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류바
박사랑 지음 / 창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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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딸아이는 스크류바를 애정 한다.
"엄마! 오늘 후식은 스크류바야. 꼭, 알았지?" 이건 아이가 밥 먹기 전 꼭 건네는 말.
나 역시, 오래전부터 빠알갛고, 달콤한, 모양까지 이쁜 그 아이스크림을 애정하고 있었다.
그런, 소설이 나타났다.

빠알갛고 투명한. 붉다는 표현보다 빨갛다고 자꾸 이야기하고 싶은. 소설.
『스크류바』

 처음엔 요즘 나오는 소설책들과 달리 표지가 너무 밋밋한 거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보니,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보니, 스크류바에 딱 어울리는 표지이지 싶다.
단언컨대, 이 소설 읽고 나면 분명히 스크류바를 먹고 싶어질 것이다. 먹게 될 것이다(아, 이거 너무 아이스크림 홍보 같은가 ;;)

소설로 돌아와서,
소설집에는 2012년 등단작인 <이야기속으로>,<어제의 콘스탄체>와 함께 표제작인 <스크류바>를 포함해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예전엔 단편집을 펴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차례대로 정독을 했다.
하나라도 놓칠까 긴장하고 집중하면서(아마 소설을 공부하던 습관 때문이었던 듯).
그러다 언제부턴가 소설을 소설로 대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느슨하게, 마음을 풀어놓고 대하기 시작했다.
때론 제목이 제일 마음에 드는 소설을 먼저 읽었고, 때론 맨 마지막의 작가의 말을 먼저 읽었고, 때론 마음대로 휘릭 펼치다 눈에 띄는 소설을 먼저 읽기도 했다.
작품집에 실린 열 편의 소설 <#권태_이상> , <높이에의 강요>, <스크류바>, <바람의 책>, <이야기 속으로>, <어제의 콘스탄체>, <사자의 침대>, <울음터>, <하우스>, <히어로 열전> 중, 표제작 <스크류바>부터 읽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첫 문장이 있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스크류바>,<하우스>,<어제의 콘스탄체> 세 편의 소설이 가장 끌렸고, 마음에 들었다.

여러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소설집을 읽다 보면 작가의 개인적인 습관 같은 걸 눈치채게 되기도 하고(자주 쓰는 단어라든가, 접속사라든가 하는), 작가의 성향(반복되는 주제나 분위기)을 알게 되기도 한다. 가끔은 소설마다 큰 편차를 보이거나 분위기가 너무 달라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이 소설집 속에 실려 있는 열 편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이 작가, 굉장히 성실할 것 같아'였다. 한 편 한 편 굉장히 정석대로 써 내려갔을 것 같은 느낌.
소설 작법을 오래도록 열심히 공부했을 것 같은 느낌.

<스크류바>
아이와 버스를 타고 가다가 깜박 졸던 사이, 눈을 떠보니 옆자리에 앉아있던 아이가 보이지 않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버스에서 내려 실종신고를 하고, 아이가 내렸을만한 버스정류장을 되짚어가면서 나는 오래전 기억들과, 어릴 적의 경험들, 지금의 자신까지 차근히 서술해 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혼 6년 만에 생긴 아이였다. 교복을 입은 아이가 스크류바 먹으며 무심히 열쇠를 건네주던 허름한 여관에서 덜컥 들어선 아이. 잃어버린 아이를 찾으러 가면서 하필 간절하게 떠오른 스크류바.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 감추고 살았던 욕망이 한순간에 툭, 튀어나오는 순간 걷잡을 수 없어진 감정. 아이를 찾아 미친년처럼 거리를 헤매면서도 편의점 아이스크림 냉장고 안에서 스크류바를 집어 든 한 여자의 잃어버렸던(잃어버려야 했었던) 어떤 욕망에 대한 이야기.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실종아동찾기센터의 전화 이후 확, 터져버린 '나'의 감정을 따라가는 마지막 결말 부분이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인 듯.

 
  「무작정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열었다. 손은 잠시 망설이듯 허공에 떠 있었다. 더는 망설이면 안돼, 나는 스크류바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쪼그라들었던 심장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계속 뛰었다. 얼마쯤 뛰다 뒤를 보았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숨을 고르면서 골목길로 들어갔다. 도로에서 조금 떨어졌을 분인데도 큰길보다는 훨씬 조용했다. 골목길 구석에 앉아 스크류바를 뜯었다. 빨간 스크류바에 가루같이 흰 얼음이 붙어 있었다. 혀끝으로 그 얼음을 핥았다.
(중략)
어디선가 또다시 매미가 맹렬한 기세로 울어댔다. 이제 귀를 막을 힘조차 없었다. 매미 소리와 함께 흩어진 기억들이 내 주위를 감쌌다. 그녀의 전화와 남편의 전화, 배 속에서 찢겨진 아이와 버스에서 놓쳐버린 아이. 한낮의 지독한 햇볕과 스타벅스에서의 물 한잔. 모든 게 뒤엉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때, 녹은 스크류바가 발끝으로 톡, 떨어졌다. 분홍색 동그라미가 발끝에서 터지자 그리로 무언가 스멀스멀 모이는 기분이 들었다. 톡, 톡 퍼져나가는 분홍색 동그라미, 달콤하고 끈적한 그 흔적. 나는 발끝으로 감각을 집중했다. 마치 전기가 오른 것처럼 발끝이 찌릿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점차 다리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온 정신을 모아 그 감각만을 따라갔다. 무릎을 지나 사타구니에 그 찌릿함이 전달되자 몸에 있는 모든 혈관에 빠른 속도로 피가 돌기 시작했다.
(중략)
녹아가는 스크류바를 한입 베어 먹었다. 베어문 것보다 손으로 흘러내리는 게 더 많았다. 톡, 톡 바닥에 분홍색 동그라미가 박혔다. 나는 스크류바가 잔뜩 묻은 손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뒤 그 손으로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 나를 휩싸고 돌았다. 그것은 아주 차가웠지만 안으로 갈수록 점점 뜨거워졌다. 목으로 치밀어오는 기운에 목을 뒤로 꺾었다. 참지 않고 숨을 뱉었다. 차가운 손이 점점 더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알 수 없는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끝으로 세상은 온통 고요 속에 잠겼다. 톡, 톡  분홍색 동그라마가 내 안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p79-80


전생을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은 <어제의 콘스탄체>.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남자가 자신을 콘스탄체라고 불러세운다. 그는 자신이 전생에 모차르트라고 말하는 남자. 여자는 잃어버린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남자를 따라 우연히 전생을 보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을 프리드리히 니체, 버지니아 울프, 갈리레오 갈릴레이, 이사도라 던컨,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 믿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몇 년째 방에 틀어박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쓰고, 구조조정을 당하고 희망 없는 이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어제'의 세계에 갇혀 있다.

  「우리는 내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콘스탄체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우리를 만난 당신의 어제는 어땠습니까? p149

<오늘도 집에는 엄마가 없었다>로 시작해 <오늘은 엄마가 집에 있을 거야>로 끝나는 소설 <하우스>.
<하우스>는 소위 말하는 도박장이다.
엄마는 여섯 살 아이를 재워두고 주택가 지하에 있는 <하우스>에 드나들고 있다.
나는 학교가 마치면 여섯 살 동생을 데리고 엄마를 찾아 하우스를 기웃거린다. 아빠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제발 엄마가 집에 왔으면 하는 바람.
나 역시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여자 아이지만 동생 걱정에, 엄마 걱정에, 엄마 아빠가 싸울까 봐 불안해하며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을 뒤로하고 무작정 집으로 돌아온다.
어떤 날엔 아빠에 의해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들어 오는 엄마. 그런 날이면 동생을 끌어안고 두려운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왜 그렇게 마음이 먹먹해지고 아팠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가 마치 직접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다가가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마지막 문장 <오늘은 엄마가 집에 있을 거야>는 아이의 간절한 바람.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을 바람.

언급하지 않은 소설들도 저마다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아홉 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스물아홉에 등단했다는 작가.  등단 이후 6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첫 소설집.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 기억들은 언제나 나를 쓰게 했다."라고.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 "내 소설은 모두 내 사랑의 흔적이다."라고.
아마도 앞으로 작가가 쓰게 될 많은 이야기들은 작가의 기억임과 동시에 우리들의 기억이지 않을까. 작가가 가지고 다닐 사랑의 흔적을 또 언제가 좋은 글을 통해 만나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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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굴데굴 축구 친구 마음이 커지는 그림책 3
필립 드 케메테 글.그림, 김주경 옮김 / 을파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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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얼른 읽자아아~ 축구 친구, 응? 응?"
침대 옆에 늘 두 세권의 책을 놓아두고 잠들기 전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는데,
책을 골라서 두 세권씩 올려놓는 건 내 몫.
그 중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건 아이 몫.

알았다고 읽자고, 책을 집어들어면서 보니 아이 눈은 이미 반쯤 감긴 상태 ;;
졸린데, 졸린거 같은데 기어이 안 졸리니 꼭 읽고 자야겠다는 아이.
읽다가 잠들면 또 읽지 뭐... 하고 책을 펼쳤는데 아이 눈이 다시 초롱초롱 해졌다.

유니폼팀과 티셔츠팀의 팀원들이 쭈욱~ 나와 있는 사진이 이미 아이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엄마, 나도 축구 잘 하는데 그치?"
"맞아. 잘하지 완전~"

편견이라면 편견일 수도 있을텐데, 아이는 다른 여자아이들보다 운동영역에 보이는 관심이 좀 다른 듯 하다. 여자아아니까 운동을 좋하는게 이상해, 라기 보다는 좀 더 유난히 좋아하고 활동적이고 잘하고 싶어 한달까.
그래서인지 축구라는 이야기에 이미 이 책은 아이의 마음에 쏙~ 들어버린 듯.

 

 유니폼 팀 11명, 티셔츠 팀 11명
팀 이름에서 이미 예상할 수 있듯이 유니폼 팀은 유니폼이 있는 친구들
티셔츠 팀은 유니폼이 없는 친구들이다.

 

 생일날 유니폼을 선물받은 마스코트는 유니폼이 있는 친구들을 모아 팀을 만든다.
그리고, 유니폼이 없는 다른 팀 (티셔츠 팀)과 축구경기를 하기로 하는데......

 축구경기 전 날 비가 많이 내려 땅이 온통 질퍽질퍽
그래도, 경기는 예정되로 진행된다.
유니폼을 입은 친구들은 유니폼이 더러워질까봐 조심조심 뛰어다니고,
티쳐츠를 입은 친구들은 이리구르고 저리구르고 열심히 축구 경기에 임한다.

 

한참을 경기를 하다가 멈춰서서 보니,
진흙이 된 땅 때문에 유니폼을 입은 친구도, 티셔처를 입은 친구도
구분할 수 없게 되고,
모두 그냥 축구 경기를 즐긴 진흙 투성이의 친구들이 되어 있다.

 

 때마침 구경 온 아나벨르의 아빠가 친구들의 단체사진을 찍어 주셨다.
사진 속의 친구들은 누가 유니폼 팀인지, 티셔츠 팀인지 상관없이 이리저리 섞여
모두 즐겁고 신나는 표정.

즐겁게 읽고 난 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명확했다.
유니폼이 있다고해서 우쭐할 필요도, 유니폼이 없다고해서 기가 죽을 필요도 없다는 것.
그게 유니폼이 아니라 장난감이라고 해도, 멋진 공주 원피스라고 해도 말이다.
중요한 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마음.
너도 나도 친구라는 마음.
근데, 생각해보면 어른이 되면서 나 역시도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상대적 박탈감에 절망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것 역시도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라는 걸 아이에게 알게해 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아이만큼, 아이의 보폭에 맞춰 함께 자라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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쏠쏘라의 초간단 손그림 일러스트
박현진 지음 / 소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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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 줄 몰랐다.
늘 못그려 나는.. 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잘 그리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객관적으로) 못 그린다 ㅎㅎ

그래도, 시도해보자 싶어서 검색하다 이 책 <쏠소라의 초간단 손그림 일러스트>라는 책을 찾게 됐다.
당연히 '초간단'이라는 말에 끌렸다.
나 처럼 완전 초보에 곰손도 희망을 갖게 해주는 말이 아닌가.

 

 전문가들에게 '초간단'이라는 말이 나처럼 완전 초보에게는 '그래도 안 간단함'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하나씩 따라그려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선그리기부터 도형 등 따라 그릴 수 있는 페이지들이 있어서 좋았다.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그려보고 싶어서 매일 쓰는 다이어리에 그림일기를 쓰기로 했다.
내 다이어리는 <북로그라이프>라는 6개월 단위로 쓰는 다이어리인데, Official Work와, Private Work로 나누어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어 있다. 하루에 한페이지씩 쓸 수 있어서 일정을 적고도 공간이 남았는데 그 공간을 활용해 그려보기로 했다.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이 책을 펴 놓고 따라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일기도 간단하게 적으니 다이어리를 펼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하루가 지나도 아직은 어설프기만 하지만, 매일 조금씩 그리다보니 우선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림은 못 그려' 했던 부정적인 마음이 '음.. 조금씩 나아지겠지. 우선 열심히 따라그리다보면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릴 수 있겠지' 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것만으로 이 책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던 셈이다.

쉽게 따라그릴 수 있게 기본도형으로 그릴 수 있는 동물, 과일, 식물, 사람얼굴, 색연필로 스케치 하는 방법들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초보자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듯. 지은이 쏠소라님의 블로그에도 다양한 그림들이 많이 올려져 있어서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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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5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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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겐 없는 특별한 능력이 내게 생긴다면, 난 뭘 하고 싶을까.
이를테면 무엇보다 강력한 손톱을 갖게 된다거나, 엘리베이터를 손 대지 않고도 자유자재로 움직이거나 멈추게 할 수 있게 된다거나,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눈 앞에 붉게 변한다거나 하는 능력이 있다면 말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재인, 재욱, 재훈 세 남매에게 우연찮게 이런 특별한 능력이 생기고 말았다.
그들은 어느날 보낸이를 알 수 없는 소포를 받는다.

재인은 어떤 강력한 손톱도 문제 없이 깎을 수 있는 손톱깍이를, 재욱은 강력한 레이저포인터를, 재훈은 열쇠목걸이를. 각각의 소포 안엔 미색 쪽지가 한장씩 들었었다. 각각 Save 1, Save 2, Save 3라고 적혀 있었다.
그들이 소포를 받은 장소는 역시 모두 다르다.
재인은 일하고 있는 대전의 한 연구소에서, 재욱은 파견근무로 떠난 아랍 사막의 플랜트 공사장에서, 재훈은 엄마의 일방적인 강요 의해 떠난 조지아의 염소 농장에서.

그들에게 왜 그런 특별한 능력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그 능력으로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 본인들도 알 수 없는 누군가를. 
                

정세랑의 소설집을 세 번째 읽는다.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피플>, 그리고 이번 책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한 고등학교에서 일하게 된 보건교사 안은영의 특별한 능력이 보여지고, <피프티 피플>에서는 자그마치 50여명의 등장인물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재인, 재욱, 재훈>에서는 세 명의 인물이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물론 소설의 발간 순서가 위의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앞서 읽은 두 권의 소설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역시 재미있구나.

다르게 표현할 수 없어 그대로 표현해 보자면 정세랑의 소설은 재미있다. 가독성이 끝내준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볍다는 느낌과는 조금 다른 재미있음이다. 그래서 더 이 작가가 좋아진다.

분량이 짧은 소설이기도 하지만, 중간에 책을 덮을 수 없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말았다.
작가의 말까지 모두. 소설만큼이나 작가의 말도 흥미로웠다.

더 이상의 소설 이야기는 이 책을 읽을 다음 독자를 위해 그만해야겠다.
재미있는 소설, 즐겁게 읽을 이야기를 찾는 독자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권한다.

아,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내게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면 난 뭘 하고 싶을까'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자면, 물론 절대 그런 일따위 내 인생에서 일어날리 만무하겠지만, 그럼에도 굳이 상상해 본다면,
누구를 구하는 일에 그 능력을 쓰지는 않을 것 같다(이 소설에선 아마도 누군가를 꼭 구해야 한다고 그 능력들을 준 듯 하지만).


- 울음을 그칠 기미가 없는 엄마를 내려주고 대전으로 돌아가며 재인은 생각했다. 이십 대 내내 가장 힘들게 배운 것은 불안을 숨기는 법이었다고 말이다. 불안을 들키면 사람들이 도망간다. 불안하다고 해서 사방팔방 자기 불안을 던져서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없다. 가방 안에서도 쏟아지지 않는 텀블러처럼 꽉 다물어야 한다. 삼십 대 초입의 재인은 자주 마음속의 잠금장치들을 확인했다.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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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야. -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 생일시 모음
곽수인 외 33명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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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인, 구태민, 권지혜, 길채원, 김건우, 김동영, 김수정, 김승태, 김승환, 김제훈, 김주아
김혜선, 김호연, 박성호, 박정슬, 선우진, 심장영, 안주현, 안중근, 양온유, 오경미, 유예은
이건계, 이단비, 이영만, 이지민, 이창현, 이태민, 임경빈, 전하영, 정다혜, 정차웅, 최성호
홍순영

아이들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본다.
한 명 한 명 소중하게.

더 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이 책에 실린 아이들의 이름조차 이제 처음 불러준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래도 그 말밖에 할 수 없어서 또 미안해.

이 책 《엄마, 나야》에 실린 서른 네 편의 시는 서른 네 명의 아이들이 말하고 시인들이 받아 적은 아이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이 지은 시다.
이 책을 읽을 때, 여섯 살 된 나의 아이는 내 옆에서 종알거리며 '엄마, 엄마'를 쉬지 않고 불러댔다.
아이를 보다가, 시들을 읽다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울컥,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이가 부르는 '엄마'라는 소리가 얼마나 애틋하고 고마운지 나는 다시 한 번 느끼고 만다.
아이가 짜증내고, 보채고, 울음을 터트리는 일이, 매일같이 사소한 일로 다투고 매일같이 화해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느낀다.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며 안아주는 아이의 품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이를 안아줄 수 있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지, 영문도 모르는 아이를 안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하고 수없이 말해 주었다.

그리고 또 다시 미안해.

아이들의 생일파티에서 가족, 친구들이 모여 함께 이 시들을 낭송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얼마나 눈물을 흘릴지, 그러다 아이와의 추억을 나누며 몇 번쯤은 웃기도 할테고, 다시 그리워서 서로 안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를 보니, 살아남은 아이들은 떠난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는 일이 죄송스럽고 어려워하지만, 남겨진 부모들은 친구들이 찾아와 아이와의 추억을 이야기해 주면 위로 받는다고 한다. 아마도 엄마지만, 아빠지만 몰랐던 나의 아이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옆에 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할 수 없는 아픔, 상상할 수 없는 그리움이다.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 것만 같다. 잊지 않고.

- 별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날에는
햇빛이 볼에 따끔따끔 부딪히는 날에는
달이 동그란 눈을 찡끗거리는 날에는
비가 부슬부슬 이마를 가만히 쓰다듬는 날에는
바람이 상쾌하게 코끝을 스쳐지나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내가 노는 시간이야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나는 잘 있어, 라는 신호야.
<그리운 목소리로 주아가 말하고, 시인 유현아가 받아 적다>

- 내가 잠시 다른 곳에 와 있다고 해서
우리의 깊은 사랑이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의 엄마가 보여주었으면 해.
엄마가 아픔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버텨줘서
이 특별한 생일을
아빠와 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기억해줬음 좋겠어.
보고 싶을 때 모두 모여서 마음을 만지면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을.
슬픔도 눈물도 다 녹아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으로
내가 곁에 있을 거라는 것을.
알지, 엄마.
엄마가 지금보다 더 더 더 건강해져야 한다는 것.
더 더 더 씩씩해져야 한다는 것.
<그리운 목소리로 채원이가 말하고, 시인 이영주가 받아 적다>

- 조금 울 수도 있겠지만
슬퍼서는 아닐 거야
기뻐서도 아닐 거야
충분해서,
충분해서 울게 될 거야
아빠
나 보고 싶어 뒤척일 수도 있겠지만
노래 불러요
부르고 나면
나 만난 것처럼
나 만진 것처럼
괜찮아질 거에요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따끔거리는 내 사람들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니까
괜찮을 거야
<그리운 목소리로 온유가 말하고, 시인 박연준이 받아 적다>

- 지금은 손에 닿지는 않는 곳에 있지만
서로 얼굴을 만질 수 없는 곳에 있지만
모두들 너무 걱정 마세요.
저는 하늘 높이 올라서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고 흙이 되어
여러분 곁에 있을게요.
늘 다니던 동네 슈퍼, 운동장, 학원 근처에서
생생하게 웃으며 안녕, 하고 인사할게요.
<그리운 목소리로 순영이가 말하고, 시안 신미나가 받아 적다>

- 엄마와 아빠와 누나와 친구들이 나를 기억해주는 동안 나는아직 살아 있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사랑하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바람으로 다가가고 별빛으로 반짝이며 있을게요.엄마가 제 가슴에 새겨준 문자처럼 사랑해요 많이많이 사랑해요.내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말
엄마, 아빠, 누나 사랑해요.
<그리운 목소리로 건계가 말하고, 시인 도종환이 받아 적다>

-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어마 마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그리운 목소리로 예은이가 말하고, 시인 진은영이 받아 적다>

적으면서 다시 읽고, 읽으면서 다시 울고, 울면서 다시 미안해 하고.
오래도록 이 아이들에게 미안한 이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그것 뿐이라서 또 미안하다고 말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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