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1
전경린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3시간만에 2권 분량의 장편 소설을 폭식한 뒤, 난 지금 요플레를 먹고 있다. 더 정확한 이름을 대라면 남양에서 나온 딸기맛 꼬모다. 나는 늘 이것들을 요플레로 기억하고 싶어한다. 바이오거트, 꼬모 ... 할 것 없이. 한번 기억 속으로 들어온 것들은 이상하리 만치 무서운 집착을 가진다. (아마도 내가 처음 접한 요구르트 제품의 이름이 요플레였던 모양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마음이 답답했고, 불안했고, 아팠으며 슬펐다.
마치, 내가 처음부터 알고 있던, 느끼고 있던 감정이란 게 모두 그런 것들뿐인 것처럼.
나에게 올해로 스물 다섯이 된 언니가 있다. 어쩌면 소설을 읽으면서 내 언니를 소설 속 주인공에 대입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 속의 스물 다섯 살의 여자는 늘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현실에서 도피하듯이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 현실 속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도 있고, 열 살이 넘게 차이나는 남자와 재혼해 버린 엄마도 있으며, 엄마의 남편인 양부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갓난 아기도 있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을 끊임없이 맴도는 선모라는 남자도 있다.

현실에서 벗어난 여자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갔다. 그다지 적성에는 맞지 않지만 직업도 있고, 쉴 집도 있었고......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여자의 삶을 그리 오래 편안하게 놔두지 않았다. 지방 방송국 작가로 있던 여자가 인터뷰 때문에 만나게된 젊은 시인과, 그 시인을 통해 알게된 중년남자. 그 둘의 그 이후 여자의 삶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온다.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시인 은경과, 격렬함과 사치스러움을 안겨주는 중년 남자 이진 사이에서 여자는 방황을 하고, 행복해 하고, 불행해 했다.

만약 소설에서 여자가 둘 중 누군가와 이루어졌더라면 이 소설의 끝은 어떻게 됐을까. 그러나 둘 사이에서 헤매던 여자를 꺼낸 건 결국 두 남자였다. 한명은 자살을 택함으로, 또 다른 한명은 완전한 타인으로 돌아서 여자를 떠났다. 여자의 엄마와 양부는 교통 사고로 죽고, 여자에게는 그 사이의 아이만 남겨졌다.

「여자는 사랑이란 것은 하기는 했던 것일까.」이런 유치한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내물음의 근원은 「처음」에 근거한다. 여자의 처녀성을 깨뜨린 첫 남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에게서 당당하게 여자의 처음을 가져갔고, 당당히 여자를 떠났다. 누구에게나 특별할 것 같은 '처음'이라는 단어가 사랑 앞에서 그토록 무력할 수 있다는 것을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꼈다. 어쩌면 여자는 자신 스스로도 둘 모두를 사랑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소설의 시작부터 마지막가지 생선가시가 걸린 것처럼 목구멍을 따금거리게 하던 '양부'라는 말이 그런 내 짐작에 더 확신을 가져다준다. 여자에게 양부의 존재는 아주 현실적이다. 대학등록금을 내주는 사람, 자시의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어쩔 수없이 받아들이고 견뎌야 했던 사람. 그런면에서 여자가 지방에서 만난 중년남자 이진은 양부와 비슷하다. 이진 역시 여자에겐 현실 속에서 살기 위에 필요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시인 은경은 여자에게 처음 처녀성을 빼앗은 남자와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결국 여자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떠나온 곳에서 똑같지만 또 다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여자는 모두 떠나간 뒤 남겨진 아이를 키우며 여자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현실에서 버리고 간 선모라는 남자를 다시 삶 속으로 들여놓은 채...... 여자의 현실은 이제 무한대로 탁트인 바다같이, 끝없는 벌판같이 펼쳐져 있다. 그 속에서 또 비슷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비슷한 현실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나에게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스물 다섯 살의 언니는 '나는 내가 스물 다섯이 되면 굉장하게 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며 자신의 현실에 불만족을 말했었다. 몇 년뒤 나에게 찾아 올 스물 다섯을 오늘 홀연히 다 살아낸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내 스물 다섯에 대한 좋은 징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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