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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자들 - Dear 당신, 당신의 동료들
4인용 테이블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1월
평점 :
세상에는 일하는 여자들은 많다. 너무 많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이고.
그럼에도 '일하는 여자'에 대해 거기에 덧붙여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데 '일하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힘들겠다. 대단하다 같은 말이 붙어야 하는지 이따금씩, 아니 실은 자주 생각한다.
세상에는 일하는 남자들도 많다. 여자들보다 더 많겠지.
나와 같이 사는 남자 역시 그중 한 명이고.
그럼에도 그들에 대해(일하는 남자에 대해), 거기에 덧붙여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는데 '일하는 남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단하다 같은 말을 왜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아마도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부터), 나는 '내가 해야 해'라는 생각이 유독 심했다. 같이 사는 남자와 나는 같은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부서는 다르지만), 출퇴근 거리나 업무의 강도(부서가 달라 업무가 바쁜 시기가 다르기도 하지만), 직장 상사나 직장 시스템의 문제 등등을 동일하게 겪고 있다. 그럼에도 첫아이를 낳으면서 육아 때문에 동동거리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아이 때문이라면 휴가도 내가 냈고, 저녁에 친정에서 데려오기, 씻기기, 먹이기, 재우기 등등에 할애하는 시간이 남자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남자는 주 3일 이상 꼬박꼬박 밤 운동을 나갔고, 종종 회식에 참여했다. 잠이 부족해도, 몸이 좀 힘들어도 '엄마니까 나는'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일하는 여자'에 대한 내 정체성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배우 전문기자 백은하 ‘이런 시대에는 프로답게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 다들 자기 자신이 재미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그냥 내가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내가 뭘 해야 행복한지 알면 된다. 삶을 바라보는 내 태도를 보고 후배들이 ‘저렇게 살면 되겠다‘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다면 고맙지. (중략) -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포기하고 막 살까? 아니,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거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각자가 잘 사는 게 중요하다. 그 어떤 인류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 나 역시도 그렇게 어떤 때보다 개인적으로, 어쩌면 이기적으로 나 하나 잘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
영화감독 윤가은 ‘자신을 믿는다면,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마음) ‘너 여자니까 이런 영화 해야 해. 이런 영화는 안 돼‘ 하는 말들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는 ‘아무 말‘이다. 여성에 대한 시선, 가치 평가 때문에 움츠러드는 문제들은 영화를 실제로 만들기 시작하면 작아진다. 내가 창작자로 어떤 이야기를 할지 깊게 들이마시고 자신을 믿는다면, 앞으로 나아가볼 수 있는 게 영화다.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러스트레이터 임진아 ‘ 본인 스스로 물어보고 결정했다면 그걸로 된다.‘ 「다들 개인적으로 뭔가를 만들 때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이걸 해도 될까요?" 본인 스스로 물어보고 결정했다면 그걸로 된다. 그 작업물 안에 어떤 대상을 혐오하거나 언어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걸 스스로 발견하고 제동을 걸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아티스트 양자주 ‘내가 나를 컨트롤하는 게 중요하다‘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제대로 작업하고 있는가, 그래서 얼마나 좋은 작품을 만들고 있는가다. 그 작업을 알리는 건 꼭 기존의 미술계를 통하지 않더라도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굉장히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인스타그램만 열심히 해도 얼마든지 내 그림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고. 굳이 기존 시스템에 목매지 않았으면 한다. 남들이 닦아놓은 일률적인 길을 가는 게 예술이 아니지 않은가. 예술을 하고 싶다면, 작품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본인의 길을 닦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작가 최지은 ‘내가 먼저 했던 고민을 알려주고 싶다‘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 나는 여러모로 운이 좋은 편이었고, 지금 나보다 어린 여성들이 처한 상황이 나와 다르다는 걸 아니까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무엇을 선택할 때, 내가 먼저 했던 고민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려주고 싶다. ‘일이든 결혼이든 결정하기 전에는 이런 걸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내가 잃는 것은 무엇일 수도 있다‘ 하는 부분들. 그걸 공유할 수 있다면 어떠한 시행착오든 줄지 않을까. 」
GQ 에디터 손기은 ‘ 독보적인 구성원들 사이에서 혼자 별로인 사람이고 싶지 않다‘ 「다른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나도 똑같이 그렇게 일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하는 일이 계속 신선했으면 좋겠고, 그 신선도를 유지하고 싶다. 」
공연 연출가 이지나 ‘ 자신의 직업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 ‘월등해져라‘라는 말이 슬프고 구리지만 맞다. 정확히는 월등할 방법은 여러 가지라는 거다. 나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은 고요한 저항으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고, 나처럼 배 째라 스타일이 먹힐 때도 있다. 사람들이 나보고 성격 세다고 하지만, 어른이건 스타건 나한테 이상한 짓을 했을 때 ‘NO‘라고 말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부당함을 당하지 말고 저항하거나 복수하라고 말하고 싶다. 일에서의 관계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건강한 복수는 동기를 부여하며 삶의 에너지가 된다. 」
극작가 지이선 ‘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 롤 모델이나 멘토 같은 이름보다는 나는 그냥 나 자신이고 싶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여성이거나 약자이면 더. 나부터가 그렇게 되어야 그런 세상이 빨리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영화 <에일리언>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리플리는 엄마나 선생님 같은 내 주변의 여자들과는 달랐다. 그는 항해사였고 자신을 희생했고 심지어 우주선에서 고양이까지 구해 나왔다. 나에게 미래는 그 언니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현명하고 기민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감 있게 누군가를 보호하려 애쓰는 사람들. 지금도 그런 걸 꿈꾼다. 」
기자/방송인 이지혜 ‘소리 내서 말하고 지치지 않아야 한다‘ 「이제껏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데, 계획은 없다. 오랫동안 일하고 싶으니까 주어지는 것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할 수 있도록 생존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은 생존이다.」
뉴프레스 공동대표 우해미 ‘아이를 사랑하지만, 나에게는 내 삶이 있다‘ 「 (아이를 낳은 뒤 일한다는 것은?) 사회적 환경이나 인프라는 좋지 않다. 내 경우는 타이밍이 프리랜서가 된 다음이었기 때문에 시간 조율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쉽지 않지만 나는 계속 일을 할 것이다.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언젠가 아이는 내 품을 떠날 것이고, 나에게는 내 삶이 있다. 독립 후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일상의 균형을 스스로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불가능했겠지. 회사 다니면서 육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힘들지 보인다. 하지만 장단점이 있다. 나는 대신 고정 수입을 포기했다. 이런 것들을 자기 성향에 맞게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
N잡러 홍진아 ‘N개의 일이 서로 연결되어 내 삶을 만들어낸다‘ 「지금 20대들은 선택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성의 노동 환경 역시 자기 계발을 하거나 개인적인 차원으로 해결되는 상황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 사회가 망하지 않으려면 다양한 형태의 일이 많아야 하고,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걸 개선하는 기반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드시 정치가 아니어도 머리가 필요하다면 기획으로, 때로는 목소리로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야 나의 환경도 나아진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노력을 하며 N잡을 해볼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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