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딸아이는 스크류바를 애정 한다. "엄마! 오늘 후식은 스크류바야. 꼭, 알았지?" 이건 아이가 밥 먹기 전 꼭 건네는 말. 나 역시, 오래전부터 빠알갛고, 달콤한, 모양까지 이쁜 그 아이스크림을 애정하고 있었다. 그런, 소설이 나타났다. 빠알갛고 투명한. 붉다는 표현보다 빨갛다고 자꾸 이야기하고 싶은. 소설. 『스크류바』
처음엔 요즘 나오는 소설책들과 달리 표지가 너무 밋밋한 거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보니,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보니, 스크류바에 딱 어울리는 표지이지 싶다. 단언컨대, 이 소설 읽고 나면 분명히 스크류바를 먹고 싶어질 것이다. 먹게 될 것이다(아, 이거 너무 아이스크림 홍보 같은가 ;;) 소설로 돌아와서, 소설집에는 2012년 등단작인 <이야기속으로>,<어제의 콘스탄체>와 함께 표제작인 <스크류바>를 포함해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예전엔 단편집을 펴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차례대로 정독을 했다. 하나라도 놓칠까 긴장하고 집중하면서(아마 소설을 공부하던 습관 때문이었던 듯). 그러다 언제부턴가 소설을 소설로 대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느슨하게, 마음을 풀어놓고 대하기 시작했다. 때론 제목이 제일 마음에 드는 소설을 먼저 읽었고, 때론 맨 마지막의 작가의 말을 먼저 읽었고, 때론 마음대로 휘릭 펼치다 눈에 띄는 소설을 먼저 읽기도 했다. 작품집에 실린 열 편의 소설 <#권태_이상> , <높이에의 강요>, <스크류바>, <바람의 책>, <이야기 속으로>, <어제의 콘스탄체>, <사자의 침대>, <울음터>, <하우스>, <히어로 열전> 중, 표제작 <스크류바>부터 읽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첫 문장이 있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스크류바>,<하우스>,<어제의 콘스탄체> 세 편의 소설이 가장 끌렸고, 마음에 들었다. 여러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소설집을 읽다 보면 작가의 개인적인 습관 같은 걸 눈치채게 되기도 하고(자주 쓰는 단어라든가, 접속사라든가 하는), 작가의 성향(반복되는 주제나 분위기)을 알게 되기도 한다. 가끔은 소설마다 큰 편차를 보이거나 분위기가 너무 달라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이 소설집 속에 실려 있는 열 편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이 작가, 굉장히 성실할 것 같아'였다. 한 편 한 편 굉장히 정석대로 써 내려갔을 것 같은 느낌. 소설 작법을 오래도록 열심히 공부했을 것 같은 느낌. <스크류바>는 아이와 버스를 타고 가다가 깜박 졸던 사이, 눈을 떠보니 옆자리에 앉아있던 아이가 보이지 않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버스에서 내려 실종신고를 하고, 아이가 내렸을만한 버스정류장을 되짚어가면서 나는 오래전 기억들과, 어릴 적의 경험들, 지금의 자신까지 차근히 서술해 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혼 6년 만에 생긴 아이였다. 교복을 입은 아이가 스크류바 먹으며 무심히 열쇠를 건네주던 허름한 여관에서 덜컥 들어선 아이. 잃어버린 아이를 찾으러 가면서 하필 간절하게 떠오른 스크류바.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 감추고 살았던 욕망이 한순간에 툭, 튀어나오는 순간 걷잡을 수 없어진 감정. 아이를 찾아 미친년처럼 거리를 헤매면서도 편의점 아이스크림 냉장고 안에서 스크류바를 집어 든 한 여자의 잃어버렸던(잃어버려야 했었던) 어떤 욕망에 대한 이야기.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실종아동찾기센터의 전화 이후 확, 터져버린 '나'의 감정을 따라가는 마지막 결말 부분이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인 듯. 「무작정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열었다. 손은 잠시 망설이듯 허공에 떠 있었다. 더는 망설이면 안돼, 나는 스크류바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쪼그라들었던 심장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계속 뛰었다. 얼마쯤 뛰다 뒤를 보았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숨을 고르면서 골목길로 들어갔다. 도로에서 조금 떨어졌을 분인데도 큰길보다는 훨씬 조용했다. 골목길 구석에 앉아 스크류바를 뜯었다. 빨간 스크류바에 가루같이 흰 얼음이 붙어 있었다. 혀끝으로 그 얼음을 핥았다. (중략)어디선가 또다시 매미가 맹렬한 기세로 울어댔다. 이제 귀를 막을 힘조차 없었다. 매미 소리와 함께 흩어진 기억들이 내 주위를 감쌌다. 그녀의 전화와 남편의 전화, 배 속에서 찢겨진 아이와 버스에서 놓쳐버린 아이. 한낮의 지독한 햇볕과 스타벅스에서의 물 한잔. 모든 게 뒤엉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때, 녹은 스크류바가 발끝으로 톡, 떨어졌다. 분홍색 동그라미가 발끝에서 터지자 그리로 무언가 스멀스멀 모이는 기분이 들었다. 톡, 톡 퍼져나가는 분홍색 동그라미, 달콤하고 끈적한 그 흔적. 나는 발끝으로 감각을 집중했다. 마치 전기가 오른 것처럼 발끝이 찌릿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점차 다리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온 정신을 모아 그 감각만을 따라갔다. 무릎을 지나 사타구니에 그 찌릿함이 전달되자 몸에 있는 모든 혈관에 빠른 속도로 피가 돌기 시작했다. (중략)녹아가는 스크류바를 한입 베어 먹었다. 베어문 것보다 손으로 흘러내리는 게 더 많았다. 톡, 톡 바닥에 분홍색 동그라미가 박혔다. 나는 스크류바가 잔뜩 묻은 손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뒤 그 손으로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 나를 휩싸고 돌았다. 그것은 아주 차가웠지만 안으로 갈수록 점점 뜨거워졌다. 목으로 치밀어오는 기운에 목을 뒤로 꺾었다. 참지 않고 숨을 뱉었다. 차가운 손이 점점 더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알 수 없는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끝으로 세상은 온통 고요 속에 잠겼다. 톡, 톡 분홍색 동그라마가 내 안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p79-80」
전생을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은 <어제의 콘스탄체>.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남자가 자신을 콘스탄체라고 불러세운다. 그는 자신이 전생에 모차르트라고 말하는 남자. 여자는 잃어버린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남자를 따라 우연히 전생을 보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을 프리드리히 니체, 버지니아 울프, 갈리레오 갈릴레이, 이사도라 던컨,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 믿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몇 년째 방에 틀어박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쓰고, 구조조정을 당하고 희망 없는 이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어제'의 세계에 갇혀 있다. 「우리는 내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콘스탄체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우리를 만난 당신의 어제는 어땠습니까? p149」<오늘도 집에는 엄마가 없었다>로 시작해 <오늘은 엄마가 집에 있을 거야>로 끝나는 소설 <하우스>.<하우스>는 소위 말하는 도박장이다. 엄마는 여섯 살 아이를 재워두고 주택가 지하에 있는 <하우스>에 드나들고 있다. 나는 학교가 마치면 여섯 살 동생을 데리고 엄마를 찾아 하우스를 기웃거린다. 아빠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제발 엄마가 집에 왔으면 하는 바람. 나 역시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여자 아이지만 동생 걱정에, 엄마 걱정에, 엄마 아빠가 싸울까 봐 불안해하며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을 뒤로하고 무작정 집으로 돌아온다. 어떤 날엔 아빠에 의해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들어 오는 엄마. 그런 날이면 동생을 끌어안고 두려운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왜 그렇게 마음이 먹먹해지고 아팠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가 마치 직접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다가가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마지막 문장 <오늘은 엄마가 집에 있을 거야>는 아이의 간절한 바람.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을 바람. 언급하지 않은 소설들도 저마다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아홉 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스물아홉에 등단했다는 작가. 등단 이후 6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첫 소설집.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 기억들은 언제나 나를 쓰게 했다."라고.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 "내 소설은 모두 내 사랑의 흔적이다."라고. 아마도 앞으로 작가가 쓰게 될 많은 이야기들은 작가의 기억임과 동시에 우리들의 기억이지 않을까. 작가가 가지고 다닐 사랑의 흔적을 또 언제가 좋은 글을 통해 만나기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