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닫힌 문 창비시선 429
박소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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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말이 없는 사람입니까

이어폰을 꽂은 채 줄곧 어슴푸레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

더군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태운 7019번 버스는 이제 막 시립은평병원을 지

났습니다 광화문에서부터 우리는 나란히 앉아 왔지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눈을 준 이 저녁이 조금씩 조금씩 빛으로 물들어

간다고

건물마다 스민 그 빛을 덩달아 환해진 당신의 뒤통수를

몰래 훔쳐보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입니까 당신은

오늘 낮에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가득

한 광장을 혼자 걸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그곳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 적이 있지

요 밥이나 한번 먹자 악수를 나누고서 황급히 돌아선 적이

있지요

나는 슬퍼집니다

그렇고 그런 약속처럼 당신은 벨을 누르고 버스는 곧 멈

출 테지요

나는 다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오늘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이 도시와 도시를 둘러싼 휘휘한 공기에 대해 당신

무릎 위 귀퉁이가 해진 서류가방과 손끝에 묻은 검뿌연 볼

펜 자국에 대해

당신은 이어폰을 재차 매만집니다

어떤 노래를 듣고 있습니까 당신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

그 노래를 나도 좋아합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문이 열립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당신이 유유히 문을

나섭니다 당신의 구부정한 등이 저녁의 미지 속으로 쓸려

갑니다

우리는 헤어집니다 단 한번 만난 적도 없이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

- <모르는 사이> 전문,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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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

소란, 소란 하고 소리내어 발음해 본다.

수런수런, 도란도란, 속닥속닥, 떠오르는 단어들을 같이 발음해 보다가 혼자 수줍게 웃는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수줍은 인사를 떠올린다.

한번도 만난 적 없이 헤어지는 버스 안의 낯선 사람들을 떠올리고, 내리는 사람의 등 뒤를 가만히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쓸쓸할 것 같은 모습이지만, 어쩐지 온기가 돌 것만 같은 버스 안의 모습을.

 

'지난 연애란, 그러니까 이별이란 가장 뜨겁게 버려진 기억이 아닐까. 스스로의 의지(?)로 끝을 낸 경우든, 어쩔 수 없이 끝을 당한 경우든, 연애는 결국 지는싸움이 되고 만다. 그러니 그 싸움의 기억은 절대적이다. 시는 어떤 식으로든 피 흘리는 기억을 보듬어 안을 운명에 처해 있다. 지난 날의 나는 시가 사랑을 더욱 탐스럽게 치장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시가, 사랑을 시로 쓰는 일이 그 살이 꿈틀대는 사랑을 죽이고 또 죽여서 곁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일임을 알 것 같다.

『나는 매번 시 쓰기가 재미있다 』 중 박소란의 <전부를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중에서'

오래전(이라고 했지만 2017년) 읽었던 『나는 매번 시 쓰기가 재미있다 』 라는 책에서 박소란 시인이 쓴 <전부를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를 읽고 메모해 둔 문장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때 그 글을 읽으면서 저 문장이 좋아서 여러번 읽었던 기억이 다시금 새록새록.

몇 편의 시를 계간지를 통해 읽었는데 다시 시간이 지나 시인의 시집을 만났다.

가장 뜨겁게 버려진 기억, 피 흘리는 기억을 보듬어 안는, 그 말들이 좋아서 옮겨 적어두었는데 이번 시집 속의 시들을 읽으면서 나는, 시인이 보듬어 안은 세상을, 사람들을 더듬더듬 쫓아 다녔다.

모든 詩들은 '삶'을 향해 있음을 매번 느낀다.

어떤 글이든 안 그러겠냐만 유독 좋은 시들을 읽을때면 그게 더 뚜렷하게 각인된다.

짧은 언어로 담아내는 세상과 사람들을 쫓아 다니다보면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삶'이 조금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돌진하였네 내 너머의 빛을 향해

나는 조용히 나동그라지고

한 사람이 내 쪽으로 비질을 하였네 아무렇게나 구겨진

과자봉지처럼

내 모두가 쓸려갈 것 같았네

그러나 어디로도 나는 가지 못했네

골목에는 금세 굳고 짙은 어스름이 내려앉아

리코더를 부는 한 사람이 있었네

가파른 계단에 앉아 그 소리를 오래 들었네

뜻 없는 선율이 푸수수 귓가에 공연한 파문을 일으킬 때

슬픔이 왔네

실수라는 듯 얼굴을 붉히며

가만히 곁을 파고 들었네 새하얀 무릎에 고개를 묻고 감

시 울기도 하였네

슬픔은 되돌아가지 않았네

얼마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는, 그 시무룩한 얼굴을

데리고서

한 사람의 닫힌 문을 쾅쾅 두드렸네

- <감상> 중에서,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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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라는 듯 얼굴을 붉히며 다가 온 슬픔, 다시 되돌아 가지 않은 슬픔.

그 슬픔을 털고 일어나 닫힌 문을 두드리는 순간, 울음이 멈췄을까. 울음을 애써 참아야 했을지도 모를 어떤 외로움이, 그 외로움을 털어내고 싶어 문을 두르리는 주먹이, 그 쾅쾅거림이 느껴졌다.

시인의 시들 속에서 사람들은 어디로 갈 지 모르고, 종종 울고, 자주 가엽고, 멈칫거린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서 나도모르게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는데 그 가라앉음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만 들릴듯한 목소리로, 내안의 나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같은 시들이었다.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게 만드는 시들이어서 좋았다.

나는, 매번 흔들리지만

나는, 자주 외롭지만

나는, 때론 두렵기도 하지만

나는, 이따금 미치도록 누군가 그립기도 하지만

나는, 한번씩 미친듯이 소리지르고 싶기도 하지만

나는,

나는,

그럼에도 다시. 씩씩하게 털고 일어나 또 걸어가고 있다고 그러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고요한 새벽, 토닥토닥 누군가의 등을 어루만져주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

화를 내는 것 굳게 팔짱을 끼고 성마른 등을 보이는 것

이제 막 하나의 심장을 받아 소용돌이치는 사람처럼 이

별을 모르는 사람처럼

미안, 눈물이 돈다 처음부터 미안을 기다려온 사람

처럼 단지 미안만을

고개를 떨군 채 말없이 내민 손을 붙드는 것

비 갠 오후 성당 돌담길은 더없이 평온해

세상 마지막 인사인 듯

물기 번진 잎사귀를 매달고 걷는 것

바람이 살랑이고 슬며시 웃음이 고이고 잠시 잠깐 기도

를 떠올리는 것

토라졌다 때마침 화를 푼 사람처럼

하늘의 표정은 맑고 사랑에 빠질 듯 찰랑거리고 모든 게

그만 괜찮아

괜찮아, 하면 눈물이 돈다

이별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 이토록 정다운 사람처럼

- <정다운 사람처럼> 전문, p102

 

-------------------------------------------------------------------------------- 

저 작고 무른 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기르나 어떻게

사랑하나

저 알 수 없는 것을

자꾸만 꼬물꼬물 숨 쉬는 것을

부둥켜안고 어디로 달려가나

순백의 울음소리가 병원 복도를 번쩍이며 스칠 때

더운 가슴팍을 할퀼 때

사람들은 아프고

잇따라 울고

또 어떻게 웃을 수 있나

저 작고 무른 것을 두고

살아야겠다

살아야겠다 기도할 수 있나

불 꺼진 진료실 앞

멀거니 앉아 순서를 기다릴 때 어떤 삶은

까무룩 쓰러지듯 잠들 때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고

더욱더 선명하고

어떻게 웃을 수 있나

어떻게

나는 태어날 수 있나

- <아기> 전문,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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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를 잡는다 그가 잡은 것을 그녀가

그녀가 잡은 것을 그가

잡는다

마치 사랑을 하는 사람들처럼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는다

잡았다 놓는다

그러다보면

문은 스르르 열리곤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아귀힘을 풀곤 하는 것이다

문의 순순한 가슴팍을 두드리며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들

어오고 나간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문을 열리고 닫히는 사이

손잡이가 돌고 도는 사이

손들은 너무 쉽게 뜨거워지고, 함께 가요 우리 문 저편

그럴듯한 삶을 시작해 봐요

그러다보면

남몰래 열이 든 손잡이도 그만

손이 되고 말 것 같지만

꼭 쥔 주먹을 풀고 엉거주춤 하나의 주머니 속을 파고들

고도 싶지만

손은, 아니 손잡이는

그러지 않을 작정이다

그렇게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 <손잡이> 전문,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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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이라는 말이 좋아

불쑥 오는 버스에 불쑥 올라 불쑥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

그런 일이 좋아

나는 그에게 사랑을 고백할 텐데 불쑥 우리는 사랑할

텐데

고단을 가득 태운 버스가 우리를 창밖으로 내팽개친대

도 그리고 모른 체 달려간대도

우리는 깔깔 웃을 텐데 별일 아니라는 듯

이봐, 이걸 보라구, 여기 불쑥이란 게 있다구

아하, 그렇군!

걱정 없을 텐데

이제부터 나는 불쑥이 될게, 실없는 농담을 해도 그는

고개를 끄덕일 텐데

어이 불쑥, 반색하며 불러줄 텐데

그러면 대답할 텐데 응, 하고

불쑥이 대신

불쑥은 내가 될 텐데

나는 불쑥 뒤에 숨어 숨바꼭질처럼 살 텐데

우리는 깔깔 웃을 텐데 별일 아니라는 듯

불쑥 왔따 불쑥 갈 텐데 술래도 모르게 나는, 멀리 저 멀

리 갈 수 있을 텐데

- <불쑥> 전문, p142

 

한사람의닫힌문, 박소란, 리뷰, 모르는사이, 불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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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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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밖으로 나오니 창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오빠와 동생에 전화해서 엄마를 모셔다드리고 왔다고 말했다. 딸의 출산 소식을 전하자 일이 겹쳤으면 얘기하지 그랬냐며 오빠와 동생은 각자의 성격대로 걱정하고 염려했다. 엄마는 좀 어떠셔? 두 사람의 질문은 거기에서 만났다. 오늘 엄마가 어땠던가. 나는 비로소 마음을 가라앉히며 하루를 돌아보았다. 입맛이 없었고 손에 땀이 자주 났다. 마음이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여기에서 저기로 자꾸 달려갔다. 한 페이지밖에 되지 않지만 책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지나간 것 같았다. 시간을 내어 찬찬히, 책장을 넘기며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떠올리자 이상하게 웃는 얼굴만 생각났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은 희미했다. 엄마가 많이 웃었다고 하자 오빠와 동생은 모두 울먹거렸다.
나는 시큰거리는 팔목을 천천히 주물렀다. 한 장면만으로 기억되는 하루, 하나의 표정으로 남는 얼굴도 나쁘지 않구나 싶었다. - <변해가네> 중에서, p179」

언제부턴가 서유미 작가의 소설에 빠져들었다.
그건, 환상이나 상상에 기대지 않는, 힘겹지만 철저하게 두 발을 땅에 딛고 있는 버티는 사람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버티는 사람들의 삶이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다.
작가의 최근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는 늘, 한가지  '버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 친구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별것 아닌 하루하루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하는데, 그게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푹, 빠져들고 말기를 여러 번.

이번 소설집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 역시 그랬다.
위에 발췌해서 적은 부분은 <변해가네>라는 단편의 마지막 문장이다.

딸아이를 결혼시키고 나서야 이혼을 실행에 옮긴 한 여자.
딸이자, 엄마인 한 여자의 삶의 이야기. 흔히 주변에서도 어쩐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한 여자의 하루를 따라가는데, 나의 모습이. 엄마의 모습이, 딸아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무겁거나, 유독 슬프거나 한 내용도 아닌데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뭉클, 했다.
이상하다.

작가의 마법에 걸려버렸다.

<휴가>라는 단편에서는 평일에 휴가를 얻은 한 부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나와, 나와 같이 사는 남자의 평일 휴가의 모습 같아 읽는 내내 공감했다.
'시계를 본 순간 휴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하루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라고 시작되는 첫 문장부터 그랬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거나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직장인에게 평일의 휴가란 얼마나 달콤하고 소중한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시작부터 끝나버렸다고 느낀 부부의 휴가.
결국
'하루 잘 쉬었다.
아무 데도 안 가고 쉬는 것도 괜찮네.'
하고 끝나버린 휴가. 그런 휴가를 한두 번 이상 보내본 사람들이라면 아, 하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이야기다.

「이혼을 결정한 뒤 그녀와 나는 우리 관계가 왜 이렇게 되었나,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살던 집은 어떻게 하고 물건을 어떻게 나누고 앞으로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빨리 혼자가 되고 싶은데 한집에 묶여 있어야 하는 현실이 갑갑했다. 중개업소에 집을 내놓고 팔리는 대로 즉시 돈을 나누는 것만이 해결책인 것 같았다. - <이후의 삶> 중에서, p144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이혼을 앞두고 있다면 저런 고민을 하는 게 당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책임이 크고, 마음이 아프고,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이라도 잘 살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어쩐지 더 현실적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갑작스럽게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주인 때문에, 한 해의 마지막 날 집을 보러 다녀야 하는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 <에트르>는 이미 다른 작품집에서 한 번 읽은 소설이었지만, 다시 읽었다.
어쩐지, 이 소설집 속에서 더 잘 어울리는 듯한 소설이었다.

일곱 살 첫째와 5개월 둘째를 데리로 떠났던 1박2일의 짧은 휴가 끝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더운 날씨에 힘들다 수시로 징징거리는 두 딸, 별일 없었지만 그런 아이들 틈에서 괜히 심드렁해져 버린 우리 부부. 잘 놀고 왔다, 집에 돌아와 널브러져 누우면서 던지는 의례적인 말(물론 진심도 포함된), 늦은 밤 내일 출근 걱정을 하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

소설이 살아내는 현실과,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내 삶, 어쩐지 너무 재미없는 거 아니야 괜히 볼멘소리를 내뱉는 밤.

다, 작가의 소설 탓이다.
그러니, 버티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현실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들려주길.
들리지도 않을 투정을 부리는 밤. 그렇게 나의 하루와 헤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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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다르다 - 형제자매, 재능과 개성을 살리고 갈등 없이 키우는 법
김영훈 지음 / 한빛라이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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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나는 세 살 터울이다.
이제는 세 살 터울이라는 게 별 의미 없이 친구처럼 지내지만 그래도 '언니'는 '언니'구나 느낄 때가 여전히 많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둘째라서 특별히 힘들었거나 혹은 반대로 좀 더 특혜를 받았거나 했던 기억은 없지만 어쩌면 언니 입장에서는 첫째라서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혜라면 특혜였을 일들 하면 떠오르는 게, 어릴 때 우리 집은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딸들에게 자유롭게 학원을 보내 줄 상황이 아니었는데, 그래서 언니는 자라면서 그 흔한 피아노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받거나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3년 늦게 태어나서 그래도 그 3년 사이에 좀 나아졌던 건지, 피아노 학원도 다녀봤고, 소규모 과외도 받아봤고, 속셈 학원도, 주산학원도 다녀봤다. 아, 이렇게 적고 보니 늦게 태어나 받은 특혜 맞는 거 같다.

소아청소년 전문의 김영훈 박사의 둘째는 다르다』를 읽으면서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돌아봤다. 내가 둘째라서, 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지금 나는 둘째에게 좀 더 마음을 쏟나 생각해보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여전히 첫째 윤에게 마음을 더 쏟는다. 핑계는 있다. 둘째 민이는 이제 겨우 4개월 아기라 먹여주고 재워주고, 편하게만 해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엄마 입장에서의 생각.
첫째 윤은 오롯이 혼자 받던 사랑을 동생과 나누게 돼서 힘들어하니, 당연히 좀 더 마음을 쏟아야지 하는 역시 엄마 입장에서의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은연중에 둘째는 자연스럽게 커가면서 첫째보다 더 이쁨 받을 거야, 더 특혜 받을 거야, 그 사이 큰 아이는 상처받을 수도 있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이 책 속에는 첫째의 기질과, 둘째로 태어난 아이들의 기질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둘을 어떻게 다르게 대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아직 둘째는 낳지는 않았지만, 둘째를 계획하고 있는 부부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조건에서 둘째를 낳아 양육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을 건넨다.

성공한 사람 중엔 왜 둘째가 많을까?
질투-둘째 아이는 늘 사랑받고 싶다
경쟁-둘째는 다른 형제보다 더 잘하고 싶다
자기 주도성-둘째는 혼자서도 잘한다
형제자매, 어떻게 달리 키워야 할까

위의 다섯 가지 주제가 책 속에 담겨 있다.

「대부분의 부모는 첫째에게 양보를 강조한다. 환경이나 성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첫째는 배려심이 깊은 편이다. 또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따라서 첫째는 스스로 부담감을 느끼고 노력하려는 경향이 있어 책임감이나 계획성이 높은 편이다. p28」

「둘째는 자신의 삶을 첫째에 비추어보는 경향이 강하며 좀 더 자유롭고 낙천적이다. 첫째와 비교를 당하기 일쑤이므로 경쟁심이 강하고 일탈을 일삼기도 한다. (중략) 둘째는 책임을 회피하고 덜 혼난다. 둘째는 덜 혼나기 때문에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으며, 반항적이고, 규칙을 어기는 일도 많다. 둘재는 장난스럽고, 창조적이며, 충동적이고, 사회성이 강하고, 외향적이고, 느긋하며, 태평한 기질을 갖는다. 또한 둘재는 창의적으로 자유로운 태도를 가질 가능성이 크고, 협동심이 강하며, 다른 사람의 관점을 더 잘 이해한다. p29」

둘째인 나의 경우를 대입해 보니,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책 속의 내용을 읽다 보니 분명 기질적인 것도 중요하겠지만 환경적인 부분이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도, 둘째는 다르니 이렇게 키우세요. 하고 이야기하는 거겠지.
부모가 첫째와 둘째, 혹은 셋째를 각각 어떻게 양육하느냐에 따라, 그 집 안의 양육 분위기에 따라 아이들은 충분히 기질과 다르게 클 수도 있다는 이야기.

첫째는 원래 그래, 둘째는 뭐 어쩔 수 없지. 같은 뻔한 이야기 말고, 부모 스스로 위안하는 거 말고, 이제 좀 똑똑하게, 현명하게 아이들을 양육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부담이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역시 부모가 되는 일은,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낀다.

둘째를 갖기 전에 부모들이 먼저 알면 좋을 이야기들, 워킹맘이 두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 아빠의 양육 참여도. 어찌 보면 다 알듯한 이야기이면서도 글도 다시 읽으니 아, 이건 신랑에게도 읽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는 부모가 하는 일이니까. 대부분의 육아서가 엄마를 위주로 되어 있어서 '엄마'가 느껴야 하는 책임감이 더 크게 부각되는 듯도 한데, 둘째가 태어난 이후 내가 가장 절실히 느끼는 건, 바로 부모의 적절한 육아 동참이다. 특히 맞벌이일 경우 두 사람의 연봉이나 근무시간 같은 건 부차적인 문제고, 심리적으로 함께 육아를 한다는, 그 인식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

역시 다 아는 내용인 듯하면서도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게 한 부분은,
<형제자매를 행복하게 키우는 양육 가이드>를 읽으면서다.

● 꾸짖을 때 첫째와 동생을 비교하지 마라
칭찬할 때도 비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라
아이 자신의 발전을 칭찬하고 격려하라
첫째가 참여의식을 느끼도록 해주어라
형, 동생을 강조해서 서열에 맞는 자기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마라

문제는 늘, '~다워야지'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데서 비롯되는 듯하다.
첫째다워야 하는 거, 둘째 다운 거 이런 생각만 없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듯도 한데 실생활에서는 참 이것도 왜 이렇게 어려운지.

얼마 전 신랑이 큰 아이에게"엄마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했어~"라고 말했다.
별것 아닌 엄마의 주문을 아이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이 튀어나왔다.
"윤아, 누구 말 잘 듣는다고 떡 생기는  거 아냐. 너 생각대로 그게 맞으면 그대로 살면 돼."
그 말을 해놓고 나서야 생각했다. 그래, 나는 아이가 누구의 말대로, 누구의 생각대로 강요받으며 자라길 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생각을 올바로 갖는 아이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두 아이가 커가면서 분명 싸울 것이고, 나는 그 중간에서 애태우는 순간들이 일어날 테지만, 두 아이의 싸움을 중재하는 역할보다 마음이 상했을 두 아이를 온전히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책 속에도 그런 내용이 있어서 읽으면서 반가웠는데, 이 내용은 <터울이 적은 아이들의 자립심 키우기>라는 글에 적혀 있는 일부분이다.
부모가 재판관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싸움도 나름의 뿌리 깊은 이유가 있다. 그런데 당장의 싸움만 가지고 잘잘못을 가리면 분명 누군가 억울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부모는 너희들이 싸우면 속상하고 멈췄으면 한다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잘 알 것이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부모가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 있다고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한다. p190」

나의 경우에는 큰 아이와 둘째 아이 터울이 조금 크다 보니 해당 내용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터울이 큰 형제자매의 자립심을 키우기 위한 양육 가이드>

첫째라서 좋은 점을 많이 알려주어라
억지로 동생에게 잘 해줄 것을 강요하지 마라
둘째가 첫째 아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하라
둘째라고 과잉보호하지 않는다
첫째하고만 보내는 시간을 가져라
첫째가 에너지를 해소할 수 있는 긍정적인 활동을 마련해주어라

생각해보면, 언제부턴가 나는 '언니'가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게 됐다.
친구이면서 자매이면서 내겐 몇 년 더 세상을 살아낸 선배이기도 한 사람임과 동시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끈끈한 애정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동지로 느껴진다.

크면 다 잘 놀아, 크면 알아서들 친해진다, 이런 말을 어른들에게 간혹 듣기도 하는데 그것도 아마 그 집 안의 분위기, 엄마 아빠의 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까. 사이가 좋은 부모 밑에서 사이좋은 형제자매가 나올 확률이 높을 것이고(물론 사이가 나쁜 부모 밑에서는 형제자매끼리 더 똘똘 뭉치기도 한다), 서로 함께 한다는 의지가 되는 관계를 돈독히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양육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늘 결론은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로 끝나서 책임감을 한껏 갖게 되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나를 생각하게 되고, 나의 자리, 나의 역할,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볼 수 있다는 건 큰 소득이다. 그 경험들로 나는 다시 나의 아이들을 키워나갈 테니 말이다.

둘째 이상의 자녀를 가진 부모, 둘째를 계획 중인 부모들이 읽으면 소소하게 얻을 수 있는 도움의 이야기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하고 싶은 책 속의 이야기는,

'비교하지 마라'
'아이들 각자의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해줘라'
'아이들 각자에게 부모를 독점할 시간을 선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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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창비 블로그에서 300명의 사전 독자를 모집한다는 포스팅을 보고 덜컥, 신청해 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내게는 단단하게 봉해진 가제본 책 한 권이 도착했다.

 가제본 된 300권의 책 중, 243번째 책이다.
300명의 사람들 중 나는 이 책을 가장 늦게 읽었거나, 가장 버벅거리며 읽지 않았을까.

「상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시월의 어느 깊은 가을날 우리가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와의 이별에 관한 회상이었지만 그래도 그 밤 내내 여러 번 반복된 이야기는 오래전 겨울, 미안해, 내가 좀 늦을 것 같아 눈을 먼저 보낼게,라는 경애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며 같이 울었던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 서로가 서로를  채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서 비로소 나는 이 소설을 처음부터 읽게 되었다.
마지막에 와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 소설 중간의 내용들이 이상하거나 복잡해서가 아니라, 비로소 그 어떤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이제 그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경애(敬愛)의 마음』이라는 제목에 처음부터 집중했던 건 아니었다.
소설 속 주인공 경애의 마음 정도로 이해하고 읽기 시작했달까. 그러다 읽으면 읽을수록 다의적 의미로 다가오는 '경애(敬愛)의 마음'을 쫓아다니느라 여러 번 길을 잃었다.

잘 읽히는 소설임에 분명하다. 그런데도 종종 길을 잃는 건, 내가 찾지 못한 그 '마음'때문이었을 거다.

소설은,
1999년, 고등학생 시절에 호프집 화재 사건으로 친구들을 한꺼번에 잃은 경애와, 소중한 한 친구를 잃은 상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닌 이들이 그렇듯, IMF를 겪으면서 대학을 다녀야 했고, 취업난에 시달리는 세대였고, 정규직 비정규직의 이분화된 조직에서 헤매는 세대였다. 팀원이 없는 팀의 팀장이 된 상수와, 존재감 없던 경애의 직장 생활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되고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선배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떠나보내야 했던 경애와 보이지 않는 인터넷 세계에서 사랑에 대한 글을, 조언을 해주던 상수.
떠난 뒤에도 끝내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옛 연인을 뿌리치지 못하고 은근슬쩍 다시 만나면서도 시작도 끝도 아닌 관계에 힘들어하는 경애와, 그런 경애의 고민에 익명의 조언을 건네는 상수.

얽히고 풀리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나는 그들의 마음을 찾아다니느라 함께 헤맸던 것 같다.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 어떤 아픔과 과거가 있었더라도 지금의 삶에 충실히 살고자 하는 간절함, 놓쳐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 혹은 완전 끝, 하고 외치고 싶은 갈팡질팡하는 마음, 떠난 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남은 삶에 대한 두려움 혹은 약간의 희망,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과 그들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마음이 이 소설에 담겨 있는 듯하다.
상실에 대한 경애, 삶에 대한 경애, 사랑에 대한 경애, 사람에 대한 경애.

소설은 끝이 났지만, 삶은 끝나지 않았다는 어떤 무언의 메시지.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문단에서 나는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 소설 속의 상수와 경애가, 떠난 이들을 마음에 품은 남겨진 이들이 앞으로 살아내야 하는 쉽지 않을 현실이 경애(敬愛)의 마음으로 가득 차기를 바라면서.

사족 1.
나는, 이 소설 속의 어떤 인물보다 주연도, 비중 있는 역할도 아니지만 경애의 삶에 끊임없이 걱정해주고, 쓴소리를 던져주는 미유라는 인물에 자꾸 마음이 갔다.
미유가 경애에게 던지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어쩐지 정말 친구가 친구에게 사랑을 담아야 건넬 수 있는 말들 같아서.
그런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이 소설의 분위기를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들어 준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사족 2.
작가의 단편 <체스의 모든 것>에서도 느꼈지만, 작가가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을 설정하는(표현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방식이 참 좋다. 주인공의 주인공화된 삶이 아닌 주변인들과 엮여야 살아갈 수 있는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서.

사족 3.
욕심이었다. 천천히 읽었으면, 오래 두고 읽었으면 참 좋았을 소설이라서.
정해진 시간 내에 읽어내야 한다는 게 자꾸 조바심을 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그렇게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소설이었다.

경애는 차라리 회사를 나갈까 싶기도 했다. 그때 경애의 엄마가 유방암 판정을 받지 않았다면, 미용실을 닫고 항암치료를 하지 않았더라면 경애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아닐지도 몰랐다. 경애는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는 죄책감과 그건 절대 자신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자기방어 속에 놓여 있었는데 그 사이를 갈팡질팡하면서도 일관되게 도망가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다.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것, 한번 도망가 버리면 다시 방에 웅크리고 앉아 계절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했다.

고통을 듣기 위해 귀를 최대한 열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앞에 두고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무엇보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소음 같은 것이 상상되었다. 아주 일상적인 소음일 것이었다. 냉각팬이 돌거나 의자가 끌리거나 때론 야근하는 직장 동료가 기지개를 켜면서 아직 안 갔어? 하는.
그 누군가는 지금 사랑을 잃었기 때문에 그런 일상적인 소음들과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마치 공동처럼 그 모든 일상과는 상관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 그 공동에는 너무 많은 중력이 가해지거나 아니면 아무런 중력도 가해지지 않아 스스로가 완전히 버려진 기분일 테고, 상수가 늘 충분히 가지고 있었던 기분이었다.

마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대체 끝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실감하고 확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끝이 만져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느끼는 것이고 사상하고 인식하는 것인데 지금 내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끝을 말해. 끝을 말하려면 지금 경애 발밑으로 너풀거리며 나뒹구는 아이스크림 포장이나, 택시의 노란 헤드라이트 불빛같이 눈아에 지나가는 어떤 것도 아픔을 환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어떤 풍경도 산주 선배를 떠올리게 하지 않고 지시하지 않는다고

산주 선배가 결혼하고 3년이 지나는 동안 경애는 언제든 아, 이런 것이 끝이구나, 정말 끝이다, 끝, 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로맨스가 종료됐다는 것은 느꼈지만 경애의 마음이 멈춰지지는 않았다.
경애의 이런 상태를 못 견뎌하는 미유는 경애를 설득하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유를 들었다. 어린아이가 자기 손에서 놓아버린 풍선을 허공에서 찾는 것, 당뇨 환자가 여전히 당분이 든 음식을 탐하는 것, 폐암 말기 환자가 흡연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것, 허기가 지는데 잘 차려놓은 칠첩반상을 놔두고 굳이 불량식품으로 배를 채우려고 하는 것. 미유는 하나를 잃지 않으려다가 어쩌면 너 자신을 다 잃을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경애는 그 말들을 자신에 대한 미유의 애정으로 받아들였고, 미유가 자기가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소개팅 자리를 만들면 선선히 나가서 앉아 있었다. 미유 말대로 대부분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이 남자들은 어디서 뭘 하며 괜찮게 있다가 자기 앞에 나타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기 위해서는, 그렇게 안녕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행운이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야 했고 자라야 했고 먹어야 했고 사고를 피해야 했고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불운을. 불운이라고 말하면 그것이 대체 피할 수 있는 건가 싶은데, 적어도 살아 있다면 그것을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경애는 알았다. 고등학생이었던 1999년에 가까웠던 친구들을 한번에 잃어봤기 때문이었다.

6년간의 연애가 끝이 나야 했다면 그건 그런 세속의 셈법이 아니라 사랑 본질의 것, 슬프게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불연속의 속성이기를 원했다. 적어도 경애에게 이별을 통보할 때 산주는 경애의 선배이기도 한 그 여자를 선택하면서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어,라고 정확히 이야기했으니까. 그대 둘은 막 끓기 시작한 전골을 앞에 두고 있었는데 이윽고 경애가 왜, 왜 그런 일이 벌어졌지,라고 묻자 그렇게 되었어, 좋아하게 되었어,라고 다시 말했다. 내가 너를 우연히 좋아한 것처럼 그런 일은 그렇게 되어졌어, 라고

‘산다‘라는 것이 있어서 수많은 것들이 생장하며 싸우며 견디고 있다는 것. 다행히 그런 것들이 여전히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여름의 낮을 보내다 경애가 슬리퍼를 끌고 시장으로 나가면 그 살고 있는 것들을 두 손 무겁게 사들고 어쨌든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경애도 아무튼 살고 있다는 것. 그런 마음이 들면 경애는 불현듯 약속을 잡아보다가도 낮이 되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외출을 취소하곤 했다

경애는 산주와의 일을 말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경애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천천히 혼자 가라앉고 있었다. 산주는 경애가 그런 관계의 한계에 대해 말하면 며칠이고 연락을 끊었다가 아주 상처받은 얼굴로 나타나 그냥 옆에 좀 있으면 안 되겠니? 하고 물었다. 그냥 내가 좀 아픈데 그러면 정말 안되겠어?
그 상황을 알게 된 미유는 당장 산주에게 전화하겠다며 흥분했다. 경애가 산주는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수 있다고, 들어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을 찾아오는 것뿐이라고 설명했지만 미유는 그게 얼마나 이기적인 일이니, 인생 망했는데 지금 바람이라도 나자는 거니,라고 말해서 경애를 슬프게 만들었다. 경애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간 미유는 다시 전화해 난 너가 안 힘들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그런 기약 없는 일에 아까운 인생 소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건 사랑도 아니잖아."
"아니지."
"아닌데 왜 그래? 왜 그래야 해? 너가?"

엄마는 불행했을까?
그렇게 불행이라는 글자를 붙들고 있으면 아파트의 나머지 빈 공간이 그런 온갖 거들로 가득 차고는 했다. 더이상 연락이 없는 산주가 방 어딘가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완전히 밀어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머리에서 다 지워낸 것은 아니라서 경애는 불행하지 않아? 하고 물어보고 싶어지곤 했다. 미유는 우리가 헤어져서 이제 발을 뻗고 잘 수 있겠대. 미유 딸이 열한시 정도가 되면 귀신같이 그 시각을 알고 우는 야경증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힘들었대, 내가 선배를 만나는 시간이. 특정 시간이 되면 그것이 왔다는 걸 감각하고 온 힘을 다해 울 수 있는 아기라니 부럽지 않아?


우리는 같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러니까 누워서 종일 음악만 듣다가 먼저 배고픈 사람이 일어나 라면을 끓였던 스무 살 시절의 우리와, 한강에서 오리배를 보고 있던 지난 계절의 우리는 같은 사람이었을까. 각자 다른 차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렸던 그 밤의 우리가 같았을까. 어쩌면 손상된 것이 아닐까. 제대로 봉인되어 있던 것을 뜯어서 엉망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의문이 들면 그날 내가 까페로 나가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산은 있어? 하고 묻지 않고 옷은 왜 그렇게 입었어?라고 걱정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나도 선배가 안고 싶은데,라고 하지 않고 너랑 자고 싶어 다시 따뜻하게,라는 선배 말을 믿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잘 지내고 있어? 불행하지는 않아? 혹은 그 불행이 잘 되어가고 있어? 완전히, 후회 없이, 제대로 불행해하고 있어? 이렇게 물었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런 말들을 늘어놓다가도 정작 산주에게는 전할 수 없으니까 불행은 털실처럼 잘 말아서 이 빈 공간에 덩그러니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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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2018-05-18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사하고픈 소설입니다!
 
노후자금이 없습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고성미 옮김 / 들녘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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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인 제목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노령화되어가지만 정년은 정해져 있고, 그 이후에 뭘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건 20대부터 50대까지 혹은 이미 60대에 들어선 사람들까지도 하고 있지 않을까.
혹은 과연 정년까지는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역시.
나 역시 그런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년이 보장되어 있긴 하지만, 정년까지 채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연금이 나올 때까지는 뭘 하면서 살아야 하는 고민. 신랑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신랑 역시 비슷한 고민.
특히 둘째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신랑 정년이 있기 때문에 신랑은 나보다 조금 더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책 「노후자금이 없습니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우리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다. 물론 소설에선 남편도 아이들도 별 고민 없는데 아내 혼자 고민하고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은행계 신용카드회사에서 사무직으로 10년이 넘게 일하고 있는 아츠코는 남편과 딸, 아들을 둔 주부다.
50대 부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중이거나 취업을 앞둔 자녀를 둔 평범한 가정.
 요양병원에 있는 시부모님에게 월마다 9만 엔씩을 지출하고 있고,
결혼을 앞둔 딸은 시댁에서 요구하는 대로 결혼식 피로연에 6백만 원을 들여야 하는 상황.
아츠코는 다가올 딸의 결혼식 자금으로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을 걱정하고, 남편은 그래도 사돈 보기에, 남들 보기에 꿀리지 않는 결혼식을 해주고 싶어 한다.
남편은 월급을 받아 아내에게 주고, 경제 상황에 대한 모든 문제는 아내가 처리하고 해결해왔다.
아츠코의 말처럼, 남편은 아내가 마치 돈을 쌓아두고 있기라도 한 듯, 지출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남편 말대로 그 정도 돈은 써도 될지 모른다. 매사를 너무 동동거리며 걱정하는 자신의 조바심이 좀 심한 것일지도......
자식이 둘 다 독립하면 돈뿐 아니라 시간적인 여유도 생겨날 것이다.
-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 혼자 지내보고 싶다.
지금까지 늘 이런 바람을 마음속으로만 간직한 채 살아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츠코는 단 한 시간만이라도 좋으니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간절히 원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꽁꽁 묶여 지내는 느낌이다. 하루 24시간을 몽땅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삼고 싶다는 바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한받지 않는 자유에 대해 갈망으로 변해갔다. 50을 맞이하던 생일날, 이제 살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생활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때면 누구나 이미 늙어버린 후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원래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p21

'엄마라는 생활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때면 누구나 이미 늙어버린 후다.'

하아- 이 문장이 왜 그렇게 콕 와닿는지. 나의 젊음을 육아에 바치고, 늙어서 자유로우면 뭐 해. 싶은 마음이 불쑥 들 때가 있는데, 체념하듯 남긴 작가의 다음 말 '안타깝기는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원래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에서 나도 모르게 또 공감해버리고 말았다.
선택했던, 선택됐든 '엄마'라는 삶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 말이지.

아츠코는 10년이 넘게 다닌 회사에서 계약만료로 퇴직을 당하고, 남편 역시 정리해고.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 아직 돈이 들어가야 할 데가 많이 남은 50대 부부에게 노후 걱정은 어쩌면 당연한 일.
거기에 결혼한 딸 걱정, 시아버지 장례,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님 걱정까지.

소설 속의 이야기가 어쩐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들이라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게 된 소설이다.
걱정을 안게 하는 소설이지만 덕분에 먼 미래라고만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을 주기도 했던 소설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소설이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다.
중간중간 황당하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한 에피소드들에서는 소소한 웃음이 나게도 한다.
뭐랄까, 우리가 하는 걱정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달까.

나는 종종 헷갈리는데,
지금을 즐기면서 살고 싶은 마음과, 아이들을 위해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마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하는 것을 무조건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마음, 이런 것들이 내 안에서 수십 번씩 다툰다.
가계부를 쓰면서 아껴야지, 하다가도 나를 위해 장바구니 한가득 책을 담아 주문하는 날 슬쩍 모르는체하면서 그렇게 여전히 갈팡질팡.
그럼 어때. 그게 사는 거지. 하는 자기 위안까지.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뭐가 맞는지 정답은 없는 삶이니, 나에게 맞는 적절한 삶의 질을 위해 소소한 노력을 하면서, 그 가운데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또 그렇게 오늘을, 내일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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