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지음 / 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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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동안 알코올중독 엄마의 딸로 살아온 여자가 있다.

술 때문에 딸의 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한 엄마.

술 때문에 아무 데서 건 쓰러지고, 경찰의 전화를 여러 번 받게 한 엄마.

술을 사러 나가지 못하 게 한다고 과도를 휘두르던 엄마.

그런 엄마를 선명하게 미워했다고 썼다. 정확하게 사랑했다고 썼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그 문장이 너무 슬프고 기쁘고 찡했다.

이건 정말 알 것 같아서.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서 그랬다.

'엄마'라서 징글징글하지만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었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알지 않을까.

이 양가적 감정이 뭔지, 정확한 단어로 설명할 순 없을지 몰라도 느껴지지 않을까.

'그래, 그런 거 있어.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했어'. 하면서.

책 속에는 어린 시절의 저자가, 청소년기의 저자가, 어른이 된 뒤의 저자가 살고 있다.

그 옆엔 언제나 어른이었던 그녀의 엄마가 있었다. 의지하고 싶었으나 의지할 수 없었던, 그럼에도 곁에 있어 좋았던 엄마가.

사랑인 줄 몰랐으나 끝내 완벽하게 사랑이었음을 알게 해준 엄마가.

엄마가 되고 나서 알았다.

대단한 엄마라서가 아니라 그냥 '엄마'라서 아이들은 무턱대고 엄마에게 무한한 애정을 품어준다는 것을.

시도 때도 없이 그 사랑을 표현해 준다는 것을.

그래서 또 알았다. '엄마'가 가장 무서운 건 '자식'이구나.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된다.

엄마가 어떻게 그래? 수없이 되뇌던 말이 작가의 문장처럼 "어떻게 저런 사람이 엄마를 해냈을까"로 바뀔 만큼의 시간이 내게도 흘러갔다.

좋으면서 슬픈 것, 좋은 것과 같이 딸려오는 슬픔, 아이가 병렬로 놓은 좋음과 슬픔이라는 단어가 담긴 문장을 곱씹는다. 좋고 소중하기 때문에 때로 슬펐던 시간들. 슬펐어도 분명히 존재했던 빛나는 시간들. 빛나던 시간 안에도 그늘은 존재하고, 유쾌한 웃음소리 안에도 글썽이는 눈물은 있을 수 있다. 좋고 나쁨을 정확하게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삶은 어렵고 복잡하다. 삶이 품고 있는 복잡성과 모순을 껴안는 것이 버거웠던 나의 시간들이 아이와 걸으며 떠올랐다. - <분홍색 나뭇잎> 중에서, p47

미워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조금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왜 미워만 해야 한다고, 사랑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서로를 괴롭혔을까.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한다. 둘 다 할 수 있는 게 어쩌면 '행운'이 아닐까 하고.

손으로 밥을 차려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고부터 내게는 엄마를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과 지켜내야 한다는 죄책감이 있었다. 엄마가 날 버리지 않고 혼자서 기른 것처럼 나도 끝까지 엄마를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엄마를 향한 나의 돌봄과 사랑은 늘 초라했다. (...) 빨리 엄마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왜 나는 엄마가 나를 홀로 키운 것처럼 정성을 다하지 않느냐는 마음, 이 두 마음은 늘 동시에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엄마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게 엄마의 중독이 심해지지 않도록,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터널을 내가 지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 <첫 외출> 중에서, p233


섣부른 짐작일지 모르지만, 저자는 자라면서 자주 "착하구나."같은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듣지 않았을까. 엄마를 잘 챙기는구나, 엄마가 못 챙겨도 스스로 혼자 잘 하는구나, 너 참 착하구나, 그런 말들과 시선들. 내가 자주 들었던 말. 그래서 지긋지긋했으나, 벗어나기 힘들었던 말. 여전히 가장 취약한 말.


슬프고 기쁘고 찡한 감정으로 읽다가 끝내 참지 못했던 마지막 단락. 다시 태어나 엄마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다시 엄마를 선택하겠다는 저자의 말에 움켜쥐고 있던 주먹이 풀리면서 마음이 요동쳤다.


"내게 한계였던 동시에 나의 잠재력이었던 나의 엄마. 나의 토대, 나의 기반."


우리가 끝내 엄마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엄마를 재창조하는 것만 같아요. 나는 그녀를 안다고 할 수 있는지 제게 되물어요. 그러면 저는 놀라울 정도로 확신해요. 내가 아는 모습이 엄마의 다라고요. 거만해 보이나요? 그런데 진짜예요. 나는 엄마를 깊숙이 알아요. 나는 엄마의 모든 것을 보았어요. 아니, 모두 안다고 하는 것이 마음 편할지도 몰라서 하는 말일까요. 누군가 제 글로 표현된 엄마를 보았을 때 입체적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제 안의 엄마는 고정적이에요. 늘 그 자리에 찰싹, 끈질기게 제게 달라붙어 있어요.
- P13

저 사실 엄마가 죽고 나서 시원했습니다.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음이 터져 가슴을 부여잡고 우는 동시에 드디어 중독의 족쇄에서 풀려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의 아픔보다는 죽음이 가져온 해방감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이제 새벽에 경찰서 연락을 받고 나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더이상 엄마가 외상한 술값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없겠구나. 엄마의 몸과 마음이 다칠까봐 그만 불안해해도 되겠구나 하는 해방감이요. 엄마를 떠올리면 슬픈데 그립지는 않습니다. 27년을 중독자의 딸로 살면서 감내해온 고통은 엄마와의 이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고통도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사랑도, 이런 모녀도, 이런 가족도 있는 것이겠지요.
- P159

불행과 다정이 뒤섞인 시간들을 글로 쓴다는 것은, 그때는 묻어두기 바빠 알지 못했던 내 감정들을 꺼내어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색을 입히고 냄새를 씌우면서 그때의 내가 되는 일이었다. 나의 불행을 기억하고 쓰는 일. 쓴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닐지라도, 불행을 껴안을 때 비로소 내 안에 숨죽이고 있던 시간들이 숨 쉴 수 있음을 느낀다. 불행이 내뱉는 숨에 의지하여 써 내려갈 수 있는 시간과 글이 있다면 여전히 아프고 괴로울지라도 좋을 것이다. 불행이 숨이 되고 글이 되어 내쉬어지는 날들이 더 많이 오길.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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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강경수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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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아이 앞에 나타난 커다란 손.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내어주고, 보살펴 주는 손.

아이가 어릴 땐, 그 안에서도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무럭무럭 자란 아이는 말을 할 줄 알게 되고, 자신을 돌봐주었던 '손'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 손은 여전히 보드랍고, 안전하지만 아이는 궁금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나도 세상에 나가보고 싶어요" 

"그건 힘들 것 같구나, 세상은 너무 위험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단다."

"무서운 곳인가요?"

"무서운 곳이지."

'세상'은 무서운 곳, 이라고 알려주어야 하는 건 슬픈 일이다.

아이가 보고, 느끼고, 부대끼면서 살아가야 할 '세상'은 적어도 '무서운 곳'이면 안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부모'의 마음으로 공감이 된다.

나의 아이들을 완전무장 시키지 않은 채 내보내도 괜찮을 걸까.


"세상은 정말 위험한 곳인가요?"

"몇 번을 말했지만 그렇단다."

"하지만 궁금해요."

"그럴 필요 없단다. 너는 나와 있는 것이 안전해. 모든 건 널 위해서야."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는 그럼에도 직접 그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궁금하고,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고.

언제가 내 품을 떠날 나의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어쩌면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럼 어른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한다.

아무리 붙잡아도, 언젠가 '세상'으로 나갈 아이.

이미 '세상'에 나와 부대끼며 살고 있는 어른.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과 '눈'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앉아 읽으면 좋겠다.

"네가 느끼는 세상은 어떤 곳이니?" 하고 묻고,

아이가 느끼는 세상에 가깝게 만들어 주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세상을 직접 보고 싶어요."

"넌 세상을 몰라."

"그래도 상관없어요. 모르면 알아 갈 거예요."


씩씩하게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의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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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 후회와 걱정에서 벗어나 지금을 살기 위한 심리학자의 마음 수행 가이드
변지영 지음 / 오아시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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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당신을 가로막는 건 언제나 생각'이었다!"

그랬다.

생각은 길고, 길어지면 생각에서 공상으로, 상상으로, 망상으로 이어진다.

대체로 그렇다. 걱정하는 문제에 대한 생각일수록 좋은 생각으로 끝날 때보다 나쁜 생각으로 마무리되어, 마음에 쿵, 돌덩이를 하나 얹은 채 끝나게 된다.

아니, 끝나지 않는다. 돌탑을 쌓듯 계속 그 위로 쌓인다.

책 처방전이 있다면,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는 지금 내게 딱 알맞은 처방이었다.

그놈의 생각! 생각! 하면서 몇 주를 보냈으니까.



포스트잇을 얼마나 붙이면서 읽었던지.

일독을 하고, 포스트잇 붙인 페이지만 다시 읽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가 이 책에서 찾아낸 보물 같은 단어는 '자기 주제'다.



우리가 반복해서 겪는 어려움과 문제들은 나 자신의 감정 습관, 생각 패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통해 증폭될 때가 많습니다. 내 특유의 경향성 그리고 그 경향성과 관련된 '자기 주제'는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경험하는 사건들에도 영향을 끼치지요.

이를테면 자기 주제가 '소외되거나 혼자 남겨지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인 경우에는 늘 타인에게 맞추고 순응하다 보니 상대방이 함부로 대해도 꾹 참거나 웃음으로 넘기면서 갈등을 회피하는 일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

자기 주제가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강하게 나가야 해' 인 사람은 '무시'와 관련된 신호에 민감해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공격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혹은 '아무도 내 어려움에 공감하지 않아'와 같은 주제로 시달리는 사람은 자기 문제로 시야가 많이 좁아져서 가까이 있는 친구나 가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 <신경증과 지혜의 다섯 가지 짝> 중에서, p50



자기가 신경 쓰고, 집중하고 있는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생각하는 혹은 타인을 대하는 방식,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



간과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주연일 뿐 아니라 스토리의 작가'라는 말은 그래도 크게 와닿았다.

내가 어떻게 스토리를 만들어 갈 것이냐... 결정하는 것은 나의 몫.

"내가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는 문제는 무엇인가?"

"그건 어떤 경험인가?"

"왜 나는 그걸 계속 문제 삼는가?"

"문제 삼는 마음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자기 주제'를 명확히 알아내야 해결을 하든, 변하든 할 수 있다는 부분을 읽고,

책 속의 질문들을 옮겨보면서 나는 명확히 알 것 같았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 회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며칠 동안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안 좋은 생각을 덜 하고 싶으면 그것과 관련된 씨앗에 물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저자는 씨앗에 물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멈춤'을 이야기한다.

생각을 멈추기 위해 '명상'을 권한다.

(책 속에 저자가 알려주는 4단계 수행 연습 방법이 꽤 상세하게 적혀 있다)

책을 읽은 뒤 아침에 일어나 불을 켜지 않은 상태로 저자가 알려준 대로 앉아 명상을 해봤다.

쉽지 않았다. '멈춤'은 한순간에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며칠, 몇 달 하다 보면 습관처럼 그것도 되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어렵지 않다는 거였다.

어려운 단어나, 누군가의 이론을 거론하며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막힘없이 읽게 하는 문장 속에 담겨 있는 날카로운 지적.

날카롭게 지적하고 끄집어 냈지만,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존재한다고 알려주는 다정함.

혹시 이런저런 고민으로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면, 그 생각이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라면,

'멈춤'하고 싶다면, 그 시작으로 이 책 속의 문장들에 기대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지금 그렇듯.

어려운 상황에서는 어려움 한가운데로 들어가 앉습니다. 불편한 마음과 마주합니다. 많은 행동보다는 정확한 행동이 필요하기에, 조용히 방에 앉아 자신과 천천히 얘기를 나눕니다.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과 깊게 연결됩니다. 그런 연결은 우리를 본래의 지혜로 안내합니다. 기회는 밖에 있지 않고 출구도 밖에 있지 않습니다.
- P101

‘이 일에서 내가 정말로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관계는 감정을 일으키기에, 관계를 피한다는 것은 감정을 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힘든 감정에는 대개 ‘자기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굴리고 있는 바위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감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적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작업은 작기 이해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18

우리의 일상적 행위 하나하나가 위대한 수행의 기회입니다. 매 순간 우리는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걸을 때는 걷는 행위가 되고 밥을 먹을 때에는 밥 먹는 행위가 됩니다. 청소를 할 때는 청소와 하나가 되고 대화를 할 때는 대화와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에서 괴로워할 일이 줄어들게 됩니다. 오고 가는 것에, 생겨나고 그치는 것에, 순간순간 온 마음으로 참여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라고 하는 개념이 떨어져 나갑니다. 이것이 자기중심성을, 나를 잊는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결과를 기대함 없이 긍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아무것도 예상하지 말고 그저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내던지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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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와의 티타임 - 정소연 소설집
정소연 지음 / 래빗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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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초기 노래 중에 <9와 4분의 3의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큰 아이가 덕질 중인 아이돌이라 귀가 따갑게 얘기를 듣는 중인데, 이 노래의 제목을 듣고 나서 "야, 무슨 노래 제목이 그러냐!"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나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지 않은 사람이다.

호크와트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매 새 학기마다 학부모들이 킹스 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학생들을 배웅한다.

이것도 검색해 찾아낸 내용이다.

정소연 소설가의 <<앨리스와의 티타임>>을 읽으면서 세계와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문'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과 저쪽을 오갈 수 있지만 눈에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특정인들에게만 보일 수도 있는) 그런 문.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누구나 들어갈 수 없는 그런 문.

묘한 느낌이 들어 계속 검색창에 생각나는 단어를 넣고 검색했다. 그러다 발견한 게 킹스 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이었다.

그러고 나니 연쇄반응처럼 투모로의바이투게더의 노래 제목이 떠올랐던 거다.

숨겨진 9와 4분의 3엔

함께여야 갈 수 있어

비비디 바비디 열차가 출발하네

비비디 바비디 우리의 매직 아일랜드

이 터널을 지나면

눈을 뜨고 나면

꿈속은 현실이 돼

내 영원이 돼줘 내 이름 불러줘

- <투모로루바이투게더,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부분>

가사를 찾아 읽고 나니 어떤 이미지들이 떠올랐고, 다시 소설 <<앨리스와의 티타임>>으로 생각이 연결됐다.

어떤 사람들은 본 적도 없을 우주의 한복판에서 정연이 이처럼 흔들렸던 순간이 있었다.

정연은 잠시, 지영에게 저 틈 너머에 수많은 세계가 있다고,

지영도 원한다면 그 사이로 아득히 흩어지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맞지 않는 세계에서 오랫동안 버텨온 지영이 얼마나 대단하고 대견한지 진심으로 칭찬하고 싶었다.

그러는 대신, 정연은 지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한 번 더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었어."

그리고 틈이 닫혔다.

- <비거스렁이> 중에서, p64

그러면서 계속 마음에 남은 단어가 있다.

'틈' 혹은 '틈새'

대체로 '틈이 생기다'처럼 쓰일 때 긍정보다는 부정의 느낌이 전해지는 이 단어가 소설에서는 자꾸 '희망'의 단어처럼 느껴지는 거다.

'벽'처럼 단단히 막혀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틈' 사이에 나도 있고 너도 있고, 결국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희망.

높기만 해 보이는 끝을 알 수 없는 계단을 차근히 밟고 올라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만나게 될 희망.

어쩌면, 지윤이 다른 계단을 더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학교 밖으로 통하는 계단을, 서혜가 어디에 있든 서혜에게로 열리는 계단을.

사라진 사람들을 안전하게 데려올 수 있는 비밀 통로를.

어쩌면 열리는 계단들을 처음 찾아낸 것은 지윤 같은 사람들이었을지도 몰랐다.

먼저 앞서 나갈 만큼 용감하지는 않은 사람들, 조금 느린 사람들, 저 밖에서 내 곁으로 무사히 데려오고 싶은 이가 있는 사람들.

학교에는 아직, 지윤이 밟아보지 않은 계단이 아주 많았다.

- <계단> 중에서, p108

궤도선이 천천히 내려앉더니 이윽고 멈추었다. 우주항의 출구를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이 나를 금세 발견하고 일어섰다.

아버지가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더니, 우리 사이의 틈을 메우듯 성큼성큼 다가와 내 손을 당겨 잡았다.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가 물컹한 젤리처럼 밀려난 공간에, 희미하게 온기가 퍼졌다.

나는 가방을 천천히 내려놓고, 나보다 훨씬 길로 큰 아버지의 손을 감싸 쥐었다.

- <귀가> 중에서, p246



SF 소설을 많이 읽지 못했던 건 언제나 내 발이 '현실'을 딛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도 대체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좋아했고, 내가 가능할 수 있는 세상의 이야기를 읽기를 바랐다.

정소연의 소설을 읽으면서 세계와 세계 사이, 틈과 틈 사이,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세계에도 결국 사람이 있고, 삶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혐오 받는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 그러나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이. 그들이 살아가는 삶이.

나는 언제나 누군가가 빈자리를 채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세계의 루트벤은 다른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셸던 부인이 낯선 시공을 헤매며 만들어간 것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가 빈자리로 남은 세계가 아니었다.

언제나,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앨리스와의 티타임> 중에서, p34

언제나,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고 나도 그렇다.

틈을 넘어가야 보일지도 모르는 내가 모르는 세계에 겁내지 않기를,

그 틈을 보아야 내가 아닌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보일 것임을,

손 내밀기를 주저하지 말기를,

소설을 덮고 난 뒤 오래 한 생각이다.


"아주 천천히, 아주 적은 글을 썼다. 삶은 외롭고 용기는 드물고 선의는 귀하여, 삶에서 이야기를 건져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보기에 가장 외로운 것, 가장 진심인 것, 가장 귀한 것을 모아 소설로 만들었다.

소설이라는 이 배가 당신과 나 사이의 긴 항해를 버틸 만큼 튼튼하기를, 시공간을 넘어 언젠가 결국은 당신에게 도달하기를 바란다.

<작가의 말> 중에서,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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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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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읽게 하지 않는 책을 도대체 왜 읽는 말입니까?

서문에 적힌 문장이다.

책을 통해 '나'를 읽을 때, 나는 '나'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같이 읽는(p7) 다는 말이 좋았다.

작가는 그러므로 읽기가 중요하고 '우리는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어야 한다(p7)' 덧붙여 썼다.

그러려면 집중해야 한다고.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고.

"집중하는 읽기를 고요한 읽기라고 바꿔 써도 되지 않을까요?" (p8)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엔가 깊이 몰두해 있는 상태를 고요한..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경험에 의하면, 집중해서 읽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니 고요한 읽기란 역시 쉽지 않다. 책을 읽으려고 하면 뭔가 자꾸 주변이 산만해지고, 안 찾던 사람들이 나를 찾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들은 왜 그리 떠오르는지. 그러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설렁설렁 넘기게 되기도 했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기 위해서는 고요하게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요즘 많이 느끼는 중이라, 많이 공감이 됐다.

자기를 중심으로 어떤 사건(일)을 재구성해서 생각하는 게 '나'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요즘 몇 가지 일들로 마음고생을 좀 했다. 나는 나를, 타인을 생각하는 일에 고요와 반대로 조금 소란스럽게 대응했던 것도 같고.

여전히 조금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조금 차분해졌다.

이 책은, 단지 독서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어떤 태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읽는 태도, 기억하는 태도, 말하는 태도, 치유하려는 태도, 인정하려는 태도 같은 것들에 대해서.

행여라도 사람은 기꺼이 자기를 찾는다고 말하지 말라. 사람은 할 수 있는 한 자기 자신을 찾지 않고 회피한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할 때까지 외면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마침내 하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달아난다. 자기 자신이 가장 멀리 있다. 끝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다. - P19

사랑이 죽음보다 강한 것이 아니라, 죽음이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한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잃어버릴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없다. 잃어버릴 두려움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 P89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 사람은 자기에게 허락된 기다림을 산다.

기다림은 그냥,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은 무위와 관계없다. 오히려 기다림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적극적인 행위다. 말하자면, 노동.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리는 일을 하느라고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 P118

너무, 지나치게 사람을, ‘자아‘를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주행 운전자의 그처럼 투철한 확신이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에서 비롯됐다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그는 마취했고, 분별력을 잃었고, 혹시 자기가 잘못 가고 있는지 돌아 볼(의심해 볼) 여유를 빼앗겼고, 오직 맹목의 확신에 사로잡혔다. 자기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다, 만취한 사람과 같다. 제어 불능의 이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정상이 아닌데 다반사가 되었다. - P205

언제까지 걸을 거라고 미리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걸으면 된다. 언제까지 쓸 거라고 미리 결심할 필요가 있을까. 글을 쓸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쓰면 된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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