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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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가. 나의 주체는 온전히 나인가. 누군가에 의해 '나'를 대리하는 또 다른 '나'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서 무수히 많은 고민이 시작됐다. 말 그대로 이 책은 이제 '시작'을 말해 주었을 뿐이었다. 갈 길이 멀다.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다 읽었다는 시원함이 남아 있지 않다. 아쉽고, 두렵다.
어쩐지 내가 원하는 답을 결국엔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내가 대학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저자의 이전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흥미롭다는 표현보다 좀 더 정확하게는 공감했고, 아팠고, 어느 순간엔 참담했다고 말하는 게 더 맞겠다.

그 이후, 저자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글이나 기사들을 찾아 읽기도 했고, 그다음 행보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여만에 이 책  《대리사회》가 나왔다.

고백하자면, 이번 책 《대리사회》는 전작보다 더 좋았다.
굳이 고백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내가 아마도 이 저자를 앞으로 쭉, 좋아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대학을 그만두고, 강의실이 아닌 사회로 나온 저자는 1년 동안 글만 쓰겠다는 각오를 뒤로한 채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아내가 있었고,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태어날 아이까지.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그를 다시 거리로 나가게 했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만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거리에서의 기록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우리는 온전히 '자신'인 것 같지만, 결국엔 사회가 만들어 내는 무언가의 '대리'로 살아간다는 저자의 시선이, '대리사회'라는 명명이 와 닿았다.  책을 덮은 뒤에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한 문장이 있다. "을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을이다.p183' 라는 문장.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을'은 '을'일 뿐이라고, 결국 '갑'의 욕망을 대리해서 힘겹게 싸우는 존재들이라고, 그러니 희망 따위 버리라고 말하ㄷ는 것만 같아서.

저자의 첫 책을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이번 책에서도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사회적인 시선이나 개인적인 상황이나, 주변의 상황들이 저자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세상을,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여전히 희망을 갖고, 자신의 미래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점이 참 좋았다. 그래서 독자인 '내'게 와 닿는 감동이 조금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글은 "내가/우리가 이 사회에서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썼다고 적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그 누구도 가르쳐준 바 없지만, 결국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 밀려나기는 쉽지만 스스로 물러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공간의 주체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고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그러고 나면 시스템의 균열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그 균열의 확장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욕망을 대리시켜 온 대리어 사회의 괴물과 마주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 여전히 행동과 언어는 통제될지라도, 정의로움을 판단하고 타인을 주체로서 일으키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강요되는 천박한 욕망을 거부할 용기를 얻는다.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다만, 한 걸음만 물러설 용기를 가지면 된다. 대리인간으로 밀려날 것인지, 스스로 물러서도 다시 나오는 주체가 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라고 적었다.

적어도 저자는 이미 자신의 길을 선택한 듯 보인다. 대학에서 나오며 두려웠겠지만 여전히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고 있다. 불안함과 두려움 때문에 현재에 머물며 내내 머뭇거리는 내 안의 깊은 약점 하나를 이 책이 툭툭, 건드리고야 말았다. 이제 나의, 우리들의 선택이 남아 있다.

대리운전을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사람이라서, 대리운전에 대한 이야기들이 꽤 흥미로웠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했고, 갑질이나 진상 고객의 이야기에서는 마치 내가 겪은 일인 것 마냥 분노했다. 혹시 대리운전을 할 일이 있다면 꼭, 기사님께 감사 인사를 해야지 하는 감정 섞인 다짐까지.

저자는 다시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또다시 대리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한 주체로서 선택한 완벽한 주체적 대리일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단순히 지명을 외우고 막차 시간을 계산하는 데서 나아가 그 안의 ‘사람‘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그들은 언제 나가고 들어오는지, 그들의 도시는 어떻게 외부와 소통하는지, 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투쟁은 그러한 사유로도 확장된다. 그렇게 경험한 삶의 문법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대리가 아닌 온전한 주체로서 내 몸에 남을 것을 믿는다. p61

스스로 한 발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은 주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행위다. 그러고 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행동과 말은 통제되더라도 사유하는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을 아주 어렵게 배웠다. p77

어쩌면 가족은 끊임없이 서로를 위한 ‘대리‘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위해, 너는 나를 위해, 우리는 너를 위해, 그렇게 끊임없이 주체와 대리의 경계를 넘나든다. 나는 아직 모든 가족을 주체로 두는 방법을 잘 모른다. 하지만 안내하고 든 아니하고 든, 조금은 더 많이 대화하려고 한다. 기꺼이 그들을 위한 대리의 삶을 살며, 그렇게 조금은 더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 p105

우리 시대의 노동은 ‘대리노동‘이다. 노동자는 여전히 노동의 주체이면서, 또한 주체가 아니다. 대리운전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동네 마트에서도, 장례식장에서도, 그 어느 노동의 공간에서도, 우리는 노동자가 아닌 ‘대리인간‘으로서만 존재한다. 지금 이 사회에서 타인의 운전석보다 나은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p174

나는 나의 아내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장 어두운 밤에 나를 위해 깜빡이를 켜둔 그곳으로 기쁘게 걸어간다. 나는 기꺼이 아내와 아이를 위한 대리가 되고 싶다. 그리고 아내 역시 아이와 나를 위한 대리로, 하지만 당당한 주체로서 살아갈 것을 믿는다. 그렇게 서로를 대리하면서, 그리고 주체의 언어로 상대방을 상상하면서 우리는 ‘가족‘이 된다. p121

대리운전을 하며 만난 손님과, 어머니와 내가 공유하는 감정은 결국 ‘분노‘다. 현실이 가혹하고 절박할수록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상의 판타지가 강요된다. 처음에는 그것이 공감과 즐거움을 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저마다에게 외로움을 주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분노를 토로하는 개인들도 많아졌다. 아마도 곧 노래와 음식을 넘어 또 다른 대리만족을 주는 무언가가 새롭게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다시 열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리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는 개인들은 다시 다양한 방법으로 분노할 것이다. 다만 그 분노가 개인을 향한 혐오가 되어서는 안 되고,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 익숙한 공간에까지 이미 침투한 대리사회의 괴물에게 온전히 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강요된 환각에서 깨어나 온전한 나로서/우리로서 ‘즐겁게‘ 싸워나가야 한다. 그러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p214-215

기업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노동자의 주체성을 농락한다. 자신을 대신해 내세울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에게 언제나 가혹하다. 그런데 그것은 명백한 위법이나 합법도 아닌,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주로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법의 틈새를 이용한 ‘편법‘이다. 인턴이라는 정체불명의 직함을 부여하고서는 무임금으로 사람을 부리고, 언제든지 해고하고,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조차 보장하지 않아도, 기업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에 더해 국가/정부는 기업을 위한 법안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간다. 결국 노동자는 노동 현장의 주체가 아닌 대리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매장의/학교의 주인처럼 일하라‘는 수사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이것은 정말이지 파렴치한 역설이다. 노동자의 주체성을 강탈하는 동시에 그 빈자리에 ‘주체‘라는 환상을 덧 입히는 것이다. 그것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자신을 주체로 믿는 대리가 된 노동자만이 존재한다. 어쩌면 ‘열정 착취‘보다도 한 단계 진화한 방식이다. 노력뿐 아니라 행복과 만족까지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영혼 착취‘라고 규정하고 싶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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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Z - 여자를 위한 회사는 없다
최명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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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엄마'가 된지 5년.
스물 셋, 대학 졸업 후 일을 시작했으니 직장인이 된지는 13년.
직장인들 누구나가 그렇듯 3년 주기로 퇴직을 꿈꾸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고, 아이를 낳은 뒤 그 주기가 더 짧아져 시시때때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직장생활 중인.

한 분야에서 십 년 이상 일했으니 어느정도 전문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비슷한 실수를 할 때마다 좌절하고, 우울해 하는 간혹 아주 나약한 자아가 나타나 심할 땐 자괴감이 빠지기도 함.

이 책은, 어쩐지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읽고 싶었다기 보다는 읽어야 할 것만 같았다.
자극 혹은 반대로 더 심한 자괴감일 들 수도 있을 거라는 걸 예상했다. 읽은 뒤에 드는 감정은 둘 다다.
어차피, 시작한 일. 어차피 그만두지도 못하는 일, 잘하기라도 해야지. 뭐라도 이뤄야지 하는 마음과, 애초에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이잖아. 저자처럼 될 수는 없잖아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그러나, 어느쪽이든 나쁘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충분히 공감되고, 도움이 될만한 조언들이다.

커리어라는 여정은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경쟁을 통해서만 확실해진다. 그 경쟁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결혼을 한 것도, 엄마가 된 것도, 직장인이 된 것도,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어찌되었든 내 선택이 80%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유지해나가는 것 역시 내 몫이지 않을까.
좀 더 편하면 좋겠고, 좀 더 자유로우면 좋겠고, 일과 육아를 다 잘해내고 싶은 건 직장맘 모두의 소망일테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생각해보니,
아이가 태어난 이후 눈치를 보면서도 아이를 핑계로 행사나 야근에서 예외를 자처한 적이 종종 있었다. 다행이도 조직의 분위기가 '그러니 애 엄마들은 안돼'하지는 않아서 나름 많이 배려 받았다. 물론 앞선 여자 직원(선배)들의 도움도 컸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여자들에 비해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환경이 문제일까, 내가 문제일까. 이건 늘 하는 고민이고 결론은 언제나 쉽제 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럼 뭘까.
아이보다 일에서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일은 그냥 현상유지한 채로 아이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적어도 앞으로 십 년은 더 직장맘으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것.

뭔가, 노선을 확실히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
이 책은 '꿈'을 꾸라는 식의 조언이 아니라 '조직'에서 잘 살아남는 법에 대한 실전 조언인 셈이었다.

핵심은, 내가 일하는 이유가 자아실현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임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나 사실을 회사에서 버티게 만드는 기제로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 아무리 억울하고 괴로워도 버텨야 한다. 아무리 비질을 해도 쓸리지 않는 젖은 낙엽처럼 말이다. 마음이 약해질 때면 상황을 따지고 이해하려 하지 마라. 그저 이 순간을 넘기고 버텨보자고 스스로에게 타일러보라. 어쨌든 경기장에 남아 있어야 볼이라도 차볼 것 아닌가. p31

'아무리 억울하고 괴로워 버텨야 한다' 이 말이 마음에 와 꽂힌다. 내가 일하는 이유가 그래, 자아실현같은 거창한 이유따위가 아니었듯 현실적으로 그만둘 수 없는 상황임을 우울해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 가장 내게 현실적인 조언인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 책의 다음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제 알았으니 이렇게 행동해보자! 마음 먹게 한.

누구나 일은 망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은 망치면 안 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자신을 다소 뻔뻔하게 보호하려는 노력인지 모른다. ... 감정과잉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라. 평정심을 갖고 냉정해지는 것,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하는 데 꼭 필요한 태도다. p92

나는 겁이 많고, 자주 두려움에 빠지고, 걱정도 많다. 변하려고 노력하지만 성격은, 기질은 좀 처럼 쉽게 변하지 않음을 깨닫고 자주 절망한다. 특히, 내 스스로에게 실망 할 땐 겉잡을 수 없이 감정이 바닥을 쳐 자주 도망치고 싶어진다. 이게 나다. '내'가 '나'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아주 조금 절망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일을 겪는 것이 직장 생활이고, 우리의 삶이다. 얼마나 중심을 잘 잡고 대처하느냐가 얼마나 똑똑하고 많이 아느냐보다 중요할 수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은 진리다. "저에게 더 똑똑한 머리와 기발한 아이디어를 주옵소서"가 아니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답게 견딜 수 있는 철갑 멘탈을 허락해주소서"라고 기도할 일이다. p1047

조직 내에서 같은 또래의 다른 여직원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녀 역시 워킹맘이고 일한 년수도 비슷한데 어쩐지 늘 나보다 여유있어 보였다. 뭔가 당당한 듯도 보였다. 물론 한 발 떨어져 보았기 때문일거다. 매일같이 야근하며,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보려 그녀 역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다음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타인과 비교하는 일만큼 '나'의 감정을 소비하는 일이 없음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중심을 잘 잡고 서면 된다는 걸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때문에 종종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나처럼 지난 뒤에 후회하지 말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등감을 인정하라. 그리고 그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나아가 적극적으로 브랜딩하라. 열등감에 이름을 붙여주고, 역할도 주고,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지도 수시로 되새겨라. 어쩌면 그 열등감 때문에 오늘날 회사에 다니고, 돈도 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감사할 일이다. 결핍을 알았기에 나아지고 싶어 노력했던 결과가 오늘이므로 열등감은 고마운 존재다. 어느 날 오랫동안 당신을 괴롭혀온 열등감은 자신감이라는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p137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아주 완벽한(내 기준에서) 조언을 찾았다.
어쩌면 이 말이야 말로, 갈팡질팡하는 워킹맘들에게 딱 들어맞는 조언이 아닐까 싶다.

일과 삶의 밸런스? 성공하고 싶다면, 일을 선택했다면 그런 밸런스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둘 다 어중간하게 하다가 내팽개치거나 나가떨어지는 건 이런 헛된 욕심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나 자신도 행복하지 않다. 그 보다는 일과 삶의 융합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일이 삶이 되고, 삶이 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밸런스가 개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 삶에 일이 제대로 융합되지 못하도 있다고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이 중요하고, 일을 통해 무언가를 증명해 보이고 싶다면, 일 중심으로 삶을 융합시켜야 한다. 일을 위해 충전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 직장 생활을 잘하기 위해 가족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효율적으로 채워주고, 신경 쓰고, 일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잘 지내며, 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배워야 한다. "내 개인의 삶이 거의 없어요"라는 하소연을 하기 전에 개인의 삶이 없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 기준을 분명히 세워라.
소중한 가정,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양육. 그 중요한 것을 뒤로하고 선택한 직장생활이라면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의 출발점은 일과 삶의 밸런스라는 막연한 기대와 환상이 아니다. 그보다 일 중심으로 내 삶을 디자인하고 나머지를 융합시켜 최대한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유일한 밸런스다. p23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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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기다려 봐 - 2016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비룡소의 그림동화 237
케빈 헹크스 글.그림, 문혜진 옮김 / 비룡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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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답이지만 울컥, 하고 말았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난 뒤
"윤인 뭘 기다려~?" 하고 물으니 아이의 대답
", 엄마가 학교에서 일찍 오길 기다리지~"

그럴 땐 그저 꼬옥~ 안아 주는 수 밖에.

2106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조금만 기다려봐>는 아이와 대화하면서 읽기 좋은 책이었다.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그림의 색감이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듯 했다.

점박이 올빼미와 우산 쓴 꼬마돼지, 연을 든 아기 곰, 썰매 탄 강아지, 별 토키, 다섯 친구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날 얼룩 고양이가 찾아와 새로운 친구가 되었다.
친구들이 기다리는 게 무얼까. 그 친구들이 기다리는 것들은 언제쯤 와 주었을까. 그림을 보면서 하나하나 아이와 이야기 하는 게 재미있었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기다리라고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이 책은 아이에게 기다림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이는 지루해 하지 않고, 어려워하지 않고 책 속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를 받아들여 주었다.

기다리면 꼭 온다고, 예윤이가 기다려주면 엄마는 언제든 예윤이에게 온다고 말하는 순간 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아이는 아마, 친구들이 모두 돌아 간 어린이집에 혼자 남아서 꼭 온다는 엄마를 이제는 조금 편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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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있으시죠? - 김제동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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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떠나서 우리, 서로의 상처와 두려움을 함께 치유해나갈 수 있고, 우리 각자가 그런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약한 점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실제로는 훨씬 더 강해진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한번쯤 마음에 새겨보면 굉장히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더라고요.
여러분, 가끔 마음이 약해져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드러내고 활짝 웃으면서 오늘 하루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p252-253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결국, '우리모두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 그 바람이 이 사람 김제동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싶다.
나만 행복한 거 말고, 나도 너도 행복하고, 옆집 아이도 행복하고, 윗집 할머니도 길 건너 슈퍼 아줌마도 모두 공평하게 행복한 사회를 바라는 사람. 그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으로, 위로로 따뜻하게 감싸주는 고맙고 고마운 사람.

저는 사람들이 웃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제 인생 목표는 모두가 함께 웃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 웃을 수 없는 분들, 공정하지 못하고 불합리한 사회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도 웃음을 드리고 싶어요.p6


"살면서 김제동씨에게 고마운 일이 많았어요.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을 거에요." 라고 어느 택시기사님이 하신 말씀이 굉장히 고맙고 울컥했다는 사람.

우린 그 말을 수없이 하고 또 하고 있다. 참 고마운 사람. 어두운 곳, 힘든 곳, 아픈 곳, 이곳저곳에 닿는 희망의 목소리 만으로도 사람들은 위로받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냥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책 속에서도 마이크를 잡고 웃으며 그가 전하는 말들이 그대로 전달 되는 듯 해서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책은 선물하기 힘든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각자의 취향이 있기 때문에 내가 좋다고 무작정 권하기 어려운 느낌때문에. 그럼에도 이 책은 누군가에게 꼭 선물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한 마디 위로는 필요하니까. 누구에게나 따뜻한 공감은 중요하니까.



- 여러분도 가끔 그러는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앞으로도 가끔 실수를 저지르고, 가끔 수치스러운 일도 하면서 살겠지만 될 수 있으면 저를 그렇게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고 용서해주는 일도 자주 하려고 합니다. 실수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 테니까요. p109

- 내 마음 안에 게스트하우스가 하나 있는데, 아침에는 행복이 와서 놀다 가고 저녁에는 우울함이 와서 놀다 간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 같아요. 우울하거나 충동적인 감정이 들어오더라도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 머물다 가는 것이니까, 머물 수 있을 때까지 머물다 가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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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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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소설인데 소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간혹 있는데 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딱 그랬다.

    

'김지영. 흔한 이름이다. 누구나 주위에 지영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1982년에 태어난 여성들의 이름 중 가장 많은 것이 김지영이란다. 82년생이나 이제 30대 중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제목은 이 소설의 목적을 잘 함축하고 있다. 그 목적은 물론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그리는 것이다'(작품해설 '우리모두의 김지영' 김고연주) 중

내 이름은 '은영'이다. 언니의 이름은 '지영'
소설 속의 '나'의 이름은 '지영' 언니의 이름은 '은영'이다. 뭔가 재미있지 않은가.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의 보편적인 삶, 이라는 소설의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30대 중반, 아이 엄마, 나이가 비슷하니 겪어온 시대가, 사회가 비슷하고 삶의 방식이나 조건도 엇비슷하게 느껴져 읽는 내내 너무 흥미로웠다. 물론 소설속 '지영'의 가족보다 조금 더 가난했으며(후에 소설 속 지영의 가족은 풍요로워졌으나), 소설 속 '지영'의 가족들 보다 불화했음이 차이라면 차이였을 것이다. 보편적인 삶이라는 말이 주는 평범함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릴 땐 미처 알지 못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특별'한 삶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다 '평범'하게 잘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은 김지영시와 정대현 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김지영씨의 인생을 거칠게 정리한 내용이다(남편 정대현은 아내 김지영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나자 먼저 정신상담을 받는다. 소설은 상담을 토대로 의사가 김지영시의 인생을 거질게 정리했다고 표현한다).
지영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난 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지영은 갑자기 장모가 되기도 하고, 대현의 첫사랑이 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의사가 직접 만나보니 산후우울증에서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진 매우 전형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담이 이어질수록 의사는 확신할 수 없었다.

김지영 씨는 당장의 고통과 부당함을 호소하지도 않고,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계속 되새기지도 않는 편이다. 먼저 쉽게 입을 열지는 않지만 한번 물꼬가 트이면 깊은 곳의 이야기까지 스스로 끄집어내 담담하고 조리 있게 잘 말한다. 김지영 씨가 선택해서 내 앞에 펼쳐 놓은 인생의 장면 장면들을 들여다보며 나는 내 진단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세상이 있다는 뜻이다. p170

82년생 김지영씨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직장생활을 거치면서 되도록이면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듣는 쪽에, 참는 쪽에 가까웠다. 그건 그 시기를 거쳐간 대부분의 여학생이, 여성직원이 그래왔던 일이다. '내'가 참는 편이, 견디는 편이 사는데 더 나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절이기도 했고. 김지영씨는 억울해도 참았고 견뎠다. 그러다가 결국 터져버렸다.

선배는 평소와 똑같이 다정하고 차분히 물었다. 껌이 무슨 잠을 자겠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김지영씨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p94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오히려 그 순간들이었다. 김지영씨는 충분히 건강하다고, 약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가족 계획은 처음 보는 친척들이 아니라 남편과 둘이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p134

그럼 너도 계속 구역질하고,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못하면서, 피곤하고, 졸립고, 여기저기 아픈 상태로 지내든지. 겉으로 말하지 못했다. p138


여성으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소설 속 에피소드들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 공감되고 이해된다. 그래서 소설은 마치 나의,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술술 잘 넘어간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공감 돼. 맞아맞아. 그런데?

희망이 있는거야? 라고 묻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김지영씨는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여전히 간혹 다른 사람으로 빙의해 하고 싶은 말을 툭툭 내뱉는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타인의 목소리로 말한다.  그것 역시 아쉽지만 현실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 낼 수 없는 사회. 용기를 내 낸다고 해도 묵살당하거나 무시당해 오히려 더 절망하게 되는 사회에서 얼마나 더 묵묵히 참고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오늘도  여기저기에서 흩어져 힘겹게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김지영'씨에게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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