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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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애인, 딸, 제자, 엄마라는 이름을 빼고는 모두 가진 한 여자. 그 여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 여자의 남편은 여자의 애인으로인해 죽음에 다시 다가서야 했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이미 죽음을 가까이 본 남자는 죽음을 가지고 오는 끈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브라스밴들를 죽기 진전까지 기다린 여자는, 어쩌면 현생에서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자신 앞에 브라스밴드의 행렬이 이어져 그 행렬을 쫒아간것은 아닌지......

여자에게 브라스 밴드의 의미는...(죽음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흔적을 모두 없애려 했으면서도 브라스밴들 만은 부여쥐고 있던 여자) 남편에게 자신의 아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브라스밴드의 의미는...(애인이 아닐까라고 까지 생각한) 무엇이었을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때 제일 먼저, 죽고 싶었던 여자.

누군가에겐 죽음이란, 그 죽음이라는 끈이 조금씩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그 브라스밴들는 모든 걸 알아버린 자들에게 보내는 하늘의 작은 위로가 아닐런지......

김인숙의 소설들을 읽는 내내 죽음이라는 꼬리표가 내 뒷목에 붙어다녔다. 죽음에서 벗어나고 싶어 몇 번이고 책을 덮어버리려고 할때마다 다시...... 더 집중하게 된것은. 내게도 브라스밴드가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들었다.

김인숙이 바라보는 죽음의 시선에 소름이 돋도록 아프다. 그래서 더... 자꾸... 작가의 시선에, 작가의 기침에 신경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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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소가 끄는 수레 - 창비소설집
박범신 지음 / 창비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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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소설들을 다섯 편의 연작소설처럼 읽어도 좋고 하나의 독립된 소설로 읽어도 좋다고 했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 이 다섯 편의 소설들을 읽는 내내 오로지 한가지만이 내 머리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부랑(浮浪), 작가의 문학의 시작'
절필을 선언한 뒤의 생활과 심정을 적어놓은 듯한 자전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는 이 소설은 작가가 마치 '쓰고싶다, 쓰고싶다, 쓰고싶다'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소설들을 읽는 내내 작가의 말 솜씨에 놀라고 감탄했다.

'떠나고 보면 부랑은 끝이없다'라고 말하는 작가는 더욱 더 힘차게 부랑한다. 작가의 그 부랑 속에는 길도 있고, 삶도 있고, 글도 있고, 세상도 있고, 작가 자신도 있다. 작가가 부랑을 하는 내내 소설이 완성되고 또 다른 소설이 탄생할 것이다.

쓰고자했던 작가의 엄청난 에너지와 욕구가 내 잠잠하고 나약하던 마음을 툭하고 깨뜨렸다.

과연, 작가의 부랑은 문학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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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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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이라는 소설집에 실린 총 아홉편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거칠게 파닥거렸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히 숨돌린 틈조차 쉽사리 제공 해주지 않았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몸속으로 사람들을 한명 한명 끌어들였으리라. 그중에 운이 좋은 사람은 그 틈에서 작가와 함께 맞장구치면서 이야기를 했을테고 그다지 그 틈이란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얼른 빠져나오기 위해 작가의 눈치를 보고 발버둥을 쳤을것이다. 그만큼 천운영의 소설들은 모두 무섭게, 겁나게 생겼다. 그러나 그에 빗대서 몇배는 더 멋지게, 매력적으로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바늘' '숨' '눈보라콘' '행복 고물상'이라는 소설들에 관심이 갔다. 날카롭게 쏘아보는 작가의 시선이 소설 곳곳에서 묻어났기 때문이다. 기발한 상상력, 세심한 관찰력, 거기에 덧붙어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을 작가의 호흡까지......

소설들을 다 읽고 책을 덮은 지금까지도 소설들의 거친 발길질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작가가 품고 있는 '바늘'이 그만큼 뾰족했기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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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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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늘에는 당나귀 배처름 불룩한 먹장구름이 무겁게 드리워져있고...'로 시작되는 소설은 중간중간에 가서도 이렇게 재미있고 눈에띄는 감성적인 묘사가 등장한다. 그러나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감성적이기보다 오히려 지독히 현실적이다. 자신의 살해당한 환경운동가 친구를 위해 썼다는 이 소설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소설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알게 하고 있다. 그는 이해를 강요하지 않은채 다만 자신의 언어로 백지를 가득채웠을 뿐이다.

노인과 마을 사람들이 뚱보라고 부르는 읍장은 작가가 보여주는 권력의 현실이다. 한달에 한 두번씩 배를 타고 와서 사람들의 충치를 치료해주고, 노인에게 연애소설을 건네주는 치과의사는 좁은 마을에-막힌, 답답한-세상 소식을 전해주고 세상과 맞닿게 해주는 다리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노인에게 밀림에서 견디는 법, 사냥하는 법, 청각으로만 숲의 동물들을 감지하는 법등을 알려주는 수와르족은 그 현실에서 버티고, 싸우며 힘겨워하는 진정한 시민들이다. 작가는 그런 인물들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을 죽이는 암살쾡이 사냥을 나선 읍장과 주민들은 노인만 남겨두고 마을로 돌아간다. 노인은 암살쾡이와의 게임에서 살쾡이들의 바램을 느끼게되고 자신의 손으로 죽음을 찾아나선 살쾡이를 죽인다. 그리고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노인은 왜 유독 연애소설을 즐겨 읽는 것일까. 그것은 작가의 말처럼, 그것이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녀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지만 결국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연애소설을 통해 노인은, 작가는 삶의 행복한 결말ㅇ르 바랬는지도 모른다. 또한 끊임없이 밀림속에서 인간과 동물간의 싸움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은 이미 떨어져 살 수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이 없이는 살 수 없다. 이 사소한 진리가 또 다시 의미심장하게 되새겨지는 건, 그동안 나도 그 사소한 진리를 잊고 살때가 많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리라.

책을 펴는 순간 부터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일부러가 아니라 작가의 놀라운 시선과 이야기거리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눈을 떼면 마치 암살쾡이가 다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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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1
전경린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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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만에 2권 분량의 장편 소설을 폭식한 뒤, 난 지금 요플레를 먹고 있다. 더 정확한 이름을 대라면 남양에서 나온 딸기맛 꼬모다. 나는 늘 이것들을 요플레로 기억하고 싶어한다. 바이오거트, 꼬모 ... 할 것 없이. 한번 기억 속으로 들어온 것들은 이상하리 만치 무서운 집착을 가진다. (아마도 내가 처음 접한 요구르트 제품의 이름이 요플레였던 모양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마음이 답답했고, 불안했고, 아팠으며 슬펐다.
마치, 내가 처음부터 알고 있던, 느끼고 있던 감정이란 게 모두 그런 것들뿐인 것처럼.
나에게 올해로 스물 다섯이 된 언니가 있다. 어쩌면 소설을 읽으면서 내 언니를 소설 속 주인공에 대입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 속의 스물 다섯 살의 여자는 늘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현실에서 도피하듯이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 현실 속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도 있고, 열 살이 넘게 차이나는 남자와 재혼해 버린 엄마도 있으며, 엄마의 남편인 양부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갓난 아기도 있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을 끊임없이 맴도는 선모라는 남자도 있다.

현실에서 벗어난 여자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 갔다. 그다지 적성에는 맞지 않지만 직업도 있고, 쉴 집도 있었고......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여자의 삶을 그리 오래 편안하게 놔두지 않았다. 지방 방송국 작가로 있던 여자가 인터뷰 때문에 만나게된 젊은 시인과, 그 시인을 통해 알게된 중년남자. 그 둘의 그 이후 여자의 삶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온다.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시인 은경과, 격렬함과 사치스러움을 안겨주는 중년 남자 이진 사이에서 여자는 방황을 하고, 행복해 하고, 불행해 했다.

만약 소설에서 여자가 둘 중 누군가와 이루어졌더라면 이 소설의 끝은 어떻게 됐을까. 그러나 둘 사이에서 헤매던 여자를 꺼낸 건 결국 두 남자였다. 한명은 자살을 택함으로, 또 다른 한명은 완전한 타인으로 돌아서 여자를 떠났다. 여자의 엄마와 양부는 교통 사고로 죽고, 여자에게는 그 사이의 아이만 남겨졌다.

「여자는 사랑이란 것은 하기는 했던 것일까.」이런 유치한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내물음의 근원은 「처음」에 근거한다. 여자의 처녀성을 깨뜨린 첫 남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에게서 당당하게 여자의 처음을 가져갔고, 당당히 여자를 떠났다. 누구에게나 특별할 것 같은 '처음'이라는 단어가 사랑 앞에서 그토록 무력할 수 있다는 것을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꼈다. 어쩌면 여자는 자신 스스로도 둘 모두를 사랑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소설의 시작부터 마지막가지 생선가시가 걸린 것처럼 목구멍을 따금거리게 하던 '양부'라는 말이 그런 내 짐작에 더 확신을 가져다준다. 여자에게 양부의 존재는 아주 현실적이다. 대학등록금을 내주는 사람, 자시의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어쩔 수없이 받아들이고 견뎌야 했던 사람. 그런면에서 여자가 지방에서 만난 중년남자 이진은 양부와 비슷하다. 이진 역시 여자에겐 현실 속에서 살기 위에 필요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시인 은경은 여자에게 처음 처녀성을 빼앗은 남자와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결국 여자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떠나온 곳에서 똑같지만 또 다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여자는 모두 떠나간 뒤 남겨진 아이를 키우며 여자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현실에서 버리고 간 선모라는 남자를 다시 삶 속으로 들여놓은 채...... 여자의 현실은 이제 무한대로 탁트인 바다같이, 끝없는 벌판같이 펼쳐져 있다. 그 속에서 또 비슷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비슷한 현실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나에게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스물 다섯 살의 언니는 '나는 내가 스물 다섯이 되면 굉장하게 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며 자신의 현실에 불만족을 말했었다. 몇 년뒤 나에게 찾아 올 스물 다섯을 오늘 홀연히 다 살아낸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내 스물 다섯에 대한 좋은 징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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