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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소설은 소설인데 소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간혹 있는데 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딱 그랬다.
'김지영. 흔한 이름이다. 누구나 주위에 지영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1982년에 태어난 여성들의 이름 중 가장 많은 것이 김지영이란다. 82년생이나 이제 30대 중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제목은 이 소설의 목적을 잘 함축하고 있다. 그 목적은 물론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그리는 것이다'(작품해설 '우리모두의 김지영' 김고연주) 중
내 이름은 '은영'이다. 언니의 이름은 '지영'
소설 속의 '나'의 이름은 '지영' 언니의 이름은 '은영'이다. 뭔가 재미있지 않은가.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의 보편적인 삶, 이라는 소설의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30대 중반, 아이 엄마, 나이가 비슷하니 겪어온 시대가, 사회가 비슷하고 삶의 방식이나 조건도 엇비슷하게 느껴져 읽는 내내 너무 흥미로웠다. 물론 소설속 '지영'의 가족보다 조금 더 가난했으며(후에 소설 속 지영의 가족은 풍요로워졌으나), 소설 속 '지영'의 가족들 보다 불화했음이 차이라면 차이였을 것이다. 보편적인 삶이라는 말이 주는 평범함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릴 땐 미처 알지 못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특별'한 삶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다 '평범'하게 잘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은 김지영시와 정대현 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김지영씨의 인생을 거칠게 정리한 내용이다(남편 정대현은 아내 김지영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나자 먼저 정신상담을 받는다. 소설은 상담을 토대로 의사가 김지영시의 인생을 거질게 정리했다고 표현한다).
지영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난 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지영은 갑자기 장모가 되기도 하고, 대현의 첫사랑이 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의사가 직접 만나보니 산후우울증에서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진 매우 전형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담이 이어질수록 의사는 확신할 수 없었다.
김지영 씨는 당장의 고통과 부당함을 호소하지도 않고,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계속 되새기지도 않는 편이다. 먼저 쉽게 입을 열지는 않지만 한번 물꼬가 트이면 깊은 곳의 이야기까지 스스로 끄집어내 담담하고 조리 있게 잘 말한다. 김지영 씨가 선택해서 내 앞에 펼쳐 놓은 인생의 장면 장면들을 들여다보며 나는 내 진단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세상이 있다는 뜻이다. p170
82년생 김지영씨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직장생활을 거치면서 되도록이면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듣는 쪽에, 참는 쪽에 가까웠다. 그건 그 시기를 거쳐간 대부분의 여학생이, 여성직원이 그래왔던 일이다. '내'가 참는 편이, 견디는 편이 사는데 더 나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절이기도 했고. 김지영씨는 억울해도 참았고 견뎠다. 그러다가 결국 터져버렸다.
선배는 평소와 똑같이 다정하고 차분히 물었다. 껌이 무슨 잠을 자겠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김지영씨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p94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오히려 그 순간들이었다. 김지영씨는 충분히 건강하다고, 약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가족 계획은 처음 보는 친척들이 아니라 남편과 둘이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p134
그럼 너도 계속 구역질하고,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못하면서, 피곤하고, 졸립고, 여기저기 아픈 상태로 지내든지. 겉으로 말하지 못했다. p138
여성으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소설 속 에피소드들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 공감되고 이해된다. 그래서 소설은 마치 나의,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술술 잘 넘어간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공감 돼. 맞아맞아. 그런데?
희망이 있는거야? 라고 묻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김지영씨는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여전히 간혹 다른 사람으로 빙의해 하고 싶은 말을 툭툭 내뱉는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타인의 목소리로 말한다. 그것 역시 아쉽지만 현실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 낼 수 없는 사회. 용기를 내 낸다고 해도 묵살당하거나 무시당해 오히려 더 절망하게 되는 사회에서 얼마나 더 묵묵히 참고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오늘도 여기저기에서 흩어져 힘겹게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김지영'씨에게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