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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평점 :
대문 하나를 두고 여섯 집이 모여 살던 그 시절의 기억을 나는 애써 지우며 살고 있었다.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국민학교 저학년 때까지 살던 그 집을 떠올리면 나는 어쩐지 불우한 유년시절을 겪었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마당이 있었지만, 마당이라기보다는 여섯 집을 한 대문 안에 몰아넣기 위한 계략처럼 느껴졌고, 문을 열면 바로 방으로 연결되는 집이라기보다는 방이었던 그곳에서 그래도 행복했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애써 잊고 지냈던, 그러면 진짜 잊힐 것 같았던 그 시절의 기억이 속절없이 떠올랐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기억과 작가의 기억이 뒤섞여 온통 먹먹해진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야 했다.
그럼에도 멈추지 못하고 기어이 마지막 책장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건,
그때의 내가, 그때의 우리가 결국 지금의 나,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는 극명한 사실 때문이었다.
인천 공단 내 작은 공장에서 3교대 근무를 하던 아빠.
이른 나이에 두 딸을 낳고, 가난한 집 장남인 아빠의 짐을 같이 지고 시동생들까지 뒷바라지해야 했던 엄마.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으나 다정했던 기억은 없는 부모 밑에서
늘 둘만 남겨졌던 언니와 나는 자주 아프거나, 자주 싸웠다.
그 집을 떠나 근처의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한 뒤에도 사정이 그리 나아진 건 아니었지만
우리의 불행이 갑작스럽게 행복으로 바뀌지 못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 화장실을 같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행복이 크기가 아주 조금은 커졌던 것 같다.
그 이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맺음 할 수 없는 그 시절의 기억을 나는 참 숨기고 살고 싶었는데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읽는 동안, 결코 그럴 수 없음을, 잊으려 할수록 부정하고 싶을수록 생생하게 떠오르리란 걸 알아버리고 말았다.
지나고 나면 슬픔은 더러 아름답게 떠오르는데, 기쁨은 종종 회한으로 남아 있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는 내가 버텨온 흔적이 있고, 기쁨이 남은 자리에는 내가 돌아보지 못한 다른 슬픔이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살아온 자리도 돌아보면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갈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내가 살던 개천은 오래전에 복개되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나는 그 사실이 가끔 다행스럽다.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갈 마음은 조금도 없다'라는 작가의 말에 안도했다.
만약 그 시절이 그래도 그립다 말했다면, 어쩌면 나는 내 기억 속의 시간들을 애써 괜찮은 기억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느라 조금 더 우울해질 뻔했다.
작가가 그리는 '나의 살던 골목'을 천천히 탐험하듯 따라다니다 보면 어쩐지 그곳엔 젊은 나의 아버지가, 그보다 더 젊은 나의 엄마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들의 종종거리는 발, 늘 피곤해 보이던 얼굴, 다정하지 않은 목소리, 그들의 주머니 속의 꼬깃꼬깃 접혀 있을 지폐 몇 장, 땟자국이 눌어붙은 아이였던 나, 그보다 몇 살 위의 언니, 그 모습들이 겹쳐진다.
그러다 불쑥 끼어드는 밥 짓는 소리, 밥 먹으라고 소리 지르며 나의 이름을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동네 어른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어쩌면, 불행한 것만은 아니었을지도 몰라.
작가의 이야기 속에는 네 가지의 골목이 등장한다.
가난했지만 그럼에도 포근했을 것만 같은, 엄마의 억척스러움이 아이들을 단단하게 보호했을 것 같은 유년시절의 첫 번째 골목,
한 번도 풍족하지 못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가 남긴 가계부 속 기록들, 그 이후 찾아온 엄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아픔도, 미움도, 이별도 어쩌면 다 그리움 혹은 진한 사랑이었을 것만 같은 두 번째 골목,
엄마가 된 뒤 다시 들여다보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내면. 나의 부모와 나의 아이를 연결하는 그리고 나를 만들어 내는 '가족'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게 하는 세 번째 골목,
생계를 위해 세상으로 내몰리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는 사람들이 모인, 생리대를 살 수 없는 저소득층 아이들, 빈부격차와 사회 부조리, 폭력에 대한 고발 등 드디어 광장으로 모여드는 네 번째 골목,
그 골목들을 다 돌고 나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쯤이지 생각하게 된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송별식으로 라이브 술집에 우르르 몰려가 한 시간쯤 쉬지 않고 노래를 뽑아 대고 거리로 나와 눈이 퍼붓고 있던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함박함박 떨어지는 눈이 귓가에서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말했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따라 하고 있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살면서 자주 괜찮지 않은 순간이 찾아오고, 다시는 괜찮지 않을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하는 순간 나는 이 문장을 주문처럼 외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괜찮다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아졌다는 작가의 속삭임에 슬쩍 묻어가고 싶은, 그 다정함을 나눠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빠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난했다. 아빠는 부자가 되지 못했다. 명예를 얻지도 못했다. 그러나 아빠는 아빠만의 방식으로 아빠의 삶을 증명했다고 믿는다. 존재를 증명하는 일, 세상에 그것보다 위대하고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지기보다 더 나빠지기가 쉬울 것이다. 나는 이제 섣불리 낙관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꿈을 꾸었던, 최선을 다했던 순간의 어떤 기록은 버리지 않기로 한다. 나는 아직 나로서의 증명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 두 번째 골목 <서울 78-236415의 남자> 중에서, p113
가난하든, 부유하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할 수 있다면,
누군가 그 삶을 기억해 줄 수 있다면 그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내가 나의 부모를 미워하면서도 기어이 사랑하고 만 것처럼, 그들의 지난 시간에 대한 감사와 애잔함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삶을 증명할 수 있는 존재가 결국엔 그들이 남긴 '나' 뿐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은 때문이었다.
그 다짐을 또다시 해버리고 만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나'를 보며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했을 그들이 서 있던 그 골목 끝, 희미한 어떤 불빛 하나를 자꾸 붙잡고 싶은 밤이다.
꺼지지 않게, 사라지지 않게.
'나의 살던 골목에는'
나를 만들어준 그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사람은 저마다 개별적인 존재이다. 모든 환경과 경험도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경험은 있지만 똑같은 경험은 없다. 그러므로 나도 너와 똑같이 경험해봤다는 말이나 한 발 더 나아가 해봐서 안다는 말은 매우 신중히 해야 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 많은 인생을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시련에 혹독하거나 냉정하기 쉽다. 경험이 누군가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지 타인의 삶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여야 할 것이다. p46
인생의 모든 우여곡절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면 된다‘라는 구호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능력과 성실과 비전을 간단하게 묵살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세사으이 모든 불합리와 실패와 차별을 개인의 노력 여하로 돌리는 사회가 가장 비겁하다고 여전히 믿는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모든 절망의 바탕에 개인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성공은 시스템의 문제일 수 있지만, 성취는 온전히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p64
판 평도 되지 않는 좁은 베란다에서 여기가 네 세상의 끝이야, 라고 아이에게 말할 때 나는 단단한 디딤돌을 상상한다. 그 안전한 터를 밟고 내 아이가 세상을 향해 힘차게 발 굴렀으면 좋겠다. 바람 불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 키우고 혹 복권에라도 당첨되어 막대한 유산을 물려준다 한들 내 아이에게도 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내 아이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종착역으로 집을 기억할 수 있다면 부모로서 나는 참 행복할 것이다. p178
희망이 외려 아픈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꿈은 꾸는자의 몫이 아니라 컨트롤하는 자의 몫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장에도 통이 있고, 씨앗도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아열을 견뎌야 한다. 마라토너들은 달리다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사점死點과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그 사점을 통과하고 나면 다음은 비교적 쉽게 달리게 된단다. 아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망치지 마라. 원래 희망은 아프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이다.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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