하게 보듬으며 살았으며 하고 바라게 했다.

스물일곱 권의 책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스물일곱 명 이상의 사람이 나를 통과했다.

스물일곱 개의 모두 다른 모양을 가진 삶이 나보고 그 안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작가는 스물일곱 권의 책 속에서 세상의 약하거나 악한, 자유롭거나 구속당한, 아름답거나 불편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더듬는다.

무조건 악하기만 한 사람은 없듯, 한 권의 책 안에서도 무조건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작은 빛을 찾아낸다.


작가가 읽은 책을 나 역시 대부분 읽었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작가가 발견해 들려줄 때, 신이 나서 다시 그 책을 찾아 펼쳐보기도 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작가와 같은 책을 두고 의견을 나누듯 '그랬군요. 나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같은 생각을 한 부분을 만났을 땐 '어머! 우리 좀 통하는걸요?' 말 걸고 싶었다.

책은, 보이지 않는 나와 당신을 연결한다.

작가는 나와 당신을 연결하기 위해 친절하게 다리를 놓아주었다. 혹시 가다가 넘어지지 말라고, 길을 잃어버리지 말고 서로를 꼭 알아보라고 다정하게 길잡이 해주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된다.

어디서든, 언제든, 기약 없이.

운 좋게 우리가 서로를 알아본다면, 그건 아마 작가가 놓아 준 책과 책으로 연결된 다리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당신은, 그리고 우리는 얼마든지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책임을 띠고 이 땅에 선 존재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 <여는 글>에서

당신은 지금, 어떤 이유로 책을 읽는가.

나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즐겁고 수다스럽게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덧) 작가가 읽은 스물일곱 권의 책을 다 읽지 못했더라도, 혹은 한 권도 읽지 못했더라도 이 책을 읽는데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을 통과해 읽는 사람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기에, 그저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다. 책 속을 유영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삶을. 그리고 당신의 삶을.


나는 함부로 타인에게 "당신을 이해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는 내 이해의 대상이 아니고 나에게 이해받아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게다가 이해의 넓이나 깊이는 내 경험치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이해한다는 말 대신 그와 내가 잊고 있던 낯선 감정을 복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나와 타인의 관계를 만드는 괜찮은 장치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은 쉽거나 간단하지 않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갈등도 필수다. 그럼에도 이것이 옳다고 믿는 이유는 나와 타인 모두가 즐겁게 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P31

계급 쟁탈전에서 밀려난 아이는 자신이 당한 방법대로 다른 아이들을 차별하고 어떻게 해서든 계급사회의 서열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결국 밀려난 최후의 아이는 벌레 아니면 거지라고 놀림받는다. 책이나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면 이러한 현실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해야 마땅하지만, 그래 봤자 저들에게는 그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불평불만처럼 보일 뿐이다.
- P170

절대적이고 완벽하게 자유로운 선택이란 없다. 선택지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결국 모든 선택은 허용된 조건 아래서 이루어진다. 조건이 공간이나 시간이든,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이든 간에 말이다. 다만 허용된 조건을 우리가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 P223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뇌의 것이 아니라 뇌가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뇌가 잘못해도 결국 책임은 뇌의 주인인 내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 <뇌가 편해지면 사회는 불편해진다>에서
- P243

정의와 공정의 기준을 능력에 두고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개인이 능력을 갖추는 과정에서 거쳐온 여러 특수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정량화, 수치화된 결과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능력이라는 것은 순수하게 자신이 쌓아 올렸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 <이것은 시험인가, 도박인가>에서
- P277

우리가 감정을 타인에게 표출하고 이해받기 바라는 이유는 외로움을 피하고, 고립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자신의 감정이 타인에게 닿길 바란다. 물론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쓰레기 버리듯 타인에게 감정을 쏟아내고, 어떤 사람은 진짜 감정은 보물처럼 숨겨두고 가짜 감정만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감정까지 자본화하여 거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상대를 해칠 의도가 없는 이상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저 각자 살면서 터득한 감정 생존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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