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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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대학에 입학하기도 전에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열 살이 넘게 차이 나는 남자와,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친구의 결혼식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오래오래 달려 도착한 곳은 '진주'의 작은 예식장이었습니다.

그날, 아주 짧은 울음을 울었고, 그 이후 오래도록 그날의 결혼식도, 그 친구도 잊고 살았습니다.

제게 '진주'라는 도시는 희미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니 어쩌면 오래전 잊힌 그냥 그런 도시입니다.

그날 '진주'에서 어쩌면 저는 아주 잠깐 어른이 되었던 것도 같습니다.

진주.라고 발음해 봅니다.

저는 어쩐지 자꾸 경건한 마음이 됩니다.

나의 이야기도 아니고, 내 아버지의 이야기도 아니고, 내 친구의 이야기도 아닌

이 소설 속의 이야기는 끝내 나의 이야기가, 내 아버지의 이야기가, 내 친구의 이야기가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합니다.

진주.

아버지가 수감되어 있던 도시.

수감되어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열 살의 아이가 처음 비행기를 타고 가본 도시.

수많은 이름 없는 민주화운동가 중 한 명이었던 아버지.

어머니와 학교 선생님들과, 부모님의 동지들은 어린아이에게 '너희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의 아버지들처럼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아버지를, 훌륭한 일을 하는데 늘 경찰에 쫓기고, 정착하지 못하고,

끝내 감옥에 간 아버지를 말이지요.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다.

앞으로도 공부 열심히 하거라. 담임선생님은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에, 나를 따로 자신의 책상 앞으로 불러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다음 해 선생님도 그 다음 해 선생님도 그랬습니다. 선생님들은 그렇게 훌륭한 분이 왜 이 세상에서 도망을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름 활자들이 작게 인쇄된 신문은 선생님 책상 위에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다. 선생님 책상 앞에 앉은 내 시선은 교실 바닥에 맺힌 작은 빛 무늬를 따라 움직여갔습니다. 먼 데서 누군가 만화경을 돌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지러웠습니다. 눈앞이 어른어른했습니다. 한 세계가 바뀔 때마다 그들의 도망 그들의 고초 그들의 시간과는 아득히 먼 거리에, 학교 간부회 어머니들이 가져다준 과일 바구니와 난초 화분이 있는 작은 탁자 위에, 정물처럼 단정하게 아버지는 놓여 있었습니다. - <비밀은 당신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중에서, p115

아버지와 신념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 사회의 주요한 자리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삶을 살아갈 때

아버지는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다시 세상을 배워야 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전기 배선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당신은 영어 시험 급수를 취득해야 합니다.

당신은 엑셀 함수값 계산법을 익혀야 합니다.

당신은 한글 프로그램으로 그래프 그리고 표 만드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전산 자격증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자격증도 따야 합니다.

또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p49

그런 아버지를 둔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아버지가 내 옆에 정말 있었나'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없으면서 있는 사람.

잊고 싶지만 각인되는 사람.

그런 아버지를 배우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모든 과정들은 아이가 소녀가 되고, 소녀가 어른이 되는 시간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이 세상을 이해하는 일이 되고,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일이 세상과 소통하는 일이 되는 세계에서

아이는, 무럭무럭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세상이 달라지고, 사람들이 변하고, 이제는 민주화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곳에 정말 아버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아버지는, 지금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지금의 아버지는 어쩌면 여전히 그 시절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끝내 세상과 타협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누구나가 알듯 평범한 가장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개인을 위한 삶이란, 자신의 입에 밥을 넣는 것뿐 아니라 다른 식구들 입에 밥을 떠 넣는 것을 포함하는 개인적인 삶이란, 당신은 이제부터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당신에게 더없이 낯설고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혼자였던 적 없이 언제나 함께 투쟁했고 그래서 우리는 형제였고 겨레였고 민중이었으며 바로 그런 우리 자신이 우리나라였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제 당신 동지들로부터, 벗들로부터, 민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우리였던 당신은 한겨울 옷을 빼앗긴 맨몸으로 차가운 거리에 내던져진 듯하다. - <우리가 아닌 삶> 중에서, p48

우리는 자주 잊고 살지만 그 시대의 투쟁의 기록들과, 그 기록을 남긴 많은 운동가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시대의 이야기는,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 뒤에야 어떤 서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르포이기도 하고, 소설 이이기도 하고, 시이기도 하고, 역사이기도 하고,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진실이기도 합니다.

무럭무럭 자라 기어이 어른이 되고만 아이는, 어린 시절의 자신의 둘러싼 은밀한 이야기들이 자신의 온몸에,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압니다. 사랑했으나, 늘 그리웠으나 때론 미워했던, 두려웠던 과거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는 언제나 나를 붙잡는다.

나는 아빠처럼 옷깃이 뒤집힌 셔츠를 그런 줄도 모른 채 입고 다니고, 아빠처럼 현관 문턱에 서서 급하게 구두를 고쳐 신으며, 아빠처럼 엄마를 통해서만 이야기하고, 아빠처럼 잘못된 일들과 잘못된 관행에 분노한다.

그러나 나는, 아빠처럼 그렇게 분노하다가는 평생 월세살이를 전전하고야 말 것임을 알고, 아빠처럼 누군가를 돕다가는 평생 새카맣게 어린 상사들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날만 올 것임을 알고, 아빠처럼 제 몫을 챙기는 데 소홀하다가는 평생 연금은커녕 죽을 때까지 일을 구하러 다녀야 할 것임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아빠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 것이며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 <지상의 꿈은 혼들의 거처입니다> 중에서, p178

우리에게 허락된 이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투쟁과, 어떤 죽음과, 어떤 희생과, 어떤 헤어짐들이 그 안에 담겨 있는지 오늘도 우리는 잊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그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무언가를 잊어야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우리는 한 번쯤 헤아려볼 수나 있을까요.

여기 살고 있었던 거구나.

우리집에 잠깐이라도 들렀던 친구들이 애써 난감한 표정을 감추려 할 때마다 나는 내가 초대한 사람이 놀라지 않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평범한 삶이란 얼마나 얻기 어려운가. 메뉴판을 볼 때 가격표의 동그라미부터 셈하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삶이란, 무조건 값싼 물건만을 고르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삶이란, 불로 전소된 가게에서 반값으로 내놓은 그을린 물건을 보러 가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삶이란, 끈 떨어진 구두를 미련 없이 버리고 새 구두를 살 수 있는 평범한 삶이란, 경찰이 들이닥칠 걱정을 안 해도 되는 평범한 삶이란 얼마나 얻기 어려운가.

그 평범한 삶을 위해 나는 먼저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눈 감아야 하고 입다물어야 하고 고개를 처박고 견뎌야 하고 자신이 견딘다는 사실마저 깨끗이 잊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잊어야 하는가. - <지상의 꿈은 혼들의 거처입니다> 중에서, p179

자주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잊고,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기억합니다.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외면하고, 기억에서 지워도 될 사람들을 오래 그리워합니다.

기억은 자주 왜곡되거나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잊을 수 없어서 때론 슬픈 세상에서 우리가 진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나의 평범이 누군가에게 투쟁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합니다.

한 마디의 말이, 한 번의 눈 맞춤이, 가끔은 슬쩍 모른척하는 다정한 무관심이 지금 내가 원하는 것입니다.

돌아와야 할 사람들이 돌아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기다림을 끝내고 그들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래 이어지기를,

당신은 말이 없습니다. 당신은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왜 말할 수 없는가? 당신은 왜 이곳에서 잠을 자고 있는가 당신은 왜 집에 들어갈 수 없는가 당신은 왜 도망 다녀야 했는가 당신은 왜 그때 혼자여야 했는가 당신은 왜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졸업할 수 없었는가 당신은 왜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를 저버리고 어머니마저 저버린 아들이어야 했는가 당신은 왜 그렇게 부모 뜻을 저버린 아들이어야 했는가 당신은 왜 이름을 숨기고 학력을 숨기고 거짓 이력서를 만들어 공장에서 일해야 했는가 당신은 왜 주당 팔십 시간 넘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계속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못했는가 당신은 왜 그들에게 더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인간일 권리를 찾아야만 한다고 그토록 말하고 또 말하려 했는가 당신은 왜 임금 체불을 당하고 철야 수당을 받지 못하고 손가락 팔다리가 잘리는 산재를 당하고도 언제든 해동당한다 해도 아무 말 못하고 쫓겨날 사람들 죽어도 모를 당신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들을 왜 도와주려 했는가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법무사도 회계사도 아닌 당신, 당신은 왜 법률을 공부했는가 당신 정체를 밝히시오 당신은 자유민주주의자입니까 당신은 공산주의자입니까 신문지로 표지를 감싼 마르크스를 읽는 수상한 당신, 당신은 빨갱이입니까 당신은 반동분자입니까 정체를 밝히라 지금 당장 너의 모든 것을 말하라 당신은 고개 숙이고 당신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그들 중 누군가 당신에게 불을 건네고 당신은 희미하게 웃으며 그렇다 말없이 구개를 끄덕이며, 연기 속에서 당신은 걷습니다.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집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러나 결국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당신의 아내, 당신의 딸, 당신의 동지, 없는 고향, 없는 부모, 그러나 당신의 조국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돌아가기 위해 당신은 여전히 꿈속을 헤맵니다. - <당신 뒤에 딸도 받아쓰기를 했습니다> 중에서, p134

돌아온 그곳에서 따뜻하게 당신을 맞아 주는 사람들과 행복하시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당신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주기 위해 여전히 당신을 기억하고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오래전 잠시 발 디여 보았던 도시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아주 잠깐 어른 되었던 도시. 누군가에겐 슬픔의 도시, 누군가에겐 그리움의 도시, 누군가에겐 애틋함의 도시,

그곳에서 아버지는 이제 그만 자유로워지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꿈에서 깨어나 성큼성큼, 가볍게 걸어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눈을 뜹니다.

찾으려는, 찾고자 하는 불가능한 시도 어딘가에서 매일 피 흘리며 태어나는 사람처럼.

눈을 뜹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빠를 만나기 위해서 왔던 도시에서.

오래된 성과, 강과, 대학교와, 놀이공원과, 동물원과, 시장과, 카페와, 옷집과, 식당이 있는 곳에서.

다른 도시와 특별히 다르지 않은 모습의 평범한 도시에서.

눈을 뜹니다.

감옥이 있는 작은 도시에서.

특별할 것 없이 전쟁이 끝나고, 특별할 것 없는 사랑이 생겨나고, 특별할 것 없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또 특별할 것 없는 많은 일들, 그런 무수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또 잊힌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특별할 것 없는 이곳에서.

심야버스에서.

매일의 식탁에서.

그리고, 핀으로 나비의 날개를 고정하던

빈 교실의 작은 책상에서.

나는 지켜보았습니다.

투명한 심장처럼 팔락이던 한 쌍의 날개가

독에 취해 서서히 굳어가던 것을. - <부서지는 나는 있습니다> 중에서,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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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1.

한강 선생에게 전화가 왔다. 열흘 전쯤, 나는 긴 편지와 함께 이 원고를 그녀에게 우편으로 보냈었다.

선생은 대뜸 말했다.

이 책은 에세이보다 소설로 이름 붙이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에세이를 초과하는 것들이 들어 있어서요. 그래서 전화했어요.

- 작가의 말 <나의 이야기는 당신에게 가닿기 위해 쓰인다> 중에서, p293

이 책은 그렇게 소설이 되었다.

에세이였든, 시였든, 소설이었든 그 무엇이었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지만,

소설이어서 좋았다는 마음이 크다.

'당신에게 가닿기 위해 쓰인다'라는 작가의 글에서 오래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다.

나의 몸을, 나의 몸을 관통해 지나가는 묵직한 울림에서 오래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해도

어쩐지 나는 행복할 것만 같다.

덧붙임 2.

「아름답고 담백하며, 다층적인 서사다. 허구가 아니다. 후일담 문학이 아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의 르포이고, 지금의 시이고, 지금의 신화다. 이들의 다장르, 다매체, 혼합 언어 텍스트다. 이 소설은 작고, 개인적인 나와 엄마의 바느질 이야기가 제일 크고 광대한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증거한다. 나는 이제까지 우리나라 질곡의 시간을 이렇게 아름답게, 천진하게, 여성스럽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것이 응전의 방식이 되도록 한 소설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김혜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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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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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하나를 두고 여섯 집이 모여 살던 그 시절의 기억을 나는 애써 지우며 살고 있었다.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국민학교 저학년 때까지 살던 그 집을 떠올리면 나는 어쩐지 불우한 유년시절을 겪었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마당이 있었지만, 마당이라기보다는 여섯 집을 한 대문 안에 몰아넣기 위한 계략처럼 느껴졌고, 문을 열면 바로 방으로 연결되는 집이라기보다는 방이었던 그곳에서 그래도 행복했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애써 잊고 지냈던, 그러면 진짜 잊힐 것 같았던 그 시절의 기억이 속절없이 떠올랐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기억과 작가의 기억이 뒤섞여 온통 먹먹해진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야 했다.

그럼에도 멈추지 못하고 기어이 마지막 책장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건,

그때의 내가, 그때의 우리가 결국 지금의 나,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는 극명한 사실 때문이었다.

 

인천 공단 내 작은 공장에서 3교대 근무를 하던 아빠.

이른 나이에 두 딸을 낳고, 가난한 집 장남인 아빠의 짐을 같이 지고 시동생들까지 뒷바라지해야 했던 엄마.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으나 다정했던 기억은 없는 부모 밑에서

늘 둘만 남겨졌던 언니와 나는 자주 아프거나, 자주 싸웠다.

 

 

그 집을 떠나 근처의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한 뒤에도 사정이 그리 나아진 건 아니었지만

우리의 불행이 갑작스럽게 행복으로 바뀌지 못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 화장실을 같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행복이 크기가 아주 조금은 커졌던 것 같다.

 

 

그 이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맺음 할 수 없는 그 시절의 기억을 나는 참 숨기고 살고 싶었는데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읽는 동안, 결코 그럴 수 없음을, 잊으려 할수록 부정하고 싶을수록 생생하게 떠오르리란 걸 알아버리고 말았다.

 

 

지나고 나면 슬픔은 더러 아름답게 떠오르는데, 기쁨은 종종 회한으로 남아 있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내가 버텨온 흔적이 있고, 기쁨이 남은 자리에는 내가 돌아보지 못한 다른 슬픔이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살아온 자리도 돌아보면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갈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내가 살던 개천은 오래전에 복개되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나는 그 사실이 가끔 다행스럽다.

- <프롤로그> 중에서, p6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갈 마음은 조금도 없다'라는 작가의 말에 안도했다.

만약 그 시절이 그래도 그립다 말했다면, 어쩌면 나는 내 기억 속의 시간들을 애써 괜찮은 기억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느라 조금 더 우울해질 뻔했다.

작가가 그리는 '나의 살던 골목'을 천천히 탐험하듯 따라다니다 보면 어쩐지 그곳엔 젊은 나의 아버지가, 그보다 더 젊은 나의 엄마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들의 종종거리는 발, 늘 피곤해 보이던 얼굴, 다정하지 않은 목소리, 그들의 주머니 속의 꼬깃꼬깃 접혀 있을 지폐 몇 장, 땟자국이 눌어붙은 아이였던 나, 그보다 몇 살 위의 언니, 그 모습들이 겹쳐진다.

그러다 불쑥 끼어드는 밥 짓는 소리, 밥 먹으라고 소리 지르며 나의 이름을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동네 어른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어쩌면, 불행한 것만은 아니었을지도 몰라.

작가의 이야기 속에는 네 가지의 골목이 등장한다.

가난했지만 그럼에도 포근했을 것만 같은, 엄마의 억척스러움이 아이들을 단단하게 보호했을 것 같은 유년시절의 첫 번째 골목,

한 번도 풍족하지 못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가 남긴 가계부 속 기록들, 그 이후 찾아온 엄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아픔도, 미움도, 이별도 어쩌면 다 그리움 혹은 진한 사랑이었을 것만 같은 두 번째 골목,

엄마가 된 뒤 다시 들여다보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내면. 나의 부모와 나의 아이를 연결하는 그리고 나를 만들어 내는 '가족'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게 하는 세 번째 골목,

생계를 위해 세상으로 내몰리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는 사람들이 모인, 생리대를 살 수 없는 저소득층 아이들, 빈부격차와 사회 부조리, 폭력에 대한 고발 등 드디어 광장으로 모여드는 네 번째 골목,

그 골목들을 다 돌고 나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쯤이지 생각하게 된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송별식으로 라이브 술집에 우르르 몰려가 한 시간쯤 쉬지 않고 노래를 뽑아 대고 거리로 나와 눈이 퍼붓고 있던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함박함박 떨어지는 눈이 귓가에서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말했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따라 하고 있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살면서 자주 괜찮지 않은 순간이 찾아오고, 다시는 괜찮지 않을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하는 순간 나는 이 문장을 주문처럼 외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괜찮다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아졌다는 작가의 속삭임에 슬쩍 묻어가고 싶은, 그 다정함을 나눠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빠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난했다. 아빠는 부자가 되지 못했다. 명예를 얻지도 못했다. 그러나 아빠는 아빠만의 방식으로 아빠의 삶을 증명했다고 믿는다. 존재를 증명하는 일, 세상에 그것보다 위대하고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지기보다 더 나빠지기가 쉬울 것이다. 나는 이제 섣불리 낙관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꿈을 꾸었던, 최선을 다했던 순간의 어떤 기록은 버리지 않기로 한다. 나는 아직 나로서의 증명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 두 번째 골목 <서울 78-236415의 남자> 중에서, p113

 

가난하든, 부유하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할 수 있다면,

누군가 그 삶을 기억해 줄 수 있다면 그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내가 나의 부모를 미워하면서도 기어이 사랑하고 만 것처럼, 그들의 지난 시간에 대한 감사와 애잔함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삶을 증명할 수 있는 존재가 결국엔 그들이 남긴 '나' 뿐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은 때문이었다.

그 다짐을 또다시 해버리고 만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나'를 보며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했을 그들이 서 있던 그 골목 끝, 희미한 어떤 불빛 하나를 자꾸 붙잡고 싶은 밤이다.

꺼지지 않게, 사라지지 않게.

'나의 살던 골목에는'

나를 만들어준 그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사람은 저마다 개별적인 존재이다. 모든 환경과 경험도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경험은 있지만 똑같은 경험은 없다. 그러므로 나도 너와 똑같이 경험해봤다는 말이나 한 발 더 나아가 해봐서 안다는 말은 매우 신중히 해야 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 많은 인생을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시련에 혹독하거나 냉정하기 쉽다.
경험이 누군가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지 타인의 삶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여야 할 것이다. p46

인생의 모든 우여곡절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면 된다‘라는 구호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능력과 성실과 비전을 간단하게 묵살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세사으이 모든 불합리와 실패와 차별을 개인의 노력 여하로 돌리는 사회가 가장 비겁하다고 여전히 믿는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모든 절망의 바탕에 개인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성공은 시스템의 문제일 수 있지만, 성취는 온전히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p64

판 평도 되지 않는 좁은 베란다에서 여기가 네 세상의 끝이야, 라고 아이에게 말할 때 나는 단단한 디딤돌을 상상한다. 그 안전한 터를 밟고 내 아이가 세상을 향해 힘차게 발 굴렀으면 좋겠다. 바람 불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 키우고 혹 복권에라도 당첨되어 막대한 유산을 물려준다 한들 내 아이에게도 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내 아이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종착역으로 집을 기억할 수 있다면 부모로서 나는 참 행복할 것이다. p178

희망이 외려 아픈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꿈은 꾸는자의 몫이 아니라 컨트롤하는 자의 몫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장에도 통이 있고, 씨앗도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아열을 견뎌야 한다. 마라토너들은 달리다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사점死點과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그 사점을 통과하고 나면 다음은 비교적 쉽게 달리게 된단다.
아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망치지 마라. 원래 희망은 아프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이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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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밤 되세요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1
노정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 폴앤니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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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는 굳이 필요 없지만,

자꾸만 어떤 장면을 상상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장면.

호텔도 아닌 것이 호텔인 척 이름을 달고 떡 한 서 있는 OO 호텔 앞 어느 골목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척 조금은 부끄러운 척 서성이고 있는 아직 어린 여자 어른과, 그보다 두세 살 밖에 더 안 먹었으면서

괜히 더 어른인 척하던 남자 어른의 모습.

들어갈까, 말까 서성이다가 결국 지하철을 놓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지못해 굳게 닫힌 호텔도 아닌 것이 호텔인 척하는 OO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서는 두 남녀의 모습.

그러니까 정말이지 이런 얘기는 굳이 필요 없는데도 왜 자꾸 그런 장면이 떠오르는 거지.

'드림초콜릿호텔'

이게 다 이름마저 달콤한 이 호텔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호텔 어쩐지 수상하다.

호텔이란 모름지기 화려하고, 단정하고, 깔끔하고, 어딘지 모르게 럭셔리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들어서는 손님들이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야 하기 마련인데 이 달콤한 호텔은 아무도 모르게(아니 호텔 직원들만 알게)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은유가 아니다. 실제로, 물리적으로 무너지고 있다(p11)

불면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던 나명은 정신병원에서 도박중독으로 입원해 있던 '드림초콜릿호텔' 나 사장의 꼬드김에 넘어가 호텔 캐셔로 호텔에 입성했다.

돈 받고 키만 내주면 된다는 사장의 말과 달리 호텔은 그리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술 취한 사람, 혼숙을 몰래 시도하는 사람, 데이트 폭력에 신고에 경찰이 오고, 매일매일 사건의 연속이다.

그랬다. 호텔은 은밀한 곳이다.

어쩌면 말이다.

애인과의 색다른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서, 가족들과 호캉스를 즐기기 위해서도 호텔이 존재하지만

숨겨야 하는 게 있는 사람, 누군가의 눈을 피해야 하는 사람, 몰래 무언가를 도모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역시 호텔은 존재했다(필요했다).

그런데 어째 이 '드림초콜릿호텔'엔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캐셔로 취직한 나명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의 나 과장으로 불렸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남자친구 리재의 죽음을 마주하고 어쩌면 나명 역시 피할 곳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것도 스스로 삶을 포기한 이를 두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그게 나의 탓이 아닐 거라 여기는 일이 쉽지 않을 테니까.

「타자의 죽음을 해석하는 일정한 회로가 있습니다. 누구나 갖고 있어요. 죽음의 영역이지만 죽음에 대한 주석만 달지 않습니다. 삶과 죽음은 샴쌍둥이처럼 등을 붙인 한 몸이라서 그렇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타자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곰삭여서, 무심하게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삶의 태세를 놓치지 않아요. N분의 일의 죽음을 인정하고 N분의 일의 삶을 또 살아가는 것이지요. 무심하게, 이 갈리게.

그 회로가 고장 났거나 혹은 닫혀 있음을 알게 되고 나서, 나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어요. 누군가의 부음이 들려올 때마다 애써 귀를 닫았습니다.

거리를 두고,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요. 막장 같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지 않기 위해서 무심해지는 쪽을 택했습니다. 또다시 그 천재지변 같은 진동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결계처럼 쳐놓은 안정장치였어요.

그런데 리재의 죽음은 그 결계를 무너뜨렸습니다. 리재는 죽어서도 내 곁은 떠나지 않고 서성거립니다.

나는 죽음에 대해 더 이상 거리를 두지 못합니다. 무심해지지 않아요.

그 와중에 이 빌어먹을 호텔은 시시각각 지진 경보를 울리며 나를 위협하고 있어요. 연탄을 피우고 수면제를 삼키고 죽은 시체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 날, 나는 그 강진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나는 자신이 없습니다.

박사장은 틈만 나면 사무실로 나를 부릅니다.

요즘은 괜찮아? 니가 혹시 또 안 좋아질까 봐 내가 사실 걱정이 말이 아니다아.

나는 괜찮지 않다고, 니가 최저임금을 안 줘서 굉장히 괜찮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벚꽃축제 기간의 토요일에 차 키를 세 개나 놓친 저성과 노동자가 할 말이 아니어서 또다시 삼켰습니다.

자살하지들 말아요. 잘 살아요. 호텔은 걸어서들 가고.

- <영업정지보다 무서운> 중에서, p112」

 

 

어쩌면 이 호텔은,

이별하기 위해 찾아오는, 잘 이별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위안의 장소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인사도 없이 떠날 준비를 하는 이들도,

인사도 없이 떠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숨어들기 좋은 공간. 비록 조금씩 무너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버티고 서 있으니까.

조금만 버티다 보면,

그렇게 버티다 보면,

내일은 또 오니까.

하룻밤 묵고 나면, 아침이면 다시 키를 반납하고 호텔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야 하니까.

마냥 그곳에서 머물 수는 없으니까.

소설은 재밌다.

잘 읽힌다. 술술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웃기다.

슬핏슬핏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지.

자꾸 마음 한편이 아리다.

찌릿거린다.

잘 자고 있을, 이미 오래전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싶게 하고

잘 지내고 있을 오래전 친구에게 안부를 묻고 싶게 한다.

헤어짐에 익숙해질 수 없는 우리 모두에게 괜찮다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괜찮다고 또 다른 날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아 시큰해진다.

 

「그런데 아이가 죽는다는 건요. 그래요. 그렇지요. 죽음과 모성은 실로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리재가 죽고 나서도 나는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으니까요. 결심, 이라. 그게 결심 때문인지 문득 의심스럽군요. 내가 살겠다고 다짐을 하고 결정을 한 걸까요? 따져보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리재는 나 때문에 죽은 게 맞아요.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돌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언덕, 그게 나였기 때문에 리재는 죽은 것이지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 하나밖에 남지 않았을 때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 아이를 벼랑 끝으로 내 몬 것은 나예요. 그리고 내가 리재를 죽이고, 내 배로 낳은 아이가 죽었는데, 내가 죽어버리는 건요. 너무 쉬워요. 너무 쉽고, 가볍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게 리재를 위하는 길이 맞아요. 당신들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리재를 잊을 거예요. 그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죄스러워하지 말아요.

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기억해야지요. 기억하고 슬퍼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리재가 덜 가엾지 않겠어요. 그래서 난 그냥 살기로 했어요.

명이 씨는 명이 씨의 몫을 살아요. 리재의 몫 따윈 신경 쓰지 말아요. 자기 몫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다하다 저엉 안 되면, 그냥 대충 살아요. 그러면 또 어떤가요.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달았어요.

- <엄마가 산다> 중에서, p204」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끝까지 받아들 일 수 없겠지만) 하는 부모, 사랑하는 애인의 죽음을 견뎌야 하는 남은 애인, 그리고 그 주변의 여러 사람들.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남은 이들이 버티고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그래도 살아내야 함을 들려주는 것 같아서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눈물 조금 흘리고야 말았다.

'명이야, 아직 애도의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면 잠시 너의 상실에만 집중하렴.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하는 거야. 그리고 다시 살아. 우리 모두 그래도 돼 p166'

나는 여전히 그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

어색하게 OO 호텔로 들어선 아직 어린 여자 어른과, 조금 더 나이 먹은 어린 남자 어른.

캐셔에게 키를 받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구멍을 잘 맞추지 못해(어쩌면 이미 고장 나 버린) 키를 여러 번 돌려 방 문을 열고 드디어 방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

그들에게 슬쩍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 호텔,

무너지고 있어요.

진짜예요.

그래도 버텨야 해요.

꼭 살아남아야 해요.

덧붙임

1. 지극히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다 보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남기지 못한 것 같아 괜히 아쉬운 마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쩐지 내게 이 소설이 그렇다.

소설 곳곳에 담겨 있는 사회문제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어쩐지 이 글에서 쏙 빼버리고 만 것 같아 아쉽다(어쩌면 내 능력이 그것뿐인지라).

이 소설을 읽은 많은 독자들이 꼭 그 부분까지 챙겨 읽기를.

2. 나는 이 책을 텀블벅 후원을 통해 구입했다.

덕분에 예쁜 노트와 거울까지 챙겼다. 노트는 너무 아까워서 오래 그대로 책상 위에 올려두고 바라보기만 할 것 같다.

거울은 이미 초등 1학년 큰 딸에게 뺏기고 말았다.

 

3. 그림을 그린 드로잉메리 님의 그림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한 장면 한 장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건 정말이지 대단한 일 아닌가).

그림은 꼭 책을 통해 확인해 주시길.

4. 아쉬운 마음에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문장만 더 옮긴다.

우리가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므로.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떠나보냈다. 때로는 죽었다. 누군가 죽고, 떠나도 남은 사람들의 삶은 계속된다. 하물며 혁명의 이상 따위야 말할 것도 없다. 부풀었던 꿈이 바람 빠지듯 허망하게 사라진 자리에도 여전히 삶이 이어진다. 지질하고 궁상맞은 폐허를 견디며 다들 그렇게 산다.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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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정리 기술 - 물건과 공간, 인생을 디자인하다
윤정훈 지음 / 다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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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8년 4월 18일, 나는 야심 차게 블로그에 미니멀라이프라는 폴더를 만들고 "하루비프로젝트(일명, 하루에 한 번 비우기)"를 선언했다. 계획은 일 년 동안 하루에 한 번씩 물건을 정리하는 것.

야심 차게 시작한 프로젝트(내 맘대로 프로젝트도)는 2018년 10월 19일, 160일차로 막을 내렸다. 계획대로 1년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6개월의 시간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버렸고, 많은 것을 얻었다.

나는 왜 버리고 싶은가?

나는 왜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라이프는 뭔가?

단순히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버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내 인생이 바뀌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비우기 프로젝트를 통해 내 생활에, 내 삶에, 내 마음에 분명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거다.

비움을 통해 나누는 법을 배웠고, 비움을 통해 채우는 법을 배웠다.

그 시간과 그 과정은 나를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 주었다. 아주 긍정적으로.

그동안 읽어왔던 미니멀라이프에 관한 책들 대부분이 실전 기술이라기보다는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이 책 <<인생을 바꾸는 정리 기술>>은 하나씩 따라 해보면 어쩐지 정리의 고수가 될 것 같은 희망을 갖게 하는 실전 편이었다.

누구나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게 되는 자기만의 타이밍이 있다.

누군가는 이사를 앞두고, 누군가는 출산을 앞두고, 누군가는 스스로에게 도전의 기회를 주고 싶어서, 누군가는 그냥, 누군가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등등.

이 책의 저자는, 사업 실패로 인생에서 큰 고비를 맞았을 때 신문 사이에서 '정리수납 2급 수강생 모집' 전단지를 발견하고 정리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여성들만 앉아 있는 강의실을 보고 다시 나갈까를 고민했지만 그대로 첫 강의를 들었던 것이 저자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지금 저자는 정리 컨설턴트와 정리수납 강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여러 가지 방법과 여러 가지 시기가 있겠지만, 그것도 역시 적절한 타이밍이 필요한 듯하다.

그런데 또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타이밍이라는 건 스스로 만들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결국 '정리'는 자기가 마음먹은 그 순간, 시작하면 되는 아주 괜찮은 '일' 아닌가.

정리수납은 생활의 습관이다. 자신의 습관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꾸고, 반복적으로 정리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 습관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생활에서 정리를 습관화하고 정리된 것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 정리된 것을 유지하는 것도 정리인 셈이다.

- <유지하지 못하는 정리는 의미가 없다> 중에서, p135

뭐든 한 번 습관을 들이는 과정이 힘들지 한 번 습관을 들이고 나면 자연스럽게 달라질 것이다,라는 말을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는 게 나다. 특히 나처럼 같이 사는 사람 중에 정리를 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정리는 내 영역이 아니라고 손 털어 버리게 되기도 한다.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신랑이 정리의 고수다. '나 이제 정리를 시작할 거야'라고 말하면 몇 시간 내에 집 안 확 바뀐다. 그러니 굳이 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암묵적으로 지키는 룰이 하나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지는 말 것. '

신랑이 정리하는 건 공용 공간(아이들과 함께 하는)과 자신이 사용하는 서재다.

나는 내 방식대로 내가 사용하는 공간을 정리한다.

내가 처음 이제부터 비우기를 시작하겠어!라고 선언하고 손 댄 곳은 '서재'다.

고등학생 시절(작가를 꿈꾸기 시작한)부터 한 권 한 권 모으기 시작한 천 여권의 책을 모두 비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애지중지하던, 그것이 내 꿈을 지탱하는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는 듯 껴안고 있던 것들을 비우자 생각보다 홀가분해졌다. 책은 딱 책장 한 칸에 넣을 수 있을 만큼만 가지고 있기, 그 이후 나는 이 룰은 어기지 않고 지키고 있다. 구입한 뒤 읽고 이웃 블로거들에게 나눔을 하거나, 중고서점에 되팔고 다시 구입하고 싶은 책을 골라 책장 한 칸만 채운다.

이 책의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정말 정리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절대 버릴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 하나를 비우고 나면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낄지도 모른다.

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특히 나처럼 애초에 정리와 거리가 멀었던)은 '어떻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뭐부터 비워야 하나, 갈팡질팡.

천천히 긴 시간을 가지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비워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테고, 이렇게 책의 도움을 빌어 시작해 봐도 좋을 듯하다. 뭐든 배우면서 잘 하게 되는 법이니까.

이 책은 여섯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1. 정리란 무엇인가 : 가슴 뛰는 인생을 만들어주는 정리

2. 버리는 기술 : 버리면 보이는 자유와 행복

3. 이것만 알아도 정리의 달인 : 실패하지 않는 정리의 기술

4. 공간별 심플한 정리 : 즐겁고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기

5. 물건별 심플한 정리 : 물건에 돌아갈 집을 만들어 준다

6. 정리를 통해 얻게 되는 것들 : 자유, 꿈, 행복을 가슴에 품게 해준다

왜 정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뭐부터 버리지를 고민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정리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정리하고 싶은 공간을 정하고, 그 공간이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상상한다. 그리고 시작한다.

100평짜리 집에 살든 원룸에 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공간을 잘 정리할 수 있다면 허름한 원룸에서도, 강남 건물을 소유한 사람처럼 럭셔리하게 살 수 있다. 강남에 건물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집에서 생활한다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정리가 생활의 시작점, 출발점이 된다는 얘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내가 있는 공간이 정리되어야 무언가를 제대로 시작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이것이 제대로 정리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 <정리를 해야 하는 이유> 중에서, p31

비움과 정리를 시작하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너그러움'이다.

작은 일에도 예민해졌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여유로워지면서 '나'에게도 '남'에게도 전보다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아등바등 살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내 공간을 물건이 아닌 내 마음으로 채울 수 있다는 여유가 생겼다.

물론, 정리한 뒤, 비움 뒤 다시 어지러워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전혀 구입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무엇을 사야 하고, 어떻게 사야 하는지에 대한 나만의 기준도 생겼다. 그러니 내게도 정리는 '인생을 바꾸는 기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도움이 된 부분은 챕터 4. 공간별 심플한 정리 편과 챕터 5. 물건별 심플한 정리 편이었다.

정리하는 실전 기술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보니 내가 그동안 해왔던 정리 법과 비교도 해볼 수 있었고, 나만의 방식에서 조금 더 업그레이드된 기술을 배울 수도 있었다.

특히 늘 관심분야인 주방과 화장실 정리는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기 어려웠는데 책 속에서 알려준 방법들을 적용해 다시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옷 접기, 소품 정리하기, 액세서리 정리하는 법도 실전에서 도움이 될 듯

나를 닮아서인지 큰 아이 윤이는 정리에는 영 소질이 없다.

아직 여덟 살 아이에게 소질을 이야기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볼 때 느껴지는 아이의 성향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늘어뜨리는 건 최고인데 늘 마무리에서는 "엄마! 아빠! 좀 도와줘!"를 외친다.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가 정리하는 걸 도와줘서인지 혼자보다는 늘 '같이'를 외치는 아이.

정리 습관은 어릴 때부터 들여야 한다. 이때 아이들에게 정리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정리 정돈의 목적과 유익함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정리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정리 정돈이 체화될 수 있다. 참고로 정리를 잘하는 아이는 노트 정리도 잘하는데, 학습 의욕과 성취도는 물론 학교 성적도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정리 정돈은 모든 일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 <정리 수납, 누구나 잘 할 수 있다> 중에서, p41

아직 '어리다'라는 희망을 갖고,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아이에게 정리하는 습관에 대해, 기본에 대해 이야기해주어야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도 조금 더 성장하고 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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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말해요
조지 섀넌 지음, 유태은 그림, 루시드 폴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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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손으로 사랑을 나눠주는 방법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요리'다.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면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과 함께 사는 짝궁에게 매일 마음을 전한다.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손으로 "엄마 최고"라고 엄지척을 해주는 건 예윤이가 내게 손으로 보내는 최고의 칭찬이다.

사랑한다고, 매일 말하지 못해도 매일 손으로 사랑을 나누는 일을 우리는 하고 있다.

이 그림책 『손으로 말해요』는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손으로 나누는 사랑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큰지 들려준다.

"엄마, 나도 어렸을 때 엄마랑 아빠가 저렇게 손 잡고 들어올리고 하는 거 많이 해줬지? 그치?"

책을 보자마자 예윤이가 말했다.

"그럼, 그럼, 당연히 많이 해줬지."

예윤이는 이제는 자기가 너무 커버려서 저렇게 못하는게 못내 아쉬운 듯 말했다.

"채민이는 좋겠다. 이제 엄마 아빠가 채민인 저렇게 해줄거잖아."

아....

그때 아빠의 한 마디, "너는 이제 저렇게 하면 팔 빠져" ㅋㅋㅋㅋ

이겐 웬 동심을 파괴하는 말인가.

아무튼, 우리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나란히 걸으며 예윤이 손을 잡고 번쩍 들어올리며 꺄르르 웃었던 시간들.

그 시간을 기억하는 예윤이도, 나도 아마 행복한 기억 하나는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게아닐까.

엄마 손은 달콤하게 잠을 깨우죠.

....

요즈음 우리 아침을 생각해보면 "엄마 손은 때론 거칠게 잠을 깨우죠"쯤 되겠다.

이불에서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예윤이를 깨우면서 달콤함 보다는 우악... 스러운 손.. 이 아니었던가 잠시 반성했다.

아빠 손은 요즘 매일 둘째 채민이와 걸음마를 한다.

종종 거리면서 아빠 손을 잡고 걷는 뒷모습만 봐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데,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우리 가족의 모습을 같이 떠올릴 수 있어서 자꾸 웃음이 났다.

지난 밤, 공부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 짝꿍에게 가서

"나 좀 잠깐 안아줄래?" 하고 말했다.

나를 살짝 안고 손으로 토닥토닥 해주는 짝꿍의 손길에 며칠 힘들었던 마음이 사르르 사라졌다.

아이가 아파 이번 주 내내 휴가내고, 조퇴하면서 종종거리느라, 직장 눈치보느라 힘들었던,

아주 조금 짝꿍에게 서운해 토라졌던 마음을 다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안아주는 것보다 손으로 토닥이는 그 손길이 위로가 된 건 분명하다.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다정한 토닥임은 손으로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가장 쉬운 위로가 아닐까.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의 이불을 덮어주고, 아이와 손 인사를 나누고, 입맞춤을 하는 순간의 행복함을 엄마가 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자는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는 새벽 시간이 주는 평온함도, 그 시간에 대한 감사함도 배웠다.

말로해야 알지!

자주 그말은 맞다.

그런데 이젠 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할 수 있는 사랑도 있다는 것.

조용히 다가가 토닥이는 손짓 하나로도,

다정히 다가가 보드랍게 쓰다듬는 손길 하나로도,

아무말 하지 않고 가만히 어깨에 살포시 얹어주는 손 하나로도

사랑이 전해질 수 있다는 것. 느낄 수 있다는 것. 사랑받고 있구나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봄,

손으로 나누는 작은 사랑을 맘껏 나누고 싶어졌다.

 

손으로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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