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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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이라는 소설집에 실린 총 아홉편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거칠게 파닥거렸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히 숨돌린 틈조차 쉽사리 제공 해주지 않았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몸속으로 사람들을 한명 한명 끌어들였으리라. 그중에 운이 좋은 사람은 그 틈에서 작가와 함께 맞장구치면서 이야기를 했을테고 그다지 그 틈이란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얼른 빠져나오기 위해 작가의 눈치를 보고 발버둥을 쳤을것이다. 그만큼 천운영의 소설들은 모두 무섭게, 겁나게 생겼다. 그러나 그에 빗대서 몇배는 더 멋지게, 매력적으로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바늘' '숨' '눈보라콘' '행복 고물상'이라는 소설들에 관심이 갔다. 날카롭게 쏘아보는 작가의 시선이 소설 곳곳에서 묻어났기 때문이다. 기발한 상상력, 세심한 관찰력, 거기에 덧붙어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을 작가의 호흡까지......

소설들을 다 읽고 책을 덮은 지금까지도 소설들의 거친 발길질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작가가 품고 있는 '바늘'이 그만큼 뾰족했기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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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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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늘에는 당나귀 배처름 불룩한 먹장구름이 무겁게 드리워져있고...'로 시작되는 소설은 중간중간에 가서도 이렇게 재미있고 눈에띄는 감성적인 묘사가 등장한다. 그러나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감성적이기보다 오히려 지독히 현실적이다. 자신의 살해당한 환경운동가 친구를 위해 썼다는 이 소설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소설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알게 하고 있다. 그는 이해를 강요하지 않은채 다만 자신의 언어로 백지를 가득채웠을 뿐이다.

노인과 마을 사람들이 뚱보라고 부르는 읍장은 작가가 보여주는 권력의 현실이다. 한달에 한 두번씩 배를 타고 와서 사람들의 충치를 치료해주고, 노인에게 연애소설을 건네주는 치과의사는 좁은 마을에-막힌, 답답한-세상 소식을 전해주고 세상과 맞닿게 해주는 다리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노인에게 밀림에서 견디는 법, 사냥하는 법, 청각으로만 숲의 동물들을 감지하는 법등을 알려주는 수와르족은 그 현실에서 버티고, 싸우며 힘겨워하는 진정한 시민들이다. 작가는 그런 인물들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을 죽이는 암살쾡이 사냥을 나선 읍장과 주민들은 노인만 남겨두고 마을로 돌아간다. 노인은 암살쾡이와의 게임에서 살쾡이들의 바램을 느끼게되고 자신의 손으로 죽음을 찾아나선 살쾡이를 죽인다. 그리고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노인은 왜 유독 연애소설을 즐겨 읽는 것일까. 그것은 작가의 말처럼, 그것이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녀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지만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연애소설을 통해 노인은, 작가는 삶의 행복한 결말ㅇ르 바랬는지도 모른다. 또한 끊임없이 밀림속에서 인간과 동물간의 싸움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은 이미 떨어져 살 수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이 없이는 살 수 없다. 이 사소한 진리가 또 다시 의미심장하게 되새겨지는 건, 그동안 나도 그 사소한 진리를 잊고 살때가 많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리라.

책을 펴는 순간 부터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일부러가 아니라 작가의 놀라운 시선과 이야기거리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눈을 떼면 마치 암살쾡이가 다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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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1
전경린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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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만에 2권 분량의 장편 소설을 폭식한 뒤, 난 지금 요플레를 먹고 있다. 더 정확한 이름을 대라면 남양에서 나온 딸기맛 꼬모다. 나는 늘 이것들을 요플레로 기억하고 싶어한다. 바이오거트, 꼬모 ... 할 것 없이. 한번 기억 속으로 들어온 것들은 이상하리 만치 무서운 집착을 가진다. (아마도 내가 처음 접한 요구르트 제품의 이름이 요플레였던 모양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마음이 답답했고, 불안했고, 아팠으며 슬펐다.
마치, 내가 처음부터 알고 있던, 느끼고 있던 감정이란 게 모두 그런 것들뿐인 것처럼.
나에게 올해로 스물 다섯이 된 언니가 있다. 어쩌면 소설을 읽으면서 내 언니를 소설 속 주인공에 대입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 속의 스물 다섯 살의 여자는 늘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현실에서 도피하듯이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 현실 속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도 있고, 열 살이 넘게 차이나는 남자와 재혼해 버린 엄마도 있으며, 엄마의 남편인 양부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갓난 아기도 있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을 끊임없이 맴도는 선모라는 남자도 있다.

현실에서 벗어난 여자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갔다. 그다지 적성에는 맞지 않지만 직업도 있고, 쉴 집도 있었고......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여자의 삶을 그리 오래 편안하게 놔두지 않았다. 지방 방송국 작가로 있던 여자가 인터뷰 때문에 만나게된 젊은 시인과, 그 시인을 통해 알게된 중년남자. 그 둘의 그 이후 여자의 삶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온다.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시인 은경과, 격렬함과 사치스러움을 안겨주는 중년 남자 이진 사이에서 여자는 방황을 하고, 행복해 하고, 불행해 했다.

만약 소설에서 여자가 둘 중 누군가와 이루어졌더라면 이 소설의 끝은 어떻게 됐을까. 그러나 둘 사이에서 헤매던 여자를 꺼낸 건 결국 두 남자였다. 한명은 자살을 택함으로, 또 다른 한명은 완전한 타인으로 돌아서 여자를 떠났다. 여자의 엄마와 양부는 교통 사고로 죽고, 여자에게는 그 사이의 아이만 남겨졌다.

「여자는 사랑이란 것은 하기는 했던 것일까.」이런 유치한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내물음의 근원은 「처음」에 근거한다. 여자의 처녀성을 깨뜨린 첫 남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에게서 당당하게 여자의 처음을 가져갔고, 당당히 여자를 떠났다. 누구에게나 특별할 것 같은 '처음'이라는 단어가 사랑 앞에서 그토록 무력할 수 있다는 것을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꼈다. 어쩌면 여자는 자신 스스로도 둘 모두를 사랑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소설의 시작부터 마지막가지 생선가시가 걸린 것처럼 목구멍을 따금거리게 하던 '양부'라는 말이 그런 내 짐작에 더 확신을 가져다준다. 여자에게 양부의 존재는 아주 현실적이다. 대학등록금을 내주는 사람, 자시의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어쩔 수없이 받아들이고 견뎌야 했던 사람. 그런면에서 여자가 지방에서 만난 중년남자 이진은 양부와 비슷하다. 이진 역시 여자에겐 현실 속에서 살기 위에 필요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시인 은경은 여자에게 처음 처녀성을 빼앗은 남자와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결국 여자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떠나온 곳에서 똑같지만 또 다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여자는 모두 떠나간 뒤 남겨진 아이를 키우며 여자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현실에서 버리고 간 선모라는 남자를 다시 삶 속으로 들여놓은 채...... 여자의 현실은 이제 무한대로 탁트인 바다같이, 끝없는 벌판같이 펼쳐져 있다. 그 속에서 또 비슷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비슷한 현실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나에게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스물 다섯 살의 언니는 '나는 내가 스물 다섯이 되면 굉장하게 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며 자신의 현실에 불만족을 말했었다. 몇 년뒤 나에게 찾아 올 스물 다섯을 오늘 홀연히 다 살아낸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내 스물 다섯에 대한 좋은 징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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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 작가정신 소설향 6 작가정신 소설향 23
조경란 / 작가정신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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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건다
전화 받기를 기다린다
한참 기다리다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움직임)을 다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을 표현하라면 위의 세 문장으로 대신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알리기, 누군가에 대해 알기--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화의 목적이라면 그것은 삶에서도 비슷하게 통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신이경이라는 인물은 외로운 존재다. 자신의 존재를 관심있는 앞방 남자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늘 서성거리고, 머뭇거리는, 그래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랠 줄 모르는 여자. 그리고 그 외로움 주변에는 끊임없이 현실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이모가 있고, 그 낡고 어두운 현실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할아버지와 삼촌이 있다.

이 소설의 초점을 이 네 인물에 둔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따라간다. 가족이라는 이름에 억압된 자신, 자신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가족. 둘 중 어느쪽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어느쪽이든 안타깝고 쓸쓸하긴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 얽히지 못하고 서로의 주변을 서성거리며 서로의 외로움을 들춰낸다. 때가 되면 아무는 상처처럼 그들은 서로 아물어 다시 깨끗한 맨 살이 될 수 있을까.

조경란의 (움직임)이라는 소설은 그리 뛰어난 문장도 없고, 그닥 새로울 것 도 없는 소재지만, 작가의 서사력과 안정된 문장으로 읽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다. 편안하게 소설을 읽게 하다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가슴에서 '딱'하는 소리를 듣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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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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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끝내고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준호는 대학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여자친구인 선영이와 섹스할 궁리만한다. 19살. 성에 민감하고 호기심 많은 나이. 준호는 결국 선영이와 첫 경험을 하게 되지만 그 뒤엔 허탈감만 남는다. 준호는 다시 대학에 진학할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의 길을 걸어들어가기로 하면서 이 소설은 끝이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성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웃으면서 한적은 없는것 같다. 너무 어려운 것이고 무서운 이야기라서 였을까. 진지함이 사라지고, 개그와 사소한 농담이 넘치는 요즘이지만, 가벼운 이야기처럼 유쾌하게 주제를 풀어내는 작가의 입담은 놀랍다. 물론 그 가벼움 속에 숨어있는 진지함을 엿볼때 작가의 시선은 더 빛을 발한다. 가벼운 이야기 속에 던져진 진지한 이야기야 말로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기호에 한걸음 다가서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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