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이 없습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고성미 옮김 / 들녘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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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인 제목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노령화되어가지만 정년은 정해져 있고, 그 이후에 뭘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건 20대부터 50대까지 혹은 이미 60대에 들어선 사람들까지도 하고 있지 않을까.
혹은 과연 정년까지는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역시.
나 역시 그런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년이 보장되어 있긴 하지만, 정년까지 채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연금이 나올 때까지는 뭘 하면서 살아야 하는 고민. 신랑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신랑 역시 비슷한 고민.
특히 둘째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신랑 정년이 있기 때문에 신랑은 나보다 조금 더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책 「노후자금이 없습니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우리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다. 물론 소설에선 남편도 아이들도 별 고민 없는데 아내 혼자 고민하고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은행계 신용카드회사에서 사무직으로 10년이 넘게 일하고 있는 아츠코는 남편과 딸, 아들을 둔 주부다.
50대 부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중이거나 취업을 앞둔 자녀를 둔 평범한 가정.
 요양병원에 있는 시부모님에게 월마다 9만 엔씩을 지출하고 있고,
결혼을 앞둔 딸은 시댁에서 요구하는 대로 결혼식 피로연에 6백만 원을 들여야 하는 상황.
아츠코는 다가올 딸의 결혼식 자금으로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을 걱정하고, 남편은 그래도 사돈 보기에, 남들 보기에 꿀리지 않는 결혼식을 해주고 싶어 한다.
남편은 월급을 받아 아내에게 주고, 경제 상황에 대한 모든 문제는 아내가 처리하고 해결해왔다.
아츠코의 말처럼, 남편은 아내가 마치 돈을 쌓아두고 있기라도 한 듯, 지출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남편 말대로 그 정도 돈은 써도 될지 모른다. 매사를 너무 동동거리며 걱정하는 자신의 조바심이 좀 심한 것일지도......
자식이 둘 다 독립하면 돈뿐 아니라 시간적인 여유도 생겨날 것이다.
-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 혼자 지내보고 싶다.
지금까지 늘 이런 바람을 마음속으로만 간직한 채 살아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츠코는 단 한 시간만이라도 좋으니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간절히 원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꽁꽁 묶여 지내는 느낌이다. 하루 24시간을 몽땅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삼고 싶다는 바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한받지 않는 자유에 대해 갈망으로 변해갔다. 50을 맞이하던 생일날, 이제 살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생활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때면 누구나 이미 늙어버린 후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원래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p21

'엄마라는 생활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때면 누구나 이미 늙어버린 후다.'

하아- 이 문장이 왜 그렇게 콕 와닿는지. 나의 젊음을 육아에 바치고, 늙어서 자유로우면 뭐 해. 싶은 마음이 불쑥 들 때가 있는데, 체념하듯 남긴 작가의 다음 말 '안타깝기는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원래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에서 나도 모르게 또 공감해버리고 말았다.
선택했던, 선택됐든 '엄마'라는 삶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 말이지.

아츠코는 10년이 넘게 다닌 회사에서 계약만료로 퇴직을 당하고, 남편 역시 정리해고. 점점 줄어드는 통장 잔고. 아직 돈이 들어가야 할 데가 많이 남은 50대 부부에게 노후 걱정은 어쩌면 당연한 일.
거기에 결혼한 딸 걱정, 시아버지 장례,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님 걱정까지.

소설 속의 이야기가 어쩐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들이라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게 된 소설이다.
걱정을 안게 하는 소설이지만 덕분에 먼 미래라고만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을 주기도 했던 소설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소설이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다.
중간중간 황당하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한 에피소드들에서는 소소한 웃음이 나게도 한다.
뭐랄까, 우리가 하는 걱정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달까.

나는 종종 헷갈리는데,
지금을 즐기면서 살고 싶은 마음과, 아이들을 위해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마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하는 것을 무조건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마음, 이런 것들이 내 안에서 수십 번씩 다툰다.
가계부를 쓰면서 아껴야지, 하다가도 나를 위해 장바구니 한가득 책을 담아 주문하는 날 슬쩍 모르는체하면서 그렇게 여전히 갈팡질팡.
그럼 어때. 그게 사는 거지. 하는 자기 위안까지.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뭐가 맞는지 정답은 없는 삶이니, 나에게 맞는 적절한 삶의 질을 위해 소소한 노력을 하면서, 그 가운데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또 그렇게 오늘을, 내일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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