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 Z - 여자를 위한 회사는 없다
최명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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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엄마'가 된지 5년.
스물 셋, 대학 졸업 후 일을 시작했으니 직장인이 된지는 13년.
직장인들 누구나가 그렇듯 3년 주기로 퇴직을 꿈꾸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고, 아이를 낳은 뒤 그 주기가 더 짧아져 시시때때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직장생활 중인.

한 분야에서 십 년 이상 일했으니 어느정도 전문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비슷한 실수를 할 때마다 좌절하고, 우울해 하는 간혹 아주 나약한 자아가 나타나 심할 땐 자괴감이 빠지기도 함.

이 책은, 어쩐지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읽고 싶었다기 보다는 읽어야 할 것만 같았다.
자극 혹은 반대로 더 심한 자괴감일 들 수도 있을 거라는 걸 예상했다. 읽은 뒤에 드는 감정은 둘 다다.
어차피, 시작한 일. 어차피 그만두지도 못하는 일, 잘하기라도 해야지. 뭐라도 이뤄야지 하는 마음과, 애초에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이잖아. 저자처럼 될 수는 없잖아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그러나, 어느쪽이든 나쁘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충분히 공감되고, 도움이 될만한 조언들이다.

커리어라는 여정은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경쟁을 통해서만 확실해진다. 그 경쟁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결혼을 한 것도, 엄마가 된 것도, 직장인이 된 것도,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어찌되었든 내 선택이 80%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유지해나가는 것 역시 내 몫이지 않을까.
좀 더 편하면 좋겠고, 좀 더 자유로우면 좋겠고, 일과 육아를 다 잘해내고 싶은 건 직장맘 모두의 소망일테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생각해보니,
아이가 태어난 이후 눈치를 보면서도 아이를 핑계로 행사나 야근에서 예외를 자처한 적이 종종 있었다. 다행이도 조직의 분위기가 '그러니 애 엄마들은 안돼'하지는 않아서 나름 많이 배려 받았다. 물론 앞선 여자 직원(선배)들의 도움도 컸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여자들에 비해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환경이 문제일까, 내가 문제일까. 이건 늘 하는 고민이고 결론은 언제나 쉽제 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럼 뭘까.
아이보다 일에서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일은 그냥 현상유지한 채로 아이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적어도 앞으로 십 년은 더 직장맘으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것.

뭔가, 노선을 확실히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
이 책은 '꿈'을 꾸라는 식의 조언이 아니라 '조직'에서 잘 살아남는 법에 대한 실전 조언인 셈이었다.

핵심은, 내가 일하는 이유가 자아실현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임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나 사실을 회사에서 버티게 만드는 기제로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 아무리 억울하고 괴로워도 버텨야 한다. 아무리 비질을 해도 쓸리지 않는 젖은 낙엽처럼 말이다. 마음이 약해질 때면 상황을 따지고 이해하려 하지 마라. 그저 이 순간을 넘기고 버텨보자고 스스로에게 타일러보라. 어쨌든 경기장에 남아 있어야 볼이라도 차볼 것 아닌가. p31

'아무리 억울하고 괴로워 버텨야 한다' 이 말이 마음에 와 꽂힌다. 내가 일하는 이유가 그래, 자아실현같은 거창한 이유따위가 아니었듯 현실적으로 그만둘 수 없는 상황임을 우울해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 가장 내게 현실적인 조언인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 책의 다음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제 알았으니 이렇게 행동해보자! 마음 먹게 한.

누구나 일은 망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을 의연히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은 망치면 안 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자신을 다소 뻔뻔하게 보호하려는 노력인지 모른다. ... 감정과잉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라. 평정심을 갖고 냉정해지는 것,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하는 데 꼭 필요한 태도다. p92

나는 겁이 많고, 자주 두려움에 빠지고, 걱정도 많다. 변하려고 노력하지만 성격은, 기질은 좀 처럼 쉽게 변하지 않음을 깨닫고 자주 절망한다. 특히, 내 스스로에게 실망 할 땐 겉잡을 수 없이 감정이 바닥을 쳐 자주 도망치고 싶어진다. 이게 나다. '내'가 '나'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아주 조금 절망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일을 겪는 것이 직장 생활이고, 우리의 삶이다. 얼마나 중심을 잘 잡고 대처하느냐가 얼마나 똑똑하고 많이 아느냐보다 중요할 수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은 진리다. "저에게 더 똑똑한 머리와 기발한 아이디어를 주옵소서"가 아니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답게 견딜 수 있는 철갑 멘탈을 허락해주소서"라고 기도할 일이다. p1047

조직 내에서 같은 또래의 다른 여직원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녀 역시 워킹맘이고 일한 년수도 비슷한데 어쩐지 늘 나보다 여유있어 보였다. 뭔가 당당한 듯도 보였다. 물론 한 발 떨어져 보았기 때문일거다. 매일같이 야근하며,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보려 그녀 역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다음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타인과 비교하는 일만큼 '나'의 감정을 소비하는 일이 없음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저 '나'의 중심을 잘 잡고 서면 된다는 걸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때문에 종종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나처럼 지난 뒤에 후회하지 말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등감을 인정하라. 그리고 그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나아가 적극적으로 브랜딩하라. 열등감에 이름을 붙여주고, 역할도 주고,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지도 수시로 되새겨라. 어쩌면 그 열등감 때문에 오늘날 회사에 다니고, 돈도 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감사할 일이다. 결핍을 알았기에 나아지고 싶어 노력했던 결과가 오늘이므로 열등감은 고마운 존재다. 어느 날 오랫동안 당신을 괴롭혀온 열등감은 자신감이라는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p137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아주 완벽한(내 기준에서) 조언을 찾았다.
어쩌면 이 말이야 말로, 갈팡질팡하는 워킹맘들에게 딱 들어맞는 조언이 아닐까 싶다.

일과 삶의 밸런스? 성공하고 싶다면, 일을 선택했다면 그런 밸런스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둘 다 어중간하게 하다가 내팽개치거나 나가떨어지는 건 이런 헛된 욕심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나 자신도 행복하지 않다. 그 보다는 일과 삶의 융합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일이 삶이 되고, 삶이 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밸런스가 개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 삶에 일이 제대로 융합되지 못하도 있다고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이 중요하고, 일을 통해 무언가를 증명해 보이고 싶다면, 일 중심으로 삶을 융합시켜야 한다. 일을 위해 충전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 직장 생활을 잘하기 위해 가족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효율적으로 채워주고, 신경 쓰고, 일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잘 지내며, 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배워야 한다. "내 개인의 삶이 거의 없어요"라는 하소연을 하기 전에 개인의 삶이 없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 기준을 분명히 세워라.
소중한 가정,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양육. 그 중요한 것을 뒤로하고 선택한 직장생활이라면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의 출발점은 일과 삶의 밸런스라는 막연한 기대와 환상이 아니다. 그보다 일 중심으로 내 삶을 디자인하고 나머지를 융합시켜 최대한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유일한 밸런스다. p23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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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기다려 봐 - 2016년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비룡소의 그림동화 237
케빈 헹크스 글.그림, 문혜진 옮김 / 비룡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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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답이지만 울컥, 하고 말았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난 뒤
"윤인 뭘 기다려~?" 하고 물으니 아이의 대답
", 엄마가 학교에서 일찍 오길 기다리지~"

그럴 땐 그저 꼬옥~ 안아 주는 수 밖에.

2106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조금만 기다려봐>는 아이와 대화하면서 읽기 좋은 책이었다.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그림의 색감이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듯 했다.

점박이 올빼미와 우산 쓴 꼬마돼지, 연을 든 아기 곰, 썰매 탄 강아지, 별 토키, 다섯 친구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날 얼룩 고양이가 찾아와 새로운 친구가 되었다.
친구들이 기다리는 게 무얼까. 그 친구들이 기다리는 것들은 언제쯤 와 주었을까. 그림을 보면서 하나하나 아이와 이야기 하는 게 재미있었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기다리라고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이 책은 아이에게 기다림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이는 지루해 하지 않고, 어려워하지 않고 책 속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를 받아들여 주었다.

기다리면 꼭 온다고, 예윤이가 기다려주면 엄마는 언제든 예윤이에게 온다고 말하는 순간 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아이는 아마, 친구들이 모두 돌아 간 어린이집에 혼자 남아서 꼭 온다는 엄마를 이제는 조금 편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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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있으시죠? - 김제동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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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떠나서 우리, 서로의 상처와 두려움을 함께 치유해나갈 수 있고, 우리 각자가 그런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약한 점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실제로는 훨씬 더 강해진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한번쯤 마음에 새겨보면 굉장히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더라고요.
여러분, 가끔 마음이 약해져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드러내고 활짝 웃으면서 오늘 하루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p252-253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결국, '우리모두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 그 바람이 이 사람 김제동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싶다.
나만 행복한 거 말고, 나도 너도 행복하고, 옆집 아이도 행복하고, 윗집 할머니도 길 건너 슈퍼 아줌마도 모두 공평하게 행복한 사회를 바라는 사람. 그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으로, 위로로 따뜻하게 감싸주는 고맙고 고마운 사람.

저는 사람들이 웃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제 인생 목표는 모두가 함께 웃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 웃을 수 없는 분들, 공정하지 못하고 불합리한 사회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도 웃음을 드리고 싶어요.p6


"살면서 김제동씨에게 고마운 일이 많았어요.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을 거에요." 라고 어느 택시기사님이 하신 말씀이 굉장히 고맙고 울컥했다는 사람.

우린 그 말을 수없이 하고 또 하고 있다. 참 고마운 사람. 어두운 곳, 힘든 곳, 아픈 곳, 이곳저곳에 닿는 희망의 목소리 만으로도 사람들은 위로받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냥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책 속에서도 마이크를 잡고 웃으며 그가 전하는 말들이 그대로 전달 되는 듯 해서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책은 선물하기 힘든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각자의 취향이 있기 때문에 내가 좋다고 무작정 권하기 어려운 느낌때문에. 그럼에도 이 책은 누군가에게 꼭 선물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한 마디 위로는 필요하니까. 누구에게나 따뜻한 공감은 중요하니까.



- 여러분도 가끔 그러는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앞으로도 가끔 실수를 저지르고, 가끔 수치스러운 일도 하면서 살겠지만 될 수 있으면 저를 그렇게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고 용서해주는 일도 자주 하려고 합니다. 실수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 테니까요. p109

- 내 마음 안에 게스트하우스가 하나 있는데, 아침에는 행복이 와서 놀다 가고 저녁에는 우울함이 와서 놀다 간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 같아요. 우울하거나 충동적인 감정이 들어오더라도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 머물다 가는 것이니까, 머물 수 있을 때까지 머물다 가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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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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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소설인데 소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간혹 있는데 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딱 그랬다.

    

'김지영. 흔한 이름이다. 누구나 주위에 지영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1982년에 태어난 여성들의 이름 중 가장 많은 것이 김지영이란다. 82년생이나 이제 30대 중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제목은 이 소설의 목적을 잘 함축하고 있다. 그 목적은 물론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그리는 것이다'(작품해설 '우리모두의 김지영' 김고연주) 중

내 이름은 '은영'이다. 언니의 이름은 '지영'
소설 속의 '나'의 이름은 '지영' 언니의 이름은 '은영'이다. 뭔가 재미있지 않은가.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의 보편적인 삶, 이라는 소설의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30대 중반, 아이 엄마, 나이가 비슷하니 겪어온 시대가, 사회가 비슷하고 삶의 방식이나 조건도 엇비슷하게 느껴져 읽는 내내 너무 흥미로웠다. 물론 소설속 '지영'의 가족보다 조금 더 가난했으며(후에 소설 속 지영의 가족은 풍요로워졌으나), 소설 속 '지영'의 가족들 보다 불화했음이 차이라면 차이였을 것이다. 보편적인 삶이라는 말이 주는 평범함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릴 땐 미처 알지 못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특별'한 삶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다 '평범'하게 잘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은 김지영시와 정대현 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김지영씨의 인생을 거칠게 정리한 내용이다(남편 정대현은 아내 김지영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나자 먼저 정신상담을 받는다. 소설은 상담을 토대로 의사가 김지영시의 인생을 거질게 정리했다고 표현한다).
지영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난 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지영은 갑자기 장모가 되기도 하고, 대현의 첫사랑이 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의사가 직접 만나보니 산후우울증에서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진 매우 전형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담이 이어질수록 의사는 확신할 수 없었다.

김지영 씨는 당장의 고통과 부당함을 호소하지도 않고,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계속 되새기지도 않는 편이다. 먼저 쉽게 입을 열지는 않지만 한번 물꼬가 트이면 깊은 곳의 이야기까지 스스로 끄집어내 담담하고 조리 있게 잘 말한다. 김지영 씨가 선택해서 내 앞에 펼쳐 놓은 인생의 장면 장면들을 들여다보며 나는 내 진단이 성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세상이 있다는 뜻이다. p170

82년생 김지영씨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직장생활을 거치면서 되도록이면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듣는 쪽에, 참는 쪽에 가까웠다. 그건 그 시기를 거쳐간 대부분의 여학생이, 여성직원이 그래왔던 일이다. '내'가 참는 편이, 견디는 편이 사는데 더 나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절이기도 했고. 김지영씨는 억울해도 참았고 견뎠다. 그러다가 결국 터져버렸다.

선배는 평소와 똑같이 다정하고 차분히 물었다. 껌이 무슨 잠을 자겠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김지영씨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p94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오히려 그 순간들이었다. 김지영씨는 충분히 건강하다고, 약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가족 계획은 처음 보는 친척들이 아니라 남편과 둘이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p134

그럼 너도 계속 구역질하고,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못하면서, 피곤하고, 졸립고, 여기저기 아픈 상태로 지내든지. 겉으로 말하지 못했다. p138


여성으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소설 속 에피소드들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 공감되고 이해된다. 그래서 소설은 마치 나의,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술술 잘 넘어간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공감 돼. 맞아맞아. 그런데?

희망이 있는거야? 라고 묻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김지영씨는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여전히 간혹 다른 사람으로 빙의해 하고 싶은 말을 툭툭 내뱉는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타인의 목소리로 말한다.  그것 역시 아쉽지만 현실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히 낼 수 없는 사회. 용기를 내 낸다고 해도 묵살당하거나 무시당해 오히려 더 절망하게 되는 사회에서 얼마나 더 묵묵히 참고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오늘도  여기저기에서 흩어져 힘겹게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김지영'씨에게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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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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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턴가 허지웅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거의 없다. MC든 패널이든. 처음 그의 책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었을 땐, 방송에 나와 삐딱하지만 다정해보이게 이야기하는 그가 궁금해서 책을 찾아 읽었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그 이후 그가 방송에서 어떤 모습인지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가 쓴 글이나 기사를 읽고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더 많다. 때로 단편적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통해 그가 프로그램에서 했다는 이야기들을 접하고,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기도 하는데 역시 그것보다는 글을 통해 얻는 이미지로 기억하는 게 맞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방송에 종종 불려나가고 있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건달에 불과하다'라고 적었는데 그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어떤 믿음이 있는 듯해서 부럽기도 했다.     


이번 책의 맨 서두에 실린 작가의 말이 참 좋았다. 여러번 곱씹어 읽어봐도 그렇다.

어른이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흔 살에 가깝게 된 지금에도 나는 그 거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너무 다가가면 아픈 일이 생겼고 너무 떨어지면 외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장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겨우 떠올린 건 상대를 존경할 만한 적장처럼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워지면 속을 모조리 내보여버리는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서둘려 벽을 허물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상대가 서운해하고, 서운해하는 상대를 보며 내가 미안해하는 가장 어려운 순간만 견뎌내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나 자신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에 심취하면 쉽게 뜨거워지고 자기 사정과 감정만이 특별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사정에만 너그럽다보면 남의 사정은 나보다 덜한 별것 아닌 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괴물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주변 세계를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확실히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상대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조심할 수 있는 방법을 아주 조금은 깨달은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쉰 살이 되기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완벽한 거기를 수식으로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사이의 적적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그 사람들을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인간관계의 어려운 관문 하나쯤을 가뿐히 넘어선 것은 아닐까.

이번 책, <나의 친애하는 적>은 그가 매일 쓴 글들을 모아 2년만에 묶어 낸 에세이 집이다.
그 사이, 많이도 썼구나. 참 부지런하게 살았구나 이 사람은. 그런 생각에 다시 한 번 문득 부러워진다.
글은 그냥 써지는 것이 아니어서, 많이 읽고 보고 느껴야 무언가 자신의 글이 나오는 것일 텐데 글을 쓰는 시간 말고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만났을 그의 부산스럽고 자유로웠을 그 시간들이 막연히 상상해 본다.

책 속에는 모두 59편의 에세이가 담겨 있다. 일기 같은 느낌의 글도 있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사회 이슈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특히 나는 그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에세이들이 참 좋다.

그가 여러 글에서 고백했듯, 힘들었던 대학시절의 경험들이 그가 세상을 살아가고, 사람들을 대하는데 큰 자양분이 되어준 듯 하다.

이 책 안에 <<엄마, 나의 가장 친애하는 적>>이라는 글이 있는데 나는 이 글을 읽고, 그만 울컥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어릴 때 가장 거대하게만 보이던 엄마가 나이들고 보니 자기가 아는 이들 가운데 가장 작고 약한 사람이었다고 고백하는 부분과, 엄마 생각을 하면 늘 조금 울고 싶어지지만 엄마 앞에서는 울지 못한다는 고백이 내 마음 어느 부분에 와 쿵, 하고 부딪쳤다.

그 글 말고, 고인이 된 신해철의 이야기를 적은 부분에서도 비슷했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 인 듯하지만 적어도 사람을 사람답게 대할 줄 아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강자앞에서 강하고 약자 앞에서 한없이 약해질 줄 아는 사람인 것도 같다. 삐딱하게 툭툭 내뱉는 말들 같지만, 애정어린 마음을 가득 담았을 거란 믿음 같은 게 생겼다. 적어도 그의 글 안에서 만은 말이지.

글을 통해 오래 그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래 들을 수 있으면 좋겠고, 그가 만들어 놓은 친애하는 적들이 사는 세계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분명한 건, 나는 이 책을 읽고 조금 위로를 받았다는 것.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렇다고 내가 경험해 보지 않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곧 비정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왜 냐하면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기 때문이다. p33

그녀는 한때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아는 이들 가운데 가장 작고 약한 사람이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엄마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엄마 생각을 하면 나는 늘 조금 울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엄마 무릎 위에서 울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엄마 앞에서 울지 못한다. p138

전에는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쉽게 까먹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까먹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까먹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까지 함께 잊어버리기 마련이더라. 그리고 그렇게 까먹은 중요한 것들은 너무 중요하고 소중해서, 반드시 훗날 가슴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어쩌면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필요한 건 망각이나 체념이 아니라 이해하는 태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이해 말이다. p192

사람들은 간과한다. 순백의 피해자라는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자신 또한 언젠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순백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제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그 친구를 더 열심히 돕지 못했다는 이유로 종종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진다. 우리가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던 그 많은 피해자들을 떠올려보자. 어쩌면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p224

우리에게 필요한 건 노블레스 오블리주 따위가 아니라 모두에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엄정하게 적용될 원칙과 약속이다. 착한 주인, 착안 임금, 착한 지배계급에 대한 판타지는 쓸모없고 오래된 노예 근성에 불과하다. 그런 걸 요구할 이유도 없다. 왕조가 아닌 이상 우리가 채택한 시스템에서는 모두에게 공히 적용되는 엄정한 원칙과 약속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가치다. ‘착한주인‘에 대한 전근대적 판타지를 없애야만 ‘모두에게 똑같은 원칙과 약속‘이라는 당연한 헌법적 질서가 뿌리내릴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느 지배계급의 스캔들을 다른 지배계급의 미담으로 덮는 식의 과정이 영원히 반복되는 세상. p250

부끄럽지만 정직한, 그래도 우리는 정직하게 이런 흑역사라도 남기려고 열심히 싸웠고 그래서 너희들은 우리보다 제발 조금 더 나은 세대가 되어달라고 있는 힘껏 외치는 근현대사 서술은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아주 조금이라도 응원할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이때 자기 과거를 거짓으로 낭만화하지 않고서는 더이상 현실을 견뎌낼 수 없을 만큼 노쇠한 자들은 입을 다물어야만 한다. ‘자랑스러운 역사‘란 왜곡된 자화자찬이 아니라 그 모든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거듭해가며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유와 반성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과거는 대개 창피한 것이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돌아볼 수 있는 정직함만이 늘 위대하다.p284-286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난다. 만날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폭하기 보다 설득하고 싸워나가기를 포기할 수 없다. 요즘은 그렇게 원론적인 것들이 자꾸 마음이 간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던 가장 기본적인 믿음들이 세상을 더 많이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아직도 그런 걸 믿느냐는 사람들에 의해 수시로 훼손되어 버려지고 있다. 나는 그게 너무 슬프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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