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를 읽게 하지 않는 책을 도대체 왜 읽는 말입니까?

서문에 적힌 문장이다.

책을 통해 '나'를 읽을 때, 나는 '나'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같이 읽는(p7) 다는 말이 좋았다.

작가는 그러므로 읽기가 중요하고 '우리는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어야 한다(p7)' 덧붙여 썼다.

그러려면 집중해야 한다고.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고.

"집중하는 읽기를 고요한 읽기라고 바꿔 써도 되지 않을까요?" (p8)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엔가 깊이 몰두해 있는 상태를 고요한..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경험에 의하면, 집중해서 읽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니 고요한 읽기란 역시 쉽지 않다. 책을 읽으려고 하면 뭔가 자꾸 주변이 산만해지고, 안 찾던 사람들이 나를 찾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들은 왜 그리 떠오르는지. 그러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설렁설렁 넘기게 되기도 했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기 위해서는 고요하게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요즘 많이 느끼는 중이라, 많이 공감이 됐다.

자기를 중심으로 어떤 사건(일)을 재구성해서 생각하는 게 '나'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요즘 몇 가지 일들로 마음고생을 좀 했다. 나는 나를, 타인을 생각하는 일에 고요와 반대로 조금 소란스럽게 대응했던 것도 같고.

여전히 조금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조금 차분해졌다.

이 책은, 단지 독서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어떤 태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읽는 태도, 기억하는 태도, 말하는 태도, 치유하려는 태도, 인정하려는 태도 같은 것들에 대해서.

행여라도 사람은 기꺼이 자기를 찾는다고 말하지 말라. 사람은 할 수 있는 한 자기 자신을 찾지 않고 회피한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할 때까지 외면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마침내 하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달아난다. 자기 자신이 가장 멀리 있다. 끝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다. - P19

사랑이 죽음보다 강한 것이 아니라, 죽음이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한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잃어버릴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없다. 잃어버릴 두려움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 P89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산다. 사람은 자기에게 허락된 기다림을 산다.

기다림은 그냥,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은 무위와 관계없다. 오히려 기다림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적극적인 행위다. 말하자면, 노동.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리는 일을 하느라고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 P118

너무, 지나치게 사람을, ‘자아‘를 부추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주행 운전자의 그처럼 투철한 확신이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에서 비롯됐다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그는 마취했고, 분별력을 잃었고, 혹시 자기가 잘못 가고 있는지 돌아 볼(의심해 볼) 여유를 빼앗겼고, 오직 맹목의 확신에 사로잡혔다. 자기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다, 만취한 사람과 같다. 제어 불능의 이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정상이 아닌데 다반사가 되었다. - P205

언제까지 걸을 거라고 미리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걸으면 된다. 언제까지 쓸 거라고 미리 결심할 필요가 있을까. 글을 쓸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쓰면 된다. - P2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