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동안 알코올중독 엄마의 딸로 살아온 여자가 있다.
술 때문에 딸의 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한 엄마.
술 때문에 아무 데서 건 쓰러지고, 경찰의 전화를 여러 번 받게 한 엄마.
술을 사러 나가지 못하 게 한다고 과도를 휘두르던 엄마.
그런 엄마를 선명하게 미워했다고 썼다. 정확하게 사랑했다고 썼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그 문장이 너무 슬프고 기쁘고 찡했다.
이건 정말 알 것 같아서.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서 그랬다.
'엄마'라서 징글징글하지만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었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알지 않을까.
이 양가적 감정이 뭔지, 정확한 단어로 설명할 순 없을지 몰라도 느껴지지 않을까.
'그래, 그런 거 있어.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했어'. 하면서.
책 속에는 어린 시절의 저자가, 청소년기의 저자가, 어른이 된 뒤의 저자가 살고 있다.
그 옆엔 언제나 어른이었던 그녀의 엄마가 있었다. 의지하고 싶었으나 의지할 수 없었던, 그럼에도 곁에 있어 좋았던 엄마가.
사랑인 줄 몰랐으나 끝내 완벽하게 사랑이었음을 알게 해준 엄마가.
엄마가 되고 나서 알았다.
대단한 엄마라서가 아니라 그냥 '엄마'라서 아이들은 무턱대고 엄마에게 무한한 애정을 품어준다는 것을.
시도 때도 없이 그 사랑을 표현해 준다는 것을.
그래서 또 알았다. '엄마'가 가장 무서운 건 '자식'이구나.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된다.
엄마가 어떻게 그래? 수없이 되뇌던 말이 작가의 문장처럼 "어떻게 저런 사람이 엄마를 해냈을까"로 바뀔 만큼의 시간이 내게도 흘러갔다.
좋으면서 슬픈 것, 좋은 것과 같이 딸려오는 슬픔, 아이가 병렬로 놓은 좋음과 슬픔이라는 단어가 담긴 문장을 곱씹는다. 좋고 소중하기 때문에 때로 슬펐던 시간들. 슬펐어도 분명히 존재했던 빛나는 시간들. 빛나던 시간 안에도 그늘은 존재하고, 유쾌한 웃음소리 안에도 글썽이는 눈물은 있을 수 있다. 좋고 나쁨을 정확하게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삶은 어렵고 복잡하다. 삶이 품고 있는 복잡성과 모순을 껴안는 것이 버거웠던 나의 시간들이 아이와 걸으며 떠올랐다. - <분홍색 나뭇잎> 중에서, p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