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눈동자에 건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구입하면 에코백을 준다, 고 했다.
아, 벌써 구입해버렸는데 아쉽다. 어? 신간이 또 있네.
요즘 서점에서 핫한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구나.

만약에, 이 소설 『그대 눈동자에 건배』,를 읽지 않았다면 에코백에 혹해서 새로 나온 신간도 덥석 장바구니에 넣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보니 이 소설은 '일본 문학 / 추리 미스터리 소설'로 분류되어 있었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다.

그러고 보니, 새해 들어 본의 아니게 미스터리 소설을 두 편이나 읽었다. 먼저 읽은 <마지막 패리시 부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어쨌든. 당분간 미스터리 소설은 그만.

 

 

소설은 재미있었다. 가독성 최고.
아홉 편의 소설을 읽은 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계속 읽고 싶었다.
어떤 소설은 우와~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지, 싶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까지.

다 읽고 난 뒤 책장을 덮고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었다. 미련 없이, 이런 느낌.
어떤 소설을 읽은 뒤에 여운이 길어 한참 헤맬 때가 있는데, 이 소설은 가볍고 재미있게 읽고 후련해지는 느낌이랄까. 군더더기 없는 소설.
심각한 거 말고, 생각 많이 하기 만드는 거 말고 가볍고 가독성 높은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만족스러울 듯하다.

아홉 편의 소설
< 새해 첫날의 결심 /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 /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 / 그대 눈동자에 건배 / 렌털 베이비 / 고장 난 시계 / 사파이어의 기적 /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 수정 염주 > 중에서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 / 그대 눈동자에 건배 / 렌털 베이비
세 편이 가장 재미있었다.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는 헤어진지 10년이 지난 전 애인의 갑작스런 연락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간 만남의 자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는 우연히 나가게 된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나 드디어 애인이 생기는 모양이다, 라고 기대한 한 남자에게 벌어지는 이야기.

<렌털 베이비>는 실물 아기와 비슷하게 구현되어 있는 로봇아기를 데려다가 일정 기간동안 부모가 되는 체험을 하는 내용인데, 남편도 아기도 업체에서 매칭을 해준다. 아기는 실제로 울기도 하고 똥도 싸고 보채고 실제 아기처럼 행동하고, 보호자가 된 사람들은 진짜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밤잠을 설치고 힘들게 부모 체험을 한다. 그리고 결말에 가서 드러나는 반전. 조금 허무하기는 했지만 헉, 하게도 했던.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더 좋긴 했다.
결국 취향의 문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홀딩, 턴
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거 같아서.
- 살다 보면 이런 때도 있는 거지, 뭐. 다들 깨 볶으면서 사는 거 아니야. p17

싸우고, 감정 다치고, 추스르고, 사과하는 법에 서툴러서 내 연애는 늘 소극적이었다.
어지간하면 상대에게 맞춰주면서 별거 아냐, 이 정도쯤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던 것 같다.
내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면 상대방이 화를 낼까 봐, 혹은 헤어지게 될까 봐 때론 두려워했던 것도 같다.

그래봐야 고작 십 대 시절의 풋풋했던 연애 한 번에, 이십 대에 짧은 연애 한 번과 지금 신랑과 한 7년간의 연애 세 번의 연애가 전부지만 연애를 통해 나를 많이 알게 된 건 사실이다.

신랑과 긴 연애가 가능했던 이유는 서로 그 감정싸움을 할 필요가 없어서였던 것 같다.
내가 굳이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대부분 맞았고, 서로 같이 있지만 따로 있는 것처럼 자유로웠다.
만약, 그때 우리가 헤어졌다면 나는 이런 이유를 댔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날 자유롭게 두니까, 날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아서."

결혼을 하고 난 뒤에, 그게 얼마나 서로에게 장점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사내 연애에, 결혼하고 나서도 같은 직장에 다니는지라 서로 손바닥 안일 수밖에 없는 생활 반경.
그나마 부서가 다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결혼 이후 내가 지금까지 꼭 지키는 게 하나 있다면, 같은 직장이라도 어지간하면 퇴근 후에 직장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 신랑이 퇴근 후가 갖는 술자리엔 잘 아는 동료들이라고 해도 같이 합석하지 않는 것. 술자리에 누가 함께 했는지 뭘 했는지 묻지 않는 것.

 

서유미 작가의 <<홀딩, 턴>>을 읽으면서 결혼에 대해, 결혼한 부부에 대해, 그 관계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소소한 갈등을 겪고, 별거를 하고, 이혼을 결심하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박을 하거나 큰 빚을 지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엄청난 시집살이에 괴로워 헤어지는 부부들도 많겠지만 어떤 부부들은 정말 사소한 것들로 헤어짐을 결심할 수도 있겠구나.
같이 있는 게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거나, 남자가(여자가) 싫증이 났거나, 혼자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데, 그런 사소한 이유로 헤어진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 다들 그렇게 살아. 별거 없어. 그니까 그냥 어지간하면 그냥 살아."라고.

- 사는 게 이런 건가. 다들 이렇게 사나. 둘러보게 되더라.
   어쩌다 한번 싸우는 게 아니라 가끔 화해하며 사는 사람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원수가 되거나 한집에 살면서 같이 밥을 먹는데 서로에게 가장 냉소적인 사람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한 번쯤은 꽉 막힌 수챗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섣불리 덤볐다가 역류해서 바닥이 지저분해지고 옷이 다 젖을까 봐 겁이 났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해 가고 싶었다.
- 네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천천히 해나가고 싶었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p44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나, 피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할 때 때론 오히려 더 담담해지기도 한다.

소설 속 남자와 여자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아릿했다. 작가는 이별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쓰고 나니 사랑 이야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도, 이별도 때론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니까.

잘 지내는 것 같던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가 깨질 때 상대의 불륜이나 변심, 파산, 폭력, 중독은 선명한 파경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로 명명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자잘하게 집 여기저기에 곰팡이처럼 번져버린 경우도 있다. 볼 때마다 닦고 주기적으로 꺼내서 말리는데도 은밀하고 깊숙하게 번져나간 곰팡이를 목격할 때면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며 손을 놓고 싶어진다. 곰팡이가 관계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p47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만 알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부부에게도 건드릴 수 없는 약한 부분이 있을 테고, 진짜 맞지 않아 보이는 부부 사이에도 그들만의 접점이 되는 맞는 부분이 분명 있겠지.
타인의 이야기를 쉽게 하거나, 타인의 상황을 쉽게 이해한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알지 못하는 영역 때문이 아닐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혼자 헤어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결혼 4년 차쯤.
육아도 혼자 하는 거 같고, 외로운 거 같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았다.
싸움도 없었고,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도 없었다.
대신 대화가 줄었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지금은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도 그랬을까.
-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겠지. 그래도 우린 나쁜 건 아니잖아.

이별이나 이혼에 대해 말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없었다.
지원은 빈 머그잔을 꼭 쥐었다. 이혼 문제를 이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나, 하는 염려와 고민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같이 있는 게 힘들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면 헤어지는 게 맞지, 하는 체념이 동시에 들었다. 이 합의가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고 평생 함께 하겠노라 선언하던 그 장면을 훼손하는 거라고 여기지 않기로 했다. 결혼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행복해지려고 했던 거라면 이혼에 대한 고민도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당사자인 두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합의하는 순간 타당한 일이 된다. 물론 이유를 불문하고 지원이 이혼했대. 누군가 말하고 옮길 때 부정적인 궁금증과 억측, 짐작을 몰고 오리라는 건 뻔했다. 다른 사람의 이혼 호식을 접했을 대 지원도 그랬으니까. 입방아에 오르거나 안됐다는 시선을 받을 걸 알면서도 그 일에 과감히 뛰어들려고 하는 건 그러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해서다. 남은 날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삶의 방향을 바꾸려는 것이다.
- 네가 잘해보려 했던 거 알고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 이렇게 돼서.
영진은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 나도 미안해. 결국 이렇게 돼서. p147-148

적어도, 남은 날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지금 이별을 고하는 사람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
아이 때문에, 부모 때문에, 시선 때문에 조금 덜 행복한 쪽을 찾는 많은 사람들보다는(물론, 현실에서는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런 소설이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정의하거나, 긴박한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마치 일상을 그리듯 이야기해 주는 소설.
그래서 지금의 자신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소설.

-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 꼭 해어져야 해?
그 질문들은 그동안 지원이 이별한 사람들에게 던졌던 것이라는 점에서 예측 가능했다. 그 입장이 돼보니 말의 온도가 달랐지만 돌려받을 차례가 된 거라고 생각하면 야속하거나 섭섭하지 않았다.
살다 보니 누군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러서 신뢰가 깨지고 그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부수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서로 죽일 듯이 싸워야만 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대화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로의 뒷모습을 보며 적의가 담긴 눈길을 쏘아대는 순간 헤어짐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p229

사랑도, 이별도 거창한 게 아니라는 것.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말자는 다독임. 위로. 공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동안 내가 얼마나 가볍고, 잘 읽히고, 단번에 이해가 되는 소설들만 읽어왔는지 갑자기 깨달았다.
이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읽으면서.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가 더뎠다. 읽다가 다시 앞으로, 다시 앞으로 여러 번 되돌아가야 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바를, 소설의 맥락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조금 벅찼다.
다 읽고 난 뒤에는 '아, 드디어 다 읽었어' 뭔가 어려운 숙제를 해결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올해는 외국 소설을 좀 더 많이 읽어야겠구나( 왜 이런 결론이 났지 ;;)

 

 어쩌면 나는 지금도 이 소설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남은 상실과, 그 상실을 애도하는 과정을 조용히 따라갔던 것 같다. 그런데 조용히 따라만 가기에는 장면, 장면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툭 튀어 나오기도 했고, '흡' 숨을 멈추게 만드는 장면들이 보이기도 했다.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아꼈던 이들을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
사랑하는 이들은 없지만 남겨진 자신은 남아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현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서 꾸역꾸역 남아 있는 날들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진정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1부 집을 잃다
2부 집으로
3부 집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야기는 각기 시대도 배경도 다르지만 마치 한편의 소설처럼 만난다.

나는 책을 덮었지만, 아직 온전히 덮지 못했다.
어쩐지 자꾸 이 소설이 내 등을 두드릴 것만 같다.

한두 달쯤 흐른 뒤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 아니 꼭 다시 읽어봐야 할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 선 - 나의 섹슈얼리티 기록
홍승희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장실에서 초조하게 임신테스트기를 바라보던 어느 날 오후, 두 개의 붉은 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외마디 비명이 나왔다. 붉은 선은 '너의 삶은 이제부터 정지될 예정
이라고 선고하는 것 같았다. 예감은 실제였다. 임신중절수술 후 몇 개월 동안 두통과 복통, 외로움과 배신감에 떨었다. p5

하필이면 그랬다.
조산기로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이 책을 읽었다.
배가 아파 병원에 가면서 가방에 챙겨 넣은 책이 하필이면 이 책, 『붉은 선』 이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한 권의 책을 읽는데.
뱃속의 아이를 지키겠다고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 병실 침대에 기대서 누군가가 낙태 수술을 하고,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해 고백한 글을 읽었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지만, 그리고 그럴 일도 아니지만 괜히 혼자, 마음 한 켠이 찌릿했다. 그리고 곧 부끄러워졌다. 나의 편견이.

 

 이 책 속에 실린 몇 편의 글을 <일다> 홈페이지에서 이미 읽었다.

책으로 나오기 전의 글들을 읽으면서도 놀랍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그것도 친한 친구에게조차 털어놓기 힘든 경험을 공유하는 글쓰기를 한다는 것 자체로.
개인의 이야기를 할 때, 혹은 글로 적을 때 자신도 모르게 조금은 숨기거나 미화하거나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 건 온전히 내 기준에서였다. 저자는 적어도 숨기거나, 포장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대단하다고 과시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조근조근 털어놓는다.

초등학생 때의 첫 자위, 십 대 시절의 첫 경험, 낙태, 강간, 성노동 경험까지.
쉽게 쓸 수 없었겠지만,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어쩐지 조금 이해가 될 듯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건 정말이지 꼰대 같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비슷한 시대에 초, 중, 고를 다니고 이십 대, 삼십 대를 보냈는데 이렇게 삶의 모습(겪은 일들이)이 다를 수가 있다니. 내가 너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건가. 아니면 저자가 유난히 안 겪어도 될 일을 겪으며 살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뜨는 저자의 기사 밑에 달리는, 페이스북 저자의 포스팅 글에 달리는 댓글들엔 옹호의 글도, 응원의 글도 많지만 악플도 정도가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로 많았다.
이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가 궁금해 검색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나는 여전히 헷갈린다. 이 책의 글들이, 다수의 사람(아직 어린)들에게 공개되는 경험의 공유가 긍정적인 것인지, 혹은 아직은 어린 사람들에게는 부정한(왜곡된) 시선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인지......
그렇지만,
" 나를 양보하지 않으려고 쓴다. 세상의 이름과 규정이 더는 나를 대신하지 못하도록 이름을 뚫고 말 거는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병이 나거나 몸이 간지러워서 죽을 것 같으니까. 당신 속에 있는 나를, 비체가 된 나를 당신이 소외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중략) 이제 나는 더 크게 숨 쉬고, 더 깊게 잠수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나의 꾸물꾸물한 오늘을 지켜냈으면 좋겠다. p11"라는 저자의 고백을 지지한다.

일부러 옹호하고, 지지하고, 권장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지키는 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양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리고 내 아이들 역시.

 임신중절수술 자체보다 그 이후에 들이닥친 고통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말하지 못하는 고통, 수많은 여성이 혼자 갇혀 있었을 독방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남성 중심 사회의 맨얼굴을 온몸으로 직면했다. 지금 나는 그들이(이 사회가) 원하는 것처럼 두렵거나 수치스럽지 않다.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다. 여성을 억압해온 전형적인 '문란한 여자' 서사의 무기로 나를 입막음하려던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을 말하며 존경받는 사회라는 게 허무하고 슬프다.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ㅇ르 위해 한평생 살아온 그들이 지킨 것은 결국 가족의 명예였다. 자신의 아들, 어머니, 아버지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협박도 불사하는 가족 안의 휴머니스트들. 내가 활자 속 페미니즘, 엘리트 민주주의를 믿지 않는 이유다. 나는 내 몸이 겪은 일들만 말할 수 있다. p193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많은 여성들이 읽어야 하고 공유해야 하고, 함께 생각하고 나눠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라나는(아직 어린 혹은 청년인) 남성들이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게 여성 혐오, 반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즘 지지자 뭐 이런 것들도 양분하지 않고, 그냥 좋은 사회, 좀 더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남자라서 자유로운 게 아니라 같이 한 일에 같이 책임을 질 줄 하는 사람으로 자라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여성을 깎아내리고 무시하고 같이 잔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을 때 도망치는 남자들이 결국 숨는 건 여성인 자신의 엄마 뒤가 아닌가. 엄마의 치마폭 뒤에 숨어 자신은 조용히. 엄마가 해결해주는 대로. 그리고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세상으로 나오는 덜떨어진 인간(남자 이전에)이 되지는 말아야지 않을까.

글만큼이나 함께 실린 그림이 참 좋았다.
그림만으로 저자의 마음을, 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섣불리 이해했다고 말하지 않겠다.
응원한다고도 말하지 않겠다. 다만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조금 더 솔직한 나를 만나게 해줘서. 한 번 더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게 해 줘서.
누구에게나 혼자만 품고 있는 '붉은 선' 하나쯤 있지 않을까.
그 선 밖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갈 용기가 생겼을 때, 나는 진짜 어른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니멀라이프 시간과 돈 사용법 - 인기 미니멀리스트 27인의 살림 아이디어 for Simple life 시리즈 2
주부의 벗사 지음, 김수정 옮김 / 즐거운상상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니멀라이프에 관한 책을 여러권 읽으면서 내가 추구하고싶은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기준을 어렴풋하게나마 세울 수 있었다.

미니멀라이프를 왜 하고 실천하고 싶은지, 가장 미니멀하게 정리하고 싶은 부분이 어디인지, 나에게 부족한 부분은 뭔지 등등.
미니멀라이프에 대해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에대해, 내 생활에 대해, 우리 집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하나씩 생각해 보게 되었다.

 

 미니멀리스트 27인의 정리법이 나와있는 <<미니멀 라이프 시간과 돈 사용법>>은, 이론보다는 실전에 가까운 실용서다.
사진과 설명이 친절하게 나와있어서 관심있는 부분을 직접 따라해 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구성되어 있다.
또, 생활 패턴이 다르고 집이다른 27명의 절약법을 엿볼 수 있어 유용하기도.

우리 집은 청소와 요리 두 가지로 업무 구분이 되어 있다.
신랑은 청소, 나는 요리.
그러다보니 나는 적어도 신랑이 정리하고 청소하는 영역에 대해 터치하지 않는 편이고,
신랑 역시 요리와 냉장고, 주방 구성 등에 대해 일절 참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주방정리에 관심이 많다.

 

 야채칸 정리, 일주일치 장보기, 음식 미리 만들어두기 등 따라해보고 싶은 정보가 많았다.
지금은 일시 휴식중이라 몸이 좀 괜찮아지면 천천히 하나씩 해볼 생각이다.

냉장고 정리와 식자재 보관 등을 통해 식비를 줄이고, 냉장고를 좀 비어보이게 만들고 싶은 게 가장 큰 목표다. 늘 가득가득 차 보이는데도 뭘 해먹으려고하면 재료가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느낌 ㅜㅜ
한 달 하고 2주동안 가계부를 적어보니 식비에 너무 많은 비용이 지출되고 있었다는 걸 다시 느끼고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고민 중.
 냉장고 정리, 식단짜기 등을 통한 식비 줄이기.. 가 지금 나의 미니멀 라이프 생활의 최대 목표.

 

 <식단짜기와 장보기 방법, 만들어 두는 요리법, 간단한 청소법, 정리의 요령, 효율적인 청소용품, 유지하기 쉬운 수납법, 가구와 가전 관리법, 가족과의 시간 만들기, 가계부, 지출검토, 봉투나누기, 부수입>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가지 정보들 중 본인에게 필요한 부분만 쏙쏙 골라 필요할 때 펼쳐 볼 수 있을 것 같아 좋다.

청소하는 시간을 줄이고, 음식하는 시간을 줄여 그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매일 시간없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댔던 내게 작은 자극이 되기도 했다.

가볍고, 얇아서 읽기 부담없지만,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원하는 독자라면 뭔가 아쉽다, 싶을 수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