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 Z - 여자를 위한 회사는 없다
최명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일하는 엄마'가 된지 5년.
스물 셋, 대학 졸업 후 일을 시작했으니 직장인이 된지는 13년.
직장인들 누구나가 그렇듯 3년 주기로 퇴직을 꿈꾸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고, 아이를 낳은 뒤 그 주기가 더 짧아져 시시때때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직장생활 중인.

한 분야에서 십 년 이상 일했으니 어느정도 전문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비슷한 실수를 할 때마다 좌절하고, 우울해 하는 간혹 아주 나약한 자아가 나타나 심할 땐 자괴감이 빠지기도 함.

이 책은, 어쩐지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읽고 싶었다기 보다는 읽어야 할 것만 같았다.
자극 혹은 반대로 더 심한 자괴감일 들 수도 있을 거라는 걸 예상했다. 읽은 뒤에 드는 감정은 둘 다다.
어차피, 시작한 일. 어차피 그만두지도 못하는 일, 잘하기라도 해야지. 뭐라도 이뤄야지 하는 마음과, 애초에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이잖아. 저자처럼 될 수는 없잖아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그러나, 어느쪽이든 나쁘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충분히 공감되고, 도움이 될만한 조언들이다.

커리어라는 여정은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경쟁을 통해서만 확실해진다. 그 경쟁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결혼을 한 것도, 엄마가 된 것도, 직장인이 된 것도,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어찌되었든 내 선택이 80%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유지해나가는 것 역시 내 몫이지 않을까.
좀 더 편하면 좋겠고, 좀 더 자유로우면 좋겠고, 일과 육아를 다 잘해내고 싶은 건 직장맘 모두의 소망일테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생각해보니,
아이가 태어난 이후 눈치를 보면서도 아이를 핑계로 행사나 야근에서 예외를 자처한 적이 종종 있었다. 다행이도 조직의 분위기가 '그러니 애 엄마들은 안돼'하지는 않아서 나름 많이 배려 받았다. 물론 앞선 여자 직원(선배)들의 도움도 컸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여자들에 비해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환경이 문제일까, 내가 문제일까. 이건 늘 하는 고민이고 결론은 언제나 쉽제 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럼 뭘까.
아이보다 일에서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일은 그냥 현상유지한 채로 아이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적어도 앞으로 십 년은 더 직장맘으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것.

뭔가, 노선을 확실히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
이 책은 '꿈'을 꾸라는 식의 조언이 아니라 '조직'에서 잘 살아남는 법에 대한 실전 조언인 셈이었다.

핵심은, 내가 일하는 이유가 자아실현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임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나 사실을 회사에서 버티게 만드는 기제로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 아무리 억울하고 괴로워도 버텨야 한다. 아무리 비질을 해도 쓸리지 않는 젖은 낙엽처럼 말이다. 마음이 약해질 때면 상황을 따지고 이해하려 하지 마라. 그저 이 순간을 넘기고 버텨보자고 스스로에게 타일러보라. 어쨌든 경기장에 남아 있어야 볼이라도 차볼 것 아닌가. p31

'아무리 억울하고 괴로워 버텨야 한다' 이 말이 마음에 와 꽂힌다. 내가 일하는 이유가 그래, 자아실현같은 거창한 이유따위가 아니었듯 현실적으로 그만둘 수 없는 상황임을 우울해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 가장 내게 현실적인 조언인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 책의 다음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제 알았으니 이렇게 행동해보자! 마음 먹게 한.

누구나 일은 망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은 망치면 안 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자신을 다소 뻔뻔하게 보호하려는 노력인지 모른다. ... 감정과잉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라. 평정심을 갖고 냉정해지는 것,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하는 데 꼭 필요한 태도다. p92

나는 겁이 많고, 자주 두려움에 빠지고, 걱정도 많다. 변하려고 노력하지만 성격은, 기질은 좀 처럼 쉽게 변하지 않음을 깨닫고 자주 절망한다. 특히, 내 스스로에게 실망 할 땐 겉잡을 수 없이 감정이 바닥을 쳐 자주 도망치고 싶어진다. 이게 나다. '내'가 '나'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아주 조금 절망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일을 겪는 것이 직장 생활이고, 우리의 삶이다. 얼마나 중심을 잘 잡고 대처하느냐가 얼마나 똑똑하고 많이 아느냐보다 중요할 수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은 진리다. "저에게 더 똑똑한 머리와 기발한 아이디어를 주옵소서"가 아니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답게 견딜 수 있는 철갑 멘탈을 허락해주소서"라고 기도할 일이다. p1047

조직 내에서 같은 또래의 다른 여직원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녀 역시 워킹맘이고 일한 년수도 비슷한데 어쩐지 늘 나보다 여유있어 보였다. 뭔가 당당한 듯도 보였다. 물론 한 발 떨어져 보았기 때문일거다. 매일같이 야근하며,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보려 그녀 역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다음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타인과 비교하는 일만큼 '나'의 감정을 소비하는 일이 없음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중심을 잘 잡고 서면 된다는 걸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때문에 종종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나처럼 지난 뒤에 후회하지 말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등감을 인정하라. 그리고 그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나아가 적극적으로 브랜딩하라. 열등감에 이름을 붙여주고, 역할도 주고,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지도 수시로 되새겨라. 어쩌면 그 열등감 때문에 오늘날 회사에 다니고, 돈도 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감사할 일이다. 결핍을 알았기에 나아지고 싶어 노력했던 결과가 오늘이므로 열등감은 고마운 존재다. 어느 날 오랫동안 당신을 괴롭혀온 열등감은 자신감이라는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p137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아주 완벽한(내 기준에서) 조언을 찾았다.
어쩌면 이 말이야 말로, 갈팡질팡하는 워킹맘들에게 딱 들어맞는 조언이 아닐까 싶다.

일과 삶의 밸런스? 성공하고 싶다면, 일을 선택했다면 그런 밸런스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둘 다 어중간하게 하다가 내팽개치거나 나가떨어지는 건 이런 헛된 욕심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나 자신도 행복하지 않다. 그 보다는 일과 삶의 융합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일이 삶이 되고, 삶이 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밸런스가 개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 삶에 일이 제대로 융합되지 못하도 있다고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이 중요하고, 일을 통해 무언가를 증명해 보이고 싶다면, 일 중심으로 삶을 융합시켜야 한다. 일을 위해 충전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 직장 생활을 잘하기 위해 가족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효율적으로 채워주고, 신경 쓰고, 일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잘 지내며, 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배워야 한다. "내 개인의 삶이 거의 없어요"라는 하소연을 하기 전에 개인의 삶이 없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 기준을 분명히 세워라.
소중한 가정,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양육. 그 중요한 것을 뒤로하고 선택한 직장생활이라면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의 출발점은 일과 삶의 밸런스라는 막연한 기대와 환상이 아니다. 그보다 일 중심으로 내 삶을 디자인하고 나머지를 융합시켜 최대한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유일한 밸런스다. p23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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