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선 - 나의 섹슈얼리티 기록
홍승희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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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초조하게 임신테스트기를 바라보던 어느 날 오후, 두 개의 붉은 선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외마디 비명이 나왔다. 붉은 선은 '너의 삶은 이제부터 정지될 예정
이라고 선고하는 것 같았다. 예감은 실제였다. 임신중절수술 후 몇 개월 동안 두통과 복통, 외로움과 배신감에 떨었다. p5

하필이면 그랬다.
조산기로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이 책을 읽었다.
배가 아파 병원에 가면서 가방에 챙겨 넣은 책이 하필이면 이 책, 『붉은 선』 이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한 권의 책을 읽는데.
뱃속의 아이를 지키겠다고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 병실 침대에 기대서 누군가가 낙태 수술을 하고,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해 고백한 글을 읽었다. 누구의 탓도 아니었지만, 그리고 그럴 일도 아니지만 괜히 혼자, 마음 한 켠이 찌릿했다. 그리고 곧 부끄러워졌다. 나의 편견이.

 

 이 책 속에 실린 몇 편의 글을 <일다> 홈페이지에서 이미 읽었다.

책으로 나오기 전의 글들을 읽으면서도 놀랍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그것도 친한 친구에게조차 털어놓기 힘든 경험을 공유하는 글쓰기를 한다는 것 자체로.
개인의 이야기를 할 때, 혹은 글로 적을 때 자신도 모르게 조금은 숨기거나 미화하거나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 건 온전히 내 기준에서였다. 저자는 적어도 숨기거나, 포장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대단하다고 과시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조근조근 털어놓는다.

초등학생 때의 첫 자위, 십 대 시절의 첫 경험, 낙태, 강간, 성노동 경험까지.
쉽게 쓸 수 없었겠지만,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어쩐지 조금 이해가 될 듯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건 정말이지 꼰대 같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비슷한 시대에 초, 중, 고를 다니고 이십 대, 삼십 대를 보냈는데 이렇게 삶의 모습(겪은 일들이)이 다를 수가 있다니. 내가 너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던 건가. 아니면 저자가 유난히 안 겪어도 될 일을 겪으며 살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뜨는 저자의 기사 밑에 달리는, 페이스북 저자의 포스팅 글에 달리는 댓글들엔 옹호의 글도, 응원의 글도 많지만 악플도 정도가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로 많았다.
이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가 궁금해 검색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나는 여전히 헷갈린다. 이 책의 글들이, 다수의 사람(아직 어린)들에게 공개되는 경험의 공유가 긍정적인 것인지, 혹은 아직은 어린 사람들에게는 부정한(왜곡된) 시선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인지......
그렇지만,
" 나를 양보하지 않으려고 쓴다. 세상의 이름과 규정이 더는 나를 대신하지 못하도록 이름을 뚫고 말 거는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병이 나거나 몸이 간지러워서 죽을 것 같으니까. 당신 속에 있는 나를, 비체가 된 나를 당신이 소외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중략) 이제 나는 더 크게 숨 쉬고, 더 깊게 잠수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나의 꾸물꾸물한 오늘을 지켜냈으면 좋겠다. p11"라는 저자의 고백을 지지한다.

일부러 옹호하고, 지지하고, 권장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지키는 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양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여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리고 내 아이들 역시.

 임신중절수술 자체보다 그 이후에 들이닥친 고통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말하지 못하는 고통, 수많은 여성이 혼자 갇혀 있었을 독방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남성 중심 사회의 맨얼굴을 온몸으로 직면했다. 지금 나는 그들이(이 사회가) 원하는 것처럼 두렵거나 수치스럽지 않다.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다. 여성을 억압해온 전형적인 '문란한 여자' 서사의 무기로 나를 입막음하려던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을 말하며 존경받는 사회라는 게 허무하고 슬프다.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ㅇ르 위해 한평생 살아온 그들이 지킨 것은 결국 가족의 명예였다. 자신의 아들, 어머니, 아버지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협박도 불사하는 가족 안의 휴머니스트들. 내가 활자 속 페미니즘, 엘리트 민주주의를 믿지 않는 이유다. 나는 내 몸이 겪은 일들만 말할 수 있다. p193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많은 여성들이 읽어야 하고 공유해야 하고, 함께 생각하고 나눠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라나는(아직 어린 혹은 청년인) 남성들이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게 여성 혐오, 반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즘 지지자 뭐 이런 것들도 양분하지 않고, 그냥 좋은 사회, 좀 더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남자라서 자유로운 게 아니라 같이 한 일에 같이 책임을 질 줄 하는 사람으로 자라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여성을 깎아내리고 무시하고 같이 잔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을 때 도망치는 남자들이 결국 숨는 건 여성인 자신의 엄마 뒤가 아닌가. 엄마의 치마폭 뒤에 숨어 자신은 조용히. 엄마가 해결해주는 대로. 그리고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세상으로 나오는 덜떨어진 인간(남자 이전에)이 되지는 말아야지 않을까.

글만큼이나 함께 실린 그림이 참 좋았다.
그림만으로 저자의 마음을, 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섣불리 이해했다고 말하지 않겠다.
응원한다고도 말하지 않겠다. 다만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조금 더 솔직한 나를 만나게 해줘서. 한 번 더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게 해 줘서.
누구에게나 혼자만 품고 있는 '붉은 선' 하나쯤 있지 않을까.
그 선 밖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갈 용기가 생겼을 때, 나는 진짜 어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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