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끄기의 기술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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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마, 노력하지 마, 신경 쓰지 마"
이 문장은 꽤 자극적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저 세 가지를 모두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애썼고, 노력했고, 신경썼다.
육아, 직장일, 가정(양가 포함), '나' 개인의 정서적 충만함 등을 위해 말이다.
그래서 자주 과부하에 걸렸고, 주기적으로 우울했으며, 작은 일에도 쉽사리 울컥 했다.

이 책은 자잘한 것들에 다 신경쓰겠다고 나서지 말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을 기르라고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남는 의문은 있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을 남기기'위해 우리는 또 애쓰고, 노력하고, 신경쓰는 게 아닐까 하는(책 헛 읽었나;;).

이 책의 차례만 모아보면 대략 이렇다.
1. 애쓰지 마, 노력하지 마, 신경 쓰지 마
2. 해피엔딩이란 동화에나 나오는 거야
3. 왜 너만 특별하다고 생각해?
4. '고통을 피하는 법'은 없어
5. 선택을 했으면 책임도 져야지
6. 넌 틀렸어, 물론 나도 틀렸고
7. 실패했다고 괴로워하지 마
8. 거절은 인생의 기술이야
9. 결국 우린 다 죽어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경 끄기의 기술'이다.
이 기술은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고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게 해주는 단순한 방법이다. 이 능력을 발달시키면 이른바 '실용적 깨달음'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영원한 행복이라느니, 모든 시련의 끝이라느니 하는 약장수가 하는 말이 아니다. 실용적 깨달음이란, 삶이 늘 어느 정도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즉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 인생은 실패, 상실, 후회를 수반하고 마지막엔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엄청난 고난들을 순탄하게 받아 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천하무적이 될 수 있다.
단언컨대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p12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해 봤다.
내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일들은 뭘까. 내 삶을 가장 답답하게 만드는 일은 뭘까.
1. 나는 너무 생각이 많다 - 그래서 너무 앞서 걱정하고 고민한다.
2. 책임감때문에 종종 마음이 무겁다  - 아이도, 친정엄마도 다 내가 책임을 지고 지켜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내게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내 인생의 목록을 쭈욱 늘어놓은 다음 그 중에서 그래도 중요하지 않은 걸 하나씩 지워나가는 거다. 그리고 남은 딱 다섯 가지 내외의 항목에 대해서만 신경 쓰고, 애쓰는 삶을 만들어 가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니까 뭔가 이미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이제 시작이다.

이 책은, 기존의 자기계발서에서 내세우는 '요령'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생에 관해 사람들이 흔히 떠들어 대는 조언-긍정과 행복으로 가득 찬 자기계발 요령-은 사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조언은 개개인이 이미 자신의 결점과 실패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을 파고 들어, 그것에 몰두하게 한다.p20"
예를들면 이런거지,  부자가 되는 비법을 배우는 건 나는 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거울 앞에 서서 나는 예쁘다고 주문을 거는 건 내가 못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연애와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을 따르는 건 사람들이 날 실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성공하기 위해 웃기지도 않는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는 건 내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럼 저자가 말하는 신경 끄기의 기술은 뭘까.
#1 신경끄기는 무심함이 아니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2 고난에 신경 쓰지 않으려면, 그보다 중요한 무언가에 신경을 쓰라.
#3 알게 모르게, 우리는 항상 신경 쓸 무언가를 선택한다.

결국, 하나다.
' 당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찾아라. ' 그리고 남은 너저분한 관계, 감정, 불안, 걱정 같은 건 잊어버려라. 무관심해져라.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라. 집착하지 말아라. 받아들여라.

 

새해의 시작에서 읽기 좋은 책이다. 시작은 언제나 설렘을, 희망을 주니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찾아가는 시간, 불필요한 것들과 안녕을 고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또 너무 깊게 생각하다보면 다시 온갖 잡다한 것들에 '신경 쓰게 되고' 말테니.

 

행복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나온다. 여기서 핵심은 ‘해결‘이다. 문제를 피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하면 불행해진다. 해결 못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도 역시 불행해진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문제 밖에 자리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p51

감정은 우리 삶의 방정식의 일부일 뿐, 전부는 아니다. 좋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고, 나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은 단지 길잡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 사실 난 감정을 의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p55

자아 존중감을 제대로 측정하려면, 긍정적 경험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아니라, 부정적 경험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봐야 한다. 실제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부정적인 부분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래, 난 돈 문제에 무책임할 때가 있어.", "그래, 난 내 성공을 과장할 때가 있어.","그래, 난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해. 자립심을 키워야겠어."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한다. p69

충고하건대, 자신이 특별하다거나 남다르다는 생각을 버려라. 삶의 기준을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다시 정하라. 자신을 유망주나 재야의 천재로 보지 말라. 비참한 피해자나 형편없는 실패자로도 여기지 말라. 그보다 훨씬 평범한 정체성인 학생, 배우자, 친구, 창작자와 같은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라. p82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루려면, 부정적인 감정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건전한 방식으로,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표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비폭력이라는 가치를 옹호하는데, 이를 위한 기준은 손찌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난 화가 났을 때 분노를 표출하긴 하지만, 절대 상대방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지는 않는다. 과격한 소리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분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삶의 일부다. 단언컨대, 화를 내는 게 엄청나게 도움이 될 때가 자주 있다. p106

자유는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 기회를 주지만, 그 자체로 반드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의미 있고 중요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은 수많은 선택지들을 거부하는 것이다. 즉 자유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우리는 한가지를 선택해 몰입해야 한다. 하나의 장소, 하나의 믿음, 하나의 사람을 말이다. p192

거절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다. 불행한 관계에 얽매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짜증 나고 불안정한 직장 생활에 얽매이고 싶은 사람도 없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게 만드는 문화를 달가워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그런 걸 선택한다.
솔직함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가 솔직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한 방법은 서로 ‘아니오‘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거절을 하면, 오히려 관계가 좋아지고 감정이 건전해질 것이다. p198

당신이 대단한 건, 끝없는 혼란과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어디에 신경을 쓰고 어디에 신경을 끌지를 계속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며 나름의 가치를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이 이미 당신을 아름답고 성공적이며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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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패리시 부인 미드나잇 스릴러
리브 콘스탄틴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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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걸 가진 여자 대프니
모든 걸 빼앗고 싶은 여자 앰버
그리고 그 사이의 한 남자 잭슨.

이야기는 시작부터 어떻게 흘러가겠구나 짐작하게 했다.
물론, 이 소설은 스릴러라는 장르답게 군데군데 흥미를 유발할만한 장치를 깔아두었다.
마지막 결말에 이르렀을 때, 음.. 이건 뭐 착한 사람은 잘 살고, 나쁜 사람은 벌받는 거야? 뭐.. 이런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그리 나쁘진 않았다.

책의 표지에 적힌 "이 소설의 놀랍고도 만족스러운 결말은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다"라는 말에는 격하게 동의할 순 없더라도 말이다.

스릴러라는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 내게 이 소설은 일종의 호기심이었다.
가볍게 과자 한 봉지 옆에 놓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기대거나 누워 읽기 좋은 책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결국 인간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순간, 타인에게 뒤통수를 맞거나 자기의 꾀에 스스로 넘어가거나.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도 완벽하게 타인을 속일 수 없다는 것.

"삶은 정말 불공평했다. 앰버는 모두 자신을 쓰레기처럼 보던 끔찍한 동네에서
탈출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서 인근에서 가장 부유하고 뭐든 가장 좋은 것에 둘러 쌓인 잭슨 패리시 부인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계속 멸시당했고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합당한 삶을 원할 뿐이었다.
이 삶이 합당하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p467"

앰버만 그랬을까. 모두 자기가 있는 그 삶이 어느 정도는 불공평하다고, 불행하다고 여기면서 살지 않을까. 다만 앰버는 그 욕망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강했던 것뿐이었을 거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프니도 앰버도 멋진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공감 가는 인물들이었다. 한 명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희생해야 했고, 한 명은 갖기 위해 온몸을 거짓으로 무장한 채 늘 긴장하며 살아야 했다. 두 여자의 삶을 흔들어 놓은 사이코패스 잭슨은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 없는 인물일 뿐.

결국,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열심히 찾아내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걸 잠시 생각하게 해준 소설.

사족, 이 소설의 작가 리브 콘스탄틴은 린 콘스탄틴과 발레리 콘스탄틴 자매 작가의 필명이라고 한다. 서로 떨어져 사는 두 자매는 전화통화로, 이메일로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며 함께 작품을 완성했다고. 이게 가장 흥미로운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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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터 Littor 2017.12~2018.1 - 9호 릿터 Littor
릿터 편집부 지음 / 민음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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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 책이 2017년에 내가 읽은 마지막 책이 되겠다.
워낙 릿터를 좋아하기도하지만, 이번 호의 주제가 <결혼 플롯>이어서 더더 흥미 진진했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읽는다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여러번 하면서 읽었다.
결혼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공감되는 내용이었고.

가끔 주변의 아직 결혼 전인 후배나 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
"결혼 하지마! 혼자 살아!"
혹은, "결혼은 뭐랄까 딱 둘이면 문제 없지만 누군가 개입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
같은 말들 말이다.

둘의 사랑으로만, 그것만 있으면 모든 게 일사천리 해결되는 게 결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상견례, 혼수, 시집과, 친정 어른들... 하나씩 끼어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계산기가 두드려지지 시작한다.

이번 호에 실린 <플래시픽션>과, <이슈>에서 다룬 이야기들은 그런 결혼의 양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공감되고 재미있었는지도.

천희란 소설가의 「너의 작은 결혼식」은 스몰웨딩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즈음, 스몰웨딩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결혼식이라는 의식에 대해 나는 너무 자연스럽게, 당연스럽게 예식장에서 하는 일반적인 결혼식을 선택했다.
양가 어른들 역시 그게 자연스러운듯 받아들이셨고.
그나마 예물을 간소화 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스몰웨딩을 했으면 더 만족스러웠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언젠가 이효리가 제주도의 스몰웨딩에 대해 이야길할 때 한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스몰웨딩이라 할 수 없어요.
오시는 손님들 호텔 다 잡아드리고, 하루종일 유명쉐프가 음식을 해주었구요, 잘 나가는 포토그랴퍼가 사진 찍었구요.... 하는 말들.

결혼식,결혼에 대한 의식이 점차 바뀌어 간다면 그게 스몰웨딩이든, 호화스런웨딩이든 그런것에 연연하지 않는 그냥 결혼이라는 자체였으면 좋겠다.

최근 유병재의 에세이를 읽어서인지 인터뷰코너에서 만난 유병재의 글도 반가웠고,  요즘 관심 갖고 있던 정지돈 소설가의 인터뷰도 좋았다.
소설에서는 오랜만에 계간지를 통해 만난 정이현의 <언니>가 좋았다.

리뷰에서는 홍승은의 소개한「붉은선」은 이미 읽고 싶어 구입해두었다. 기대된다.


그리고, 유독 좋았던 글 하나.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문보영 시인의 수상소감.

 

 

'본전만 뽑자' 가 좌우명인 시인의 수상소감.
수강소감에서 감동을 받다니. 수상소감때문에 시인의 시가 읽고 싶어지다니.

덕분에 새해에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될 책을 이미 골라둘 수 있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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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눈동자에 건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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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구입하면 에코백을 준다, 고 했다.
아, 벌써 구입해버렸는데 아쉽다. 어? 신간이 또 있네.
요즘 서점에서 핫한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구나.

만약에, 이 소설 『그대 눈동자에 건배』,를 읽지 않았다면 에코백에 혹해서 새로 나온 신간도 덥석 장바구니에 넣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보니 이 소설은 '일본 문학 / 추리 미스터리 소설'로 분류되어 있었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다.

그러고 보니, 새해 들어 본의 아니게 미스터리 소설을 두 편이나 읽었다. 먼저 읽은 <마지막 패리시 부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어쨌든. 당분간 미스터리 소설은 그만.

 

 

소설은 재미있었다. 가독성 최고.
아홉 편의 소설을 읽은 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계속 읽고 싶었다.
어떤 소설은 우와~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지, 싶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까지.

다 읽고 난 뒤 책장을 덮고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었다. 미련 없이, 이런 느낌.
어떤 소설을 읽은 뒤에 여운이 길어 한참 헤맬 때가 있는데, 이 소설은 가볍고 재미있게 읽고 후련해지는 느낌이랄까. 군더더기 없는 소설.
심각한 거 말고, 생각 많이 하기 만드는 거 말고 가볍고 가독성 높은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만족스러울 듯하다.

아홉 편의 소설
< 새해 첫날의 결심 /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 /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 / 그대 눈동자에 건배 / 렌털 베이비 / 고장 난 시계 / 사파이어의 기적 /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 수정 염주 > 중에서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 / 그대 눈동자에 건배 / 렌털 베이비
세 편이 가장 재미있었다.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는 헤어진지 10년이 지난 전 애인의 갑작스런 연락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간 만남의 자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는 우연히 나가게 된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나 드디어 애인이 생기는 모양이다, 라고 기대한 한 남자에게 벌어지는 이야기.

<렌털 베이비>는 실물 아기와 비슷하게 구현되어 있는 로봇아기를 데려다가 일정 기간동안 부모가 되는 체험을 하는 내용인데, 남편도 아기도 업체에서 매칭을 해준다. 아기는 실제로 울기도 하고 똥도 싸고 보채고 실제 아기처럼 행동하고, 보호자가 된 사람들은 진짜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밤잠을 설치고 힘들게 부모 체험을 한다. 그리고 결말에 가서 드러나는 반전. 조금 허무하기는 했지만 헉, 하게도 했던.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더 좋긴 했다.
결국 취향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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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딩, 턴
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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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거 같아서.
- 살다 보면 이런 때도 있는 거지, 뭐. 다들 깨 볶으면서 사는 거 아니야. p17

싸우고, 감정 다치고, 추스르고, 사과하는 법에 서툴러서 내 연애는 늘 소극적이었다.
어지간하면 상대에게 맞춰주면서 별거 아냐, 이 정도쯤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던 것 같다.
내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면 상대방이 화를 낼까 봐, 혹은 헤어지게 될까 봐 때론 두려워했던 것도 같다.

그래봐야 고작 십 대 시절의 풋풋했던 연애 한 번에, 이십 대에 짧은 연애 한 번과 지금 신랑과 한 7년간의 연애 세 번의 연애가 전부지만 연애를 통해 나를 많이 알게 된 건 사실이다.

신랑과 긴 연애가 가능했던 이유는 서로 그 감정싸움을 할 필요가 없어서였던 것 같다.
내가 굳이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대부분 맞았고, 서로 같이 있지만 따로 있는 것처럼 자유로웠다.
만약, 그때 우리가 헤어졌다면 나는 이런 이유를 댔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날 자유롭게 두니까, 날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아서."

결혼을 하고 난 뒤에, 그게 얼마나 서로에게 장점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사내 연애에, 결혼하고 나서도 같은 직장에 다니는지라 서로 손바닥 안일 수밖에 없는 생활 반경.
그나마 부서가 다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결혼 이후 내가 지금까지 꼭 지키는 게 하나 있다면, 같은 직장이라도 어지간하면 퇴근 후에 직장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 신랑이 퇴근 후가 갖는 술자리엔 잘 아는 동료들이라고 해도 같이 합석하지 않는 것. 술자리에 누가 함께 했는지 뭘 했는지 묻지 않는 것.

 

서유미 작가의 <<홀딩, 턴>>을 읽으면서 결혼에 대해, 결혼한 부부에 대해, 그 관계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소소한 갈등을 겪고, 별거를 하고, 이혼을 결심하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박을 하거나 큰 빚을 지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엄청난 시집살이에 괴로워 헤어지는 부부들도 많겠지만 어떤 부부들은 정말 사소한 것들로 헤어짐을 결심할 수도 있겠구나.
같이 있는 게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거나, 남자가(여자가) 싫증이 났거나, 혼자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데, 그런 사소한 이유로 헤어진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 다들 그렇게 살아. 별거 없어. 그니까 그냥 어지간하면 그냥 살아."라고.

- 사는 게 이런 건가. 다들 이렇게 사나. 둘러보게 되더라.
   어쩌다 한번 싸우는 게 아니라 가끔 화해하며 사는 사람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원수가 되거나 한집에 살면서 같이 밥을 먹는데 서로에게 가장 냉소적인 사람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한 번쯤은 꽉 막힌 수챗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섣불리 덤볐다가 역류해서 바닥이 지저분해지고 옷이 다 젖을까 봐 겁이 났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해 가고 싶었다.
- 네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천천히 해나가고 싶었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p44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나, 피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할 때 때론 오히려 더 담담해지기도 한다.

소설 속 남자와 여자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아릿했다. 작가는 이별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쓰고 나니 사랑 이야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도, 이별도 때론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니까.

잘 지내는 것 같던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가 깨질 때 상대의 불륜이나 변심, 파산, 폭력, 중독은 선명한 파경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로 명명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자잘하게 집 여기저기에 곰팡이처럼 번져버린 경우도 있다. 볼 때마다 닦고 주기적으로 꺼내서 말리는데도 은밀하고 깊숙하게 번져나간 곰팡이를 목격할 때면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며 손을 놓고 싶어진다. 곰팡이가 관계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p47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만 알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부부에게도 건드릴 수 없는 약한 부분이 있을 테고, 진짜 맞지 않아 보이는 부부 사이에도 그들만의 접점이 되는 맞는 부분이 분명 있겠지.
타인의 이야기를 쉽게 하거나, 타인의 상황을 쉽게 이해한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알지 못하는 영역 때문이 아닐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혼자 헤어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결혼 4년 차쯤.
육아도 혼자 하는 거 같고, 외로운 거 같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았다.
싸움도 없었고,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도 없었다.
대신 대화가 줄었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지금은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도 그랬을까.
-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겠지. 그래도 우린 나쁜 건 아니잖아.

이별이나 이혼에 대해 말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없었다.
지원은 빈 머그잔을 꼭 쥐었다. 이혼 문제를 이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나, 하는 염려와 고민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같이 있는 게 힘들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면 헤어지는 게 맞지, 하는 체념이 동시에 들었다. 이 합의가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고 평생 함께 하겠노라 선언하던 그 장면을 훼손하는 거라고 여기지 않기로 했다. 결혼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행복해지려고 했던 거라면 이혼에 대한 고민도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당사자인 두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합의하는 순간 타당한 일이 된다. 물론 이유를 불문하고 지원이 이혼했대. 누군가 말하고 옮길 때 부정적인 궁금증과 억측, 짐작을 몰고 오리라는 건 뻔했다. 다른 사람의 이혼 호식을 접했을 대 지원도 그랬으니까. 입방아에 오르거나 안됐다는 시선을 받을 걸 알면서도 그 일에 과감히 뛰어들려고 하는 건 그러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해서다. 남은 날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삶의 방향을 바꾸려는 것이다.
- 네가 잘해보려 했던 거 알고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 이렇게 돼서.
영진은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 나도 미안해. 결국 이렇게 돼서. p147-148

적어도, 남은 날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지금 이별을 고하는 사람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
아이 때문에, 부모 때문에, 시선 때문에 조금 덜 행복한 쪽을 찾는 많은 사람들보다는(물론, 현실에서는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런 소설이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정의하거나, 긴박한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마치 일상을 그리듯 이야기해 주는 소설.
그래서 지금의 자신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소설.

-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 꼭 해어져야 해?
그 질문들은 그동안 지원이 이별한 사람들에게 던졌던 것이라는 점에서 예측 가능했다. 그 입장이 돼보니 말의 온도가 달랐지만 돌려받을 차례가 된 거라고 생각하면 야속하거나 섭섭하지 않았다.
살다 보니 누군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러서 신뢰가 깨지고 그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부수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서로 죽일 듯이 싸워야만 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대화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로의 뒷모습을 보며 적의가 담긴 눈길을 쏘아대는 순간 헤어짐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p229

사랑도, 이별도 거창한 게 아니라는 것.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말자는 다독임. 위로.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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