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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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턴가 허지웅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거의 없다. MC든 패널이든. 처음 그의 책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었을 땐, 방송에 나와 삐딱하지만 다정해보이게 이야기하는 그가 궁금해서 책을 찾아 읽었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그 이후 그가 방송에서 어떤 모습인지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가 쓴 글이나 기사를 읽고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더 많다. 때로 단편적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통해 그가 프로그램에서 했다는 이야기들을 접하고,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기도 하는데 역시 그것보다는 글을 통해 얻는 이미지로 기억하는 게 맞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방송에 종종 불려나가고 있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건달에 불과하다'라고 적었는데 그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어떤 믿음이 있는 듯해서 부럽기도 했다.     


이번 책의 맨 서두에 실린 작가의 말이 참 좋았다. 여러번 곱씹어 읽어봐도 그렇다.

어른이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흔 살에 가깝게 된 지금에도 나는 그 거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너무 다가가면 아픈 일이 생겼고 너무 떨어지면 외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장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겨우 떠올린 건 상대를 존경할 만한 적장처럼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워지면 속을 모조리 내보여버리는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서둘려 벽을 허물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상대가 서운해하고, 서운해하는 상대를 보며 내가 미안해하는 가장 어려운 순간만 견뎌내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나 자신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에 심취하면 쉽게 뜨거워지고 자기 사정과 감정만이 특별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사정에만 너그럽다보면 남의 사정은 나보다 덜한 별것 아닌 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괴물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주변 세계를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확실히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상대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조심할 수 있는 방법을 아주 조금은 깨달은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쉰 살이 되기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완벽한 거기를 수식으로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사이의 적적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그 사람들을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인간관계의 어려운 관문 하나쯤을 가뿐히 넘어선 것은 아닐까.

이번 책, <나의 친애하는 적>은 그가 매일 쓴 글들을 모아 2년만에 묶어 낸 에세이 집이다.
그 사이, 많이도 썼구나. 참 부지런하게 살았구나 이 사람은. 그런 생각에 다시 한 번 문득 부러워진다.
글은 그냥 써지는 것이 아니어서, 많이 읽고 보고 느껴야 무언가 자신의 글이 나오는 것일 텐데 글을 쓰는 시간 말고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만났을 그의 부산스럽고 자유로웠을 그 시간들이 막연히 상상해 본다.

책 속에는 모두 59편의 에세이가 담겨 있다. 일기 같은 느낌의 글도 있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사회 이슈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특히 나는 그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에세이들이 참 좋다.

그가 여러 글에서 고백했듯, 힘들었던 대학시절의 경험들이 그가 세상을 살아가고, 사람들을 대하는데 큰 자양분이 되어준 듯 하다.

이 책 안에 <<엄마, 나의 가장 친애하는 적>>이라는 글이 있는데 나는 이 글을 읽고, 그만 울컥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어릴 때 가장 거대하게만 보이던 엄마가 나이들고 보니 자기가 아는 이들 가운데 가장 작고 약한 사람이었다고 고백하는 부분과, 엄마 생각을 하면 늘 조금 울고 싶어지지만 엄마 앞에서는 울지 못한다는 고백이 내 마음 어느 부분에 와 쿵, 하고 부딪쳤다.

그 글 말고, 고인이 된 신해철의 이야기를 적은 부분에서도 비슷했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 인 듯하지만 적어도 사람을 사람답게 대할 줄 아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강자앞에서 강하고 약자 앞에서 한없이 약해질 줄 아는 사람인 것도 같다. 삐딱하게 툭툭 내뱉는 말들 같지만, 애정어린 마음을 가득 담았을 거란 믿음 같은 게 생겼다. 적어도 그의 글 안에서 만은 말이지.

글을 통해 오래 그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래 들을 수 있으면 좋겠고, 그가 만들어 놓은 친애하는 적들이 사는 세계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분명한 건, 나는 이 책을 읽고 조금 위로를 받았다는 것.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렇다고 내가 경험해 보지 않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곧 비정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왜 냐하면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기 때문이다. p33

그녀는 한때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아는 이들 가운데 가장 작고 약한 사람이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엄마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엄마 생각을 하면 나는 늘 조금 울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엄마 무릎 위에서 울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엄마 앞에서 울지 못한다. p138

전에는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쉽게 까먹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까먹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까먹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까지 함께 잊어버리기 마련이더라. 그리고 그렇게 까먹은 중요한 것들은 너무 중요하고 소중해서, 반드시 훗날 가슴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어쩌면 뭔가를 내려놓기 위해 필요한 건 망각이나 체념이 아니라 이해하는 태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이해 말이다. p192

사람들은 간과한다. 순백의 피해자라는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자신 또한 언젠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순백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제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그 친구를 더 열심히 돕지 못했다는 이유로 종종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진다. 우리가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던 그 많은 피해자들을 떠올려보자. 어쩌면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p224

우리에게 필요한 건 노블레스 오블리주 따위가 아니라 모두에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엄정하게 적용될 원칙과 약속이다. 착한 주인, 착안 임금, 착한 지배계급에 대한 판타지는 쓸모없고 오래된 노예 근성에 불과하다. 그런 걸 요구할 이유도 없다. 왕조가 아닌 이상 우리가 채택한 시스템에서는 모두에게 공히 적용되는 엄정한 원칙과 약속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가치다. ‘착한주인‘에 대한 전근대적 판타지를 없애야만 ‘모두에게 똑같은 원칙과 약속‘이라는 당연한 헌법적 질서가 뿌리내릴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느 지배계급의 스캔들을 다른 지배계급의 미담으로 덮는 식의 과정이 영원히 반복되는 세상. p250

부끄럽지만 정직한, 그래도 우리는 정직하게 이런 흑역사라도 남기려고 열심히 싸웠고 그래서 너희들은 우리보다 제발 조금 더 나은 세대가 되어달라고 있는 힘껏 외치는 근현대사 서술은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아주 조금이라도 응원할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이때 자기 과거를 거짓으로 낭만화하지 않고서는 더이상 현실을 견뎌낼 수 없을 만큼 노쇠한 자들은 입을 다물어야만 한다. ‘자랑스러운 역사‘란 왜곡된 자화자찬이 아니라 그 모든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거듭해가며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유와 반성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과거는 대개 창피한 것이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돌아볼 수 있는 정직함만이 늘 위대하다.p284-286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난다. 만날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폭하기 보다 설득하고 싸워나가기를 포기할 수 없다. 요즘은 그렇게 원론적인 것들이 자꾸 마음이 간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던 가장 기본적인 믿음들이 세상을 더 많이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아직도 그런 걸 믿느냐는 사람들에 의해 수시로 훼손되어 버려지고 있다. 나는 그게 너무 슬프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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